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Notes
Transcript
(1)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13장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ZiUjUfAKyF4
Transcript:
(00:02)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1. 죽음 이후의 인간. 본문의 내용을 들여다보기 전에 우리는 죽음 이후의 인간의 상태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에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순간의 홀련이 변화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 맞이하고 주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오시기 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상태로 도달해서 잘난 부활의 영광이 누리기 전까지 중간 상태를 거치게 됩니다.
(00:54) 우리들을 주 우리들이 죽으면 우리의 영 어 육체는 여기다 남겨 두고 영어만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롭게 됐다고 할 때 그것은 영혼만 영화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부활한 육체와 만나서 함께 영화로워진 것이기 때문에 죽은 육체와 영혼이 만나 영화롭게 될 때까지는 일정 기간을 하나님 나라에서 임시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신자가 죽으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고 믿지 않을 사람들의 지옥에 간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강 가르쳐 준 것입니다. 성에서 천국을 가르키는 두 단어와 지옥을 가르키는 두 단어가 나옵니다. 나과 천국이라는 단어와 음부와 지옥이라는 단어입니다.
(01:52) 라고는 때로 아브라함의 품에 묘사하고 음부는 고통받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정확히 표현하자면 신자의 영혼은 낙원에 이르고 불신자의 영혼은 음부에 이르러 심판 날까지 대게 됩니다. 예수이심할 때 믿는 자군에 있던 영혼과 땅에 있는 육체가 결합하여 천국에 이르게 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음부에 있던 영혼과 땅에 있는 육체가 결하여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이야기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중간 상태가 아닌 최종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밖을 받아 반모라고 하는 외로운 썸에 갇혔고 거기에서 마지막 날에 일들을 일어날 일들에 대해 계시를 받았습니다.
(02:46) 예수님을 통해 계시를 받은 그 사명을은 그 계시를 적어서 일곱 개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언어들은 많은 상징이 이루고 있고 당시 어 당시대의 사람들이 은어처럼 죽어던 묘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계시록을 완전히 파악가는 것은 불가능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은 명백히 미래에 일어날 영광스러운 비전을 담고 있고 그 잘라는 비전은 역사적으로 많은 교회들의 핍박과 시련을이기는 소망이 되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비창한 유배자의 몸으로 요한이 만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과이 세상의 창조와 구석이 완되는 하나님의 잘라는 영광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03:45) 이 이 완전한 나라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그때 이루어질 하늘나라는이 세상의 불완전한 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완전하고 온전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늘나라에 대한이 짧은 묘사에서 우리는 하늘나라의네 가지 중요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로 영생 기쁨 해방입니다. 위로가 있는 나라 첫째로 하늘나라에는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이 세상은 눈물의 길이요의 길에을 간직한 곳이라고 합니다.
(04:38) 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태어날 때 울면서이 세상에 나와서 마지막 죽을 때에 눈물을 흘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비통한 울음 속에서 정든 세상을 등지고 영혼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인생의 모든 항로 자체가 눈물을 뿌리며 걸어온 길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살아간 발자치에는 걸어간 발자국과 함께 떨어진 눈물의 흔적으로 점철됩니다. 그것이이 땅에 살다가는 한 사람의 나그네길의 여정입니다. 그런데 법문은 말하기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라고 말합니다.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가 흘리는 눈물에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눈물이 있고 그렇지 못한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05:28) 자신의 죄 때문에 아파하고 흘리는 참매의 눈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눈물입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서 주님을 거스르는이 세상을 보면서 흘리는 섬김의 눈물은 얼마나 안타까운 눈물입니까? 또한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핍박과 고난을 당하며 흘리는 눈물 주님을 만날 그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흘리는 그리움의 눈물은 얼마나 고귀한 눈물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주님은 그들이이 세상에서 주의 영광을 위해 살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흘리는 모든 눈물을 그 나라에서 모두 시켜 주실 것입니다.
(06:11) 그러나 여러분 만약에 주님이 그런 눈물만 시켜 주신다면 주님을 위해 살지 못했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나라가 얼마나 위로하는 거리가 먼 나라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은 괴로움과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을 등지고 흘렸던 눈물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부패한 성품 때문에 죄를 짓고 두려움 속에서 흘렸던 눈물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그 사람에 대한 그림 때문에 흘렸던 눈물 그리고 복수와 회과 아픔으로 흘렸던 눈물들도 주님이 친히시켜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상의 최상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우리가 그 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주님께 용납된 존재라는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는 훌륭한 증거인 것입니다.
