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같은 이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요한계시록 7교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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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 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 비밀을 계시하여 주시고,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은혜와 평강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거룩한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늘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 보이셔서, 지금 그의 모습이 어떠한가, 지금 그가 어떤 지위에 계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계시록 1:1에 나온 것처럼, 바로 예수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기소개서이지요.
주의 날, 곧 주님이 부활하셔서 그 날을 기념하던 주일에 요한은 그 부활의 주님을 묵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성령에 감동이 되어 환상을 보게 되는데요. 먼저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본 것을 두루마리에 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요한 계시록이지요.

이 말씀을 하는 인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난 주에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예수님의 이종사촌이면서 사랑하는 제자였으므로, 생전에 예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모습과는 좀 다른 모습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요한이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변화산에서 변형되셨을 때에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얼핏보기에 그는 분명 예수님이시나, 지금 그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뛰어넘는, 초월한 신적인 모습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그를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어디서 봤더라...맞는 것 같은데.
그가 인자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을 염두에 두고 표현한 것이지요.
다니엘 7:13-14절에서 인자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당신을 일컬어 인자라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8절에서 그 분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므로, 인자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확증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이, 또 환상을 보여주시는 이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지금 현재 어떤 모습이시며 어떤 지위를 가지셨는지를 또한 환상 중에 보여주십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셨다는 것은 당시의 복식으로 볼 때에 왕이나 제사장과 같은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통치자이시며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 이십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다는 것은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신적인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광이 빛나는 얼굴과 흰 머리는 사실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합하여 영원함을 상징하고 초월을 상징하여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의 눈은 불꽃 같다는 것은 그의 눈에 숨겨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가 모든 것을 아신다는 전지함을 뜻하며, 동시에 그분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이지요. 그 분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불꽃 같은 눈 앞에 설 날이 올 것이지요.
주석 같은 발은 그 분의 권능과 힘을 상징합니다. 어떤 것도 그분 발 아래에서 부서지게 되지 그분의 발을 상하게 만들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마지막으로 많은 물소리는 다르게 표현하면 폭포수 소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폭포수 소리에 뭍히게 됩니다. 그분의 말씀이 모든 것 위에 뛰어나다는 의미이지요.
이와 같이 그분의 모습은 그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고, 이제 그는 영광스러운 심판자, 세상의 주관자, 만유의 왕이요 주가 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유대인들의 손에 조롱받고 뺨 맞고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연약한 분이 아니라, 그분은 세상 모든 권세보다 뛰어난 왕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그 예수님의 왕되심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믿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분이 전해주신 말씀과 그분의 삶이 결코 우리에게 가볍게 여겨질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바로 그 예수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현재적으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 그는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계십니다.
그 말은 그 분이 교회를 떠나계시지 아니하시고, 교회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들이 핍박을 당하며 고통 중에 신음하는 때에도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좋을 때에도 나쁠 때에도 우리 권능의 왕 예수님은 교회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이 침묵하는 때가 있었지만, 그분이 직접 개입하시지 않으시는 때가 있었지만, 그분은 언제나 교회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 모든 핍박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교회가 세워지고 믿는 무리들이 소망중에 존재해 온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헬무트 틸리케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과 예수님은 무심해서가 아니라, 더 깊은 뜻이 있으셔서 때로 침묵하신다. 즉 침묵으로 끝날 운명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분은 성도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의 발 앞에서 엎드러져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은 죄와 허물이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분의 불꽃 같은 눈 앞에서 어찌 누가 감히 뻣뻣하게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분에게 감히 도움을 달라고 복을 달라고 간구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자격이 있어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그 분 앞에서 말을 잃고 두려움에 엎드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그분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말씀은 모든 것을 섭리로 다스리신다는 뜻이지요. 알파와 오메가와 같은 표현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표현도 내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권세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문을 열어서 누군가를 들여보내려고 해도 열쇠가 필요하고, 거기에 있는 누군가를 꺼내오려고 해도 열쇠가 필요합니다. 그분이 죽이고 살리는 일의 권세를 가진 분이시며, 그분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권능이 주라는 것이지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내가 택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너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으며 사망이 너를 해치 못하리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예수님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세상의 권력과 사망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지금껏 세세토록 살아 있으니, 내가 택한 너희, 나를 믿고 순종하는 너희도 사망권세를 이기고 세세 토록 살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헬무트 틸리히의 같은 책 “하나님의 침묵”
우리는 장차 무슨 일이 닥칠지는 몰라도 누가 다시 오실지는 안다. 최후 승리가 우리 것이니, 그 너머도 두려워할 것 없다.
예수님이 교회와 성도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세상 일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히브리서 13:5–6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이 말씀은 요한이 상상 속에서 지어낸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진실하고 얼마나 귀중하며 얼마나 권위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는 분이 아니시며, 그가 말씀하신 것을 어기시거나 취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소위, 그냥 한 번 말해봤어. 그대로 되면 좋고, 아니면 아니고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말씀이 성취되어 가고 있고, 결국에는 그 모든 말씀이 완전히 드러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가벼울 수 없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들어왔는 내용이라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무시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말씀의 무게를 아셔야 합니다.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이다. 또 내게 주신 언약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제 내가 그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라는 고백으로 말씀들을 대해야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굳게 믿고 그분을 더욱 알아가고 그분과 더욱 친밀하며 그분의 보호와 도우심을 진실로 체험하고 누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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