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
Notes
Transcript
성경봉독
성경봉독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서론
서론
오늘의 설교 제목은 ‘경외(敬畏)’이다.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축복한다.
경외란 무엇인가?
이 단어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들어있다.
첫째는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라는 의미이다.
두번째는 ‘우러러보다, 높이다’라는 의미이다.
몇 주 전 365기도회를 인도하며
열왕기하 말씀을 나누었는데
특별히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이 참 마음 깊이 다가왔다.
이 말씀에 ‘경외’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온다.
그런데 본문을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다시 한번 살펴보자.
32절 -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였다.
33절 -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였다.
그런데 34절을 보면 어떠한가?
34절 -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였다.
32, 33, 34절에 나오는 ‘그들’은 모두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설명드리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그들’은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 땅에 들어와 살게 된 이방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32-33절에서는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였다’라고 말하면서
34절에서는 동일한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였지만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라는 말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즉 ‘모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였지만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했다는 것은 어떻게 했다는 것인가?
또한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했다는 말인가?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하면서도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러한 여러 질문들 속에서
과연 ‘경외’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을 참되게 경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참되게 경외하며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 되기를 축복한다.
본론
본론
먼저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7장의 배경을 살펴보자.
열왕기하 17장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을 이야기한다.
오랜 과정을 거쳐 결국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을 거쳐
이스라엘 12지파는 애굽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
이후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사사시대를 지나
왕국 시대로 접어 들게 된다.
사울 - 다윗 - 솔로몬의 ‘통일왕국’ 시대를 거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로 나뉘는 ‘분열왕국’ 시대를 살아가게 된다.
시대를 따라 정치 형태와 모습은 계속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다.
어떤 정체성인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정체성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은 시내 광야 호렙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로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심을 받았다.
전적인 은혜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킬 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첫번째 언약이 무엇인가?
십계명의 가장 첫번째 계명이 무엇인가?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
이 계명을 필두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구별되이 거룩하게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스스로 그 약속을 깨뜨렸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 하셨지만
가나안 땅의 우상들을 섬기며 악을 행하였다.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 경고하였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당하게 된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를 앗수르가 점령하고
그 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수르로 포로로 끌고 가 버렸다.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7장은
왜 이러한 안타까운 결과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7-8절 말씀이다.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섬겼던 것처럼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고 그것들을 섬겼다.
그뿐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여러 우상들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
그 죄악의 결과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비어있는 땅, 주인 없는 땅에
다른 민족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이방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사람들에 대해 24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여기에 나오는 여러 지명들은
지금의 이라크와 시리아에 있는 곳들이다.
이스라엘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사람들이
앗수르 제국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사마리아 땅에 와 살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특별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성읍에 사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어 죽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사자와 같은 맹수가 사람 사는 마을에 들어오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
우리의 일상 가운데 참 많은 일들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어떤 일을 경험하는가 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경험한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석을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해석을 잘 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길 축복한다.
사마리아 땅에 들어와 살게 된 이방인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26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26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이 말씀 속에 ‘그 땅의 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이렇게 생각하고 해석했다.
이 세상에는 각 지역마다 그 땅을 다스리는 신이 있다.
그리고 그 땅의 신을 섬기는 법도가 있다.
그 법도에 따라 그 땅의 신을 잘 섬겨야 그 땅에서 잘 살 수 있다.
사마리아 땅에도 사마리아 땅 신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땅 신을 법도에 따라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
그래서 사마리아 땅 신이 우리에게 노하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결론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가 사마리아 땅에 와서 살게 되었으니
사마리아 땅 신도 잘 섬겨야 한다.
이들이 말하는 ‘사마리아 땅 신’이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이다.
사실 이러한 이해와 해석은 이들만의 특별한 해석이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었던 생각이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세상에 수많은 신들이 있고
그 신들마다 각각 능력과 힘을 발휘하는 영역과 범위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해석이 올바른 해석인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그런 해석이다.
어찌되었든 이 사람들은
이러한 이해와 해석을 갖고
사마리아 땅 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에서 앗수르로 끌고갔던 사람들 가운데
제사장 한 명을 다시 사마리아 땅으로 돌려 보낸다.
그리고 그 제사장은 벧엘에 거주하면서
그들에게 여호와 섬기는 법을 가르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이다.
잘 된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까 이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각 땅마다 그 땅의 신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마리아 땅에 오기 전에
자신들이 살고 있던 땅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각자 자신들이 살던 그 땅의 신을 섬기며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민족의 정체성으로 여기며 살았다.
사마리아 땅에 와서 살게 되었어도
여전히 자신들이 고향에서 섬기던 그 신들을 계속해서 섬겼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사마리아 땅 신인 여호와도 함께 같이 섬긴 것이다.
