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11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90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오늘도 새벽을 깨워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새 날이 밝아오는 이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소망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셔서
보이는 것에만 마음을 두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에도
상황과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셔서
우리의 삶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주님께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드린 손길 가운데 주님께서 늘 함께하셔서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주님의 위로와 채우심을 늘 경험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드려진 모든 예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사용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사도 바울은 극심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 겉사람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었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환난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영원한 영광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잠깐의 고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시선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소망이 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입고 있는 육신,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장막 집”이라고 표현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장막은 당시 유목민들이 양을 치며 이동할 때 잠시 치고 머무는 천막, 곧 텐트를 의미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천막은 집이 아닙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집이 아닙니다. 그저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천막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새고, 시간이 지나면 천이 해지고 찢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의 삶이 바로 그 천막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천막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천막은 그들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막에 살면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우리의 삶을 장막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금 이 땅의 삶은 잠시 머무는 곳이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천막이 시간이 지나면 낡어지고 찢어지듯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병들고, 결국에는 무너지는 날이 오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힘들게 쌓아온 것이 한순간에 흔들릴 때도 있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장막은 원래 흔들리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천막이 흔들린다고 놀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원래 천막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천막이 흔들리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1절 하반절에 ‘장막이 무너진다고 해서 우리 인생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장막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집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장막은 임시이지만, 집은 영원합니다.
장막은 땅에 있지만, 집은 하늘에 있습니다.
여기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솜씨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언젠가 무너지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장막 너머에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전혀 다르게 살아갑니다.
장막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장막이 흔들릴 때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절망합니다.
그러나 장막 너머에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장막이 흔들려도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매를 맞아도, 감옥에 갇혀도, 사랑하는 성도들이 등을 돌려도 바울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은 이 장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본문 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바울은 탄식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탄식은 “내 인생이 너무 힘들고 고달프다”는 탄식이 아닙니다.
이 탄식은 본문 4절의 말씀처럼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생명을 사모하는 탄식입니다.
다시말해 삶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탄식이 아니라, 하늘의 처소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탄식입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의 사람들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기에,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통해 육신을 벗어버리는 것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 4절에서 벗고자 함이 아니라 덧입고자한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덧입고자한다는 것은 낡은 겉옷 위에 새롭고 영광스러운 옷을 겹쳐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육체의 집에 있는 동안 짐을 진 것처럼 탄식하는 것은 이 몸을 벗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늘의 몸을 입어서 죽을 몸이 영원히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옷을 벗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새 옷을 위에 입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시말해 죽음이 소망이 아니라, 생명이 죽음을 완전히 삼켜버리는 것이 소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천국,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부활의 몸을 우리가 어떻게 확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바울은 5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영원한 집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어기지 않겠단느 ‘보증’으로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증"이라는 말은, 계약금, 보증금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집을 집을 살 때 계약금을 치렀다는 것은 이 거래를 반드시 끝까지 완료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계약금은 전체를 지불하겠다는 보증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이 바로 이 계약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천국과 부활의 몸을 반드시 완상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천국 소망이 그냥 바람이 아닌 이유입니다. "천국이 있었으면 좋겠다"가 아닙니다. "아마 있을 것이다"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약금을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계약금 이십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이 정말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까?
로마서 8장 15절에서 16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우리가 하나님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이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감정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 갈라디아서 5장에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것들이 내 삶에 조금씩이라도 자라고 있다면, 그것이 성령이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예전에는 참지 못했는데 조금씩 참게 되는 것, 미워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 감사할 수 없던 상황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 이런 변화들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싶은 마음,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 자리에 나온 마음,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성령의 일하심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다면, 이 새벽에 이 자리에 나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3.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6-7절)
우리 안에 이토록 확실한 보증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본문 6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바울은 이 소망 때문에 "담대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담대하다"의 원어의 의미는 단순히 용감하다는 뜻이 아니라, 확신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격이 대담해서가 아닙니다. 상황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보증하시는 성령님이 자기 안에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소망이 담대함을 만든 것입니다.
6절에서 바울은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합니다.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떨어져 있는 줄을 아노니." 지금 이 땅의 몸 안에 있는 동안은 주님과 완전히 함께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장차 하늘에서 주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누릴 완전한 교제는 아직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은 완전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합니다. 그 이유가 7절에 나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
눈에 보이는 현실이 나의 삶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많습니다.
건강 검진 결과지가 보이고, 통장 잔고가 보입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보이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또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눈앞에 있으면 우리의 마음은 쉽게 그것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그것이 마치 나의 전부인 것처럼,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보이는 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핍박과 고난과 성도들의 배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보이는 것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것을 보증하셨다는 것, 이것을 붙잡고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눈앞의 현실이 힘들 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됩니다.
그리고 장막이 흔들릴 때, "이 장막 너머에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보증하신 그 약속을 신뢰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하루도 우리에게 처해진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던지 간에 심지어 흔들리고 무너질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그 장막 넘어에 있는 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하루도 넉넉히 승리하셔서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때로는 눈앞에 보이는 답잡한 션실과 연약해져 가는 육신 때문에 두렵고 낙심될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집을 예비하셔 주시고, 성령님을 우리안에 거하게 하셔서 주님의 약속을 확증해 주셨음을 알게 하셨으니
오늘 하루도 천국소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지배당하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약속을 붙잡고 넉넉히 승리하며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