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오실 주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요한계시록 7교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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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오늘부터 튀르키예 단기선교를 떠나는 5월 첫째 주까지, 이 예언의 말씀을 통해 7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권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간 동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분이나 흔들리시는 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믿음이 싹트고 더욱 굳건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이 있으신 분들은 오늘의 삶을 장차 다가올 그 날을 믿는 믿음으로 다시 정리하시는 복된 기회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첫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첫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예수가 무슨 일을 하셨고, 현재 무슨 일을 하고 계시며, 장차 무슨 일을 하실지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과 이종사촌 지간이었고, 예수님과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인간 예수님을 잘 알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서 요한은 예수가 단지 인간이 아니라, 우리의 구세주시요 하나님이라는 것을 또한 알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4-5절에서 요한은 삼위 하나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알면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고, 또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은 수시로 바뀌지만, 예수님, 우리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치 않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그리고 장차 하실 일은 숨겨져 있습니다.
계시라는 것은 숨겨져 있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일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영적인 일이나 미래의 일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시를 이유와 목적 없이 단지 우리의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시기 위하여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 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흔히 재미로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10년 전 혹은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지요. 만약에 그렇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습과 방식 그대로 똑같이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비트코인을 사던지, 아마존이나 테슬라 주식을 사던지 뭘 하겠지요.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랑한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해주겠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장차 되어질 일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서도 다르게 살지 않는다면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가 바로 그런 목적인 것입니다. 장차 될 일을 확실히 알고 믿음으로서 당장 오늘을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지를 깨닫고 그렇게 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본문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3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장차 될 일을 읽고, 그 일을 풀어서 설명하는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고, 또 읽고 들은 것을 믿고 순종, 즉 삶의 변화가 있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반드시 경건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계시는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역시 미래를 계산하라고 주신 책이 아니라,
오늘을 거룩하게 살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계시라고 한다면, 먼저 우리의 삶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보낸 것인데, 단지 그들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그들과 동일한 상황이나 환경에 처한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낸 것으로 이해합니다.
사실 일곱이라는 숫자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완전을 뜻하는 숫자 입니다. 삼위일체의 3과 동서남북의 4를 합하여 7이 된 것이고, 결국 온세상을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지요.
그래서, 일곱은 다른게 번역하면 완전 혹은 전체, 모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으몰, 일곱 교회는 모든 교회를 의미할 수 있는 것이지요. 4절에 나오는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도,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우편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고 그 앞에 있는 영인데, 이것은 완전한 영이라고 번역하여 성령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좌 앞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일곱 교회가 당한 상황은 내우외환이었습니다.
일곱 교회가 당한 상황은 내우외환이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가 황제숭배를 강제하면서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교회에 대한 핍박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이 이 요한계시록을 밧모섬, 즉 유배지에서 썼다는 것이 그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단지 외적인 핍박뿐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기도 했고, 성도들 사이에 사랑이 식어져가고 다툼과 분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부활과 재림의 소망이 무디어져 가서 배교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이지요.
교회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기에는 큰 도전과 위협을 당하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도들에게 그들이 믿음을 지켜야 할 이유와 또 그 믿음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계시를 통해서 알려주는 것은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오늘 날 우리 교회를 살펴보더라도 그와 같은 위험과 도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오늘 날 우리 교회를 살펴보더라도 그와 같은 위험과 도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편리한 이 시대에 우리들은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보다는 당장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평안하고 풍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다보니,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나에게 어려움이 찾아오고 감정이 어려워질 때에 믿음을 포기하고 져버리기가 쉬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외적인 핍박은 우리들이 겪고 있지는 않으나, 내적인 문제들은 항상 있어왔습니다.
종종 우리가 그런 말을 듣기도 하지요. 누가 시험들었데. 시험에 들었다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존재가 우리 자신입니다. 아홉 번 칭찬하다가 한 번 잘못을 말해주면, 칭찬보다는 한 번의 그 지적이 마음에 더 크게 남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사실 완전하지 않은 우리들은 언제든지 시험에 들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누가 시험들었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시험에 들어서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선택들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목사인 저도 종종 시험에 듭니다. 물질로 시험에 들기도 하고, 성도님들의 가벼운 말한마디에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시험에 든 상태가 지속되면 큰 문제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정말 교회는 초대교회 시절이나 2000년이 지난 오늘 날이나 동일하게 사단의 공격 가운데 외우내환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 구절은 우리가 작년에 살펴보았던
사도행전 1:11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을 생각나게 합니다. 바로 요한이 그 자리에 있어 바로 그 천사의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 말씀 그대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확신있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 말씀 그대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확신있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 분의 오심은 예수를 믿는 우리들만에게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오실 것입니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심지어 그를 찌른 자들, 그를 대적한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 그를 주로 모시지 않았던 이들은 자신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앞에서 애곡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제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다시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미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 사탄은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저항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나라가 온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첫 부분은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을 믿으라는 권면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지금 당하는 고난을 인내로서 견딜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하는 유혹과 시험에도 우리가 휩쓸려 떠내려 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4:12–13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도 동일한 권면을 합니다.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바로 그가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실 때입니다. 그 때에 우리로 하여금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고, 오늘 우리의 고난을 견디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자가 역사의 전 과정을 섭리 가운데 다스리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혹은 우리의 개인적인 생명의 종말이 이르면, 우리 모두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로 환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미래, 그 확실한 미래를 믿고 붙드셔서, 오늘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항상 승리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