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를 이유
26년 3월 10(63)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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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배고픈 자가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은 배고픈 자를 찾아가신다.
주제: 배고픈 자가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은 배고픈 자를 찾아가신다.
명제: 나의 오병이어를 드릴 때, 주님께서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배부르게 하신다.
명제: 나의 오병이어를 드릴 때, 주님께서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배부르게 하신다.
사도신경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본문
본문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인사
인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아멘!
서론 — "나는 거지인가?" (30-33절) 5분
서론 — "나는 거지인가?" (30-33절) 5분
중고등부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6장 30절부터 44절까지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늘 제가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핵심 질문] 여러분은 거지입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쫓아온 5천 명의 사람들. 이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따라왔을까요?
이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신다는 소식을 듣고,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0절을 보면, 제자들이 흩어져서 사역을 하고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그 사역을 맛본 무리가 제자들을 쫓아왔고, 제자들을 쫓아온 것은 결국 예수님을 쫓아온 것이었습니다.
이 무리는 치유가 필요했고, 배가 고팠고, 자유를 원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쫓아온 사람들은 가난하고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026년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어떤가요? 밥을 못 먹어서 예수님을 따르나요?
고작 빵과 물고기 먹자고 예수님을 따르나요?
우리는 먹고 싶은 두쫀쿠를 먹고, 아프면 서울대 병원에 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를 이유가 있긴 한 건가요?
제가 주아를 씻기다가 뜨거운 물에 데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세면대에 올려놓고 물을 틀었는데, 처음엔 차가운 물이 나오니까 따뜻해지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물이 생각보다 빨리 뜨거워졌고, 주아의 등이 빨갛게 데여버렸습니다.
저는 바로 약국으로 뛰었습니다. 뛰어가면서 오만가지를 상상했습니다.
'물집 잡혀서 흉이 지면 어떡하지? 나중에 흉을 가린다고 타투한다고 하면 나는 할 말이 없겠다.
무슨 타투할지 같이 이쁜 그림을 찾아봐야겠다.' 별 생각을 다 하면서 약을 사다가 주아 등에 발라 주었습니다.
지금 주아의 등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멀쩡합니다. 아빠가 오두방정이었죠.
아기 피부가 성인보다 약해서 금방 데인게 맞고, 다행히 빨리 약을 발라서 나은 것입니다.
저는 그 순간 약이 절실했습니다. 내 자녀가 낫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거지입니다. 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 자녀가 낫기를, 내 가족이 괜찮기를,
내 마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지입니다.
2천 년 전 그 무리가 예수님을 쫓아온 이유와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절실한 것이 있고, 예수님만이 그것을 채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을 품고,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한편 제자들은 사역에서 돌아와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31절에서 예수님은 "좀 쉬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쉬러 간 빈 들에 사람들이 먼저 달려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핵심 문장 — 반복구 ①] "제자들은 사역을 보고했고, 예수님은 맡기셨습니다."
제자들의 보고는 '우리가 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지금 이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묻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을 너는 어떻게 볼 거냐?'
대지 1 — 목자의 긍휼: 쉼이 빼앗긴 자리에서 (33-34절) 8분
대지 1 — 목자의 긍휼: 쉼이 빼앗긴 자리에서 (33-34절) 8분
제자들이 쉬러 '빈 들'로 갔는데, 사람들이 먼저 달려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쉬고 싶었는데, 쉬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예화: 쉼이 빼앗기는 순간]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이제 좀 쉬어야지" 했는데 또 일이 생기고,
"오늘은 마음 좀 편히 있으려 했는데" 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보통 마음이 거칠어집니다. "왜 또 나한테 이래." "왜 하필 지금이야."
그런데 34절에서 예수님의 마음은 다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쉼이 필요헀습니다.
쉼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군중을 방해물이 아니라 돌봄의 대상으로 보셨습니다.
[핵심 문장] 예수님의 긍휼은 얕은 동정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연민입니다.
예수님의 원동력은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군중을 귀찮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대지 2 — 제자들의 계산기 vs 주님의 명령 (35-38절) 8분
대지 2 — 제자들의 계산기 vs 주님의 명령 (35-38절) 8분
시간이 늦어지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아지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소서." (36절)
말이 맞는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해산"이 정답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여러분, 이 말은 제자들 입장에서 말이 안 됩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장소는 빈 들이고요. 시간은 저물었고요. 제자들이 가진 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즉시 계산기를 켭니다.
"우리가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200 데나리온은 그 당시, 8개월치 임금입니다. "주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예화: A안과 B안 사이의 우리] 제자들은 딱 두 가지 선택지만 보았습니다.
A안: 무리를 흩어보내자(포기). B안: 200데나리온을 구해오자(인간적 노력).
우리도 똑같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먼저 계산부터 합니다. "내가 가진 시간은 이만큼."
