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강해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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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찬양
기도
기도
1. 나라와민족을 위하여
2. 태신자영혼구원을 위하여
3. 환우들을 위하여
박재영 집사님 오늘 수술 하십니다. 우리 함께 집사님의 치유를 위해서 또 수술하시는 분들에게도 지혜와 능력달라고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와 민족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혼란하고 어지러운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주권자이심을 고백합니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모든 지도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 백성을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분열과 다툼이 있는 곳에 화평을 주시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흐르게 하여 주옵소서.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태신자 영혼 구원을 위하여】
주님, 저희 마음에 품은 태신자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그 영혼들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희가 기도로 품고 삶으로 섬길 때, 주님께서 그 마음의 문을 열어 주옵소서. 복음의 씨앗이 그 마음 깊이 뿌리 내리게 하시고, 이 새벽 기도가 한 영혼을 살리는 기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주님, 저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환우들을 위하여 — 특별히 박재영 집사님】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 오늘도 병상에 누워 계신 모든 환우들을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아프고 두렵고 지쳐있는 그 자리마다 주님께서 친히 함께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수술을 받으시는 박재영 집사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수술실에 들어가시는 그 순간부터 나오시는 순간까지 주님의 손이 집사님을 붙들어 주옵소서. 수술하시는 의료진에게 지혜와 집중력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그 손을 주님께서 직접 인도하여 주옵소서. 수술이 안전하게 마무리되고 속히 회복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어딘가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도 동일한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기를 간구합니다.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치유자 되어주시옵소서
이 모든 간구 다 이루어주실줄을 믿으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말씀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선포
선포
요나 4:9에서 하나님이 요나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냄이 옳으냐?" 이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요나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서슴없이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웁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벌써 요나가 "죽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4:3, 4:9). 그만큼 요나의 분노는 깊고 완강합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 질문이 요나에게만 향한 것이 아님을 느낍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억울하고, 차라리 사라지고 싶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조용히 물으십니다. "
지금도 네 분노가 옳으냐?" 지금 이 새벽 자리에서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리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서면 어떨까요? 나에게 고난이 닥쳐왔을때 나의 즐거움이 사라졌을때도 하나님앞에서 주님을 긍정하고 찬양할 수 있을까요?
진짜 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긍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지 사실 저도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8장 에서 증거하기를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증거합니다.
요나의 분노를 보면 이러면 안되 정죄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겸손을 되찾고 성령님의 도움만을 구하는 우리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요나의 이 말도 안돼는 어쩌면 때쓰는 모습을 보면서도
하나님은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한 가지 사실을 짚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여기서 '아끼다'는 히브리어로 후스(חוּס)입니다.
원문의 뜻을 들여다 보면 눈길이 머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차마 눈을 돌리지 못하는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만들지도, 키우지도 않은 것에 그토록 눈길을 빼앗겼다고. 그것을 아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흥미롭게도 요나는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눈을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눈길의 방향이 전혀 달랐을 뿐 입니다.
요나의 눈은 박 넝쿨에 머물렀고 니느웨가 망하길 기다리며 지켜봤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눈은 니느웨에 머물렀고 살리길 기다리며 지켜보셨습니다.
같은 '눈을 돌리지 않음'이지만, 하나는 나를 위한 시선이고 하나는 타자를 향한 긍휼의 시선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나의 눈길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나의 편안함에 머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아끼시는 사람에게 머물고 있습니까.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 스스로 옳고 그름조차 알지 못하는 자들이 여기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눈길이 머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자격 있는 자를 향하지 않습니다.
그 긍휼은 니느웨를 향했고, 이방 선원들을 향했고, 물고기 뱃속의 요나를 향했고, 오늘 이 새벽 이 자리에 나온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마무리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끝이납니다.
요나의 대답을 기록하지 않은 채로 끝이 납니다.
이상한가요?
사실 요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싶었던거 단 한가지이기 떄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나서를 처음부터 한번 돌아봅니다.
1장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풍랑을 보내시고 끝내 요나를 물고기 뱃속으로 데려가십니다.
2장에서 요나는 뱃속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긍휼을 보여주십니다.
3장에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고 성읍 전체가 회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보여주십니다.
4장에서 요나는 분노합니다. 원수가 살아난 것이 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보여 주십니다.
요나서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넓으냐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원수 니느웨도, 이방 선원도, 심지어 가축도 아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눈길은 요나가 도망칠 때도, 분노할 때도, 끝내 대답하지 못할 때도 한 번도 거두어지지 않았슴이 계속해서 드러나는 것이 요나입니다.
그리고 요나는 마지막 질문을 우리 손에 쥐어주고 닫힙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이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 날아옵니다.
하나님이 아끼시는 사람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넓은 긍휼을 나는 정말로 믿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긍휼이 지금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오늘 이 새벽, 그 눈길이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우리가 도망칠 때도, 분노할 때도, 아멘하지 못할 때도 하나님은 차마 눈을 거두지 못하십니다. 그것이 후스(חוּס)입니다. 그 눈길 안에 오늘 하루를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그 시선을 가지는 주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기도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 새벽, 저희가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의 눈길이 저희를 향해 있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는 요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은혜를 베풀지 못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독점하려 했던 저희의 편협함을 고백합니다. 힘들고 억울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분노했던 저희의 연약함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저희는 압니다. 그 자리에서도 주님은 저희에게서 눈을 거두지 않으셨음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시는 그 눈길이 오늘도 저희를 향해 있음을.
이제 저희는 아멘에 이르지 못하는 이 연약함까지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억지로 아멘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성령님, 저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 주님께 귀한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온마음과 정성으로 드리는 예물을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드리는 물질이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귀하게 쓰이게 하시고, 드리는 자마다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또한 지금 이 시간 전도세미나에 참석하신 담임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김세곤 목사님께서 배우고 받으시는 모든 것 위에 성령님의 지혜와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이 귀한 배움이 우리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살리는 데 풍성히 쓰이게 하시고, 목사님의 발걸음마다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 나의 힘이 아닌 주님을 정말로 믿으며 걷게 하옵소서. 주님의 눈길 안에 저희의 하루를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