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은혜의 지배_16장

죄와 은혜의 지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죄와 은혜의 지배 16장 죄의 지배에 작별을 고하며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cgVTr9XkblA
Transcript:
(05:40) 세상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지음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과 순간없는 삶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이 온 우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복을 자기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수인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단시 진실한 신자가 되기를 힘쓰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결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존재는 우주의 발광체처럼 빛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어둡기 때문입니다.이 피할 수 없는 부르심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참 신자가 됨으로써 참으로 하나님께서이 땅에 존재하기를 바라시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06:35) 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왔고 죄는 인간의 영혼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사람과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자연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의 관계도 깨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는 재앙적인 파멸은 그의 영혼 안에서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영혼은 급도의 어둠의 상태에 갇치게 되었고 생각은 허탄한데 굴복하며 의지와 정는 조속한 정력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시 인간에게 주신 순수하고 깨끗한 성의 빛은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의 능력은 세 가지로 언급됩니다.
(07:29) 생각과 총명과 마음이 그것입니다. 그러나이 세 가지 모두 영혼의 어둠 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종교도 신학자 존 오의 지적에 따르면 지식의 빛은 생각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총명으로 적용되며 마음은 그 지식의 빛을 사용합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던 피조 세계의 찬란한 광위는 상실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인간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셔서 새롭게 창조하시고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리는 빛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이 [음악]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을 정확히 가르쳐 주는 빛입니다.
(08:21) 원래 그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자신을 직접이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비추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만나 거듭나고 거룩해진 신자들을 통해 자신의 빛을 반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장 14절 중생한 신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시려는 성령의 힘쓰심에 순종함으로써 보다 더 그리스도의 빛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교회는 이렇게 빛으로 부르신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와 상관없이 언제나 어느 시대나 거룩한 백성들로 삼으셔서 그 빛을 비추게 하심으로 주님을 알리셨습니다.
(09:14) 그러나 그들은 결코 아무렇게나 살면서 빛으로 존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시의 빛이 있었고 그들은 온 힘을 다해 그 계시의 말씀에 순종하였으며 부패한 본성과 죄의 거센 반항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신 안에 주신 은혜를 간직하고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지를 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였고 그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길 수 있는 은혜의 힘을 공급받는 비교를 복음 안에서 터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든지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도록 그 시대를 방치하신 적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10:03)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시대에도 언제나 깨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가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에 더 많은 빛들이 산란하게 비쳐 모든 피조물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신실하신 성품을 인정하게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한 신자의 삶의 신실함은 그가 얼마나 진실한 신자가 되느냐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어두운 세상에 태어나서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최상의 생김이고 어두운 세상을 위한 최고의 봉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신자되는 것이야말로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의무이고 사명입니다.
(10:56) 이것 없이는 그가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고 높은 지위에 도달하였다 할지라도 아무리 큰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할지라도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신학적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고철하기를 제안합니다. 본체적인 영광과 발산적 영광 그리고 효과적인 영광이 그것입니다. 첫째로 본체적인 영광은 하나님이 자신 속성으로 영광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건 존재의 자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발산적 영광은 피조물인 하나님을 누구인지를 알게 하도록 발산한 빛으로서 영광을 가리킵니다. 셋째로 효과적인
(12:02) 요는 그렇게 발사하는 영광에 대한 반응을 통해 하나님이 인정하게 되는 힘이나 효과로서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발사의 영광과 효과적인 영광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피조물을 발산하는 영광의 빛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게 되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효과적인 영광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효과적인 영광은 발산적 영광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영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효과적인 영광은 뒤어오는 효과적인 영광에 대한 발산적인 기능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세상의 빛들로 부르셨다는 의미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이 인정하게 하는 효과적인 영광으로 많은 인간과 피조물들을 하나님을 아는 대로 이끌어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도록 인정하게 하도록 부르신 것을 의미합니다.
(13:01)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것을 영광의 힘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빛들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계획도에도 불구하고 창조의 원래 목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일 한 빛 아닌 그 빛 그리스도로 변화된 사람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여기서 빛은 언어적으로 그 빛이라는 의미입니다.이 세상에서 그 빛이 아닌 한 빛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 겪는 어려움들을 극복한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이야기는 인생길에서 낙심한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따라서 그것도 빛이 될 수 있습니다.
