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자손

사도행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청년부 설교] 언약의 자손
본문: 사도행전 3장 11-26절

서론: 기적의 진짜 이유와 인간의 무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두 사도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섰을 때, 이를 본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 "이 사람들이 신인가?" 하며 기이히 여겼습니다. 그들을 향해 베드로 사도가 입을 엽니다. "왜 우리를 이상히 여기며 바라봅니까? 이 사람을 일으킨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얼마 전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놓아주려 했지만, 사람들은 살인자를 놓아주고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삼 일 만에 살아나셨고, 승천하셔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분의 이름만으로도 이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죽였을까요? 바로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동안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중풍병자와 나병환자를 고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기에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해서 생명 되신 하나님을 죽이는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본론 1: 언약의 자손에게 주어지는 회개의 기회와 성경적 근거

몰라서 범한 죄라도 죄는 죄입니다. 인간의 죄악과 무지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엄청난 죄를 범한 자들에게 회개하고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누구에게 이 기회를 주십니까? 바로 열조를 통해 맺어놓으신 '언약의 자손'들입니다.
그렇다면 2천 년이 지난 지금, 혈통적 유대인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언약의 자손'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성경적 근거는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25절에서 베드로는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구원의 언약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이라는 핏줄을 넘어 '땅 위의 모든 족속'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자손은 이스라엘 다윗의 혈통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아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7절과 29절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지 명확하게 확증합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나 핏줄로 언약의 자손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언약의 자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되었고, 은혜의 언약 안에 접붙임 바 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유도 바로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골고다 언덕에서 직접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았지만, "나의 죄가 예수님을 죽게 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시인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인 우리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화: 탕자의 비유]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패역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 돌아온 그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그에게 어떤 훌륭한 자격이 생겨서가 아닙니다. 그가 지울 수 없는 '아들'이라는 언약의 관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 역시 무지함과 교만함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언약의 자손'이기에 오늘도 돌아와 회개할 은혜의 기회를 끊임없이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본론 2: 통치 원리에 순종하는 언약의 자손 vs 악해지는 영혼

이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언약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삶이 평안할 때,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예수님을 확실히 아는 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치열한 현실 속에서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마치 주님을 전혀 모르는 자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자'의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바로 나의 일과 직업 속에서 철저히 '나의 만족과 유익만을 쫓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주관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믿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한번 돌아봅시다. 직장을 구하고 스펙을 쌓는 모든 목적이 오직 나의 안위와 세상적인 성공, 더 많은 은과 금을 모으는 것에만 맞춰져 있지 않습니까? 내 목적과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 수십 번 고쳐 쓴 이력서에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 우리는 즉시 원망을 쏟아냅니다.
밤에 누워 SNS를 열었을 때, 남들은 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화려하게 사는 모습을 봅니다. 그때 내 텅 빈 통장 잔고와 불투명한 진로를 들이대며 끊임없이 남과 비교합니다. "하나님은 왜 나한테만 이러실까?" 내가 좀 잘면 주셔야지 하며 끝없는 불안과 염려에 휩싸입니다. 내 알량한 힘으로 아등바등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불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한 방황이나 연약함이 아닙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을 철저히 무시한 채 이기심과 두려움에 갇혀 우리의 영혼이 점점 더 '악해지는 삶'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알고 믿는 자'의 삶은 어떠합니까? 똑같이 캄캄한 현실을 마주하지만 살아가는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주님을 알고 믿는 자는 나의 일과 직업을 단순한 돈벌이나 나의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내 일터와 직업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 원리'에 철저히 순종하는 자입니다. 내게 허락하신 직업, 학업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섬기려는 분명한 목적을 갖습니다.
이런 자는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고 남들과의 비교로 인한 불평이 터져 나오려 할 때, "아, 내가 또 생명의 주님을 모르는 자처럼, 내 유익만 구하며 영혼이 악해지고 있구나!" 하고 그 죄악을 즉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담대히 선포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의지합니다. 내 영혼을 악하게 만드는 원망과 불안, 비교와 염려는 떠나게 해주세요!" 내 진로의 최종 결정권자가 세상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확실히 ‘알고 믿는 것’입니다.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 원리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온전히 순종하는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언약의 자손'의 진짜 모습입니다.
[예화: 풍랑 속의 제자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갈릴리 바다에 큰 광풍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원망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들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과 한 배에 타고 있었으면서도, 고난 앞에서 오직 자기 목숨(나의 유익)만 생각하며 주님을 원망하는 '모르는 자' 믿지 않는 자의 악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일어나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통치 원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인생의 광풍이 불 때 내 힘으로 살아남으려다 영혼이 악해지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주님의 통치 원리에 내 삶과 직업을 온전히 순종시키는 언약의 자손이라는 믿음으로 폭풍 속에서도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론 3: 고난 속에 감추어진 십자가의 선함과 재창조

