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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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살리는 한 분
제목: 나를 살리는 한 분
본문: 로마서 5장 12-21절
본문: 로마서 5장 12-21절
찬송: 303장
찬송: 303장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사순절 둘째 주일 아침입니다. 며칠 전 내린 봄비 덕분에 얼어붙었던 대지에 다시금 새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생명의 계절에, 우리 영혼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묵묵히 십자가로 향하시는 주님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이토록 깊이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그 십자가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가 얼마나 소망 없고 불쌍한 존재였는지를 정직하게 깨닫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로마서 5장 후반부는 인류의 그 길고 복잡한 역사를 단 두 사람의 이야기로 아주 간결하게 요약해줍니다. 바로 에덴동산에 있었던 ‘첫 사람 아담’과,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둘째 아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 품 안에서 순종하며 참된 복을 누리며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한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원래 마음이었습니다.
억울함이 아닌 우리의 진짜 모습
억울함이 아닌 우리의 진짜 모습
그런데 오늘 본문 12a절을 보면 참 마음이 무거워지는 말씀이 나옵니다. “12a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라고 선언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신 분이 계실 겁니다. “아니,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었는데, 왜 까마득한 후손인 내가 그 벌을 받고 죽어야 하는거지?” 내가 지은 잘못도 아닌데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 말이 너무나 억울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인간을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개별적인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와 같습니다. 뿌리인 아담이 병들어 썩기 시작하자,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인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그 죽음의 병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대표성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죽음의 병은, 약 한 번 먹고 낫는 가벼운 감기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아주 독하고 질긴 뿌리를 내린 잡초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골치가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밭에 난 잡초일 것입니다. 밭에 잡초가 나게 되면 약을 뿌리기도 하지만 약으로도 제거가 안되는 것들은 직접 호미를 들고 지심을 매야 합니다. 쪼그려 앉아서 일을 하다보면 다리가 아프고, 대신 다리를 펴고 허리를 숙여 일하면 허리가 아픕니다. 그래도 한참동안 지심을 매면 밭이 한동안은 깨끗해 보여서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며칠이 지나면 어느새 잡초가 또 무성하게 자라있습니다. 뿌리채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서면 또 자라나는 잡초처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의 뿌리도 이와 똑같습니다.
“이제 더는 욱하며 화를 내지 말아야지, 그 사람 미워하지 말아야지.” 아무리 굳게 다짐하고 마음밭의 잡초를 뽑아내려 해도, 조금만 서운한 일이 생기면 또다시 불평이 나오고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쑥쑥 자라납니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착해게 살아보려고 우리 모두 아등바등 애를 써보기도 하고, 때로는 다 포기하고 세상 욕심대로 살아보아도, 그 노력의 끝은 영원한 심판과 죽음 뿐입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는 도저히 내 영혼의 병을 고칠 수 없는 참으로, 연약하고 가련한 존재들입니다.
나를 위한 최고의 변호사
나를 위한 최고의 변호사
그런데 이 캄캄하고 소망 없는 절망 속에, 하늘로부터 눈부신 은혜의 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고 완벽한 구원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망쳐놓은 이 땅을 회복시킬 ‘참된 대표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멘!)
첫 사람 아담은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풍요로운 에덴동산에 살면서도,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교만해져서 불순종의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광야에서 배고픔을 견디시며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매일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는 삶입니다. 하루를 마치면 얼마나 고단하십니까?
그런데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우리 예수님도 머리 둘 곳 하나 없이 먼지 나는 길을 땀 흘리며 그 피곤한 몸을 이끌며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땅을 적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토록 고단한 길을 마다지 하지 않으시고 또 큰 고뇌를 하며 기도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 힘으로는 죄값을 갚을 길이 없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고단하고 억울한 십자가의 길, 순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피부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떠나는 날 하나님의 지엄한 심판대 앞, 즉 하늘 법정에 서게 되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죄인인 우리는 피고석에 앉아 벌벌 떨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그 건너편에서 우리가 그동안 지은 모든 크고 작은 죄들, 남몰래 지었던 부끄러운 생각들까지도 모조리 들추어내 하나님께 고발할 것입니다. 우리는 변명할 여지도 없고 영원한 지옥 판결을 받아야 하는 마땅한 순간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리의 변호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피고석에 있는 우리 앞을 딱 가로막고 서주십니다. 그럴 때 재판장이신 거룩하신 하나님 눈에는, 피고인 우리의 그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립니다. 대신 우리를 꽉 안고 계신 예수님의 그 흠 없고 깨뜻한 의로움만 보이게 됩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여 주십니다. “이 피고의 모든 죗값은 내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다 갚아졌다. 그러므로 무죄를 선언한다!”
