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강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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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찬양
370,384
기도
기도
1. 나라와민족을 위하여
2. 태신자영혼구원을 위하여
3. 환우들을 위하여
1.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1.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와 민족을 주님의 넓고 따뜻한 품으로 깊이 안아 주옵소서. 하루하루 고단한 일상을 버텨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이 땅의 이웃들을 기억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젖은 눈물을 주님의 손으로 다정하게 닦아 주옵소서. 갈등과 미움으로 얼룩져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 사회에, 서로의 아픔을 가만히 보듬는 참된 평화가 깃들게 하옵소서. 나라를 이끄는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맑고 투명한 지혜를 허락하시어, 헛된 욕심을 버리고 아프고 소외된 곳을 향해 먼저 다가가는 바른길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 역시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며, 이 땅의 짙은 어둠을 걷어내고 주님의 눈부신 사랑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2. 태신자 영혼 구원을 위하여
2. 태신자 영혼 구원을 위하여
잃어버린 한 영혼을 그 누구보다 애타게 찾으시는 주님, 우리가 각자의 가슴 깊숙이 품고 오랜 시간 눈물로 기도해 온 태신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팍팍한 세상살이에 치이고 지쳐 굳게 닫아버린 그들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촉촉한 단비처럼 흠뻑 내리기를 소망합니다. 메말라 갈라진 심령이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영혼에 새 생명의 숨결이 불어오게 하옵소서. 우리 새롭게하는교회 식구들이 먼저 다가가 아무런 조건 없이 따뜻한 손을 내밀고, 진실한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섬길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채워 주옵소서. 우리가 입술로 전하는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복음이 그들의 귓가에 닿을 때, 그들이 주님의 넓은 품을 마주하게 하옵소서. 마침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고,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 벅찬 기쁨을 우리 모두가 함께 부둥켜안고 누리게 하옵소서.
3. 환우들을 위하여
3. 환우들을 위하여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지금 이 순간에도 차디찬 병상에 누워 뼈를 깎는 듯한 육신의 고통과 외롭게 싸우고 있는 환우들을 다정하게 찾아가 주옵소서. 찢어질 듯한 아픔과 내일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며 뜬눈으로 길고 긴 밤을 지새우는 그들의 머리맡에 가만히 머물러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의 따뜻한 피 묻은 손으로 멍들고 아픈 곳을 구석구석 어루만져 주시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병든 곳이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온전한 치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수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십자가의 든든한 소망으로 단단하게 붙잡아 주시어, 결코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일어서게 하옵소서. 또한, 밤낮없이 곁에서 숨죽여 눈물 흘리며 간병하는 가족들의 지친 어깨와 야윈 두 손에도 하늘의 위로와 넉넉한 새 힘을 가득 채워 주시어, 이 힘든 고비를 무사히 건너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말씀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선포
선포
오늘부터 저희는 요나서에 이어서 새로운 소선지서, '나훔서' 강해를 함께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함께 보았습니다.
요나의 짧은 외침 하나에, 12만 명의 니느웨 백성들이 왕으로부터 평민까지 베옷을 입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회개를 보시고 심판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규모가 크고 극적인 부흥의 현장이 또 있었을까요.
그런데 여기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았던 니느웨는, 그 이후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지냈을까요?"
안타깝게도 정답은 '아니요'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펼쳐볼 나훔서는 바로 그 요나서의 후속편입니다.
요나 시대에 무릎 꿇었던 니느웨는, 그로부터 약 100년에서 15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과거의 잔인하고 악독한 본성으로 완전히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나훔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여기서 '경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맛사(מַשָּׂא)'입니다.
이 단어는 짐이 무겁게 짓누른다는 뜻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이 내려질 것을 선포할 때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자비의 시간을 거두시고, 나훔 선지자의 입을 통해 니느웨의 철저하고 완전한 멸망을 선고하시는 것입니다.
나훔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앗수르 제국, 그 수도가 바로 니느웨입니다.
