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을 향한 계획의 시작

가창교회 중고등부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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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교 세상의 아브람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 그런데 오늘 성경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람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 (슬라이드1) 원래 이름이 아브람이고, 창세기 17장에 가면 야웨께서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지지난 주 설교를 잠깐 돌아봅시다. 바벨탑과 도시에서, 야웨께서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어버리셔서 죄를 쌓아올리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노아 가족을 통한 재창조 이후, 다시 사람들은 죄를 지었고, 또다시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 거기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끝나버렸는가? 하나님의 온 세상을 향한 좋은 소식을 멈추어버렸고, 더이상 이 땅에는 회복에 대한 소망이 없는가? 사람들은 죄 가운데 거하다가 하나님과 원수된 채로 매일매일 지옥을 경험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다시금 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야웨의 존재를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 아닌, 노아 같은 당대에 의로운 사람이 아닌, (슬라이드2) 이방 신들을 믿던 도시에 살던 한 75세의 노인입니다. 오늘부터 이 아브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 보려고 하는데, 먼저 배경과 시작을 다룰 겁니다.
(슬라이드3)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가 고향이었어요. 바로 이 지역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 데라를 따라 하란이라는 곳으로 가족 전체가 이주합니다.(슬라이드4)
창세기 11:31 NKRV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여기서 잠깐. 한글 성경에 같은 이름/지명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같거나 무언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전에 보았던 아담-사람, 아다마-흙은 원어를 살펴보면 한 단어에서 파생된 다른 단어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 신약 성경은 헬라어. 이렇게 원어를 보기 전까지는 단어의 상관관계를 속단하지 마십시오.
(슬라이드5) 예를 들어, 방금 읽은 말씀에 사람 하란과 지명 하란이 같이 등장합니다. 한글 성경만 보아서는 ‘아, 이 사람과 이 지역이 뭔가 연관이 있나보다.’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히브리어를 살펴보면 아브람의 형제 하란은 הָרָן, 지명 하란은 חָרָן입니다. 자음이 아예 달라요. 히브리어에서는 자음이 다르면 아예 다른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관계가 없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우르와 하란을 살펴봅시다.(슬라이드6,7) 이 두 도시는 모두 메소포타미아의 다신교를 받아들이고 숭배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우르 같은 경우에는 대도시였기 때문에 수많은 신상들과, 그 신상들을 세울 대규모의 신전들이 존재했습니다. 하란의 경우도 우르 정도의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다신교를 받아들인 지역이었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 제단들과 신상들이 존재했어요.
이것은 아브람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처음부터 ‘아! 나에게 나타난 이 분이 온 세상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야웨 엘로힘!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을 글로 읽고 있잖아요? 그래서 ‘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새로운 일들을 행하시는구나.’ 하면서 바로 하나님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לֶךְ־לְךָ: 너를 위하여 가라

