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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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등부>
요한복음 9:1-12
“주님이 일하신다”
2026. 3. 1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도 이 아침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오늘 본문을 놓고 “주님이 일하신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사실은 나쁜 일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져요. 왜냐하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기억에 더 선명하게 남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을 전문용어로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합니다. 부정성 편향. 사람은 부정적인 것에 영향을 받도록 편향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다시 말해서,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칭찬을 한번 받는 것보다, 한번 혼난 것이 더 나에게 영향을 주고, 더 기억에 남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좋았던 기억보다 나빴던 기억이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아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 인생에 좋았던 일보다 나빴던 일이 더 많았다고 착각을 한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우리 인생이 고달픈데, 우리의 뇌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잘 기억해. 날마다 좋은 기억, 좋은 생각만 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러기가 어려워요. 
    특히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평생동안 나쁜 생각만 하면서 살았을 것 같은 사람이 나오죠.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보인 사람이 나와요. 이 사람의 인생에 좋은 일이 많았을까요, 나쁜 일이 많았을까요? 압도적으로 나쁜 일이 많았겠죠. 눈이 안 보이니까, 길을 가다가 자주 걸려서 넘어졌을 것이고. 심지어 구덩이에 빠지는 일도 많았을 거예요. 책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사랑하는 부모님 얼굴도 본 적이 없어요. 
    그의 인생에 과연 좋았던 일이 있기는 했을까? 그런데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안 그래도 마음이 아픈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이 일어나요. 오늘 본문 2절을 봐 볼까요? 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제자들이 하는 말을 보세요. 정말 싸가지가 바가지 아닙니까? 장애인을 앞에 두고, 이 사람이 장애인으로 태어난 이유가 이 사람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이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물어보고 있어요. 
    누구의 죄든, 어쨌거나 죄 때문에 장애인으로 태어난 거라고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질문을 하는 거죠. 분명히 이 사람은 죄 때문에 장애인으로 태어난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냐면, ‘나는 눈이 보이니까, 나는 장애인이 아니니까, 나는 이 사람보다는 죄가 없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이 맹인이 죄 때문에 장애인이 됐나요? 죄 때문에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유전자 돌연변이나 혹은 방사선 오염 등등, 유전자나 환경 때문에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지, 죄 때문에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는 그런 과학적인 지식이 없다보니까,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장애인으로 태어난다, 라고 믿었어요.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렇겠지. 아니면 왜 저런 장애인으로 태어나겠어?’ 이렇게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물어보는 거예요. 이 사람이 분명히 죄 때문에 이렇게 태어났을 텐데, 그러면 과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어디 멀리서 물어본 것도 아니에요. 맹인 바로 앞에서 다 들리게 물어보는 겁니다. 맹인의 입장에서는 진짜 성질 나겠죠. ‘저런 개~~’ 욕이 턱끝까지 차올랐을 거예요.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 사람도 궁금했을 거예요.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평생 스스로에게 물어봤겠죠. ‘왜 나는 장애인으로 태어났지? 왜?’ 아무리 질문을 해도 그 답을 얻지 못하고, 그저 죄 때문이라는 가슴 아픈 말만 들렸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제자들이 그 질문을 예수님께 하고 있는 겁니다.
    자, 과연 예수님은 뭐라고 대답을 하실까? 3절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3절을 다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아멘.
    예수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이것은 죄 때문이 아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 그래서 평생동안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에 파묻혀 살아온 것, 사람들에게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조롱당해온 것,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은 다른 이유로 인해서 그렇게 된 거라는 겁니다. 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그 다른 이유가 뭐예요? 하나님이 이 사람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사람을 특별히 맹인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겁니다. 
    맹인의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에요. 내가 죄 때문에 하나님의 미움을 받아서 이렇게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됐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듣기에는, 그래도 참 너무한 말처럼 들리죠. ‘에이,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도, 사람을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시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맹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누구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어요. 어디를 가나 ‘병신, 앞도 못 보는 놈,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저래? 저리 꺼져’ 이런 말만 듣고 살아왔단 말이죠.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목적을 갖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를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거예요. 아무런 의미 없는 인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너무나도 큰 의미가 있는 인생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인생! 얼마나 대단한 인생입니까?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인생이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그 인생은 대단한 인생이고,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 인생에는 반드시 놀라운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요. 오늘 말씀에서 맹인이 치유되어서 앞을 볼 수 있게 되거든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이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 오늘 본문 6절 7절을 읽어 볼까요? 6절 7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아멘.
    예수님이 갑자기 땅에 침을 뱉어서 진흙으로 만드시고는, 그것을 맹인의 눈에 바르셨어요. 상당히 더럽게 느껴지는 장면이죠.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떠올리게 하는 행동이에요.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잖아요. 예수님도 지금 흙으로 맹인의 눈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진흙을 눈에 바르시고, 맹인에게 말씀하셨어요.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어라. 그랬더니 맹인이 정말로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었어요. 그리고 기적을 체험합니다. 눈이 보이는 거예요. 태어나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이 보이는 거예요. 정말로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이루어진 겁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가 놀랐어요. 이 사람이 앞이 보이지 않아서 땅바닥에서 구걸을 하던 거지인데, 어떻게 앞을 보게 됐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 사람이 죄 때문에 맹인이 된 건데, 이제 앞을 보게 됐다면, 그 죄가 해결이 됐다는 건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해가 안 돼요. 자기들의 상식으로는,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절대로 앞을 볼 수 없거든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는데, 어떻게 다시 볼 수 있겠어요. 만약에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저주를 풀어주셔야만 가능하겠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단 말이죠. 이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래서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10절에 물어보죠.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그러니까 뭐라고 대답합니까? 11절, 우리 1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아멘.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심플하게 설명해줬어요. 별 내용도 없죠. 예수가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시켰다. 내가 그대로 했더니, 보게 되었다. 이게 다예요. 
    그런데 이 간단한 내용 속에 너무나 중요한 진리가 들어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위하여 주님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맹인이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주님이 그의 눈을 보게 하셨습니다. 
    실로암 연못에 어떤 치유의 성분이 있어서 보게 된 게 아니에요. 주님이 보게 해주신 겁니다. 언제요? 맹인이 순종했을 때. 앞이 보이지 않아서 더듬더듬, 가다가 넘어지고 뒹굴면서도 멈추지 않고 걷고 기어서, 마침내 실로암 연못에 도착해 눈을 씻었을 때. 바로 그 때 주님이 그의 눈을 고쳐주신 겁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자를 위하여 일하십니다. 실로암으로 가라고 하시면 실로암으로 가야 돼요. 비록 내 인생의 실로암이 너무나 멀고, 내 생각과 너무나 달라도, 순종하며 가야 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발걸음을 옮길 때, 내 인생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어떠하든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왜 내 인생이 이 모양이냐고 원망하지 말고. 여러분에게 놀라운 계획과 목적을 갖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에 눈이 열리고, 지혜가 열리고, 막혔던 모든 것들이 열리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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