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깨질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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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깨어진 가정

고린도전서 7:10–16 NKRV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친했던 친구와 갑자기 어색해진 경험이 있는가? 어제까지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친구와 어느 날 말도 안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관계가 깨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갑자기 찾아온다. 그런 친구 관계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관계가 깨지는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7장은 바로 그런 깨어진 가정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말씀이다. 여러분 주변에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가 있는가? 요즘은 이혼이 더 이상 가끔 있는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한 반에 몇 명씩은 그런 가정이 있다. 그런데 성경은 가정이 깨어지는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를 한다. 고린도전서 7장은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준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가정은 어떤 곳인가? 쉬는 곳인가,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는 곳인가? 하나님은 원래 가정을 사랑과 책임의 공동체로 만드셨다. 그런데 인간의 죄 때문에 가정의 관계도 깨어지게 되었다. 오늘 함께 읽었던 고린도전서 7장 10-16절은 바로 그런 가정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준다. 저와 여러분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가정을 이루게 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미리 배우는 하나님의 가정 원리이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사도 바울은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혼을 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이 자신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백한 가르침이라고 충고한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아주 가끔 예외적인 일을 제외하고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심지어 빵을 태워 굽는 등 하찮은 이유만으로도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할 수 있었다. 그리스헬라 세계에서는 여자도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고, 법정에 이혼하겠다고 하면 그대로 성립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혼을 금지하는 주님의 가르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피할 수 없이 발생했다. 이런 경우를 바울은 성경에서 괄호 안에 이렇게 다루고 있다. 7장 11절에 “그런데도 결혼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면, 아내는 결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든지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이 이야기는 단순히 여자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도 동일하게 말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율법적으로 무조건 이혼하지 말라는 맹목적인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혼 금지의 말씀은 결혼은 남편과 아내의 살아가는 일생 동안 한 몸 된 파괴될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이혼한 아내나 남편이 배우자가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간음을 범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10:11–12 NKRV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예수님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사역하셨기 때문에 승천하신 이후 초대교회의 그리스 헬라 각 세계 선교지에서 벌어진 상황, 그리스도인과 비신자와의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을 남기지 않으셨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르침을 신자와 비신자의 결혼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새롭게 해석하고 그것을 새롭게 적용하여 우리에게 가르친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구약에서 신약까지 여러 차례 비신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강조한다(창 24:1-4; 신 7:3-4; 스 9-10; 고전 7:39; 9:5; 고후 6:14-18).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다루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신자와 비신자와의 결혼한 사람은 물론, 이미 결혼 상태에 있는 부부 중 한 쪽만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아 생긴 일들을 다룬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이혼을 원칙적으로 피하기에, 신자와 비신자 사이의 결혼 관계를 계속 이어가냐, 마냐의 문제는 비신자인 배우자에게 달려 있다. 비신자의 아내나 남편이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기 원한다면, 그리스도인 남편이나 아내는 이혼하지 말고 같이 살아야 한다.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깊은 성경적 이유가 있다. 보통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런 잘못된 생각에 빠지기 쉽다. 왠지 비신자 배우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정하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비신자 배우자가 그리스도인 배우자와 같이 결혼으로 연합되어 살아감으로써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주권과 영역에 가까워져 오히려 “거룩하게 되는”것이다. 왜 비신자 배우자가 그리스도인 배우자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는 것일까? 바울은 여기서 거룩하게 된다는 말이 구원받음과 같은 말이 아님을 말한다. 이것은 거룩하지 못한 비신자 배우자에게 더렵혀지는 것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에 의해서 비신자 배우자가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느끼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어 우리가 주님께 속한 피조물임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 안에 계시는 성령이 세상의 영(사탄)보다 더 막강하기 때문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이 세상의 죄악의 역사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진리에 근거해서 하나님 나라의 소유자로 오셔서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부정한 자들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께서, 부정한 죄인들과 식탁교제를 하고 문둥병자들을 만져 치유하신 것이다.
세상의 종교들은 부정한 것을 만지면 부정 탄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유대교, 그 중에서도 바리새파 유대교가 그 원칙을 가장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그 원칙을 뒤집어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원칙, 즉 부정한 자들이 예수 자신의 거룩성에 접촉하여 정하고 거룩하게 된다는 원칙을 보여주시고 실천하신 것이다. 원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이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부정한 이방인들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사도직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배우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불신자 배우자가 숭배하는 우상을 통해 힘을 보여주는 귀신들보다 훨씬 더 막강하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귀신을 무서워하는 친구들이 없기를 소망한다. 공포영화를 보지 말라는 것도 귀신이 무서운 존재라고 착각하게 만들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사탄을 이기신 승리의 복음이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믿지 못해서, 어디에나 귀신이 있다고 두려워한다. 심지어 그리스도인 안에도 귀신이 있고 교회 안에도 귀신이 있다고 말하면서 계속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두려움만 주고 신앙을 미신처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귀신을 두려워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다는 복음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을 무서워하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곳을 변화시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되도록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형제나 자매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서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선교사의 마음을 가지고 결혼해야 한다.
