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예정과 견인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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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10장 예정과 견인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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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예.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10장 예정과 견인 1. 예정이란 무엇인가? 흔히 예정이라고 하면 아주 어려운 교리로 여기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예정의 교리는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구원과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태초와 종말이라는 전체 구도 속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정의 교리를 이해하게 되면 여러분은 이전의 혼란을 말끔히 지울 수 있을 것이며 여러분의 믿음은 더 경고하고 돈독해질 것입니다. 예정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먼저 몇 가지 예비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00:59) 어떤 사람들은 가끔 구원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느냐고 못습니다. 그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신자가 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기도에도 응답이 없고 기도할 힘도 없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 주시기는 커녕 자기를 징벌하실 것 같아 두려워하는 상황에까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전에 구원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실한 성도의 삶을 살지 않고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도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01:48) 둘째로 예정은 원래 하나님의 작정이라는 더 넓은 범주 안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지혜로서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미리 의지를 가지고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에 대하여 의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날고 정하신 때에 수명이 다해서 떨어집니다. 누구도 보는 사람 없이 오늘 피어다지는 들풀도 주님의 뜻이 아니면 싹이 날 수 없고 주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소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특별히 도덕성을 가진 피조물들에 관한 작정을 우리는 예정이라고 부릅니다.
(02:38) 도덕적 피조물이란 천사들과 인간 그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정은 크게 선택과 유기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게 됩니다. 먼저 선택은 인류 중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입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을 말할 때 크게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과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 직무회로 사람을 부르시는 개인의 선택 그리고 하나님의 후사가 될 자녀로서 개인에 대한 선택 등이 그것입니다. 다음으로 육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심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두심으로게 하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기로 작하시는 것입니다.
(03:39) 셋째로 우리는 구원의 예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태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으로부터 언급해야 합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들이 구원받은 것은 지금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구원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원의 예정을 이야기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예정의 교리가 우리의 신앙을 돈독 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이 >> 역사의 중심 예수님 A 친구약의 중심인 그리스도 우리가 예정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04:30)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의 모든 계시와 역사는 예수님의 한 분을 겨냥하고 달려간 것이고 신약의 모든 계시와 역사는 예수님의 한 분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온 역사가 구약 역사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역사가 신약의 역사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역사의 중심이라고 하는 이유가 예수님의 구약과 신각의 중간에서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이 되신다는 진술은 단지 수학적으로 물리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중심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이신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구호 사건의 의미가 모든 역사의 앞뒤를 갈라놓은 중대성을 가지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05:26) 즉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이라 할 때 이것은 시간적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 의미로서 예수님의 구원 사건이 모든 역사의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이라는 구원 사건을 향해 달려온 역사이고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사심으로써 하나님을의 뜻을 나타내시고 수많은 백성들을 구원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 성경을 읽을 때 단지 구약의 내용만으로는 구약이 구약이 말하고자 하는 아 아름다운 계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신약을 잘 알고 있어야만 구약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B.
(06:18) 신약과 구약, 밤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대추나무이 세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이 세 나무는 생김새도 다르니 열매까지 달려 있다면 새구루의 나무를 혼동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흙에 뒤덮힌 뿌리만 남은 나무를 보고 그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는 나무인지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나무의 뿌리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풍부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그것을 구분해 내기가 힘들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만을 보고 그 나무에서 무슨 잎이 자라고 어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지 생각하기 힘든 것처럼 신약을 모른 채 구약을 보면 예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07:03) 만약 구약만으로 모든 것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신약의 계시를 허락하셔서 성경을 쓰게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을 신성시하며 읽는 유대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하여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너무나 소수라는 사실에서도 입증됩니다. 무양만으로는 우리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목적을 완전히 드러내기에 부족한 것입니다. 