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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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가이사랴
빌립보 가이사랴
모레 드디어 입학과 개학을 합니다. 기분이 좀 어떠신가요? 1학년들은 긴장 반 설렘 반? 일 수도 있을 것이고, 각자 이 시기에 대해 느끼는 것이 조금씩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학을 맞아서 어떤 말씀을 나누면 좋을까 참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기도하면서 올해 중고등부의 표어를 리마인드 할 수 있는 말씀을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해 표어가 무엇인가요? (슬라이드1) 우리는 학교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올해 우리 공동체의 표어입니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메시지이죠?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가족이 함께 예수를 믿는 경우,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조금 상황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부임할 때 나누어 드렸던 설문지를 기억하시나요? 그때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는 학교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힌다’고 대답했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저는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더 도전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히는 것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사는지 친구들에게 보여드리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것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은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말씀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은 아주 유명한 고백이죠?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예수의 질문과 베드로의 답이 나타나고 있는 이 장소입니다.(슬라이드2) 왜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냐?”라고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물으셨을까요? 빌립보 가이사랴, 가이사랴 빌립보, 어떻게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지역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먼저, 이 지역의 위치를 살펴보겠습니다. (슬라이드3) 빌립보 가이사랴는 갈릴리 지역의 북쪽을 지나, 이두매라는 지역에 있었던 산촌입니다. 예수께서 이 지역에 가셨을 당시,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형제 헤롯 빌립이 이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헤롯 빌립은 도시를 만들면서 자신의 이름을 도시의 이름으로 삼고, 여기에 로마의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함께 넣어서 황제에게 이 도시를 헌정합니다. 로마 황제는 카이사르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렸기 때문에 이 지역의 이름은 빌립보 가이사랴, 또는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리게 되었어요. 도시 전체가 황제를 위해 건축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들에게 있어 참된 평화는 로마 황제가 가져온 평화인 것입니다. 이들에게 있어 삶의 안정은, 제국의 부유함으로부터 오는 안정인 것이죠. 로마 제국의 권력과 부유함을 삶의 우선순위와 만족감으로 삼고 있던 도시에서 예수께서 물으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도시가 중요한 이유는 로마 제국의 권력 뿐만이 아닙니다. (슬라이드4,5) 이 도시에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전들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자, 내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본 적이 있다 손 들어보세요. 오늘은 즐겁고 재미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꽤 등장할 겁니다. 제가 언젠가 반드시, 그리스-로마 다신교를 염두해 두고 그에 대응해서 신약성경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다루려고 해요. 오늘은 가볍게 넘어가겠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도시 하나에 얼마나 많은 신전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슬라이드6) 왼쪽부터 아우구스투스 신전, 판과 님프들의 궁전, 제우스 신전, 네메시스의 법정, 신성한 염소의 무덤 사원, 판과 춤추는 염소들의 신전. 사람들은 이 신전에서 예배를 드리며 자신의 만족을 추구했습니다. 제우스는 헬라 신화의 최고 신이죠. 네메시스는 운명의 여신, 판은 헤르메스의 아들로 목자의 신이면서 성적 쾌락을 즐기는 신입니다. 부귀, 번영, 그리고 판의 신전에서는 성적인 문란함. 이 도시의 사람들은 로마 제국과 로마의 황제로부터 오는 번영과 평화, 그와 더불어 수많은 신들을 통해 그들의 욕망을 채우며 살아갔습니다. 이 도시의 한가운데서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서 베드로가 고백합니다.(슬라이드7)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는 구원자이십니다. 로마 황제가 구원자가 아닙니다. 로마의 평화와 번영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살아계신 신의 아들이십니다. 이 도시에는 수많은 헬라 신들의 처소가 있지만, 당신만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참된 신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탐욕을 위해 우리의 것을 구하지 않고, 오직 당신께서 가는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고백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 고백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나올 수 없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고백을 베드로에게 하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여러분 저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마치 거대한 빌립보 가이사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무엇이 성공이라고 말합니까? 1등급이 가득 찍혀있는 성적표를 받으면 이번 학기는 성공적!이라고 말합니다. 이과생들의 경우 구글, 앤디비아, 애플 등의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지방대라도 의대에 들어가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문과생들의 경우 로스쿨에 들어가거나 대기업의 사무직, 또는 공기업이나 정치계에 입문하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주후 1세기 사람들이 로마의 통치 아래에서 얻는 명예, 권력, 번영을 자신의 만족감과 평안, 그리고 소망으로 삼았던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러한 가치관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위로 위로 높이 높이 올라가려고 할 때,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가장 비천한 자리로 내려가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죠. 모두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총독, 분봉왕, 제사장, 서기관들에게 로비하며 식사자리 한 번 가지고자 할 때,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세리, 거지, 병자들과 함께 식사하셨죠. 모두가 자기의 만족과 유익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을 추구할 때,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내팽겨치고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 아시죠?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학창시절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학창시절에 여러분의 꿈과 비전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보기에 성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성공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 하나,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그 안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반드시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 눈에 그 친구를 보이게 하신 이유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반에 예수께서 학생으로 계신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가운데 한 번 마음 속으로 질문해보십시오. ‘예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것이 진짜 승리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진짜 승리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삶이 어리석어 보이고, 마치 권력과 번영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매우 불합리하며 때로는 실패한 삶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보다 더 열심을 내어 살아가지만, 정작 내 손에 쥘 수 있는 유익이 별로 없어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 원수는 우리에게 말할 것입니다. “봐라, 예수 믿어도 별 거 없다. 니 뭐 되나? 살림살이 좀 나아졌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좀 있나? 없잖아? 하나님이고 예수고 적당히 믿고 살면 된다. 이정도는 타협해도 된다.”
