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양, 주님이 선한 목자 //양의 문, 선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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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자기계시, 양의문, 선한 목자

서론
요한복음 10장1-21절
오늘 요한복음 10장1절은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시작하는데, 너희는 바리새인들을 입니다.
9장에서 태어날때부터 맹인 되었던 자가 눈을 뜬 엄청난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 그리스도로 받아 들이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나쁜 사람들인가요?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착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은 사회적으로는 자신의 재물을 일주일에 적어도 1회는 나누어주어, 굶주린자를 먹이고, 종교적으로는 주일에 정해놓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 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눈먼 백성들의 스승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런 착한 바리새인들을 책망셨을까요?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양의 문과 선한 목자로 자기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 선언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하나님꼐로 가는 유일한 문이시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참된 목자요, 생명을 더 풍성하게 살게하시는 살리시는 목자이심을 알려주십니다.
크게 나누면 1-6절은 양 문으로서 그리스도를 계시,
7-21절은 선한 목자로서 그리스도를 계시하신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1-6절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바리새인을 책망하시는 말씀이고,
7-15절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친절하게 선한 목자 비유로 다시 말씀하여 주십니다.
16-18절은 이방 구원에 대한 예고와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어 놓는 선한 목자,
19-21절은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의 두 반응입니다
본론
요한복음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요한복음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요한복음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한복음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요한복음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한복음 10: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복음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요한복음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요한복음 10: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요한복음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한복음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한복음 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0:19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요한복음 10: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요한복음 10: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요한복음 10장 1–21절
선한 목자와 양의 문
나는 첫 번째 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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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착한 사람인데 왜 책망받는가?
10장 1절의 "너희"는 9장의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눈을 뜬 메시아적 기적을 보고도 그분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눈 뜬 사람을 회당에서 쫓아낸 그들을 향해 이 말씀을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나쁜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이웃과 재물을 나누는 모범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도덕적 선함과 영적 청각은 다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 나는 어쩌면 바리새인의 자리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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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1  ·  양의 우리, 문지기, 그리고 목자의 음성 (1–6절)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한복음 10:1-3
팔레스타인의 양 우리는 여러 목자의 양 떼가 함께 밤을 보내는 공동 우리였습니다. 아침이 되면 각 목자는 문으로 들어와 자기 양의 이름을 부릅니다.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나옵니다. 담을 넘어 들어오는 자는 절도와 강도 — 정당한 권위 없이 양을 이용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들의 권위로 지배하던 바리새인들을 직접 겨냥하십니다.
5절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그를 따르지 아니하고 도망하느니라." 참 양은 낯선 음성을 분별합니다. 이 분별력은 매일 목자와 함께하며 쌓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소리들 속에서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 — 그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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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2  ·  나는 양의 문이라 (7–10절)
▶  문은 유일한 통로이자, 목자 자신의 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양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는 오직 문 하나 — 그분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요 14:6). 또한 당시 목자들은 밤에 문 앞에 직접 몸을 누워 양을 지켰습니다. 문이 없는 우리에서는 목자의 몸 자체가 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 문입니다. 이리와 도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몸으로 막으셨습니다.
9절 —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양은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문을 통해 풀밭으로 나가 꼴을 먹고 돌아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가두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풍성히'의 헬라어 페리쏘스(περισσός)는 '기대를 훨씬 초과하여 넘치도록'이라는 뜻입니다. 도둑은 빼앗으러 왔고, 예수님은 넘치게 주시러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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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3  ·  나는 선한 목자라 (11–18절)
▶  칼로스(καλός) — '목자다운 목자', '완전한 목자'
'선한'의 헬라어 칼로스(καλός)는 도덕적 선함이 아니라 '아름답고, 이상적이고, 완전한'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가 아니라 '진정한 목자', '목자다운 목자'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삯꾼은 양이 자기 양이 아니기에 이리가 오면 달아납니다. 양은 그에게 도구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그것도 18절에서 밝히듯 자발적으로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강요가 아닌 사랑의 선택입니다.