(07:00) 여러분은 어린짝의 골목에 동네형들이 얻어맞거나 혹은 골목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다가 부당한 일을 당해서 마음이 상하며 누구에게 달라갔습니까? 울면서 엄마를 찾아 달려가면 일하다가 나온 어머니는 우리를 그 품복에 싸고 역성을 들어준 후에 우리의 눈물 흐르는 눈물을 치막자라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예전보다 더 많이 끌어안고 살아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가 무엇인지간에이 세상의 나그네 길이고 눈물 골짜기의 길입니다. 인생을 조금 산다고 하는 것은 눈물 골짜기의 길을 조금 더 걷는다는 의미이고 인생을 오래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눈물에 흘리고 인생의 길을 걸어왔다는 의미입니다.
(07:59)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인생의 길을 눈물 흘림에 어 며칠 더 당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환난과 시련 견디는 힘든 고통 우리의 질와 부패성이 우리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할 때이 세상이 주는 위로가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받는 위로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오늘은 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이 내일은 상처가 되고 오늘 내 눈물을 닦아 주었던 사람들이 내일은 내 가슴에 칼을 꽂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의 눈에 눈물을 시켜 주실 예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어 닦으시고 내일은 우리의 마음에 고통을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이 위로는 최종적인 위로이고 궁정이 위로입니다.
(08:59) 그래서 우리의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이 사는 동안 죄마는이 세상에 위로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눈물에 많은 나그네길를 지나가는 과객이요 우리의 시민권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이 있는 나라 둘째로 하늘나라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본문은 다시는 사망이 없고라고 말합니다.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 저편으로 건내보낸 사람들은 사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썩을이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덧입게 되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나를 소망해야 할 이유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거하는 것이 우리의 소박한 꿈인데 죽음은 우리를 갈라놓습니다.
(09:50) 태어날 때는 순서대로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순서와 상관이 없이 주님이 부르시는 순서대로 죽음의 휘장을 걷고 이전에 가본 적이 없는 영원한 세계로 떠나가 버립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아무리 성화되고 주님께 순종하며 산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고통과 견디기 힘든 이별의 슬픔이 종식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여인은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는 다시는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악픈 비극은 없습니다. 인생의 나루토에 우리를 남겨두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이 허련히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하는 뼈저린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10:38) 보고 싶은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므로 우리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죽음의 모든 권세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미칠 수 없고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곳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만날 것입니다. 죽음 때문에 다시 헤어질 위협과 두려움이 없이 영원히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함께 교하며 살 성도들과 사랑하는 하늘나라의 가족들로서 그들을 만날 것입니다. 는이 세상에서 흘린 수많은 눈물 자국들과 핏자국들을 남겨두고 매순간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치렀던 수많은 죄와의 전투들로 말미암아 피토성이가 된 전투복을 벗고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덧입혀진 희고 깨끗한 세마포옷을 입을 것입니다.
(11:32)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공로를 힘입어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리신 보혈의 길을 걸어 거룩하신 아버지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고 그 앞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얼않고 행복해 할 것입니다. 죄도 이별도 슬픔도 없는 그곳이 바로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나라입니다. >> C. 기쁨이 있는 나라. 실제로 하나님 나라는 기쁨이 있습니다. 본문에 이것을 대해 묘사를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고 이것은 단지 하나 하늘나라에는 애통과 통곡이 없는 곳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있는 나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2:22) 기쁨 이것은 얼마나 우리와 거리가 먼 단어입니까? 희락과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환인은 우리가 잃어버린 단어가 되었습니다. 물론 주님을 유지하고 성화의 삶을 살면서 오늘도 온전한 신자가 되고자 있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하늘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처음 주님을 영접하면서 경험했던 기쁨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신령한 복이 선을 빛내리던 그 영광스러운 기쁨을 아직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또한 성화의 삶을 살면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쁨이 우리에게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기쁨은이 세상에서 얼마나 자주 차단되었는지 모릅니다.
