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자유케 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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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자유케 한 은혜

본문: 누가복음 4장 16-21절

찬송: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자유를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겨울 시금치 농사로 분주한 우리 지역의 현실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늘 쉼과 해방을 꿈꾸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운 겨울 아침 일찍부터 밭에 나가 흙투성이가 되어 일하다가 간신히 굽은 허리를 펼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합니다. 비록 한겨울의 고된 시금치 농사가 우리 가정에 상당한 수익을 가져다주고 삶을 넉넉하게 해줄지라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육신의 고단함 앞에서는 "이 농사철만 지나면, 통장에 잔고가 늘어 나면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워지겠지"라는 기대를 품게 됩니다.
오늘날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그럴듯한 복음을 속삭입니다. 돈이 넉넉하게 많아지면 모든 걱정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남부럽지 않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 아무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유를 얻기 위해 밤낮없이 수고하며 땀을 흘립니다. 가난과 부채의 쪼들림 때문이 아닙니다. 내 손으로 쌓아 올린 이 넉넉함과 성취가 마침내 내 인생에 참된 평안과 해방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현실은 어떠합니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자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의지했던 바로 그것들이, 도리어 우리 영혼의 숨통을 조이고 우리를 옭아매는 무서운 올무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합니다.

거짓 자유의 유혹과 우상숭배

물질을 통해 인생의 자유와 안정을 얻으려던 사람은 결국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잔고는 넉넉해졌을지 몰라도, 더 많은 것을 잃지 않으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늘 돈에 울고 웃는 메마른 인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남들의 칭찬과 성공으로 자유를 누리려던 사람은 결국 '타인의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평생토록 남의 눈치만 살피며 살아가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무언가를 내 인생의 궁극적인 보호자와 구원자로 삼고, 그것에 내 삶의 가장 깊은 소망과 기쁨을 둘 때, 바로 그것이 우리 영혼의 '우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우상은 마침내 우리의 잔인한 주인이 되어 우리를 무자비하게 통제하고 억압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더 편안한 노후와 자유를 찾아 수고했다고 생각했지만, 믿음의 눈을 떠보면 스스로 만든 더 무겁고 화려한 쇠사슬을 발목에 찬 채 살아가는 세상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한 인간이 겪게 되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스스로 구원하려는 헛된 몸부림

이러한 내면의 고통과 영적인 허무함에서 벗어나고자,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열심이나 지독한 고행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해탈의 경지, 즉 영혼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평생을 눕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자는 장좌불와를 실천하거나, 수년 동안 단 한마디의 말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묵언 수행을 합니다. 내면의 욕망을 끊어내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과 자유를 쟁취해보려는 눈물겹고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어느 깊은 산속 암자에서 묵언 수행을 하는 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혼의 얽매임에서 자유를 얻고자 무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0년 만에 연로하신 부모님이 아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 절로 찾아왔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부모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예, 아버지"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10년 동안 쌓아 올린 수행의 공든 탑이 그 짧은 한마디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는 크게 자책하며 이번에는 결단코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또다시 10년의 묵언 수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10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습니다. 해진 승복을 바느질하여 여미다가 그만 뾰족한 바늘에 손가락을 깊이 찔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너무 놀라고 찌르는 듯한 통증에 "아야!" 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다행히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고, 그의 비명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 스님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휴, 아무도 못 들었으니 다행이다. 들킨 사람이 없으니 나는 묵언 수행 20년을 완벽하게 채운 것이다"라고 속으로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육신의 통증에 허무하게 무너지면서도, 그저 남들이 듣지 못하게 겉으로만 침묵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참된 깨달음이요 해탈이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타 종교를 비하하려고 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이 스님의 연약하고도 위선적인 모습이, 다름 아닌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스스로 자유와 구원을 얻어내려 합니다. "내가 기도를 이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농사로 다른 일들로 바쁜 중에도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내어 봉사했으니까, 십일조와 헌금을 철저히 드렸으니까, 하나님이 당연히 나를 축복하시고 내 삶을 지켜주시겠지."
우리는 값없이 주어지는 십자가의 은혜를 철저한 거래와 종교적 율법으로 바꾸어 버리곤 합니다.스스로의 의로움종교적 수고를 통해 하나님께 억지로 칭찬과 자유를 받아내려 한다면, 우리 역시 무거운 짐 진 자들일 뿐입니다. 내 힘으로 구원을 얻어내려는 그 모든 시도는 결국 '자기 합리화'와 '종교적 교만'이라는 또 다른 무서운 올무에 우리를 가두어 버릴 뿐입니다.