14절의 '안다'는 기노스코(γινώσκω) — 정보가 아닌 인격적 관계의 친밀한 앎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을, 상처를, 두려움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한복음 10:16
예수님의 시선은 이미 유대인 공동체 너머를 향합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도 그분의 양입니다. 내가 먼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를 때, 그 음성이 멀리 있는 양들에게도 닿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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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4  ·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 방법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 다섯 가지
1. 말씀을 통해  — 만남으로 읽으십시오
정보를 얻는 독서가 아니라 만남을 위한 독서입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주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질문하며 천천히,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십시오. 바리새인들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가리키는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2. 기도를 통해  — 말하고 또 들으십시오
기도는 대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정작 듣는 시간을 갖지 않습니다. 오늘 기도 시간에 5분을 침묵으로 드려 보십시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3. 공동체를 통해  — 함께 들으십시오
양은 무리 지어 다닙니다. 우리도 공동체 안에서 함께 듣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예배 안에서, 믿음의 형제자매의 말 안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4. 순종을 통해  — 작은 음성에 먼저 반응하십시오
'저 사람에게 전화해라', '오늘 그에게 사과해라' — 이 작고 구체적인 내면의 음성에 순종할 때, 더 크고 선명하게 들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 알리라"(요 7:17).
5. 고요함을 통해  — 소음을 줄이십시오
예수님도 바쁠수록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기도하셨습니다(눅 5:16). 하루 10분,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조용히 앉아 보십시오. 고요함 속에서 그분은 반드시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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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및 결론  ·  첫 번째 양이 되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개의 선언을 들었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통로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 그분은 우리를 이름으로 아시고 목숨을 버리신 완전한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어느새 바리새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예배에 나오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합니다. 모두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 속에서 정작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악함이 아니었습니다. 영적 귀가 닫혀 있었습니다.
리더가 되려 하기 전에, 가르치려 하기 전에 — 먼저 내가 첫 번째 양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의 음성을 가장 먼저 듣고, 가장 먼저 따르는 양. 내가 선한 목자께 꼴을 받고, 보호받고, 인도받을 때 — 나를 보는 두 번째, 세 번째 양들도 내가 따르는 그분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향력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그분은 지금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당신의 상처와 두려움과 실패를 아시면서도, 당신을 위해 문이 되셨습니다. 오늘 그 음성 앞에 서십시오. 말씀으로, 기도로, 공동체로, 순종으로, 고요함으로 —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 첫 번째 양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도 선한 목자 안에서 안식해야합니다. 그분의 인도와 공급을 받아야합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수 있고, 멤버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불신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실수 있습니다.
그분이 문입니다.  그분이 목자입니다.  그분이 생명입니다.
결론
우리는 멤버들에게, 주변에 불신자나, 초신자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방법으로 이끌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꼐로 가세요 예수님을 찾으세요.
오직 구원의 문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부르세요.
오직 선한 목자 되셔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부르세요.
그분이 메마른 삶, 두려운삶, 어두운 삶에 빛이 되시고, 목자가 되셔서, 악한 것들로 부터 우리 생명을 지키실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하도록, 우리를 가르치실것이고, 영혼의 양식을 먹이실것이고, 우리가 병들면 고치실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꼐로 초대하고 있나요?
구원의 문, 선한 목자 되시는 오직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지도자도 어떤 의미에서는 선두에 있는 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바르게 듣고, 바르게 순할때, 두, 세번째 양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수 있을것입니다.
우리가 본을 보여야할것은 에수님을 더욱 의존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나를 증명하거나, 나의 성숙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교제하듯, 인격적인 음성을 듣고, 사귐을 누리는 말씀과 기도가 필요할줄로 생각이 됩니다.
나 스스로를 이것 저것을 해야하는데, 하지못하면, 스스로 채찍질하며 책망하지는 않습니까?
반복되면 우리와 그들을 더욱 채찍질하거나, 나와 그들을 체념하게 됩니다.
채찍과 체념이 우리를 변화 시킬수 없습니다.
우리를 아시는, 우리 마음과 사정을 체휼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
그분은 우리의 직분을 부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각각 자기 양을 부르는것 처럼, 개인을 부르십니다.
해정아, 그게 다입니다
누구와 비교한 해정이 아니고, 직분을 가진 해정이 아니고, 아빠로서의 해정이도 아니고,
그냥 하나님의 양으로서의 해정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리고 리더들과 우리들도, 한국교회 목사님들도 열심히 해왔습니다 .
바리새인이 열심이 없어서 책망 받은것이 아닙니다
더욱 인격적으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주 예수님께 더욱 의존된 선두에선 교회 지도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리더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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