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 책임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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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성경이 말하는 참된 자유와 책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자유

사람들은 자유를 원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오해합니다. 자유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다릅니다. 성경의 자유는 책임이 없는 자유가 아니라 사명을 가진 자유입니다.
지난주 말씀에서 내가 책임지는 삶은 자유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책임지는 삶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자유에 대한 책임이 주어집니다.
구원으로 인하여 약속된 자녀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자녀가 된 자유가 주어졌다면, 이제는 그 주어진 자유에 책임과 요구 아버지로부터 주어집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 책임과 요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자유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본론 1: 자유의 본질과 정체성]

-죄에서의 해방,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종

갈라디아서 5:1 NKRV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사람들은 자유를 원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오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자유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뭐라구요?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어떠한 것도 여러분을 옭아맬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살라고 말씀드리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 거할 때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그분 안에 두시고자 하십니다. 자유는 하나님께 속해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단순한데 우리는 이것을 종종 놓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하여 그 안에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로마서 6:22 NKRV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너희가 죄에서 자유케 되어 정확히 말하면 죄의 삯인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져 하나님께 영원히 종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자유케 되었다는 것은 이제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리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깊이 속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하나님을 떠나는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정체성에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의문이 드셔야 합니다. "언제는 아들이라며 이제는 또 종이라네… 어떡하라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거나 반문, 불편함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문이 여러분의 신앙을 건강하게 합니다. 덮어놓고 서로 상반되는 말들에 다 아멘으로 답하지 마시고 의문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의문과 반문과 불편함이 여러분의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종은 무엇이고 아들은 무엇인지 결론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론 2: 자유를 가로막는 율법주의의 위험]

외적 기준을 넘어 은혜의 문을 여는 공동체

갈라디아서 5:2 NKRV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갈라디아 교회의 배경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속한 선택받은 민족 안으로 들어오라는 요구였습니다. 선민 우월감 특별함을 강조하는 겁니다. 자신들만이 구원에 합당한 민족이라는 듯이...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 문화 안으로 들어와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바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특별함을 가지겠다 스스로 내가 자격을 갖추겠다 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를 스스로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역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그 나라에 속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다릅니다.
그런데 다시 할례를 통해 율법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그리스도의 유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다시 종이 되는 자유가 아니기 때문 (어? 아까는 하나님의 종이 되라고..)입니다. 자유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할례라는 종교적 문제가 아닙니다.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유대 문화를 따라야 한다, 이방인이어서는 안 된다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달라야 해, 그러니 율법을 지키고 규정을 따라야 해"라는 것을 바울이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교회에도 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며 가르는 기준이 있습니다.
여러분 제스스로 저에게 이렇게 질문할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살인자, 강간범, 사기꾼 등 수많은 범죄자가 교회에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유흥업소 종사자, 마약 하는 사람이 교회에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종종 사람을 외적인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전과자가 온다 해도 우리는 그와 함께할 수 있습니까? 성도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어떠함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누구의 자유도 막거나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럼 범죄를 저질러도 잘못된 행동을 해도 교회를 어지럽게 해도 그냥 둡니까?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막지 말라는 것이지 모든 것을 그대로 두라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된 행동과 범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중 누가 그런 잘못을 했다면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기 위해 치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계모와 근친상간한 교인을 교회에서 출교시킵니다.
이것은 교회를 위해 한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행한 자가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기를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 가운데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고 그들을 위함이 아닌 교회를 위해 소수를 몰아세워 쫓아냅니다…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이러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교회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조건 없이 자유를 얻어 모인 성도가 다른 이도 자유를 누리도록 교회 문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듯 누군가도 다시 용서받고 회개할 수 있도록 그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우리의 자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며 다른 이에게서 그리스도의 유익을 빼앗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 자유를 누리며 은혜 안에 살아가는 자들의 책임입니다. 성경,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3절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범죄자 거리끼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준이 결국 나에게도 향한다는 겁니다. 스스로를 스스로가 지켜야 하며 바르게 살아야 교회 안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막고 그들을 밀어낸다면 나도 그 기준을 지켜야 밀려나지 않으며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4절에서는 뭐라고 하는 겁니까?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아 자유를 얻어놓고 교회가 정한 기준, 우리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꼴이 되는 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와 은혜에서 끊어진 자가 되는 겁니다.

