우리가 가야 할 길

다니엘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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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드라마 해피 엔딩 - 비현실적 : 오히려 좋아! 대리 만족
우리 인생도 해피 엔딩 : 인정받고, 칭찬받고, 결과가 좋고, 열매를 맺고 -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볼 때도 해피 엔딩에 초점 : 요셉 - 총리, 욥 - 자녀, 재산의 배가, 다윗 - 왕 , 다니엘과 세친구-총리, 고위관직
2 영화, 드라마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해피 엔딩을 꿈꾸다 보니, 성경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의 일하심보다는 ‘인물들’의 성공담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그렇게 되기를 선포하고, 꿈꾸고, 소원하고, 기도했다.
그러다 보니 고난에 대한 우리 안에 잘못된 이해와 해석이 자리 잡고 있다.
요셉의 고난, 욥의 고난, 다윗의 고난, 다니엘과 세 친구의 고난 :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치 노래방 간주 점프를 하는 것처럼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빨리 뛰어 넘어야 하는 시간으로, 또는 고난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공동체에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볼 때 ‘무슨 죄’가 있길래라든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거 아냐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믿음의 선택을 한다면 반드시 복이 뒤 따라오는가?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우리가 알만한 성경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또다른 믿음의 사람이 등장한다. 성경은 그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히브리서 11:35-38)
3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이 우리에게는 없을까? 우리에게 해피엔딩은 어떠한 성경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자
4 (본문 이야기) (단 3:5) 30 미터에 달하는 금신상을 만들고 느부갓네살 왕은 절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명절) 절하는 것은 어려운 요구가 아니다. 그런데 절하라는 명령이 너무나 어렵고 거리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 믿음 때문에 신앙 때문에 그랬다.
하지만 거리낀다고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왜? 명령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무시무시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 3:6) 풀무불에 던져지는 처형
용광로 : 과거 광양제철소, 이라크 바바 구르구르 원전 (꺼지지 않는 불)
풀무불은 모두가 아는 두려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친구는 왕의 명령을 거부한다.
고난의 이유 : 믿음 때문에 신앙 때문에 - 직장, 사업, 사회에서 믿음 때문에 신앙 때문에 손해 - 불이익 - 희생, 교회 안에서는 칭찬과 인정이 교회 밖 세상에서는 위협과 협박으로 돌아온다. (단 3:19) 평소보다 칠배나 뜨겁게 : 가장 뜨겁게 -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잔인하게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이야기 고난 - 기적 - 성공 : 해피엔딩, 이것은 굉장히 비현실적 이야기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이다.
아버지 20년 직장 생활 : 신앙 때문에 믿음 때문에 - 월급 감봉, 진급 누락
5 해피 엔딩을 말하는 본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그리스도의 다름 - 구별 - 거룩이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다름 - 구별 - 거룩은 무엇일까? 고난에 대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태도이다.
느부갓네살은 풀무불에 던져진 세 친구를 유심히 관찰한다. (단 3;24-25) 그러다 깜짝 놀라 일어나 묻는다. 세 사람이 들어갔는데 네 사람이 있다. 네 번째 사람은 신의 아들과 같다. 네 번째 사람은 누구? 예수 그리스도. 신앙과 믿음을 지키며 그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그들과 함께 하신다 : 믿음과 신뢰의 영역
성경은 고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는 현장이 고난의 때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불 속에 들어와 함께 하셨다. 이것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마 1:23) 신앙으로 믿음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 고난 중에 있는 우리와 함꼐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 지금도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2) 함께 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6 고난에 대한 우리의 해석 (벧전 4:12-13) 1) 고난은 당연한 것이다. 2) 고난에 즐겁게 참여해야 한다.
그렇다면 고난에 즐겁게 참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고난당한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왜 고난을 받으셨을까? 나를 위해 - 나를 살리기 위해서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왜 고난을 당했을까? 살리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사역에 한 팀이 되어 고난에 참여한 것이다. 13절에 ‘참여하는 것’은 헬라어 현재 - 능동태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의지적으로 고난에 참여 했다.
그렇다면 나는 고난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중인가?
영화, 무명 : 조선인을 살리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두 명의 선교사 - 믿음 때문에, 신앙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해피 엔딩은 무엇? 먼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나그네이다. 나그네의 이중적 의미가 있다. 첫째, 현재의 곤고함이다. 둘째, 미래의 소망이 있다. 우리의 미래는 반드시 해피 엔딩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와 미래 사이를 살아간다. 그 과정 속에서 살아내야 할 삶이 있다. 그 과정 속에서 가야 할 길이 있다. 그 길은 예수께서 살아내 신 삶이며 걸어가신 길이다.
(벧전 2:19-21) 예수의 길
(찬양) 예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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