바울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결혼한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말한다. 만약 남편이나 아내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을 통해 그 가정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향이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정의 자녀들도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관계 안에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가 가정의 제사장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영향은 아버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아내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즉, 남편이 믿으면 아내와 자녀에게 영향을 주고, 아내가 믿어도 남편과 자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정에서 한 사람만 특별하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남편과 아내 모두를 통해 그 가정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신다고 가르친다. 우리도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통로로 살아가야 한다.
전도사님 여동생은 이미 3년 전에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남편과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작년 이맘 때 울면서 나에게 전화가 와서 잘 지내던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남편하고 이혼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보통 여자는 출산한 이후로 본능적으로 남편에게 쏟았던 애정이 자녀에게 간다. 남편은 그것에 대해 서운감이 계속 쌓여만 갔다. 그러다가 전도사님 동생이 육아하면서 지친 탓에 지나가는 말로 “둘째는 못 가지겠다.”라고 말하니까 살면서 남편이 그렇게까지 엄청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애 낳는 기계가 된 것 같아서 속상해서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다고 나에게 연락온 것이었다. 그때 나는 왜 남편이 그렇게 화가 났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라고 하고, 당신 말에 어떤 말이든 복종하겠다는 뉘양스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라고 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명령은 성경에 나와있다. 그렇기 남편의 어떤 모습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꼭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니 요즘은 동생이 남편에게 결정권을 맡기고 둘이 알콩달콩 잘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무리 모태신앙끼리 만났다고 하더라도, 한 쪽의 신앙이 연약할 수 있기에 둘 중에 한 명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면 그 가정이 그 사람으로 인해 거룩해져 간다는 것이다.
만약 믿지 않는 배우자가 더 이상 함께 살기 원하지 않고 떠나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인 배우자는 억지로 붙잡을 의무가 없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혼 금지 가르침을 기계적인 규칙처럼 적용하지 않고, 실제 상황 속에서 그 정신을 따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혼은 언제나 큰 상처와 아픔을 남기는 비극적인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혼을 막고, 상담과 대화를 통해 가정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실제로 바울도 가능한 한 결혼을 유지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는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나쁜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지옥 같은 결혼을 계속 유지하는 것보다 이혼이 더 작은 악이 될 수 있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신앙과 가치관이 크게 충돌하여 결혼생활이 완전히 파괴되는 상황이라면 그리스도인이 그 결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성경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이혼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문자 그대로 붙잡는 태도는 오히려 더 큰 상처와 비극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배우자의 폭력이나 심각한 문제로 인해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무조건 참고 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혼을 금지하신 이유는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가정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상황과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약한 사람들을 더 큰 고통 속에 가두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문자만 붙잡는 율법처럼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사랑과 생명을 살리는 정신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문자만 붙잡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그 말씀의 정신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7장 15~16절은 해석에 대해 두 가지 다른 의견이 있는 본문이다. 첫 번째 견해는 이런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 가운데 살도록 부르신 분이다. 그런데 믿지 않는 배우자가 계속 이혼을 요구하면 가정은 계속 싸움과 갈등 속에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억지로 결혼을 유지하는 것보다 이혼에 동의하여 갈등을 끝내는 것이 평화를 얻는 길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또 어떤 사람은 “같이 살면 배우자가 예수님을 믿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 견해는 반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평화로 부르셨기 때문에 오히려 결혼을 유지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리스도인 배우자가 참고 함께 살다 보면 믿지 않는 배우자가 예수님을 믿게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결혼을 계속 지키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본문의 흐름을 보면 첫 번째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이미 갈등이 심하게 일어나 평화가 깨진 가정의 상황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억지로 관계를 붙잡는 것이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끝내는 것이 평화를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남편과 아내에게 동등한 책임과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바울이 예수님의 이혼 금지 가르침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기계적인 규칙처럼 적용하지 않고, 실제 상황 속에서 그 정신을 따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앞으로 배우자가 3가지를 했을 때를 제외하고 이혼할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첫째, 폭력 / 둘째, 불륜 / 셋째, 도박 및 마약”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는 배우자에 대한 실망이 크거나, 맞지 않는다고 여긴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끝까지 배우자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결혼은 결혼 자체가 평생 지속되는 관계로서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영원한 언약 관계를 이 세상에서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도이다. 전반적으로 성경은 이혼을 금지한다. 다만, 간음이라고 말하는 불륜(바람)은 이혼의 사유로 인정된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혼사유였다. 성경에서 이혼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걸코 하나님의 완전한 뜻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이상을 이루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요즘 현대사회에서 이혼은 모세율법이 적용되던 신정국가 이스라엘처럼 엄격하게 규제될 수 없다. 아무리 이혼과 재혼이 흔해지는 사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이상이다. 결혼생활이 망가졌을 때에도 그리스도인은 이혼을 주도하기보다는 결혼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혼은 당사자 간의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결혼이라는 구속력 있고 아름다운 관계로 들어가기 전에 그 위대한 모험을 감당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오랫동안 신중한 고민과 기도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여기 있는 꿈사땅 모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가정을 말씀을 순종함으로 세워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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