그렇다면 주님의 통치 원리에 온전히 순종하면 우리 삶의 풍랑은 완전히 사라질까요? 때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깊은 고난이 허락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자손에게 주어지는 고난 속에는 내 영혼을 정결케 하는 생명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화: 알렉산더 대왕의 쓴 약]
옛날 알렉산더 대왕이 중병에 걸렸을 때, 그가 가장 신뢰하던 주치의가 쓴 약을 지어왔습니다. 누군가 그 약에 독이 들었다고 투서를 보냈고, 의사도 자신이 독을 넣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대왕은 의사를 전적으로 믿었기에 그 쓴 약을 단숨에 마셨습니다. 대왕의 병이 워낙 중했기에 독을 독으로 다스려 병을 고치려는 의사의 깊은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도 독약처럼 씁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내 삶을 망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병들게 하는 이기심과 불평, 세속적인 욕망이라는 악한 독들을 말끔히 청소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재창조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처방입니다.
[예화: 겟세마네의 쓴 잔과 십자가의 섬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던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그 잔은 너무나 쓰고 고통스러운 독배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22:42 에서 주님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며 기꺼이 그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 쓴 잔을 마신 이유는 단 하나, 우리를 살리기 위한 철저한 '희생'과 '섬김'이었습니다.
고난을 통과하여 이루어지는 참된 재창조는 단순히 내 스펙이 좋아지거나 취업이 되는 환경의 변화가 아닙니다. 내 영혼에 가득했던 끈질긴 이기심과 악함을 철저히 버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낮아짐과 선하심, 이웃을 향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잔이 씁니까? 나를 예수님의 선한 형상으로 빚어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받아들일 때, 우리의 영혼은 세상의 악한 방식을 벗고 이웃을 섬기는 생명의 도구로 새롭게 창조될 것입니다.

결론: 언약의 자손다운 정체성의 회복, 악을 버리고 선을 좇는 삶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언약의 백성, 언약의 자손으로 삼으신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우리 혼자 이 땅에서 성공하고 복을 누리게 하심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의 악함을 버리고, 예수님의 희생과 섬김을 따라 사는 참된 선함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족속이 생명의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고난을 원망으로만 대하면 우리의 영혼은 더욱 악해지고 메말라갑니다. 하지만 고난을 나를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처방으로 믿고 맡기면, 우리는 세상의 방식(이기심, 경쟁, 비교)을 완전히 버리고 십자가의 방식을 따르는 거룩한 자녀로 빚어집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맺어진 가장 확실한 '언약의 자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일과 직업을 통해 때로는 멸시와 실패를 경험할지라도, 내 안의 악을 버리고 예수님의 선하심을 품었다는 고귀한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이제 언약의 자손다운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합시다. 무지함 속에 갇혀 원망하며 내 욕심만 채우려던 악한 과거를 완전히 청산합시다. 고난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며,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을 우리의 삶과 직업의 자리에 실천할 때, 여러분은 세상 속에서 약속의 축복을 성취하는 가장 선하고 존귀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원리에 순종하여 이웃을 섬기며 참된 생명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능력의 언약 자손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결단 찬양 -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1-2, 3-4) + 부르신 곳에서(후렴)

[결단 기도문]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언약의 자손' 삼아주셨으니, 이제는 나의 직장 혹은 학업 속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통치 원리에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헌신하는 십자가의 방식을 따라사는 거룩한 언약의 자손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
주여 한번 크게 부르고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님, 무지함으로 원망하고 내 만족과 유익만을 좇아 살아가며 영혼이 악해졌던 우리의 죄를 깊이 회개합니다.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언약의 자손' 삼아주셨으니, 이제는 나의 일과 직업 속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통치 원리에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비교와 불안의 악함을 온전히 버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희생과 섬김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고난을 통해 내 영혼을 선하고 거룩하게 재창조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치열한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선한 축복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존귀한 믿음의 세대가 되게 하옵소서.”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