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강해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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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찬양
기도
기도
1. 나라와민족을 위하여
2. 태신자영혼구원을 위하여
3. 환우들을 위하여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이른 아침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땅을 지켜 주시옵소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에게 지혜와 공의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민족이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분열과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합을 주시고, 어둠이 있는 곳에 주님의 빛이 임하게 하옵소서. 이 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으로 서게 하시고, 열방 가운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태신자 영혼 구원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 주시고, 복음의 씨앗이 심겨지는 곳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전도하는 발걸음마다 담대함을 주시고, 한 영혼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도 그 영혼들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중에 있는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모든 환우들에게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얹어 주시옵소서. 의술을 통해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의료진에게도 지혜와 사명감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몸의 치유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도 회복되게 하시고, 고통의 자리가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곁에서 함께하는 가족들에게도 위로와 평강을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말씀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5절을 보십시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요나가 지금 초막을 짓고 앉아 니느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뜻을 돌이키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저 원수의 도성에 불이 쏟아지지 않을까 헛된 기대를 품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12만 명의 생명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멸망을 기대하며 관람석에 앉아 있듯 그곳에 있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자리가 아니라 구경꾼의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6절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여기서 성경은 하나님을 '여호와 엘로힘'이라 부릅니다.
이 호칭은 의미는 이러합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엘로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이자 창조주이신 그분이, 이제 자연 만물을 직접 동원하여 이 고집 센 선지자를 훈련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그 훈련의 첫 도구가 박넝쿨입니다.
하나님은 박넝쿨로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요나가 크게 기뻐했습니다.
잠깐 생각해 봅시다.
4장 1절에서 12만 명이 죽음에서 구원받았을 때, 요나는 크게 분노하며 "죽여 달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식물 하나가 그늘을 만들어 주자, 요나가 크게 기뻐합니다.
이 날카로운 대조가 요나의 민낯을 이미 예고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예고하고 있을까요?
이제 7절과 8절입니다.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박넝쿨을 주신 하나님이, 이번엔 작은 벌레를 예비하십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 하나가 밤새 박넝쿨을 갉아먹자 그토록 요나를 기쁘게 했던 그늘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봅니다.
식물도, 벌레도, 거대한 동풍도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는 모습 말입니다.
온 우주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사실 이곳에서 어쩌면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선지자 요나
이 한 사람만이 불순종하며 대들고 있다는 이 아이러니가 나타납니다.
박넝쿨이 사라지고 뜨거운 동풍이 불어오자 요나는 또다시 "죽는 것이 낫다"며 무너집니다.
바로 이 순간, 요나의 진짜 민낯이 드러납니다.
스스로는 정의 때문에,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화를 낸다고 생각했겠지만
— 박넝쿨 하나가 사라지자 남은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내가 더워졌다. 내 편안함이 사라졌다."
그의 분노가
고상한 신학이나 민족애가 아니라,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이었슴이 밝혀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신앙인을 영적으로 가장 위협하는 것은 핍박이 아니라 편안함 입니다.
편안함은 우리를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내 안락함이 채워지면 크게 기뻐하면서도,
이웃의 영혼이 사라지고 교회가 흔들려도 요나처럼 그늘 아래 앉아 구경하는 자가 되게 만드는 것이 편안함의 무서움 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세상의 박넝쿨은, 하나님이 보내신 작은 벌레 하나 앞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짐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건강이든, 재정이든, 안정된 일상이든 — 그것들은 영원한 그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그늘은 무엇이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닙니까?
죄악된 우리를 긍휼의 그늘로 덮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이 우리의 영원한 그늘 입니다.
그곳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끝임없이 우리가 못박은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할 겁니다.
끊임없이 내가 바로 저 십자가에 못박혔어야 했음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 요나가 가지게된 박넝쿨 보다 그 편안함보다 우리가 좁은 길인 십자가를 즐거워 함은
박넝쿨은 벌레에 먹혀 사라지고 뜨거운 동품에 스러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스러지지 않기 떄문입니다.
오늘 이 새벽 스스로 물어봅시다. 내 마음속 박넝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훈련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얄팍한 초막을 흔드시며,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그분의 넓은 마음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내 머리 위의 좁은 그늘에서 눈을 들어, 12만 명을 향해 애끓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새벽, 말씀 앞에 나아온 저희를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요나처럼 저희도 모르는 사이 관람석에 앉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영혼 구원보다 나의 편안함을 더 소중히 여기고, 내 머리 위의 좁은 그늘에만 집착하며 살아왔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 저희가 붙들고 있는 박넝쿨이 무엇인지 이 아침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이 사라질까 두려워 움켜쥐던 손을 펴고, 오직 주님만이 영원한 그늘 되심을 고백하게 하여 주옵소서.
벌레 하나로도 박넝쿨을 거두시는 하나님, 저희의 얄팍한 초막을 흔드실 때 불평하지 않게 하시고, 그 흔들림이 더 넓은 주님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훈련임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애끓는 주님의 마음을 저희에게도 부어 주옵소서. 구경꾼의 자리에서 일어나 증인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고, 태신자들과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 무릎 꿇는 저희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 말씀을 들은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오늘 하루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도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