앗수르는 고대 근동 역사상 가장 막강하고 가장 잔인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은 북이스라엘을 잔혹하게 짓밟고 아예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주전 722년의 일입니다.
북이스라엘만 당한 것이 아닙니다.
남유다 역시 앗수르의 그늘 아래서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므낫세 왕은 앗수르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호와의 성전 안에 앗수르의 우상들을 세웠고, 나중에는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까지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앗수르 군대는 포로들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기고, 코와 귀를 베어가는 끔찍한 만행을 자랑삼아 기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야말로 피에 굶주린 제국이었습니다.
이토록 잔인한 나라가 세계를 제패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고 있을 때, 유다의 백성들은 이런 탄식을 쏟아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살아계신다면 왜 저 악한 앗수르가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온 세상을 호령하며 떵떵거리는가? 하나님의 공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바로 그 캄캄한 절망의 한복판에, 하나님의 응답을 들고 나타난 선지자가 바로 나훔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이름에는 대개 그 책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훔'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요?
'나훔(נַחוּם)'의 뜻은 '위로'입니다.
그런데 나훔서를 실제로 읽어보면 좀 이상합니다.
선지자의 이름은 '위로'인데,
1장부터 3장 끝까지 앗수르를 향한 진노와 파괴와 살육의 묘사로 가득합니다.
그러면 왜 이 책의 이름이 '위로'일까요?
왜냐하면 악독한 압제자의 철저한 멸망 그 자체가, 오랜 세월 짓밟혀 온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가장 확실한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불의와 악인이 멀쩡히 살아서 나를 짓밟고 있는데, 말로만 "괜찮다, 위로받아라" 한다고 해서 그게 진짜 위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친히 칼을 빼어 드는 전사가 되셔서, 당신의 백성을 피눈물 나게 만든 저 잔인한 제국의 숨통을 끊어놓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원수를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보복 선언이, 고통받는 유다 백성에게는 비로소 두 다리를 뻗고 잠들 수 있는 완벽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나훔서는 우리가 방금 함께 지나온 요나서와 아주 선명한 대칭을 이룹니다. 마치 거울의 양면과 같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심판받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무한한 자비와 은혜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나훔서에 오면 상황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요나서가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여주었다면,
나훔서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교만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를 보여줍니다.
이 두 책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자비만 있는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고, 공의만 있는 하나님은 은혜롭지 않습니다.
나훔서는 요나서를 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의 또 다른 깊은 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장 악인을 벌하지 않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것은,
그들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돌아올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주신 것입니다.
니느웨는 요나 시대에 그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은혜를 값싼 것으로 여기고 다시 교만과 죄악의 길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나훔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유예 기간이 끝나는 날,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의 칼날 앞에 그 어떤 거대한 제국도,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훔서를 시작하는 오늘 이 아침, 잠깐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세상의 악인들이 더 잘살고 떵떵거리는 모습을 보며 영적으로 낙심하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데, 오히려 나를 억누르는 현실의 앞에서 "하나님은 정말 내 기도를 듣고 계신가" 하고 탄식하고 계신 분은 없으십니까?
오늘 나훔 선지자의 외침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악인의 교만과 불의를 결단코 영원히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때가 차면 하나님은 전사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가장 완벽한 '위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앞으로 함께 살펴갈 나훔서 강해를 통해, 악을 다스리시고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의 힘이 아니라,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우리의 산성으로 삼고 살아가는 참된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자기 백성에게 참된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훔서의 첫 문을 열며, 악독한 세상 권세 앞에서 친히 전사가 되셔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악이 득세하고 불의가 이기는 것 같은 캄캄한 현실 속에서, 때로는 주님의 침묵에 답답해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했던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공의의 하나님, 악인의 철저한 심판이 곧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위로가 됨을 깨닫습니다.주님께서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하여 결코 악을 방관하시는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우리 삶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거대한 앗수르 앞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짓밟고 회개치 않는 자들을 향해 마침내 공의의 칼을 빼어 드시는 주님의 그 거룩한 열심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과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우리의 든든한 산성으로 삼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위로자요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