(13:56) 그러나 그것은 한 빛 혹은 어떤 빛일 뿐입니다. 도둑주의도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나 그것은 그 빛이 아니라 한 빛일 뿐입니다. 한 빛은이 세상을 감동을 줄 수 있어도 인간 존재의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 죄로부터 구원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한 빛이 아니라 그 빛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지금 어떻게이 땅에서 자신을 빛으로 나타내십니까? 예수님께서 구원을 받은 자에게 성령을 주셔서 성화의 삶을 통해 우리가 주님과 실제적인 영원함을 이루게 하심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14:45) 그래서 우리는 빛이 아니지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빛을 비추게 하십니다.이 세상에 높은 지인 많은 물질도 어느 정도의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지를 못합니다. 단지 그 존재와 그 존재의 힘을 인식이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영광으로는이 땅의 죄인들을 눈뜨게 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알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적인 백성에게 자신의 존재를 현시하는 일체의 물질화를 금하셨던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이 이 빛 빛일은 많은 등불이 아니라 어둠 반바다에서는 불이 다꺼진 크고 웅장한 등대보다 작고 볼품 없더라도 깜빡거리며 빛을 바라는 등대가 필요합니다.
(15:44)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땅에 계실 때에 어두져 어두워져 가는 세상 때문에 아파하신 것이 아니라 참으로 빛을 바랄 사람들이 소수인 것을 인하여 아파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였느냐? 그러므로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에서 절실이 필요한 것은 진실한 신자들입니다. 자신을 감추고 오직 그 빛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줄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릇된 길을 걸어도 그 현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이나 판단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16:37)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음이니라. 아멘. 그러므로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질입니다. 기독교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멸망할 인간을 단지 심판의 위험에서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참된 예배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어두운이 세상은 충천하는 화과 같은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에 나타나 나타남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고 그 영광이 나타나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부흥의 새벽이 알려졌습니다.
(17:26) 진실한 신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며 있어 자기 개인의 신앙생활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죄를 이기고 자신을 부패한 세상에서 구별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거룩한 은혜의 능력을 하늘로부터 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올리를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힘습니다. 그들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를 간직하고 빛들로 나타나도록 살고 싶어 하는 그들의 진지하고도 치열한 죄와의 싸움을 통해서 서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풍랑이이는 어두운 반바다 별빛조차 사라진 다마늘 아래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18:19) 오직 안전한 포구가 어디지를 알려주는 등대의 불빛이 필요합니다. 어두운 반바다에서 폭랑을 만난 뱃사람들에게 무서운 것은 파도가 아니라 빛이 없는 것입니다. 황로를 알려주는 별빛조차 사라지고 등대의 불빛조차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은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풍랑이는 바다에서 작은 배들이 어떻게 안전한구로 대피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온 하늘에 수천 개의 조명탄이 장렬하고 반바다가 대나처럼 밝혀지지 않아도 단 하나 등대의 불빛만 있다면 안전한구로 대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이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이 세상의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성김은 빛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19:22) 어떻게 빛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 A 법문의 원어적 의미.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빛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말 개혁 성경에서 본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흠이 없고 순전하여 흠없는 자녀로 빗돌로 나타났며 빌립보서 2장 15절 즉 하나님의 자녀가 흠이 없고 순전하게 되면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는이 부분에 해당하는 새 단어에 없다는 의미를 가진 적주어를 붙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지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책마 것이 없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아서 결함이 없는 자녀들로서 빛둘로이 세상에 나타나며 우리가이 세상 사람과 나누어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일주일 동안 천국에서 살다가 교회에 오는 것이
(20:26)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많은 불신자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살다가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옵니다. 그렇게 신자와 불신자는 나뉘어지지 않고 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을 지위와 소유 그리고 지식을 따라서 나누지만 보다 더 번질적인 구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고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자녀들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속하심으로써 죄악된 세상에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21:13)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순간의 구원으로 거룩하게 하신 것만으로는이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책망받을 만한 정성과 혼합된 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결함이 없는 [음악] 자녀로 나타나야 합니다.이 세상의 가득한 인본주의와 세속적 탐욕들이 끊임없이 신자의 마음을 파고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을 부당한 이기심에 의하여 도전받고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하며 살아야 할 그 자리는 자신의 이름을 위한 욕심으로 위협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쳐 섬겨야 할 섬김의 자리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심의 도전을 받습니다.
