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로 걸으시다
26년 3월 11(64)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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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주님과 함께하는 순종의 바다—예수님은 세상과 구별하시고, 풍랑 속에 찾아오시며, 우리의 고백을 이끌어내신다.
주제: 주님과 함께하는 순종의 바다—예수님은 세상과 구별하시고, 풍랑 속에 찾아오시며, 우리의 고백을 이끌어내신다.
명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군중과 분리시키기 위해 배에 태워 바다로 보내셨고, 순종의 길에서 만나는 풍랑 속에 친히 찾아오신다. 우리는 익숙한 환경에서도 스스로 살아날 수 없음을 깨닫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
명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군중과 분리시키기 위해 배에 태워 바다로 보내셨고, 순종의 길에서 만나는 풍랑 속에 친히 찾아오신다. 우리는 익숙한 환경에서도 스스로 살아날 수 없음을 깨닫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
사도신경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본문
본문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인사
인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아멘!
서론 – 풍랑 속의 질문
서론 – 풍랑 속의 질문
여러분, 오늘 본문은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을 기록한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즉시” 배에 태워 보내시고, 그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다 보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풍랑이 몰아칠 것을 모르셨을까?
왜 아무 말씀 없이 제자들을 바다로 보내셨을까?”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군중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5절에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맛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영웅, 로마를 물리칠 대장으로 만들려는 열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군중과 제자들이 같은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도록, 그들을 분리시키기로 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다로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낼 때 바다는 잠잠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만드신 분이 아닙니다. 풍랑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만나는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내시는 길에는 때로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의 목적은 고난과 시련이 아니라,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는 여정입니다.
대지 1 – 무리와 분리시켜 주님을 새롭게 보기 (22-27절)
대지 1 – 무리와 분리시켜 주님을 새롭게 보기 (22-27절)
예수님이 제자들을 급히 보내신 이유는 군중과 다른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오해에 휩쓸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씀 없이,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제자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고, 준비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나간 후, 24절에서 거센 바람이 불고 물결에 시달리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풍랑이 닥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풍랑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시험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때때로 예기치 못한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는 것처럼, 세상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입니다.
풍랑이 닥쳤을 때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지만,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 풍랑 속에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밤사경, 이 시간은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를 말합니다.
제자들이 가장 지치고 두려울 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욥기 9장 8절에서 “그가 바다 물결을 밟으신다”고 표현된 것처럼,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바다 위를 걸으십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유령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도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서 “나니”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애굽기 3:14)와 같은 표현으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하심을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핵심 정리: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풍랑은 시험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현실 속 풍랑 한가운데 찾아오십니다.
대지 2 – 어부 베드로: 가장 익숙한 곳에서 순종하고 빠지다 (28-31절)
대지 2 – 어부 베드로: 가장 익숙한 곳에서 순종하고 빠지다 (28-31절)
베드로는 어부로서 바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바다는 친숙한 곳이자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를 부르셨던 곳도 바다였고, 그때 역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누가복음 5장).
그때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고 명령하셨고, 베드로는 순종하여 큰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가장 잘 아는 자리에서 실패를 경험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고3에게 수능 낙방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라면 불편하고 망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베드로는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보고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의 요청은 무모한 호기가 아닙니다. 바다를 가장 잘 알고,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사람의 순종의 요청입니다.
예수님은 “오라”라고 하시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걷습니다.
이 순간, 베드로는 세상의 이치를 넘어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러나 30절에서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자 바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갑자기 더 강해진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베드로의 시선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담대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에 시선을 돌리면 곧바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 바다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살아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빠지는 순간 바로 외칩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 올리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 꾸짖음은 믿음이 없다는 비난이 아니라, 우리 믿음이 파도보다 작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선을 돌리면 바로 빠집니다.
핵심 정리: 순종은 항상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연약함 속에서도 붙잡으십니다.
가장 익숙한 환경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우리는 “주님만이 구원자”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대지 3 – 풍랑 후의 고백: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로소이다” (32-33절)
대지 3 – 풍랑 후의 고백: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로소이다” (32-33절)
풍랑은 예수님의 등장에 잠잠해집니다.
32절에서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풍랑이 잦아들자, 배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절하며 말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로소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감탄이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이 구원하셨음을 경험한 자들의 고백입니다.
우리도 기적을 본 후 현실의 고난 앞에서 쉽게 흔들리지만, 풍랑을 통과한 후 다시 만난 예수님을 통해 비로소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는 내가 가장 잘 아는 환경—내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환경에서—주님이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고백입니다.
핵심 정리: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경험은, 순종하여 풍랑을 지나온 후에 주어집니다. 풍랑이 없으면 빠지지 않지만, 구원의 경험도 고백도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기적을 보고도 현실에 부딪히면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풍랑을 통과한 후, 그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내가 가장 잘 아는 환경, 내가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구원받았기에 가능한 고백입니다.)
핵심 정리: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경험은, 순종하여 풍랑을 지나온 후에 주어집니다. 풍랑이 없으면 빠지지 않지만, 구원의 경험도 고백도 없습니다.
결론 – 바라보라, 내딛으라, 붙잡으라
결론 – 바라보라, 내딛으라, 붙잡으라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명하신 바다를 지나갑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다 보면, 예상치 못한 풍랑을 만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몰라서 우리를 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키고, 주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시기 위해 풍랑 속으로 보내십니다.
풍랑은 시험이 아니라 현실이며, 예수님은 그 한가운데 오십니다.
첫째, 바라보라.
첫째, 바라보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보아야합니다.
무리를 따르는 눈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합니다.
풍랑이 온다 해도,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둘째, 내딛으라.
둘째, 내딛으라.
주님이 “오라” 하실 때, 두려워하지 말고 발걸음을 주님께 향해야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순종할 때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풍랑 속에서도 순종할 때 기적을 보는 법입니다.
셋째, 붙잡으라.
셋째, 붙잡으라.
빠질 때 숨기지 말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주님을 찾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과 연약함을 아시고, 그 속에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주는 믿음은 주님을 바라볼 때 바다를 걷게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풍랑을 원망하고 불신 하는 것이 아니라,
풍랑을 뚫고 찾아오실 주님을 바라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세상 한가운데서, 내가 가장 잘 아는 환경에서, 내 힘으로는 살아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잘 알기에 우리는 자백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며, 우리 삶의 풍랑 속에 찾아 오실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기도
헌금기도
결단찬양
결단찬양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