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강해13

26년새벽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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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288, 292

기도

1. 나라와민족을 위하여
2. 태신자영혼구원을 위하여
3. 환우들을 위하여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고요한 새벽 어스름을 깨우고 가장 먼저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오늘 하루의 첫 숨을 주님과 함께 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모아 간절히 주님께 나아갑니다.
먼저 이 땅과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운 갈등과 아픈 상처들을 주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덮어 주시옵소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들에게 바른길을 분별할 지혜를 더하사, 정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백성들을 살피게 하옵소서. 이 땅에 참된 평화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기도하는 태신자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굳게 닫힌 그들의 마음 빗장이 풀리고, 메마른 심령에 주님의 은혜가 촉촉이 스며들기를 원합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발걸음을 돌이켜 주시고, 마침내 주님 품에 안겨 참된 안식을 누리는 가슴 벅찬 기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육신의 질병으로 깊고 어두운 밤을 지새우는 환우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고통 속에서 홀로 눈물 흘리지 않도록 주님의 친밀한 손길로 아픈 부위를 어루만져 주시고, 지쳐 쓰러진 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회복의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곁에서 밤낮으로 간호하며 애타는 마음을 졸이는 가족들의 눈물도 닦아 주시고, 넉넉한 위로와 새 힘을 부어 주시옵소서.
이 새벽, 엎드려 부르짖는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의 모든 걸음도 온전히 주님 손에 맡겨드리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Jonah 4:2–5 NKRV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선포

2절을 보십시면
요나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러분, 요나의 이 고백은 자기가 방금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Exodus 34:6 NKRV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여러분. 요나는 방금 우리가 읽은 이 출애굽기의 말씀 이 말씀을 요나는 머리로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악한 인간들은 이제 악하다 못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도 충분히 악하게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수많은 미혹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자신을 신으로 만든느 사람들이 있죠. 현실입니다. 실제로 세상에 벌어지고 있어요.
그렇다는 건요, 우리들도 이러한 일들을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우리가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위해서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쓰는 것은, 오늘 요나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안식일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성도 여러분,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 성령님의 은혜로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3절을 보면 요나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나님께 대듭니다. 화를 냅니다.
“배 째십시오! 나는 이제 무서울 거 하나 없습니다!” 이러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불과 얼마 전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했던 요나가, 이제는 니느웨 백성의 구원을 보고 오히려 하나님을 저주하듯 원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생떼를 쓰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의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대적하고,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4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이 말도안돼는 생때에 하나님께서는 강압적으로 찍어 누르지 않으시고, 부드럽고도 예리하게 질문하십니다.
이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방금 전 요나가 인용했던 출애굽기의 그 속성, 즉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자비’를 12만 명의 이방인에게만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 면전에 대고 죽여달라고 소리치며 대드는 ‘고집불통 요나’를 향해서도 끝없이 참고 기다리시며 똑같은 은혜를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며 혈기를 부리는 그 순간조차도,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인내 덕분에 요나가 아니 우리가 지금 숨을 쉬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가만히 보면요,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깊이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여기서 니느웨 백성이 아니라 바로 ‘요나’ 자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어떤 선지자가 하나님에게 이렇게 대들면서 살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도망가다가 잡혀서 돌아오는 선지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졌듯이, 그 은혜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질 수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 비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와서 하루 종일 수고한 품꾼이, 해 질 무렵 늦게 와서 딱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품꾼과 똑같이 품삯을 받자 주인을 원망하며 화를 냅니다.
그때 주인이 무엇이라 대답합니까?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일찍 온 품꾼은 자신이 주인의 은혜로 포도원에 부름받아 일할 수 있었던 그 ‘은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남이 받은 은혜를 보며 ‘불공평하다’고 화를 냈습니다.
오늘 요나가 바로 그 일찍 온 품꾼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먼저 믿었다고 자부하면서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남이 받는 은혜를 질투하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주님께서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나를 끝까지 참아주시고 살려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
그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사랑’을 기억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늦게 온 자,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도 온전히 기뻐할 수있는 성도!
오늘 하루 하나님의 그 넓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대드는 요나의 혈기 속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 자신의 민낯을 발견합니다.
머리로는 주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때면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맛대로 이용하며 주님을 대적하려 했던 우리의 악함과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포도원에 일찍 온 품꾼과 같았습니다.
죽어 마땅한 나를 부르셔서 구원해 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남이 받는 은혜와 축복을 배 아파하며 ‘불공평하다’고 화를 내었던 우리의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낱낱이 회개합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오늘 아침 우리에게 물으시는 그 음성 앞에 납작 엎드립니다.
가장 큰 은혜를 입고 사는 자는 저 니느웨 백성들이 아니라,
이토록 떼를 쓰고 도망치고 대들어도 끝까지 참아주시는 사랑을 받는 '바로 나 자신'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요나의 혈기와 고집을 꺾어 주시옵소서.
나의 좁은 틀을 깨트리고,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지는 주님의 그 넓고 크신 은혜를 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늘 깨어있게 하사 우리가 말씀을 빙자하여 하나님을 찌르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앞에 귀한 예물로 나아온 성도들이 있습니다. 주님 이 마음과 예물을 흠향하여 주시고 주님의 복의 복을 더하사 항상 모자람 없이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불공평한 은혜로 살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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