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벽을 세우는 힘, 연대 책임과 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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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본문: 느헤미야 1장 1-11절
[서론: 무너진 공동체, 회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서론: 무너진 공동체, 회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가 뉴스를 보거나 주변의 소식을 들을 때,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거나, 가정이 깨어지고,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져 내린다는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럴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보통 우리는 "지도자들이 문제다", "요즘 젊은 세대가 문제다", 혹은 "그 사람들 참 큰일이다"라며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처럼 비판하고 혀를 차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조국의 멸망과 참담한 소식을 접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기슬르월(겨울)에, 수산 궁에 있던 느헤미야에게 그의 동생 하나니가 유다에서 찾아옵니다. 느헤미야가 고국의 형편을 묻자, 동생은 참담한 소식을 전합니다. 포로 생활에서 살아남아 고국에 있는 자들이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벽은 다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때 열방의 조공을 받던 영광스러운 도성이 들짐승의 소굴처럼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 절망적인 소식 앞에서, 무너진 공동체가 다시 일어서기 위한 '회복의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공동체의 참된 회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대지 1: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애통함]
[대지 1: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애통함]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의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4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주저앉아 울며 수일 동안 슬퍼하고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굳이 이렇게까지 슬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최고위직인 '술 관원장'이었습니다. 포로 출신으로서 그 자리까지 올랐다면, 이방 땅에서 이미 크게 성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조국의 아픔을 잊고 자신만의 안락한 삶에 빠져 지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마음과 생각 속에는 오로지 무너진 나라와 동족뿐이었습니다. 그는 수산 궁이라는 화려한 왕궁에 있었지만, 그의 영적인 시선은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향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눈앞의 안락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거리가 멀어도, 내 일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다면 그것을 끌어안고 함께 우는 사람입니다.
[대지 2: 회복의 절대 조건, '연대 책임' (나와 내 아버지의 집)]
[대지 2: 회복의 절대 조건, '연대 책임' (나와 내 아버지의 집)]
느헤미야는 울음을 멈추고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경외로우신)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기도 속에서 우리는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가장 강력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연대 책임(Solidarity)'**입니다.
6절 말씀을 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여러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 장본인이 아닙니다. 그는 우상 숭배의 죄를 짓고 나라를 망하게 한 세대가 아니라, 아마도 바벨론 포로지에서 태어나 경건하게 자라난 세대일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따지면 그는 억울합니다.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내가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이 고생을 했다"고 원망할 법도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이 범죄했습니다"라고 남 탓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 된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가지고,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타락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와 결코 분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하나님, 저 타락한 사람들을 고쳐 주옵소서. 우리 교회에 문제 있는 저 사람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온통 나만 옳고 남이 틀렸다는 책임 전가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조상들의 죄, 다른 사람의 죄를 자신의 가슴에 품고, 자신이 직접 그 죄를 지은 것처럼 "우리가 크게 악을 행하여 주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신 회개합니다.
회복의 조건은 바로 이 연대 책임입니다. 내 책임을 통감하고,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그들을 대신하여 내가 엎드려 그들의 몫까지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 그것이 무너진 성벽을 잇는 첫 번째 벽돌입니다.
[대지 3: 예수 그리스도, 궁극적인 연대 책임의 중보자]
[대지 3: 예수 그리스도, 궁극적인 연대 책임의 중보자]
이 느헤미야의 기도는 단순히 구약의 한 위대한 지도자의 영웅담이 아닙니다. 이 모습은 장차 오실 완벽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죄가 단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늘 보좌의 영광 가운데 계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수산 궁의 안락함을 버린 느헤미야처럼,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와 고통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주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저들이 죄를 지었으니 심판해 주십시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더럽고 추악한 죄악을 마치 당신 자신이 지으신 죄인 것처럼 그 몸에 다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와 저주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철저한 연대 책임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내가 죄인입니다. 내 책임입니다"라며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주셨기에, 무너졌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성벽이 다시 세워지고,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결론 및 적용: 내가 먼저 그 틈에 서는 자가 되십시오]
[결론 및 적용: 내가 먼저 그 틈에 서는 자가 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소식을 듣고 엎드렸던 느헤미야의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큰 은총을 입게 하사 마침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위대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의 무너진 성벽, 우리 교회의 허물어진 틈새, 우리 사회의 불타버린 성문을 바라보며 누가 기도해야 합니까?
"배우자가 잘못해서 그렇다", "목회자가 문제다", "정치인들이 문제다"라며 손가락질하는 것을 이제 멈추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우리 가정이 이렇게 아픈 것은 나의 기도 부족입니다."
"주님, 우리 교회가 힘을 잃은 것은 바로 나와 내 집이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남의 허물을 내 책임으로 통감하며, 그들이 하지 못하는 회개와 기도를 내가 대신 감당할 때,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의 눈물을 통해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수산 궁의 편안함을 넘어 예루살렘의 아픔을 가슴에 품었던 느헤미야처럼, 그리고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의 무너진 곳을 기도로 세워가는 거룩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주님. 무너져 가는 세상과 교회를 보며 남의 탓만 하던 우리의 교만과 영적 게으름을 회개합니다. 느헤미야처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다'고 가슴을 치며 연대 책임의 십자가를 지게 하옵소서. 죄 없으신 몸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도 무너진 틈에 서서 중보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눈물과 기도를 통해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소생하는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