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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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혜사의 약속

본문: 요한복음 14장 25-31절

찬송: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말씀의 문을 열며

주님은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하늘의 귀한 비밀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그 다락방에서 주님의 곁에 앉아, 따뜻한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30절에 이르러 분위기는 급격하게 전환됩니다. 주님은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참으로 무겁고 긴장되는 말씀입니다. 이 선언은 이제 평화롭게 앉아서 말씀을 듣는 '말의 시간'이 끝나고, 거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임금인 사탄이 예수님을 해치기 위해 어둠의 세력을 몰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눈에 이 순간은 모든 것이 끝나는 절망의 시작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캄캄한 고난의 밤이 다가오고 있지만, 주님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스스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험난한 세상에 홀로 남겨질 제자들과 오늘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 곁에 인격적으로 실존하시며 언제나 동행하실 보혜 성령님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빈자리를 채우며 우리 영혼을 살리시는 성령님의 구체적인 사역을 통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할 두 가지 위대한 약속을 살펴보겠습니다.

망각의 심연 중의 성령

오늘 본문 26절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우리는 삶의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주님의 약속을 잊어버리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일상이 순조로울 때는 아멘으로 화답하며 은혜를 누리다가도, 당장 내 몸에 질병이 찾아오고, 땀 흘려 가꾼 농사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며, 가정에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면 쉽게 두려움에 빠집니다. 눈앞에 닥친 현실의 파도가 너무 거세어, 그동안 들었던 주님의 말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26절의 약속대로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추상적인 기운이나 단순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곁에 계셨던 것처럼, 지금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와 인격적으로 대화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의 찬 바람이 불어닥칠 때, 우리의 짧은 지혜와 머리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망이 앞서고 한숨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바로 그 무너지는 순간에 주님의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하십니다.
우리의 일상은 때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낼 새도 없이 또 다른 시련이 겹쳐올 때, 우리는 하늘을 향해 왜 내게만 이런 고통이 있느냐고 탄식하며 원망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주님의 십자가 사랑은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희미해지고,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훨씬 더 뜨겁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거센 바람 앞에 우리 믿음의 뿌리마저 통째로 뽑힐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잿빛 같은 막막한 시간 속에서 성령님은 가장 다정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바짝 메말라버린 우리의 척박한 심령에 은혜의 단비를 촉촉이 내리시고, 까맣게 잊고 지냈던 십자가 말씀의 불씨를 다시금 뜨겁게 지피십니다. 그 생명의 말씀이 우리 영혼을 부드럽게 감쌀 때, 우리는 비로소 절망으로 닫혔던 눈을 들어 다시 주님을 바라볼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억울하고 답답하여 눈물 흘리는 그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무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우리가 예전에 들었던 위로의 말씀,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주님의 굳건한 약속을 우리 영혼 깊은 곳에 다시 새겨주십니다. 말씀이 기억난다는 것은 내 머리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성령을 통해 지금 내 곁에 생생하게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말씀으로 생각이 바뀌고, 결국 고난을 넉넉히 이겨내는 믿음의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영혼의 닻

27절에서 주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고요한 상태, 그저 통장에 물질이 넉넉하고 육신이 건강할 때만 누리는 일시적인 안락함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평안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주님이 남겨주신 평안은 이 땅에서 악한 원수와 싸워 넉넉히 이기게 하는 흔들리지 않는 힘입니다. 장차 다가올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런 갈등도 없는 평안을 누리겠지만, 지금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걷는 이 땅에서의 평안은 치열한 영적 전투 속에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고난을 정복하고 승리하게 만드는 참되고 역동적인 평안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편지를 썼던 초대 교회의 시대는 맹수들의 위협과 극심한 핍박이 몰아치던 참혹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 2절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담대히 축복합니다. 당시의 성도들은 환경이 평안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분명한 확신 덕분에 그 끔찍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지역 가산과 남강을 오갈 때를 생각해보면 이 평안의 의미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집채만 한 거센 파도가 쳐서 배가 심하게 요동칩니다. 서 있기조차 힘들고 배가 곧 어떻게 될 것만 같은 두려운 순간입니다. 그러나 배에 익숙한 우리는 그 파도 속에서도 깊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거세어도, 튼튼한 배와 훌륭한 선장이 있기에 이 배가 결코 전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배를 흔들 수는 있어도, 결코 배를 침몰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항해도 이와 정확히 같습니다. 육신의 연약함, 경제적인 어려움, 관계의 아픔이라는 파도가 우리 삶을 거세게 흔들어 댑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이 바로 전능하신 주님이심을 굳게 믿게 하십니다.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 파도가 내 영혼을 덮칠 수 없다는 구원의 확신, 바로 이것이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흉내 낼 수도 없는 참된 평안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이 굳건한 믿음의 평안을 돛대 삼아 매일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주님은 보혜사 성령의 위대한 약속을 주신 후, 31절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촉구하십니다.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이 말씀은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이 두려워 다급히 도망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향한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당히 고난의 현장인 겟세마네로 나아가자는 위대한 승리의 선언입니다. 주님은 사탄의 위협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자발적인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디셨습니다.
우리도 이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안에 실존하시고, 세상이 흔들 수 없는 확고한 평안이 우리와 함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삶의 파도가 거세다고 해서 탄식하거나 원망하는 자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락방의 따뜻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땀 흘리는 삶의 현장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그 길이 때로는 험하고 외로울지라도, 보혜사 성령님께서 늘 우리 곁에서 따뜻한 위로와 친밀한 동행하심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굳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거센 세상의 파도 앞에서도 우리 영혼을 결코 전복시킬 수 없음을 굳게 믿고, 주님이 가신 그 순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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