그런데 여러분 그럴 때, 오늘의 18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슬라이드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나의 공동체)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하데스의 문이)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세요. 교회를 나의 공동체라고 제가 바꾼 이유는, 이 당시에 교회는 지금과 같은 건물이 아니라, 각 가정에서 모인 소규모의 공동체였기 때문에 제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ἐκκλησίαν(에끌레시안)이라는 단어를 다시 번역한 것입니다.
(슬라이드9) 여러분 아까 사진으로 보았던 이 동굴은 ‘판의 문’이라고 불렸던 동굴인데요, 이 이름 말고도 ‘하데스의 문’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여러분, 하데스 아세요?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세계와 연결되었다고 믿어졌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봄의 여신이에요. 사람들은 페르세포네가 봄이 되면 이 동굴을 통해 땅으로 올라와서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이 동굴에서는 판을 숭배하는 예배와 함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위해 예배하며 풍요를 구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왜 이 얘기를 하냐면, 본문 18절에서 한글성경에는 ‘음부의 권세’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가 바로 원어로는 πύλαι ᾅδου(필라이 하도우) 즉 ‘하데스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뉘앙스가 많이 다르죠?
원어의 의미를 살리고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며 다시 번역하면,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 장소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기 하데스의 문이 보이지? 사람들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위해 예배하며 자신들의 풍요를 기원하는 동굴이 보이지? 내가 앞으로 저 돌 위에 나를 따르는 공동체를 세울 거야. 그리고 저 하데스의 문은, 절대로 그 공동체를 이길 수 없어!”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지난 번에 저의 삶을 나누면서, ‘내가 하나님께, 정작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았구나.’라고 깨달으면서 새롭게 기도를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로 제가 지금 예배팀을 섬기는 전임사역자로 살아가고 있죠? 그런데 저의 삶은 물질적인 번영과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저희 가정은 처음에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0만원인 40년 된 주택에서 신혼집을 시작했고, 지금도 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4인 가족인데 한 달에 가정 전체 수입이 200만원이 안 되요. 석사 과정도 헌금 없이는 학비를 못 내고, 카페 가서 자녀들 주스 사주는 것도 한 잔 사서 나눠 마시라고 합니다. 넥타이도 결혼식 때 산 넥타이 10년 사용하고 지난 주에 3만원 주고 바꿨어요. 그마저도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저를 봤을 때 ‘와 저 전도사님 윽시 불행해보인다. 삶이 고달파보인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하셨나요?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주께서 있으라고 하신 곳에 있으면서, 하라고 하시는 일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기쁨으로 이 사역과 삶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힘들죠. 장 볼 때마다 스트레스 받죠. 아래께도 장을 보는데 11만원 찍힌 거를 보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결국에 주 앞에 서는 날까지 이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것입니다.
“저 하데스의 문은 결코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이길 수 없다.”
저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동참하기를 원하며, 여러분의 삶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초청합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요.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 새로운 공부, 깊어져 가는 고민과 걱정. 나도 세상과 똑같이 살아야 세상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은 속삭임. 예수는 잠시 제쳐두고 세상의 가치를 따라 적당히 신앙을 해보려는 생각들.
여러분, 빌립보 가이사랴 같은 세상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계속해서 그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잠시 숨을 고르느라 쉴 수 있지만, 올바른 표지를 따라 길을 걸어가는 것을 멈추지 맙시다. 학교 안에서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을 통해 그분의 선하심을 학교 안에서 증거합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 보여줍시다. 그래서 여러분의 친구들이 여러분의 믿음과 행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관심을 가지게 하고, 더 나아가 예수께로 나아오게 만드는 통로로 여러분이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이 문장을 함께 마지막으로 읽고,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슬라이드10)
“내가 이 반석 위에 나를 따르는 공동체를 세우리니, 하데스의 문이 결코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기도
기도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새로운 학기를 시작합니다.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부어주십시오. 그 길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어리석고 뒤처져 보이는 길일지라도, 그 길이 옳은 길임을 신뢰하며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어려운 친구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이 예수께 칭찬받는 삶으로 세워져 가도록 함께해주십시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