(13:12)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차서이 세생 사는 동안 눈꽃처럼 순결하게 주님을 위해 살 수 있었 것 같은 같았는데 어느 순간에 죄악이 나를 삼기고 영원히 갈길를 잃어버리고 나면 그것이 자신의 있었던 우리의 마음이 두려움이 깃들르게 시작되고 기쁨되신 우울한 슬픔이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찰 때 하늘에 신령한 기쁨이 있지만 세상의 유혹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부패한 본성과 정욕이 이러한 기쁨을 얼마나 자주 아삭아가는지 이루해릴 수 없습니다. 어떤 데는 이런 죄를 싸움에서 우리 한없음없시의 로움을 느낍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정사와 권세와이 세상의 어려움에 주관 자들이 가득하고 내 안을 보면 죄와 정욕과 부패을 가득하여서 우리의 영혼을 공고하게 합니다.
(14:07) 우리 안에 두신 하나님의 신령한 기쁨은 우리의 거룩한 상태의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신령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우리가 불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감은 인해 그 기쁨은 마치 끊어진 곡조처럼 하늘 앞에 흩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누리는 기쁨은 죄 위에 방해되지 않고 정욕에 의해 감화해지지 않으며 세상 주관자들의 악의 영들을 위해 방해될 수 없는 완전한 기쁨입니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 자신을 애통하는 것이나 통공하는 것이 없고 말로 행할 수 없는 찬란하고 거룩한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14:53) 그리고 그 기쁨은 날마다 증대될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며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앎에 더해지갈 것이고 그에 따라 우리의 거룩한 기쁨도 자라갈 것입니다. 어떠한 영혼의 치료함이 없이 기쁨 안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기쁨은 증대될 것입니다. 근심과 모든 염려와 결별하고 온전한 기쁨이 그 가슴에 가득해서 매일매일 새날이 맞이하고 그 날이 매일매일 살아가는 인생의 날 중에 최고의 날이 될곳 되는 곳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그 기쁨 속에서 말할 수 없이 가슴 벅찬 희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나라가 바로 새하늘과 새 땅입니다.
(15:48) 그러므로 우리가 어찌 그 나라를 그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뒤 해방이 있는 나라. 넷째로 하늘나라에는 해방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것을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묘사합니다. 아픈 것과 우리 안에 연약한 모든 것들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속박이고 구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 새의 꿈은 하늘을 나는 있는데 그 새를 세장에 가두어 두었다면 어찌 속박이 아니겠습니까?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몸이 아파서 응급실에 몇 차례 갔다 오고 나면 그의 마음은 침체에 들 정도로 비가해집니다. 게으고 싶지 않고 잘 살고 싶은데 육체의 속박이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16:32) 째각째 초침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를이 땅에 보내실 때에 우리를 데리고 가실 날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기도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를 언제 데리고 가실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은 곧 우리에게 주어진 날수가 하나씩 줄어간다는 것입니다. 마치 저그한 통장의 돈을 매일매일 인추하듯이 곡감을 하나씩 빼어 먹듯이 정해진 날소를 빼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을 더 잘 섬기고 우리가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 때문에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기 위해 우리에게는 반드시 시간이라고 하는 장이 필요합니다.
