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9장 11-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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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침상의 드라빔
제목: 내 침상의 드라빔
본문: 사무엘상 19장 11-17절
본문: 사무엘상 19장 11-17절
찬송: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찬송: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오늘은 사무엘상 19장 11-17절 말씀을 가지고 내 침상의 드라빔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사울의 살해 위협이 왕궁을 넘어 이제는 다윗의 가정에까지 침투한다. 가장 안전해야 할 침실이 죽음의 현장으로 변한 이 절박한 밤에, 하나님은 미갈의 기지를 통해 다윗을 살려내신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구원의 소식과 더불어 사울 가문의 뿌리 깊은 영적 타락상을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11-12절은 '인간의 성벽이 무너질 때 열리는 하나님의 탈출구'를 말한다.
11-12절은 '인간의 성벽이 무너질 때 열리는 하나님의 탈출구'를 말한다.
“12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매 그가 피하여 도망하니라”
사울이 보낸 전령들이 다윗의 집을 에워싸고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다윗에게는 이제 사방이 막힌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때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다윗은 창문으로 달아내려져 탈출에 성공한다. 어제까지는 왕의 사위로 화려한 궁중 생활을 했으나, 이제는 집도 거처도 없는 광야의 나그네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내가 평생 일궈온 집과 가정이 나의 영원한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본문은 보여준다.
우리 역시 땀 흘려 가꾼 밭과 들녘, 그리고 일터를 성벽 삼아 안전을 꾀하려 하지만, 세상의 위협은 담장을 넘어 우리 안방까지 쳐들어온다. 내가 믿었던 문이 닫힐 때,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창문'을 열어 우리를 피하게 하신다. 성도의 진짜 피난처는 튼튼한 벽이 아니라 우리를 달아 내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내 성벽을 쌓는 일보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13-16절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 가정의 영적 민낯'을 말한다.
13-16절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 가정의 영적 민낯'을 말한다.
“13 미갈이 우상을 가져다가 침상에 누이고 염소 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다윗을 피신시킨 후 미갈은 추격자들을 속이기 위해 기괴한 연극을 준비한다. 침상에 다윗 대신 '드라빔'이라 불리는 우상을 눕혀놓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다윗의 집 안방에, 그것도 사람 크기만 한 거대한 우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갈은 사울 왕의 딸로서 친정의 풍습을 따라 여호와 신앙과 무속 신앙을 섞어 믿는 영적 혼합주의에 빠져 있었다.
이 드라빔은 사울 가문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혹시 몰라 챙겨둔 '세상의 보험'과 같았다. 오늘 우리 집 침상 곁에는 무엇이 누워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지만, 삶의 가장 내밀한 곳에는 여전히 내 삶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 '현대판 드라빔(부동산, 통장 잔고, 자녀의 성공)'을 숨겨두고 있지는 않은가? 위기의 밤에 다윗의 집 안방에 있어야 했던 것은 드라빔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였다. 숨겨둔 우상으로는 결코 우리의 생명을 지킬 수 없음을 뼈아프게 깨달아야 한다.
17절은 '상수리나무 아래 묻지 못한 우상의 비극'을 말한다.
17절은 '상수리나무 아래 묻지 못한 우상의 비극'을 말한다.
“17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드라빔을 이용해 아버지를 속인 장면은 과거 야곱의 아내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훔치고 속였던 장면과 겹쳐진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야곱은 훗날 영적 위기 앞에 섰을 때, 가족들이 가진 모든 이방 신상과 드라빔을 빼앗아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에 모두 묻어버리고 벧엘로 올라갔다(창 35:4). 하지만 사울의 가문은 끝내 우상을 묻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마다 우상을 눕혔고 거짓말을 선택했으며, 결국 그 영적 타락의 끝은 멸망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앞에 선명하게 드러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상을 위장하여 숨기는 것이 아니라, 상수리나무 아래 깊이 묻어버리는 영적 결단이다.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골고다라는 상수리나무(십자가) 위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 주님이 그 나무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우상과 탐욕의 권세를 멸하셨다. 오늘 하루, 내 침상 머리에 숨겨두었던 알량한 드라빔들을 십자가 아래 묻어버리자. 우상을 눕히는 자가 아니라 우상을 묻는 자가 될 때, 비로소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에 참된 구원의 빛이 임하게 될 것이다.
미갈은 우상을 눕혀 잠시 위기를 넘겼으나, 하나님은 다윗을 라마 나욧(성령의 자리)으로 이끄시어 영원히 살리셨다. 인간의 얕은 꾀와 버리지 못한 우상을 의지하지 말자.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을 신뢰하며, 정결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사울의 살기 앞에 무너진 다윗의 가정을 보며 우리 자신의 영적 현주소를 돌아봅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섬긴다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 삶의 가장 깊숙한 안방에는 나만의 '드라빔'을 모셔 두고 그것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우리의 위선을 회개합니다. 야곱은 우상을 나무 아래 묻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그 우상을 침상에 눕히며 주님을 속이려 했음을 이 시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에게 '우상을 묻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존심, 내 경험, 내 소유라는 이름의 드라빔들을 오직 십자가라는 거룩한 상수리나무 아래에 다 묻어버리게 하옵소서. 인간의 비겁한 거짓말과 세상의 보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피난처로 삼는 정결한 신부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의 밭과 들녘, 그리고 마을의 모든 일터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세상은 더 많은 드라빔을 가져야 안전하다고 속이지만, 우리는 주님 한 분만으로 상쾌함을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육신의 연약함과 질병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지체들에게 찾아가사, 그들의 질고를 걷어내시고 주님의 강한 손으로 일으켜 세워 주시옵소서.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가 부모의 정결한 믿음을 본받아, 세상의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구하는 다윗의 세대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새벽 제단 앞에 엎드린 귀한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남모르는 눈물로 주님께 토해내는 이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이 응답의 역사가 되게 하시고, 이들의 가정이 드라빔이 없는 거룩한 벧엘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모든 시작과 끝을 주님께 의탁하오며, 우리 인생의 영원한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