이 사실을 29-3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이 말씀 속에 여러 민족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섬기던 여러 신들의 이름이 나온다.
숙곳느봇, 네르갈, 아시마, 닙하스, 다르닥, 아드람멜렉, 아남멜렉…
아마 처음 들어본 신들의 이름도 있을 것이다.
이제 사마리아 땅은 수많은 우상들의 집합소가 되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32절 말씀을 다시 같이 읽어보자.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사람들이 가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말씀 속에 오늘의 주제인 ‘경외’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였다.”
무슨 뜻인가?
그들이 여호와를 무서워하였다. 두려워하였다. 라는 뜻이다.
이들이 처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라 했는가?
마을에 사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어 죽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마리아 땅 신이라 생각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지금 왜 섬기려고 하는가?
죽지 않기 위해서이다. 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사마리아 땅에 살면서 사마리아 땅 신인 여호와 하나님께 잘못 보이면
괴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하지만 그 제사 방식은 자신들 마음대로였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편한대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레위인이며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이 된 것도 아니다.
자기들 중에서 임의로 사람을 뽑아 제사장을 삼았다.
제사를 드리는 이유와 목적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들은 그저 두려움 가운데
자기 마음대로, 자기들을 위해 여호와를 섬긴 것이다.
그리도 또한 자신들의 습관을 따라
이전에 섬기던 각자의 우상도 계속해서 섬겼다.
이러한 모습을 33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이 말씀에도 ‘경외’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기서도 32절과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공포심 가운데 여호와를 섬겼다는 의미이다.
이 말씀을 읽으면 계속 마음에 남는 글자가 있다.
‘도’라는 조사이다.
여러분도 그런가?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여호와‘도’ 경외하고 … 자신의 신들‘도’ 섬겼더라
이 말씀을 읽으며 떠오르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다시 말해 여호와도 섬기고 다른 신들도 섬기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이 둘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 섬기고 따랐던 우상들을 그대로 섬기고 있으면서
여호와 하나님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걸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참된 경외가 아닌 것이다.
그러하기에 34절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같이 읽어보자.
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가?
32절과 33절에서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였다’라고 한 것은
그들이 두려움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고,
자신들에게 닥칠 화를 피하기 위해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외는 진정한 경외가 아니란 뜻이다.
참된 경외가 아니란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기 전에 가졌던
‘이전 풍속’과 옛 습관을 그대로 움켜 진 채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올바로 알고 따르지 않고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이어지는 35-3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35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36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37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며
38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이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고 … 여호와만 경외하라
‘여호와도 경외하라’가 아니라 ‘여호와만 경외하라’이다.
참된 경외는 ‘여호와만 경외’하는 것이다.
왜 여호와 하나님만 경외해야 하는가?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기 때문이다.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21 …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
앗수르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땅에 이주하여 살게 된 사람들은
지금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은 ‘사마리아 땅 신’이라 생각했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은
사마리아 땅 안에서만 그 힘을 발휘하며 그 땅을 다스리는 분이고
그 땅 밖에서는 별볼일 없는 분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사마리아 땅’만을 다스리는 분이 아니다.
온 땅, 온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분이다.
온 땅,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다.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36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애굽의 왕 바로를 물리치고
그 땅에서 종으로, 노예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 가장 뛰어난 이름임을 선포하셨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화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분이다.
은혜를 베푸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다.
39절에서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약속하신다.
우리를 건져내시고 구원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모든 원수의 손에서,
심지어 사망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두려운 분, 무서운 분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론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사마리아 땅에 들어와 살게 된 이방 사람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였지만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된 경외란 무엇인가?
만물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고 섬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 있다.
하나님 외에 내가 꽉 붙잡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손을 펴 그것을 내려놓는 일이다.
여호수아는 마지막 유언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
다시금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야곱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행하였다.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내가 이걸 포기하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 같다 하는 그 무엇이 있는가?
반대로 이게 있어서 내 인생은 안전하다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이것이 내 인생을 지켜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우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우상’인 것이다.
한 손에 하나님을, 다른 한 손에 우상을 쥐고 있는 것은 참된 경외가 아니다.
하나님은 손에 붙잡고 있는 그 우상을 버리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네 인생을 책임져 주겠다 말씀하신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신 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채워 주시겠다 말씀하신다.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라 말씀하신다.
내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하신 분이다 말씀하신다.
그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참된 경외자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축복한다.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내 손을 펴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그 손에 더 크고 좋은 것을 쥐어 주실 줄 믿는다.
그 놀라운 은혜가 우리 삶에 있기를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