(17:16) 울고 싶지 않고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쓸데없는 것을 가슴에 품지 않고 주님이 주신 목표를 따라 살고 싶은데 육체가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속박을 합니다. 섬기면 몸이 아프고 섬기기 위해 매달리면 육체가 더 이상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때 느끼는 영혼의 고통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그 마음은 얼마나 비가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육체의 속박은 강화되어 점점 더 연약함의 노예가 되어갑니다. 힘이 있을 때는 무지해서 하나님을 위해 못 살고 지혜가 있을 때는 마음이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 못 살고 이제 지혜도 생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육체가 연약해져서 육체의 속박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18:01)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하루하루 상황 갈 때에 연약함으로 그리고 꺼져가는 등불처럼 연기를 내며 그 심지를 꺾지 않고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긍휼를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절감합니다. 우리의 남은 날수를 우리가 알 수 없으며 정해진 날 동안에 강건하게 살지 연약하게 살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성실과 부른함으로 살아도 언제 다시 질병과 아픈 것의 복병이 내 앞길를 가로막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이러한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살려 두셨기 때문에이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의 진정한 꿈은 지금 살고 있는이 나라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임을 알고 그 나라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8:49)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지혜를 얻습니다. 목표를 세워놓고 자신을 가혹하게 책찍질하는 분투의 삶도 꼭 필요하지만 하루하루를 주님이 생명 주셔서 살아가고 있다는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새 날이 밝으면 그것을 신비하게 여기고 하루가 지나면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면서 하루가 마치후의 날인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 말고 우리에게 또 다른 대안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 피어지는 들풀도 입히시며 오늘 공중의 날다가 내일 떨어지는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의 계획을 잊어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실 나라 이런 위로 영생 기쁨 그리고 해방이 있어서 그 나라가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바로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19:41) 그래서 사도바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21장 3절. 여기에서 장막이라 하는 것은 육신의 존재가 가르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장막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광야 시대 때 찾셨던 그 장면은 얼마나 초라한 것입니까? 장이 내배에 들어가 보면 다른 사람들이 경호할 수 없는 잘난 것들이 가득했지만 그 외양은 해달 가죽의 천을들은 두은 아주 초라한 텐트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20:35) 사람의 몸을 잊고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그분은 천한 목소의 아들이시었습니다. 멸시와 욕을 당하고 육신의 연약금을 짊어지실 때에 그분은이 세상에 찾은 낡고 철라한 장막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솔로몬 성전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성 아름답게 완성되었습니까?이 이 세상에서는 예수님의 모습이 광야에 처진 초라운 장막과 같았으나 하나님 나라에서 배웠던듯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감히 그 모습을 우어러 볼 수 없는 찬란한 영광의 모습입니다. 솔로몬의 영광도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의 영광에 비하며 어둠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하차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함을 이루며 그분의 찬란한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1:27) 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토록 사랑하기를 원했고 늘 주님과 사귀며 그분의 임재 안에 살기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죄와 생의 유혹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패한 본성애에서 수시로 떨어져 있던 그리스도의 완전한 연합에 이르며 그 임재의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은 우리에게 가장 사랑해야 할 나라인 것입니다. 사랑하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될 그때에 누리게 될 영광과 기쁨은 우리들이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슬픔이나 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것입니다. 우리가 거하는 곳이 비록 두고 초라해도 우리 마음이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 같습니다.
(22:19) 그런데 우리들이 그토록 대면하고 싶어하고 일평생 성화의 순례의 길을 걸어가면서 어 담고 싶어 했던 그분과 대면하는 그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자리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나라에 소망이 없는 아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니까. 그날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서 너무나 행복한 나라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그 나라입니다. >> 사 구원 계획과 약속이 성취되는 나라. 더욱이 인간의 타락이요 성경 최대의 약속이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 그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일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 우리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좌절된 것 같았던 창조의 목적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23:13)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사랑과의 관계도 깨뜨려졌고 자연과의 관계도 파괴되었고 자아와의 관계도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이 모든 관계들을 치료하시고 찬란한 창조의 광위를 잃어버렸던 우주와 자연의 세계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 영광을 완전히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만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긴 겨울이 지나고 돋아나는 아름다운 새싹들의 합창과 수많은 꽃들의 향 우어진 녹음의 우렁찬 함성 소리속에서 느끼는 자연의 신비와 영광은 새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영광스러운 광체를 회복하게 되는 광위에 비교한다면 모두 어둠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24:06) 그래서 그곳에서는 인간뿐 아니라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과 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든 나무와 열매들 나무 사이로가는 수많은 새들과 자연의 모든 동물들 발 아래 구르는 돌 하나 풀 한 포기까지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하고 영광 가운데 그 위험을 송축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며 천군 천사와 더불어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할 것입니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그 영혼 무궁한 나라에서 우리가 일평생 마음에 품었던 간절한 소망을 따라 좋으신 우리 하나님만 섬기고 어린양 되셔서 우리를 구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송하며 우리를 구속하신 성령님의 놀라운 위로하심에 대해 한없는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살 것입니다.