은혜의 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해방

우리의 알량한 수고와 노력으로는 결코 우리 자신을 이 영적인 억압의 굴레에서 구원할 수 없다는 절망스러운 현실 한가운데로, 오늘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선지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온 우주를 향해 폭탄과도 같은 선언을 하십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는 헬라어 원어로 '아페신(ἄφεσιν)'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감옥의 문이 열리거나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물리적인 해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갚을 길 없는 엄청난 영적인 빚이 주인의 선언으로 완전히 탕감되는 것, 죽어 마땅한 죄의 형벌이 조건 없이 면제되는 것, 나를 짓누르던 모든 영적, 육적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놓임 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는 근원적인 '사면과 해방'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자유가 도대체 언제 주어지는 것일까요? 이어지는 19절에서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은혜의 해'란 구약 레위기 25장에 기록된 '희년(Jubilee)'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50년째가 되는 희년이 찾아오면 사회 전체에 놀라운 기적이 벌어집니다. 가난하여 노예로 팔려 갔던 자들이 몸값을 치르지 않고도 값없이 자유를 얻어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넘겨야만 했던 조상 대대의 기업을 아무런 대가 없이 돌려받습니다. 심지어 농사를 짓던 땅도 1년 동안 경작을 멈추고 깊은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복음의 진리가 있습니다. 희년의 이 엄청난 회복과 자유는, 노예들이 열심히 돈을 모아 몸값을 갚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땅이 비옥해졌기 때문에 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단 하나의 이유, '하나님이 정하신 은혜의 때가 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공로나 자격, 노력과 상관없이 오직 위로부터 부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빚이 탕감되고 완전한 새로운 출발이 덮어지듯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출애굽 역사도 이와 똑같은 맥락을 보여주는 놀라운 은혜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의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은 그들이 무기를 들고 싸워 이겼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사 "내가 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건져내겠다"고 홀로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참된 자유는 우리의 땀방울이나 종교적 수행으로 쟁취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위로부터 값없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덮으시고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을 향해 21절에서 이렇게 가슴 벅찬 선언을 하십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 얼마나 위대한 선포입니까? 칼 바르트(Karl Barth)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 자체가,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죄와 사망의 세력을 향해서는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꾸짖으시고, 절망 속에 빠진 우리를 향해서는 "내가 너를 결단코 포기하지 않겠다, 내가 너를 살리겠다!"며 십자가로 두 팔 벌려 끌어안으시는 눈물겨운 사랑과 긍휼을 온 우주에 선포하신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참으로 깊이 얽매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올무는 단순히 통장의 잔고나 농사일의 고단함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현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을 기어코 우상으로 만들어버리며, 우리 영혼을 하나님과 단절시키는 영적인 질병, 바로 '죄와 사망'의 덫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가장 절망적인 올무에서 우리를 풀어 영원히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걸어가신 공생애의 모든 발걸음 자체가, 바로 그 은혜의 희년이 우리 삶 속에 실제적으로 실현되는 눈부신 구원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 아무 죄도 없으신 자신을 친히 십자가의 끔찍한 올무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율법과 고행으로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죄의 부채를, 주님의 거룩한 생명이라는 피 값으로 남김없이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죽음의 포로가 되어 어둠 속에 갇히지 않게 하시려고, 친히 무덤이라는 차가운 감옥에 갇히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마저 덮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참된 희년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해방이십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순절을 그저 고기를 먹지 않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종교적 고행의 절기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순절은 내가 얼마나 죄를 덜 짓고 더 훌륭한 교인이 될 수 있는가를 입증해 내는 율법의 시간이 아닙니다. 사순절은 내 힘으로 내 인생을 구원하고 책임지려 했던 모든 헛된 노력과, 경제적 넉넉함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마음속의 우상들을 십자가 앞에 남김없이 내려놓는 완전한 항복의 시간입니다. 오늘 내 영혼의 숨을 막히게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사람들의 시선, 끊어지지 않는 죄의 유혹이라는 모든 올무로부터 진짜 자유함을 얻기 위해, 우리의 영원한 희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잠잠히 우러러보는 생명의 계절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농사는 우리가 흘린 땀과 수고만큼 정직하게 수익을 거두는 것이 철칙입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의 구원과 얽매임 없는 참된 평안만큼은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값없이 주어집니다. 여러분의 굽은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모든 무거운 멍에를 오늘 이 예배의 시간, 십자가 아래로 가벼운 마음으로 가져오십시오. 나를 구원하지 못할 세상 물질의 우상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를 살리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묶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의 진정한 왕이요 주인으로 모셔 들이십시오. 주님이 내 삶의 참 주인이 되실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영광스러운 해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이 십자가의 붉은 보혈 안에서 나의 모든 영적인 부채가 깨끗이 탕감받는 참된 '주의 은혜의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텅 빈 두 손을 높이 들어 주님의 넘치는 은혜만을 전적으로 사모할 때, 포로 된 자가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는 이 거룩한 희년의 기쁨이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심령과 가정, 그리고 우리 지역의 모든 들녘 위에 풍성하게 임할 것을, 우리를 참으로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선포하시는 '주의 은혜의 해'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참으로 연약하고 어리석어 때로는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흘린 우리의 땀방울과, 통장에 쌓이는 넉넉한 물질이 우리 인생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참된 평안을 줄 것이라 믿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우리의 든든한 우상으로 삼고, 내 스스로의 율법적 행위와 의로움으로 구원을 얻어 보려 했던 우리의 모든 영적 교만과 어리석음을 이 시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는 결코 우리 영혼을 옥죄는 죄와 사망의 억압을 끊어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우리의 참된 희년이 되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죄의 빚을 탕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해방이요, 소망임을 믿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이 사순절의 기간 동안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의 굽은 어깨를 짓누르는 모든 삶의 무거운 멍에와 영적인 쇠사슬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온전히 내려놓게 하옵소서. 잠시 머물다 갈 물질의 넉넉함보다 영원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 영혼을 배부르게 하시고, 내 힘으로 얻으려 했던 거짓된 자유가 아니라 오직 주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희년의 기쁨이 우리 성도들의 심령과 각 가정, 그리고 이 농촌의 모든 들녘 위에 풍성하게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모든 올무에서 건져내사 참된 자유케 하신 참 좋으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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