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9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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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38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새벽 주님 전에 나와 기도와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새벽 주님앞에 나와 우리의 마음과 삶을 올려드립니다. 연약한 저희를 붙들어 주시고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희는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주님이 일하셔서 저희의 삶 가운데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오늘 하루도 여러 어려움과 답답한 일들을 만날 때가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생명으로 붙들어 주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올려드립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이 예물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고,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드리는 손길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하심이 함께하게 하시고, 각자의 삶과 가정위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2 Corinthians 4:7–15 NKRV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깨지기 쉬어 그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질그릇이라고 선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질그릇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참된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겨쌈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망하지 않고 넉넉히 일어설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에서 15절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진짜 이유,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삶에 그 고난을 허락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당시 고린도 도시는 상업적으로 매우 발달하고 부유한 곳이라서 고린도 사람들은 돈, 권력, 건강, 유창한 말솜씨처럼 눈에 보이고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는 '힘'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 역시 예수님을 믿으면 이 땅에서 성공하고, 병도 낫고,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준에서 볼 때,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쫓겨 다니는 바울의 모습은 그들이 생각하는 사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진짜 하나님의 사도라면 왜 그렇게 고난만 당하느냐며 그의 사역을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에 대해, 바울은 오늘 본문 10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2 Corinthians 4:10 NKRV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신이 고난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변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겪는 모든 고난과 박해를 가리켜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여기서 ‘죽음’이라는 말은 단순히 호흡이 멈추는 한 번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의 의미는 죽음에 넘겨지는 상태, 계속해서 죽음에 노출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삶 속에서 늘 죽음의 위험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는 고난의 길을 자신의 몸으로 계속 경험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짊어진다’는 말은 잠깐 들었다가 내려놓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든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에게 고난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매일 함께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고난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이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10). 다시 말해, 바울이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지니고 살아간 이유는 그 죽음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살아갈 때, 그 삶 속에서 부활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기독교의 능력은 세상 사람들처럼 겉으로 힘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생명을 살리셨듯이, 성도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희생하는 ‘죽음’의 길을 걸어갈 때, 그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2 Corinthians 4:12 NKRV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었지만, 그 결과로 고린도 성도들 안에는 생명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이라는 사망이 작동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모욕을 참아내며,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희생을 감당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고린도 성도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어지고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우리에게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에게서 작용합니다.
내가 죽어질 때, 다른 사람이 살아나는 것. 이것이 복음이 전해지는 진짜 방식입니다.
성경 속에서 이 말씀(고린도후서 4:12)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순교입니다.
초대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그의 모습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완전히 패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셨던 그 용서를, 스데반이 그대로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이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찬성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의 몸은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몸에 짊어지고 있던 예수님의 죽음은, 그 자리에 있던 사울의 마음에 깊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울은 훗날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변화됩니다. 바로 본문인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의 또다른 이름이 사울입니다.
스데반 안에서는 죽음이 역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통해 바울 안에서는 생명이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은, 자신이 스데반에게서 보았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고난의 길을 걸으며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생명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좁은 십자가의 길보다는 넓고 편한 길을 선택하고 싶어 합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을 참기 어려워합니다. 내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기려고 합니다. 내 말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내가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지금 ‘죽는 것’을 거부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내가 살아서 내 주장만 내세우면, 내 주변 사람들은 힘들어집니다. 내 혈기와 고집, 욕심이 살아 있으면 가족과 이웃의 마음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예수님을 생각하며 한 걸음 물러설 때가 있습니다. 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섬길 때가 있습니다. 내 이기심을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내 가정이 살아나고, 관계가 살아나고,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15절에서 이 모든 일의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5)
우리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섬길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작은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결국 그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쉽게 깨지는 그릇 같지만,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연약한 모습 그대로 두시고, 때로는 힘들고 답답한 상황을 겪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잘난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거나 내 자존심을 완전히 꺾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 속으로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저도 제 고집을 꺾고 이 무거운 짐을 지겠습니다."
직장에서 남들보다 한 번 더 양보하고 힘든 일을 묵묵히 맡는 것, 집에서 가족에게 화내는 대신 따뜻한 말로 덮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내 주변 사람들을 살리시는 가장 귀한 일입니다.
오늘 하루, 내 욕심과 자존심은 십자가에서 죽어지고, 나를 통해 내 가족과 이웃이 살아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묵묵히 실천하는 담대한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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