(24:57) 비록 그 나라에서 우리의 지위가 높지 못하고 하늘나라 한 구석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정든다 할지라도 새하늘과 새 땅에서 이름없는 종으로 사는 것이 죄와 슬픔으로 가득찬이 세상에서 황제의 면류관을 쓰며 사는 것보다 행복할 것입니다. 아 그때 우리가 누릴 행복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울까요?이 이 땅에서 고난과 실란을 끊임없이 당하고 살아야 했지만 그 나라에서는 주님을 위해 흘려 흘린 눈물을 그분이 씻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이 땅에서 당신을 위해 충성스럽게 살던 우리에게 시시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신령한 위로와 거룩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고단의 인생길을 걸어가는 동안 그분으로부터 받은 위로와 사랑은 사막 오아시스였으며 줄소했던 갈날에 한사발의 얼음 냉수였습니다.
(26:00) 얼마 언제나 불씨를 간직하듯 그 사랑의 교재를 간직하고 자 임썼지만 그것은 늘 이어지지 못한 노래의 멜로디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속의 근심과 박의 걱정에 끊임없이이 노래를 끊었고 우리 내면의 많은 죄와 밖의 유혹이이 노래를 수시로 그치게 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주님을 위해 살다가 분야다 할지라도 죄만은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사는 우리의 일생은 부르다한 노래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에서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속을 받은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 중에 한 무리가 되어 어린양의 어린양 예수를 찬양하고 3일체 하나님께 영광의 노래를 부를 때 누가 그 노래를 막을 수 있겠으며 그 아름다운 곡을 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우리를 결했던
(27:05) 죄도 없고 사망도 없습니다. 고난과 여름도 없고 견디기 힘든 핍박도 없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천사와 함께 영원 무궁토록 지상에서 부르다만 노래를 이갈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가장 행복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원한 나라를 꿈꾸고 그 잘라는 영광을 바라보면서 잠시 모르는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당하는 수모와 모욕 멸시와 천대도 참으며 매일을 살아갑니다. >> 네. 김박지 목사님 마지막 읽어 주실 수 있으세요? >> 아 네. >> 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불러 주실 꿈과 같은 그 날이 언제일까요? 속히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주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대로 살아 살아가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고 죽어서는 아벨처럼 그 피로
(28:09) 말할 수 있는 삶을 살다가 가야 합니다. 우리는 구름과 같이 허대한 믿음의 증인들과 어깨를 겨울 그날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힘겨운 성화의 길을 기쁨으로 걸으며 얼마 남지 않은 순로의 길을 주님과 동행하며 매일매일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 아멘. >> 아멘.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의 다섯 번째 대지
구원의 완성 2.
13장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 요약
I.죽음 이후의 인간
-신자는 주님과 대면할 날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함
-다시 뵈올 주님 앞에 온전해지기를 갈망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함
-영화를 통하여 피조물들이 창조시의 아름다움을 회복할 날을 기다림
II.완전한 나라
-하늘나라의 완전함의 네 가지 특성
A.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위로가 있음
B. 사망이 없고 영생이 있음
C. 애통과 슬픔이 없고 기쁨이 충만함
D. 아픔과 연약함으로부터의 해방이 있음
III.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나라
-하늘나라가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거기 주님이 계시기 때문임
-거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연합을 이룸
-그 연합 안에서 영원한 영광과 기쁨을 누림
-고난의 땅에서 그것을 소망하며 살아감
IV. 구원계획과 약속이 성취되는 나라
-거기서 죄로 인해 좌절된 것 같았던 창조목적의 완전한 회복을 봄
-깨어졌던 관계들이 회복되고, 피조물 안에 신성의 영광의 충만이 회복됨
-그 영원무궁한 나라에서 창조세계의 완전한 선이 회복됨
-거기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송하며 끝없는 영광으로 기뻐함
STUDY BOOK
제13장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들은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3-4)
1.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신자와 불신자의 경우를 각각 살펴보십시오. (pp.347~ 348)
2.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실 것입니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은혜를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pp.349~351)
3.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 저편으로 건네 보낸 사람들은 사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압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는 다시 사망이 없습니다.이 사실이 주는 위로는 무엇입니까? (pp.352~353)
4. 신자가 하늘나라에서 경험하게 될 기쁨은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과 어떻게 다릅니까? (pp.359)
5.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아픈 것과 연약한 것들로 인해 끊임없이 속박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무엇입니까? (pp.357)
6. 사도 요한은 하늘나라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장막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이 의미하는 하늘나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pp.357~3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