(22:05) 우리에게 우리 자신은 얼마나 무거운 존재입니까? 십자가를 치도록 부름을 받은 자리에서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려는 마음이 들고 자기를 부인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상황으로 하나님의 뜻을 부인하는 [음악]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대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우리 안의 적과 투쟁하며 저 높은 곳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신자들입니다. >> 비 거룩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요구 결국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불편한 성품을 지닌 우리들에게 어떻게 그 치열한 세상의 유혹과 본성의 악을 누르고 채무할 것도 없고 아무 섞인 것도 없는 흠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나타낼 수 있을까? 어떻게 오직 자기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만을 인정하게 하는 그 빛으로
(23:10)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타락한 인간 안에 그러한 자원이 없습니다. 1. 내적 부패성 때문에 첫째로 우리 안에 있는 내적인 부패성 때문에 유업을 받습니다. 아 우리 안에 있는 악한 부패성은 얼마나 절망적인 것입니까? 끊임없이 참여하며 눈을 흘릴지라도 우리의 본성 깊이 뿌리를 내린 죄성과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지 않으라 하는 악한 왕고함은 점처럼 꺾이지 않습니다. 은혜에 대해서 쉽게 낯설고 죄에 대해서는 쉽게 친한 본성들의 쓴뿌리들이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적인 부패선을 간직한 채 어떻게 우리는 책망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는 결함이 없는 자녀들로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자신 안에 있는이 뿌리의 깊은 죄상의 죄 죄의 본성과 거기에 자양벌을 공급해 주는 끊임없이 우리의 정욕들 거기에 굴복해 가는 수많은 실패들이
(24:17) 우리를 그이 거룩한 부르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그 모든 부패한 본성으로부터 순결해하게 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성화의 길이 무엇인지를 아는 성도들에게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어떠한 자부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을 책망할 것도 없고 섞일 것이 없는 결함이 없는 빛들의 자녀들로 나타나게 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만을 자랑할 뿐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양식이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의 은청이 음료 음료입니다. 그 떡과 그물을 힘입어 어두운이 세상의 허벌판과 같은 광야를 지나는 것입니다.
(25:14) 지금 비록 더럽고 연약 어 더럽고 연약하지만 자기를 부르신 그리스도께서 후회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언젠가 자신을 빛으로 나타나게 하시기라 믿는 믿음 때문에 말입니다.이 타락한 세상 때문에 둘째로 신자가 살고 있는 세상 때문에 그러합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빌립보서 2장 15절 말씀.이 이 말씀은 언어적으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한가운데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떠났고 창조주 대신 죄를 택하자마자 구부러져 버렸고 사람들은 뒤틀린 세대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가운데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냅니다.
(26:08)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렇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가 찍어내는 편리적인 인간이기를 거절하며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그 강력한 세계 정신을 거스를 수 있는 자원이 있습니까? 무엇으로 우리가 도저히 흐르는이 시대의 정신을 거스리고 뒤틀리기를 강요하는 세상의 영향력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살고자 하는 참된 신자들에게는이 세상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거룩해지기를 원하는 신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적인 부패성과 싸울뿐 아니라 죄로 가득찬이 세상의 조류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26:54) 이 이 세상에 살면서이 세상을 본받아서는 안 되고이 세상을 사랑하며 섬기도록 부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기는 거부해야 하는 신령한 모순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신자의 인생길을 순례자의 길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하나님 하늘나라의 나그네들이라 차차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많은 세상을 사랑하는 신자들은 결코이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부르신 거룩한 소명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마치 배가 바다 위에 떠 있으나 그 많은 바닷물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모음의 마실물을 위하여 하늘을 악망하듯이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합니다.
(27:47) 은혜의 지배 아 거룩하게 살라 신자는 끊임없이 자기 안에 죄를 죽이며 어두운 세상을이기는 비결들을 터득해야 합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할뿐 아니라 뱀같이 지혜롭게이 어두운 세상을 알고 그 어두운 악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복음의 비결들을야 합니다.이를 위하여 영혼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야 하고 지식은 찬란한 빛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치열한 전쟁터에서 자신을 바쳐 싸우던 군사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적을 공격하는 무기는 칼자로였지만 자기를 보호하는 장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끊임없이 은혜의 지배 아래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28:37) 모든 것을 생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그해야 합니다. 은혜의 지배 아래 성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고 성화의 능력 안에서 어두운 세상과 더불어 자신을 지키며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 있는 신자로 살아가야 합니다.이 삶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이 어그러지고 뒤틀린 세대 한가운데서 빛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의 지배 아 날마다 마음을 지키고 죄와 더불어 싸우기를 그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겉사람은 호하여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에게 허락된 십자가를 진채 그리스도의를 따라야 합니다.
