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격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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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로 격려하며
제목: 서로 격려하며
본문: 사도행전 15장 36-41절
본문: 사도행전 15장 36-41절
찬송: 222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송: 222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나라 음식 중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비빔밥입니다. 비빔밥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먹기도 편해서 한국 사람도, 외국 사람도, 남녀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합니다.
각각 다른 색깔과 맛을 가진 나물들이 하얀 밥과 섞여지는데, 만약 이 모든 재료를 따로따로 먹는다면 뭔가 부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서 하나로 비비면, 온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연합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바울과 바나바의 이야기는 참으로 놀라운 일을 보여줍니다. 이 두 사람은 초대교회 최고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면 좋을까요?
파록쉬스모스 - 갈등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
파록쉬스모스 - 갈등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
오늘 본문 39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히 다투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파록쉬스모스(παροξυσμός)’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딱 2회 사용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다툼’이란 의미로, 히브리서에서는 ‘격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을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격려’가 바로 같은 단어 ‘파록쉬스모스’입니다. 같은 단어가 사도행전에서는 다툼, 히브리서에서는 격려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다툼이 일어난 이유는 바나바의 사촌 마가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가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마가를 2차 전도여행에 데리고 가려는 바나바의 의견을 반대한 이유는 마가가 이전 1차 전도여행 때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간 것 때문이었습니다. 마가가 돌아간 이유는 앞으로의 전도 여정이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험준한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야 하는 위험한 여정 앞에서 마음이 약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마가를 반대한 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책임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실패는 허용될 수 없다는 사명감이 바울에게는 있었습니다. 반면 바나바의 포용은 무책임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한 번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는 유명한 건물을 설계할 때의 일입니다. 건축가는 “이 건물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구조 엔지니어는 “이 건물은 안전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요구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수개월간의 치열한 토론과 협업을 통해, 안전하면서도 아름다운,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은 건축물이 탄생했습니다. 갈등이 아니라 상호 보완이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마가를 반대했고, 바나바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가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바울처럼 엄격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바나바처럼 자비로우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바울과 바나바의 ‘파록쉬스모스’는 단순한 다툼이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더 나은 사역자로 만들어가기 위한 거룩한 자극이었고,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위한 사랑의 격려였던 것입니다.
너를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너를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이 ‘파록쉬스모스’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게 되면 39b-41절에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팀이 두 팀이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고향인 구브로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바울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 결국 유럽 땅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갈라서지 않았다면, 복음은 아시아 지역에만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갈등을 통해 복음이 온 세계로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응급실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경험 많은 응급의학과 의사와 인턴 수련생이 응급환자 치료 방법을 놓고 격렬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고"좀 더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주장했고, 인턴은 "즉시 수술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겉보기에는 갈등처럼 보였지만, 둘 다 환자를 살리려는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그 치열한 토론을 통해 두 관점을 모두 다 고려한 최선의 치료법을 찾았고, 환자는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일을 하다보면 의견이 다를 때도 있고, 이로 인해 내의견이 묵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나 서운함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무엇이든 내가 주도해야 마음이 편한 분들도 계실 수 있고, 때로는 이로 인하여 서로 의견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성격과 은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강한 주도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바나바도 자신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다양함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때로는 내가 주도하지 않는 상황도, 내 의견이 채택되지 않는 상황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과 마가는 오늘 본문에서 갈등을 가지고 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고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 바울은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한때 중도에 포기했던 마가가 ‘유용한 자’로 완전히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위대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실패한 것 같았던 한 젊은이를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나와 의견이 다른, 나를 이해주지 않는 것 같은 분이 계시다라고 하면 그 분도 언제나가는 우리 각자에게 ‘유익한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를 빚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6절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이는 여전히 바나바를 자신의 소중한 동역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갈라섬은 원수되기 위함이 아니라, 각자의 길에서 하나님의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상대를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생각과 다른 그 사람의 의견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혜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주도하지 않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바울과 바나바는 참된 연합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참된 연합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 다름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큰 뜻이 이루어짐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때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나와 다른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귀한 일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설령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를 부정하거나 제압하려 하지 말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바울과 바나바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의견이 다르고 마음이 상할 때가 있지만,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서로 다른 우리의 생각과 성향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신뢰하게 하시고, 갈등이 있을 때에도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의 더 큰 뜻을 구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다양함 속에서도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모든 성도들이 서로를 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