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8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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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21:12–22 NKRV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잎사귀만 있는 신앙인가, 열매 맺는 신앙인가?

본문: 마태복음 21:12-22 (개역개정)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예배의 자리로 나온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1장에는 예수님이 하신 아주 충격적인 두 가지 행동이 나옵니다. 첫째는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으며 상을 엎으신 사건이고, 둘째는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신 사건입니다. 사랑과 온유의 예수님이 왜 이렇게 분노하셨는지, 이 사건이 당시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성전을 향한 분노: 편의주의로 변질된 예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마자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엎으셨습니다.
이 상황의 정확한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려면 구약의 율법을 보아야 합니다. 본래 신명기 말씀에는 성소가 너무 멀어 가축을 끌고 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예외 조항이 있었습니다. 가축을 돈으로 바꾼 뒤 성소 근처에서 그 돈으로 제물을 사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는 먼 곳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배려가 심각하게 변질되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예 성전 안, 그것도 이방인들이 유일하게 기도할 수 있는 '이방인의 뜰'에 시장을 열었습니다. 멀리서 사람들이 정성껏 흠 없는 제물을 끌고 오면, 제사장들은 미세한 트집을 잡아 불합격 처리를 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성전 안에서 시중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제물을 사야만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이용해 엄청난 폭리를 취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예배하러 온 백성들의 태도였습니다. 예루살렘 근처에 살던 사람들도 굳이 집에서 제물을 챙겨오지 않고 성전에서 돈을 주고 제물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부터 흠 없는 양을 고르고, 다치지 않게 성전까지 끌고 오는 것은 아주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차피 가져가 봤자 퇴짜를 맞을 바에야, 차라리 돈으로 편하게 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성스럽게 제물을 준비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돈만 내면 언제든 예배를 때울 수 있다는 철저한 '편의주의'만 남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당시 성전은 아주 잘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제사가 드려졌고, 절기마다 수십만 명이 몰려들었으며, 건물은 웅장했습니다. 제사 시스템은 체계적이었고, 사람들은 가득 찼습니다. 잎사귀가 정말 무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안을 들여다보시니, 정작 그곳에 하나님은 안 계셨습니다. 기도는 없고 장사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14절을 보면, 상을 엎으신 직후에 아주 중요한 일을 하십니다. 바로 성전 안으로 나아온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핑계로 돈을 벌고 있는 동안, 정작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아픈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장사꾼들을 내쫓으신 바로 그 자리에서 아픈 사람들을 고치시며, 성전을 잠깐이나마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예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오히려 화를 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편 8편 2절을 인용하시며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다"고 대답하십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성경을 가장 잘 알고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야 할 신앙의 전문가들은 예수님을 몰라보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아이들과 아픈 사람들은 진짜 하나님을 알아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가장 멀리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패한 성전을 향해 예수님은 13절에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Matthew 21:13 NKRV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쓰신 이 표현은 구약성경 예레미야 7장 말씀을 정확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Jeremiah 7:9–11 NKRV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들도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일상에서 온갖 불의를 행하고 이웃을 억압하면서도, 성전에만 들어오면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며 외쳤습니다. 일상에서는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살다가, 성전에 와서 제물만 바치면 자신들은 무조건 안전하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쓰인 '강도의 소굴'이라는 단어의 원어의 뜻은 강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장소가 아니라, 나쁜 짓을 다 저지르고 나서 안전하게 숨어있는 '은신처'를 뜻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욕심대로 살다가, 안식일이 되면 성전에 와서 돈으로 제물을 사서 바치고는 스스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삶을 돌이켜야 할 거룩한 성전이, 오히려 그들의 죄를 덮어주고 정당화해 주는 은신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2. 무화과나무의 비유: 열매 없는 종교의 최후

이어서 예수님은 다음 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다가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십니다. 열매를 찾으셨지만 잎사귀밖에 없자,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게 날 때, 먹을 수 있는 작은 첫 열매가 잎과 함께 맺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그 안에 당연히 열매도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배가 고파서 화를 내신 것이 아닙니다. 잎사귀만 화려하고 열매가 없는 이 나무는, 겉으로는 화려한 제사와 종교 의식이 가득하지만 진짜 생명력은 하나도 없는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청각 교육이었습니다. 돈으로 제물을 사서 편하게 제사를 지내고 종교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무성한 잎사귀를 가진 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짜 열매가 없었습니다.

3. 우리에게 요구되는 열매: 거룩한 불편함과 일상의 순종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고를 피하기 위해 돈으로 제물을 샀던 것처럼, 우리도 나의 시간과 삶을 찢어 드리는 수고 없이 너무 쉽게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에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것으로 내 신앙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참된 예배는 본질적으로 불편한 것입니다. 이 불편함은 단순히 환경이 열악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짜 불편함은 내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삶을 맞춰야 할 때 찾아옵니다.
세상은 나를 억울하게 한 사람에게 똑같이 갚아주라고 하지만, 성경은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내 이익을 먼저 챙기라고 하지만, 성경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행하고 이웃을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삶은 필연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이기적인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불편함을 피하고 편안함만 추구할 때, 우리의 신앙은 열매 없이 무성한 잎사귀만 남게 됩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신앙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경고하셨습니다.
Matthew 7:21–23 NKRV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지막 날에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랑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기적도 행하고, 엄청난 사역을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맺은 화려한 종교적 잎사귀를 자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여기서 '불법'의 뜻이 무엇인가? 법을 어기는 것인가? 아니다 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말해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는 기적을 행할 만큼 대단해 보였지만, 삶의 자리에서는 말씀을 지켜내기 위한 거룩한 불편함을 전혀 감수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이라는 진짜 열매가 없는 그들을 향해 무화과나무를 꾸짖으셨듯 엄중하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보이는 현상에 속으면 안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의 삶을 봐야 한다. 교회에서의 여러분의 모습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교회 밖에서의 나의 삶, 혼자있을 때의 나의 삶, 운전 할 때 나의 삶이 어떠한지 보아야 한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교회에서 봉사하고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열심을 내면 신앙이 좋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리고 헌신하는 것은 참 귀한 잎사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동일하게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의 신앙은 잎사귀만 무성한가, 아니면 진짜 열매가 있는가?"
우리는 웅장한 건물과 시스템 속에서 돈으로 편하게 제물을 사며 안도했던 유대인들처럼, 껍데기만 남은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 겪는 그 거룩한 불편함을 기꺼이 짊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 참된 무화과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있는 직장과 학교, 가정에서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고, 조금 손해를 보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열매를 맺어가는 복된 청년 예배자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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