(29:25) 그분이 멸시받은 곳에서 함께심을 받고 그분이 고난당하신 곳에서 함께 박해받아야 합니다. 마침내 그분이이 세상에 살아 계셨더라면 죽으셨을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가 짓쓸없는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을까요? 창조주의신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이 세상의 죄인들을 오늘도 진멸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어두운 세상에서 그 빛을 모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없었던 그 많은 죄인들에게 우리를 통해 빛을 보여주시기까지 일체에 오래참으심으로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죄의 지배를 벗어나 은혜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소명이기도 하지만 또한이 구부러지고 뒤틀린 소망 없는 세상의 인간들을 위한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30:24) 그러므로 우리는 변하는이 세상에서 참으로 불변하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이 세상도 지나가고 그 정력도 사라집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이 나온 근원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토록 분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했었던 진실한 신자들도이 세상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십니다. 그분의 영광도 세세 무궁토록 계속될 것입니다. 잠시 구름 같은이 세상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찬란한 빛 가운데서 일평생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게 될 것입니다.이 세상에서는 그분을 향한 사랑의 노래가 자주 끊어졌습니다.
(31:11) 때로는 악한이 세상에서 겪는 치열한 권과 위로받을 길 없는 외로움으로 그리하였고 때로는 우리 안에 있는 어찌할 수 없는 부패한 본성을 인하여 그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자신의 의로운 옷으로 다시 입히실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일생을 죄와 더불어 싸운 피묻은 전투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그날은 우리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날이 될까요? 그러나 충성스럽게 매일매일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주님을 의지하고 진실한 신자가 되기를 힘썼던 자신조차 잊어버린 그 수많은 날들을 그리스도께서 기억해 주실 때 어 우리가 받을 위로는 얼마나 클까요? 아마도 주님께서는 [음악] 일생을 진실한 성도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한 성도의 귀한을 환영하기 위해 보좌에서 걸어 나오실 것이며 우리는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수많은
(32:18) 천사들의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끊임없이 거룩해지기를 힘며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 이루신 말할 수 없이 복된 영적인 연합을 유지하며 은혜 아래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의 빛돌로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다 달리고 선한 싸움을 모두 마칠 그날까지 >> 아멘
아멘.
한눈에 보는 16장 죄의 지배에 작별을 고하며
I. 은혜의 지배 아래 살아야 하는 이유 : 빛들로 나타나게
A. 본문의 의미
-원어적 의미: ‘우주의 발광체처럼 빛나게 하시려고’
-신자는 영적 어두움이 짙게 깔린 세상에서 그들과 다른 존재가 되어 하나님을 알리는 사람들임
B. 피할 수 없는 부르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참 신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존재하기를 바라시는 사람이 되는 것임.
-신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을 정확히 가르쳐 주는 빛이 되어야 함
C. 그 빛들인 신자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1.한 빛 아닌 그 빛: 그리스도로 변화된 사람들
-세상에는 그 빛이 아닌 한 빛이 많이 있음
-그 빛이 아니면 인간의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인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여 새 인생을 살 수 없음
-신자 안에 성령을 주시고 성화의 삶을 살게 하심으로 주님과 실제적인 연합을 이루어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심
2. 빛 잃은 많은 등불이 아니라
-밤바다에 필요한 것은 불꺼진 웅장한 등대가 아니라 작더라도 깜빡이며 빛을 바라는 등대임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진실한 신자들임
II. 어떻게 빛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A. 본문의 원어적 의미
-책망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아서 결함이 없는 자녀들로서 빛들로 이 세상에 나타나며
B. 거룩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요구
1 내적 부패성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내적 부패성 때문에 이러한 소망을 따라 사는 일이 위협을 받음
-은혜에 대해서 낯설고 죄에 대해서는 쉽게 친한 본성의 쓴뿌리가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음
-부패한 본성으로부터 순결하게 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님
2. 타락한 세상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때문에 소명을 따라 사는 일이 위협을 받음
-그리스도인은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가 찍어내는 평균적인 인간들에게 거절하며 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임
C. 은혜의 지배 아래 거룩하게 살라
-끊임없이 자기 안에 죄를 죽이며 어두운 세상을 이기는 비결을 터득해야함
-끊임없이 은혜의 지배 아래 있기를 힘써야 함
스터디
제16장 죄의 지배에 작별을 고하며
1. '빛들로 나타내며'에 해당하는 희랍어 본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빛을 잘 전달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420, 423-424)
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빛’의 원어적 의미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무엇입니까?(427-428)
3. 우리가 우리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섞인 것이 없는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 나타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432-433)
4. 우리가 끊임없이 은혜의 지배 아래서 마음을 지키고 죄와 더불어 싸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434-435)
5. 이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신 깨달음과 은혜에 감사하며 새로운 신앙생활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