"내가 가진 돈은 이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그리고 결론은 빠릅니다. "안 돼요." "못 해요."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A안과 B안을 모두 넘어서는 Option C, 창조적 대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똑같이 계산했을 겁니다. 제자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현실 압박 속에서 계산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계산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대신 38절에서 질문하십니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여기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간단합니다.
제자들이 "없는 것"만 보던 시선을,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으로 돌리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가서 확인하고 돌아와 말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건 여전히 너무 적습니다. 오히려 더 절망적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싶을 만큼 작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작은 것을 비웃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더 가져와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새것을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물으신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믿음 고백] "이것뿐인데요, 주님.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것으로 나의 필요를 채우실 분이심을 믿습니다."
[핵심 문장 — 반복구 ②] "제자들은 계산했고, 예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그것"을 믿음의 출발점으로 삼으십니다.
대지 3 — 오병이어의 기적: 계속 주시는 은혜 (39-44절) 8분
대지 3 — 오병이어의 기적: 계속 주시는 은혜 (39-44절) 8분
예수님은 사람들을 앉히게 하십니다. 백 명씩, 오십 명씩.
여기서 잠깐 생각해 봅시다. 5천 명의 남자를 백 명씩, 오십 명씩 조직하면 무엇이 됩니까? 군대가 됩니다.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로마의 억압 아래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군대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앉히셨습니다. 잔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핵심 문장] 예수님은 혁명가가 아니라 목자이십니다.
사람들을 싸움터로 내모는 분이 아니라, 배불리 먹이시는 분입니다.
빈 들이지만, 예수님이 계시면 그곳은 잔치 자리가 됩니다.
39절의 '푸른 잔디'는 본문의 장소인 갈릴리 기후상 3-4월 유월절 기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옛날 모세 시대 광야에서 만나가 내려왔듯, 지금 이 빈 들에서 예수님이 새 출애굽의 양식을 주십니다.
그리고 41절.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떡을 '뚝' 떨어뜨리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을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제자들은 기적을 만들 능력은 없었지만, 기적을 나르는 손이 있었습니다.
[핵심 문장] 41절에서 예수님은 한 번 떼어 주고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 공급하셨습니다.
그리고 42절.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붙들어야 할 한 문장입니다.
[핵심 문장 — 42절 믿음 선언] "다 배불리 먹고." 누가 배불리 먹였습니까? 제자입니까? 군중입니까? 아닙니다.
본문을 기록한 마가는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결과로 말합니다.
"다 배불리 먹고." 이 말은 이렇게 들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책임지셨다. 예수님이 먹이셨다. 예수님이 하셨다."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습니다.
열두 바구니는 열두 제자, 그리고 영적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보여줍니다.
이 사건, 오병이어 '간신히 버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충분히 채우시는 왕의 잔치입니다.
[핵심 문장 — 반복구 ③] "제자들은 부족을 봤고, 예수님은 배부름을 주셨습니다."
결론 — 내가 지금 어떤 배고픔이 있는가? 6분
결론 — 내가 지금 어떤 배고픔이 있는가? 6분
중고등부 여러분,
서론에서 질문했습니다. "나는 거지인가?"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결론 질문] 내가 지금 어떤 배고픔이 있는가?
밥이 없어서 배고픈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배고픔,
사랑받고 싶은 배고픔, 의미 있게 살고 싶은 배고픔.
그 배고픔을 정직하게 예수님 앞에 가져오십시오.
예수님은 배고픈 자를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군대를 만들지도 않으셨습니다.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도덕주의 오해 방지] 오늘 본문은 '우리의 나눔이 기적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고, 우리를 통로로 쓰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리더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친히 양 떼를 먹이시는 참 목자로 오셨습니다(에스겔 34장 성취).
첫째, 가져오라.
내 안의 배고픔을 숨기지 마세요. "제가 한 일"만 보고하지 말고,
제가 지친 것, 두려운 것, 부족한 것까지 예수님께 가지고 가세요.
예수님은 지친 제자들에게 "쉬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먼저 돌보십니다.
둘째, 펼쳐놓으라.
예수님이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물으실 때, 없는 것을 세는 것을 멈추고,
내 손에 있는 것을 예수님 앞에 가져가세요.
작고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새것을 달라 하지 않으십니다.
셋째, 내어드려라.
내 손에 있는 작은 오병이어가 무엇입니까?
[예화: 나의 오병이어] 용돈 조금일 수도 있고, 시간 10분일 수도 있고,
혼자 있는 친구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습니다.
[핵심 문장] 오병이어의 핵심은 빵의 크기와 갯수가 아닙니다. 주님의 손입니다.
내 손에 있을 때는 한 끼지만,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면 누군가의 하루를 살리는 은혜가 됩니다.
[42절 믿음 선언 — 최종 선포]
성경은 말합니다. "다 배불리 먹고."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께, 나의 오병이어를 드리는 중고등부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주님 앞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의 작은 믿음을 큰 기적으로 이루실 주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기도
헌금기도
결단찬양
결단찬양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