하늘 법정에서 나의 얄팍한 선행이나 공로가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신 변호사, 예수님의 품으로 내가 쏙 숨어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한 분이 어떻게 우리 모두를 살리셨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덮는 압도적 은혜
모든 것을 덮는 압도적 은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단지 우리 죄를 용서해주신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19b절을 보면 “19b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평생 쉬지 않고 땅을 일구며 살아도, 때로는 농사지으며 남은 빚 갚기 바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영적인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33년 동안, 우리가 평생을 바쳐도 다 지킬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완벽하게 지켜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일평생 눈물과 땀으로 순종하셔서 얻으신 그 빛나는 하늘의 상급을, 영적인 빚더미에 앉아 있는 우리의 통장에 고스란이 이체해 주신 것입니다. 나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예수님이 평생 흘리신 땀과 피로 내 모든 빚을 청산해 주시고 오히려 나를 하늘나라의 부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눈물나고 감사한 은혜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15절과 17절에서 가슴 벅찬 감격으로 “폴로 말론”이라는 헬라어를 반복적으로 외칩니다. 우리말로 하면 “더욱! 훨씬 더 크게!”라는 뜻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가져온 죽음의 그림자가 아무리 짙고 무섭다 할지라도, 예수님 한 분이 가져오신 은혜와 생명의 빛은 그 모든 어둠을 덮고도 남을 만큼 훨씬 더 크고 압도적으로 흘러 넘친다는 선언입니다.
은혜는 죄와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죄를 이기고도 남습니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던 잡초투성이 밭이 완전히 뒤집어져 결실 맺는 옥토가 된 기적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완전히 덮어버리고도 남는 거대한 바다와 같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 크로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17절은 이제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는 벌 받을까 봐 두려워서 눈치 보며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는 종이 아닙니다. 나를 살리시고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 크신 사랑이 너무나 고맙고 좋아서, 기쁨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 내 안에 있는 절망과 실패를 바라보던 시건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평생토록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마음 하나로, 굽은 허리 두드리며 살아오신 우리 성도님들. 세상은 여러분의 수고를 몰라줄지라도, 하늘 법정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손을 통해 해 주십니다. 그 크신 사랑 앞에 그동안 내 힘으로 아등바등 살아보려 애쓰셨던 삶의 무거운 짐들을 이제는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또다시 넘어지고 실수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이상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뼈아픈 죄보다 주님의 은혜가 폴로 말론!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나를 살리시기 위해 끝까지 순종하신 단 한 분, 예수님의 넘치는 은혜에 기대어 세상의 슬픔을 이기고 넉넉히 승리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참으로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주의 전으로 불러주시고, 사순절의 십자가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돌아보면 우리의 마음밭은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나는 잡초와도 같았습니다.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키고 착하게 살아보려 애를 써도, 어느새 미움과 원망과 이기심이 우리 마음을 뒤덮곤 했습니다. 평생을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씨름하며 고단하게 살아온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이토록 가련하고 소망 없는 우리를 살리시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분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써야 할 저주의 가시 면류관을 대신 쓰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그 은혜에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우리의 흉악한 영적인 빚을 주님의 피로 단번에 갚아주시고, 먹물 같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거대한 바다 같은 은혜로 완전히 덮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죄와 두려움에 끌려다니는 노예로 살지 않게 하옵소서. 하늘 법정에서 우리를 꼭 안아주시는 나의 변호사, 예수 그리스도만을 굳게 붙잡게 하옵소서. 내 죄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주님의 사랑에 기대어, 이제는 억지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간도 우리 삶의 터전에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며 넉넉히 승리하는 우리 모든 중앙교회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끔찍한 사망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