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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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래도 전한다
제목: 그래도 전한다
본문: 사도행전 17장 16-18절
본문: 사도행전 17장 16-18절
찬송: 502장
찬송: 502장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지난 시간 우리는 아덴의 우상을 보고 '격분'했던 바울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음속으로 화만 낸다고 세상이 바뀝니까? 진짜 사랑은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듭니다.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바울은 그 격분을 품고 '회당'뿐만 아니라 '장터'로 나갔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장터'는 헬라어로 '아고라(Agora)'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채소를 파는 시골 장터가 아닙니다. 재판이 열리고, 정치가 논의되고,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이 토론하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세상의 심장부'였습니다.바울은 '우리끼리' 말이 통하는 편안한 곳에 숨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환영하지 않는, 아니 자기를 비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 거대한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평가를 뛰어넘는 복음의 자존감
세상의 평가를 뛰어넘는 복음의 자존감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바울이 장터에서 예수를 전할 때 당대의 이 바울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여기서 '말쟁이(Spermologos)'라는 단어는 당시 아덴 사람들에게는 아주 모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본래 뜻은 '길바닥에 떨어진 곡식 낱알이나 쪼아 먹는 새'를 의미합니다. 즉, 바울을 향해 "제대로 배운 것도 없고, 족보도 없이, 어디서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떠드는 시끄러운 사람"이라며 무시하고 조롱한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아덴처럼 화려합니다. TV를 켜면 다들 잘살고 똑똑해 보입니다. 도시에 나간 자식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성공했다고 자랑합니다. 그런 거대한 세상의 기준 앞에서, 평생 흙을 만지며 정직하게 신앙생활 해온 우리의 모습이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이웃이나 가족들이 우리의 신앙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 취급하며, 바울에게 그랬듯 무시하는 눈빛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기죽지 마십시오. 바울이 정말로 '말쟁이'처럼 하찮은 사람이어서 그런 취급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그런 조롱을 감수했던 이유는,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가 세상의 기준으로는 미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원래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고전 1:27). 우리가 세상적인 스펙이나 말주변이 없어서 초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투박하고 순박한 우리의 입술을 통해, 가장 고상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말쟁이'라고 부르든, '촌스럽다'고 하든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들은 겉모습만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 중심에 있는 보석을 보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평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사는 존귀한 자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화려한 빈 껍데기 vs 초라한 보물상자
화려한 빈 껍데기 vs 초라한 보물상자
우리가 세상의 평가에 속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겉보기에 저토록 화려하고 당당해 보이는 아덴의 철학자들에게, 결정적인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바로 '생명'입니다.그들의 철학은 듣기에 멋있었지만, 죽음의 문제, 죄의 문제는 단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며 쾌락을 좇는 에피쿠로스 학파나, 내 힘으로 의롭게 살겠다고 고집하는 스토아 학파나, 결국 죽음 앞에서는 다 무너질 '화려한 빈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반면에 바울을 보면 겉모습은 흙먼지 뒤집어쓴 초라한 '말쟁이' 같았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18절 끝부분에 나옵니다.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제가 우리 성도님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서울의 으리으리한 대학병원에 갔다고 칩시다. 번쩍거리는 가운을 입은 의사가 최신 장비 앞에 서 있으면 우리는 기가 죽습니다. 반대로 나박포 하나로 마트와 농협 길 귀퉁이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약초를 파는 할아버지가 있으면 우리는 우습게 봅니다.그런데 만약, 그 대학병원 의사는 "이 병은 못 고칩니다. 준비하십시오." 하고 포기한 환자를, 마트 앞에 있는 허름한 할아버지가 "이거 먹으면 산다" 하고 약을 줘서 살려냈다면 누가 진짜입니까? 누가 더 귀한 사람입니까? 겉모습은 대학병원 의사가 화려하지만, 사람 살리는 능력은 저 허름한 할아버지에게 있다면, 생명 앞에서는 할아버지가 '명의(名醫)'입니다.오늘 우리가 가진 복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부유해 보여도, 영적으로 보면 그들은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들의 돈과 명예가 죽음이라는 병을 고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세상적으로 부족하고 촌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바울이 아덴의 지성인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쟁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말재주를 믿은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들린 복음의 가치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화려하지만 죽어가고 있고, 나는 초라하지만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 거룩한 배짱과 자존감이 그를 외치게 했습니다.고린도후서 4장 7절 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맞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투박하고 잘 깨집니다. 남들이 볼 때 볼품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릇의 모양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입니다. 우리 안에는 천하보다 귀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초라한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말쟁이'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 촌스럽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를 무시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저들은 알지 못하는 '예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그동안 우리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하며 스스로 위축되곤 했습니다. 내 삶의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전도하기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이같은 세상적인 열등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입니다.지금 내 이웃이, 내 가족이 세상의 쾌락과 헛된 철학에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세련된 철학 강의나 돈 보따리가 아닙니다. 투박하지만 확실한 '예수와 부활'의 소식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금덩어리보다 물 한 모금이 더 귀한 법입니다.바울처럼 삶의 현장인 장터로 나가십시오. 마을 회관으로, 논밭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당당하게 전하십시오. "예수 믿으면 산다! 예수가 소망이다!" 세상의 조롱을 뚫고, 생명의 씨앗을 심는 용기 있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오늘도 말씀을 통해 세상 앞에 주눅 든 우리의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덴의 거대한 신전과 똑똑한 철학자들 앞에서 '말쟁이' 취급을 받으며 조롱당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예수와 부활을 외쳤던 바울의 그 용기를 봅니다.주님, 솔직히 고백합니다. 우리는 세상 앞에서 너무나 자주 작아졌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많이 배우지 못해서, 내세울 만한 성공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꺼내기를 주저했습니다. 저들의 화려함에 기가 죽어, 내가 가진 복음마저 초라하게 여겼던 우리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하나님, 이제 우리 눈을 열어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은 화려해 보이나 생명이 없고, 우리는 질그릇같이 연약하나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대학 병원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죽음의 병을 고치는 신비한 약이, 바로 우리 손에 들려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세상의 평가나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나는 생명을 가진 자다", "나는 보배를 가진 자다"**라는 거룩한 배짱과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삶의 장터에서, 논밭에서, 마을 회관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그래도 예수가 희망"이라고 담대히 전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