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강해12
Notes
Transcript
찬양
찬양
302장, 304장
기도
기도
1. 나라와민족을 위하여
2. 태신자영혼구원을 위하여
3. 주일예배를 위해서
능력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 이 이른 아침에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으로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
주님 앞에 나드리는 모든 기도의 제목들이 주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주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이 민족 대한민국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의 공의를 잊은채 살아가는 이 나라를 다시한번 주님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나라 되게하여주시옵소서
우리 민족이 오직 주님의 복음만을 의지하여 다른 나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능력과 담대함을 가지게 하시고 , 주님을 경외하는 위정자들을 세워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데 힘써 돕는 나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새생명전도축제를 위해 우리의 마음에 태신자들을 작정하고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 불러주신 곳에서 주님이 예비하신 주님의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할때에 주여 한사람도 빠지지 않도록 그들의 영적인 귀를 열어주시고 듣게하시고 감동하게 하셔서 태신자들 모두가 주님께 달려나와 주를 영접하고 예배하며 기뻐 뛰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주님의 날의 주일 예배르 위해서 기도합니다. 준비하는 모든 손길들 봉사의 모든 손길을 주님 기억하여주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한번 우리의 영이 숨을 쉬는 시간 우리의 영이 배불리 주님의 양식을 먹는 시간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입술에 성령님의 크시느 불을 내리셔서 모든 말씀속에서 살아 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말씀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선포
선포
이전 시간을 기억해보면
요나 3장에서 우리는 기적 같은 부흥을 보았습니다.
12만 명의 이방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고,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선교지에서 집회 한번에 12만명이 회심했다고 하면
요즘에도 뉴스에 나올겁니다 .
그런데 오늘 4장 1절을 보면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전무후무한 반응을 요나가 보여줍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가장 위대한 부흥의 현장에서, 정작 말씀을 전한 선지자가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매우 싫어하고”라고 번역된 부분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직역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그것이 요나에게 큰 악(Ra'ah, 라아)이 되었다.”
요나서의 저자는 여기서 아주 절묘한 언어유희를 사용합니다.
3장 8절에서 니느웨 백성은 자신들의 ‘악(라아)’에서 떠났습니다.
3장 10절에서 하나님은 내리시려던 ‘재앙(라아)’을 거두셨습니다.
그런데 4장 1절에 오니,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그 선하신 결정이 요나에게는 ‘큰 악(라아)’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니느웨의 악은 거두어졌는데, 오히려 선지자 요나의 마음속에 진짜 ‘악’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선하심에 반대하면서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향해 자기가 맘에 안든다고 화내는 인물은 요나가 유일 합니다.
요나는 왜 하나님의 은혜를 악이라고 여겼을까요? 왜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는 걸까요?
요나는 지금 자기가 만든 ‘공의’와 ‘정의’라는 자신의 틀 안에 갇혀서, 하나님을 그 속에 가두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버려야할 요나와 같은 기준입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께 화를 냅니까? 하나님 한테 화를 낸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입술로는 참아도
속으로는 하나님 왜 나한테 그러십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하는 그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올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방식, 내 시간표, 내 정의대로 움직이지 않으실 때
우리 죄인들은 분노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복을 받기를 원하죠
반대로 내가 밉게 보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은 내 좁은 생각의 틀 안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억지로 구겨 넣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마치 요나처럼 하나님을 향해 씩씩거리며 분노하게 됩니다.
오늘 요나는 하나님의 결정이 불공평하다고, 은혜가 너무 헤프다며 화를 냅니다.
네 맞습니다. 여러분, 은혜는 본질적으로 불공평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눈에 불공평해 보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을 수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하나님이 요나가 주장대로 공평하고 칼 같은 정의로만 세상을 다스리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명을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친 요나부터,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 죽었어야 마땅합니다.
요나는 자기가 바다에서 건짐받은 그 ‘은혜’는 감사하면서도, 니느웨가 회심하여 받는 은혜에는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요나의 모습을 보며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애초에 모두 다 은혜 받을 자격 없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은혜 자체가 세상의 잣대로 보면 가장 불공평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이 죽고, 죄인인 우리가 살았다는 불공평함
그 불공평한 은혜에 우리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의 날을 맡이하는 이 아침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만든 틀을 고집하며 하나님께 뿜어내는 분노가 있습니까?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은혜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내 안의 편협한 선민의식을 버리십시오. 내 좁은 정의의 틀을 깨트리십시오.
대신 세상의 가장 큰 불공평을 않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신 예수그리스도의
그 넓고 크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엎드리는 참된 믿음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의 날 아침, 12만 명의 영혼이 구원받는 기적 앞에서, 분노하는 요나의 모습 속에서, 우리 내면의 부끄러운 민낯을 발견합니다.
입술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한다고 하면서도, 내 방식, 내 뜻, 내 정의대로 움직여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속으로 원망하고 화를 내었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복을 받아야 한다는 좁은 생각의 틀 속에, 하나님의 그 넓고 크신 은혜를 억지로 가두려 했던 우리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은혜의 주님, 하나님의 그 십자가 사랑이 세상의 잣대로 보기에 ‘불공평’해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만약 주님께서 공의로만 세상을 다스리셨다면, 사명을 버리고 도망쳤던 요나처럼, 자격 없고 흉악한 죄인인 우리 역시 진작에 멸망하여 죽었어야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생명을 내어주신, 그 가장 불공평하고도 위대한 은혜 덕분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살아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 안에 굳어있는 편협함과 이기적인 잣대를 십자가 앞에 모두 깨트려 주시옵소서.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마음을 거두게 하시고, 나를 살리신 그 넓고 크신 십자가의 은혜 앞에 납작 엎드려 항복하는 참된 믿음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앞에 귀한 예물로 나아온 성도들이 있습니다. 주님 이 마음과 예물을 흠향하여 주시고 주님의 복의 복을 더하사 항상 모자람 없이 채워 주시옵소서
세상의 가장 큰 불공평을 껴안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