고개를 돌리면 달의 신을 숭배하는 제단이 있습니다.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 농경의 신을 형상화 한 신상이 있어요. 한 블럭을 지나면 천둥과 비의 신을 섬기는 제사를 볼 수 있고, 양에게 풀을 뜯으러 나설 때면 목축의 신에게 안전을 기원하는 제물을 바칩니다. 그것이 아브람이 살아가던 도시의 일상이었어요. 그런 삶을 살아가던 아브람에게 갑자기 음성이 들립니다.(슬라이드8) “לֶךְ־לְךָ” 한글 성경에는 “너는 … 가라.”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원어의 뜻은 “너를 위하여 가라.”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내가 너에게 자손을 줄게. 너에게 복을 줄게. 네 이름이 세상에 위대하게 될거야. 너 자체가 복이 될거야. 지금 떠나서 내가 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것보다 너에게 훨씬 더 유익한 것이 될거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 음성이 우리가 아는 야웨 엘로힘. 온 세상을 창조하신 유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 거에요. 그가 알고 있던 여러 신 중의 하나라고 인지했을 것입니다. 70이 넘도록 아들이 없어서 대를 이을 수 없는 결핍 가운데 살고 있던 그에게 자손을 약속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걸음을 걷게 하는 신 정도로 이해했을 것이에요. 그런 아브람, 그에게 말씀하고 있는 존재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복을 약속하시고 그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됩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대상이 정확히 어떤 분인지 여러분은 다 아세요? 교회에서 성경을 통해 조금 배우고, 수련회 같은 데 가서 예배하면서 조금 배우고, 부모님을 통해 조금 더 배우지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많이 모르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잘 몰라. 성경도 잘 모르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아. 그래서 하나님은 아마 나를 쓰지 않으실거야.’ 혹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정작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내 안에 없는 거 같아. 성경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배웠는데,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어. 전도사님이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뭘 하라는 말이야? 하나님이 이런 나를 인도하시기는 할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 아브람도 똑같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완성된 믿음을 가진 믿음의 슈퍼히어로가 아니에요. 아브람은 이방 신을 섬기던 도시에서, 우상숭배자로 살다가, 수십 년에 걸친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 하나님을 점점 신뢰하게 되었고, 결국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 믿음이 온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100% 흠 없는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그런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지금 이 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לֶךְ־לְךָ 너는 너를 위하여 가라.”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으로 따라갑시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세요. “내가 너에게 보여주는 길로 가는 것이 너에게 가장 유익하고 좋은 길이 될 것이다. 너는 너를 위하여 길을 떠나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게 될 거야

하나님은 아브람을 그에게 가장 유익한 곳으로 보내시면서, 그 결과로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의 2절을 보겠습니다.(슬라이드9)
창세기 12:2 NKRV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에게 자손과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죠?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면서 더 넓은 범위의 회복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3절의 하반절을 보겠습니다.(슬라이드10)
창세기 12:3 NKRV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아브람을 통해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바벨에서 그분이 흩어버리셨던 땅의 모든 족속, 그들에게 아브람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는 복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온 세상을 잊어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아브람에게만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에게만 복을 주시고, 유대인에게만 복을 주시고,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복을 주시고 끝내버리시는 것이 아니에요. 아브람을 통해 온 세상이 복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제사장 나라로 부르신 다음에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이 복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온 세상이 복을 얻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바로 불완전하고 믿음도 연약해보이는 우리를 통해, 온 세상이 복을 얻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슬라이드11)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이중적 부르심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점진적으로 우리가 믿는 분이 누구인지 더 알아가고 그분과 친밀해지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변화되어 가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 삶과 맞닿아있는 세상의 각 영역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씩 회복되어 가는 것.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부르심인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그곳, 학교, 가정. 그곳은 우연히 지금 여러분이 서 있게 된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신 곳입니다. 거기서 여러분이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아브람이 그 땅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예배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가정에서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유익이 되는 삶이자, 우리를 만드신 분의 목적에 부합하는 온전하고 참 평강이 있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찬양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찬양팀은 나오시면 되겠습니다. ‘부르신 곳에서’라는 찬양인데요, 이 찬양의 가사를 묵상하면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따스한 성령님 마음으로 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만족함을 느끼네 사랑과 진리의 한 줄기 빛 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그 사랑을 느끼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곳에서 예배하네

기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선생님들은 반 아이들을 찾아가셔서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믿어지세요?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인 것이 정말로 믿어지세요?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을 변화시켜서 세상을 새롭게 할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같이 기도합시다. 먼저 이렇게 기도하죠. 하나님, 제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하나님을 조금 더 알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두 번째로는 이렇게 결단하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 그래서 제가 가정에서 예배하겠습니다. 학교에서 예배하겠습니다. 공부를 할 때, 화장실에 갈 때, 친구와 놀 때, 학원에서 지낼 때, 부모님과 대화할 때, 항상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주십시오. 이 두 가지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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