[본론 3: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과 십자가]

십자가의 복음만이 주는 온전한 자유

갈라디아서 5:5–6 NKRV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성경의 자유는 책임이 없는 자유가 아니라 사명을 가진 자유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할례, 무할례라는 기준과 조건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라는 겁니다. 자유 얘기 하다 사랑이 나옵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요? 오늘 본문을 끝까지 따라가면 알게 되는데 미리 말씀드리면 유대인이 말하는 율법과 할례는 민족의 우월성과 기득권을 위해 사람을 자유롭지 못하게 옭아매고 있다, 그것은 사랑 없음이다.
자유는 구원과 은혜로 인함인데 구원과 은혜는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니 그 은혜를 누리며 구원받은 자는 사랑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기준이나 조건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유 없음은 사랑 없음이며 사랑 없음은 자유 없음입니다. 기준과 전통을 앞세우는 것은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며 그것은 사랑이 없는 앞세움이다 라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5:7–12
우리가 한 가지 또 알아야 할 갈라디아서의 배경이 있는데 그것은 거짓 교사들이 바울이 할례를 전한다고 가르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7-12절분노로 감정을 담아 전하는 겁니다.
"나는 그런 걸 전한 적이 없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복음이, 말씀이 그렇게 말하지를 않아"라고 하는 겁니다. 9절에서는 어떻게 이 말도 안 되는 가르침이 이렇게 퍼져갈 수가 있냐라고 말하는 겁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자유를 빼앗는 가르침, 사랑을 가리는 가르침이 온 교회에 퍼져 갑니다. 잘못된 가르침 하나가 성경의 복음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자유를 묶어 버립니다. 사랑에서 자기 의로 돌려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자유를 놓치지 마십시오. 사랑을 버리지 마십시오. 누구도 여러분에게서 자유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10–11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기에 너희가 율법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을 안다. 나는 너희에게 십자가를 전했다. 내가 지금까지 누구에게 박해를 받았냐? 율법을 말하며 할례를 말하는 자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십자가를 전함으로 여러 도시에서 박해를 받았다. 내가 할례를 전하는데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율법을 말하는 자에게 박해를 받겠냐? 내가 만약 할례를 전했으면 저들에게 불편한 십자가의 복음이 제거되었을 것이다. 나는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전하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십자가가 걸림돌입니까? 불편하며 십자가가 부담스러우십니까? 여러분에게 십자가는 단순히 구원받고 천국 가는 정도입니까? 그렇다면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겁니다.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겁니다. 결론 전에 12절을 짧게 이야기해드리면 이런 겁니다. 12절은 풍자와 같은 것입니다. "할례가 그렇게 좋아?? 그럼 더 잘라버려"라는 풍자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사람을 율법으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가르침을 강하게 거부합니다.

[결론: 자유의 완성, 사랑의 종노릇]

십자가에서 온 자유로 서로를 섬기십시오

갈라디아서 5:13–15 NKRV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제가 결론에 와서 말씀드리기로 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제는 아들이라더니 지금은 또 종이라네" 하는 부분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대놓고 말합니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라고 합니다. 우리는 묶임과 매임이 아닌 자유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내가 얻은 것이 아닌 주신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어떤 자유일까요?
그리고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 즉 방종 좋을 대로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자유를 모르면 방종, 정욕으로 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유를 가지고 사랑으로 종노릇 하라고 합니다.
말씀드린 "아들이라며 종이라고??"라는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내용에 자유에 대한 책임과 요구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 지위는 아들이며 상속자입니다. 그것은 성령이 주장합니다(로마서 8:16)
우리는 종이 아니고 자유인 아들 상속자라는 것이 변하지 않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누리는 자유를 기꺼이 사랑으로 종노릇 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랑의 종노릇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자유의 책임과 요구는 여기 있습니다. 자유가 뭔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자유는 육체의 욕심과 방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주장하는 것이 아닌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성도분들, 자유인이신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유에 대한 책임과 요구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자유는 그냥 얻어진 자유가 아닙니다. 이 자유는 십자가에서 온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유는 마음대로 사는 자유가 아니라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자유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입니다. 사랑의 종노릇 하십시오.
14절은 율법도 결국은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자유가 없으면, 자유를 오해하면 서로 공격하고 헐뜯고 자신을 앞세우며 뜻을 관철하기 바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오늘 본문을 통해 자유와 그 책임을 함께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13–15 NKRV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15 NKRV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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