처음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창세기부터 읽으라고 가르치지 않고 요한복부터복음부터 읽게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깊이 있게 성경 계시의 전체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07:54) 요한복음을 읽은 후에 나머지 복음서를 읽고 사도행전과 로마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충분히 알게 되면 그 빛을 가지고 구약으로 들어갈 때 찬란한 보석과 같은 구원에 관한 계시와 진리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또한 그림과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전시에 가서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 바로 추상화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미술를 전공한 사람을 만나서 추상화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추상하는 사물을 사실대로 제연하지 않고 순수한 점이나 선면 빛깔에 의존하여 표현한 그림입니다. 그 사람에 따르면 미술에 관한 고도의 안목을 가진 사람들도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원래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08:53) >> 네. 목사님 >> 실제로 한번은 어느 잡에서 반 추상어를 본 적이 있는데 어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미술사에서 신견을 열어 가지고 있다고 잡아는 노화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놓은 인터뷰 내용을 읽고 난 후 다시 그림을 보자 그때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그림을 구약이라고 한다면 그림에 대한 설명이 신약입니다. 그림을 보지 않고 설명을 듣는다면 얼마나 건조하겠습니까? 반대로 설명이 없이 그림만 본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설명을 듣고 그림을 볼 때 그림이 생나고 그림을 볼 때 그에 대한 설명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09:46) 이 세상의 많은 언어 가운데 히브리어만큼 서증의 언어가도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는 산문을 쓰기에 척한 언어가 아니라 시를 적극하기에 적한 언어입니다. 각각의 단어의 그림과 같은 많은 뜻이 당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언어를 택하여 택해서 구약이 기록한 것은 우연히 아닙니다. 또한 인류가 발견 어 발명한 많은 언어 가운데 정확한 묘사가 가장 적합한 언어가 그리스 즉 히러버입니다. 그 언어를 사용하셔서 신학을 기록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감상적으로 가장 풍부한 언어로 구약의 그림을 그리시고 묘사 하고 있어서 가장 정확한 언어로 신약을 기록하셨습니다. 진의 정확한 묘사를 가지고 풍부한 서적 서정성을 가진 구약의 계시를 해석하고 구약의 풍부한 서정신 계시를 가지고 신약의 정확한 계시에 생명을
(10:51) 불어넘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 3. 예정을 이해함. A 예수 계시의 중심성. 이제 우리는 예정을 이해하는 방법에 있어서 예수 계시의 중심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태초와 종말로 시간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서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그시기 구원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가장 빛이 찬란하고 화납니다.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지면 빛은 그만큼 흐려집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가장 하고 찬란하게 드러났고 거기로부터 멀어진 태초와 종말은 그 빛이 가장 흐리고 어둡습니다.
(11:41) 우리가 태초와 종말의 중심에 서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난한 계시의 빛을 잘 이해할 때 마지막날에 이어질 일들을 잘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참신자로 사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666의 숫자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빛이 어두워 잘 안 보인다 할지라도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에게 시된 빛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힘이 하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라고 말합니다.
(12:33)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의 거울은 석경이나 동경이었습니다. 동경을 반질반질하게 닦아서 모습을 비춰보면 대강 형체만 비칩니다. 그래서 사도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희미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고 정말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추어진 계시는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기에는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가 희미한 그것 때문에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계시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의 빛 아래에서 살면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13:22)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B 회고적인 여정 이해. 성인 여정을 절망적 전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영막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이미 믿음을 가진 자기 자신을 회고하면서 태초부터 예정하신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정의 교를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믿어도 예정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결국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 가족이 예정되 있지 않으면 아무리 전도해도 헛수고인데 그러면 그것을 미리 알고 예정한 사람에게만 복음을 전해면 수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예정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라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14:22) 사람의 모든 구원의 예정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예정으로 확인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지 전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전하고 끝까지 기다려 봄으로써 그가 구원으로 여정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 구약의 지식마저도 당시 유연했던 유독교 사단에 의해 잘못 붙어 어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사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상의 존재로서 성도로서 세상의 삶을 살았고 사도로서 최고의 삶을 살았습니다.
(15:11) 그에게 있어서 다메스 사건은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었고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사도로 부름을 받는 처음 얼마 동안 그는 자신이 구원받았던 것이 다메 예수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듭에서 다쓴 사건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은혜가 깊어지고 난 후 그런 다스에서 예수를 만난 구호받게 하신 그 사건이 이미 오래 전에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다스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의 간격이 훨씬 깊어지고 보다 경고해졌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다메스 사건을 자신을 만나 주기 했지만 그것은 이미 자신이 어머니의 대중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16:05)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에서 어메리 태로부터 날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를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고 고백하였으며 에베소 교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더 많이 받고 돌아니 그런 생각이든 것입니다. 은혜의 경험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께서 상세부터 계획하셔서 자신을 태어나게 하시고 이렇게 인도하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이 생깁니다. 이처럼 예전 교리는 은혜를 받는 신자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게함으로써 신자를 격려하는 일을 합니다.
(16:56) 우리는 때로 10년 후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합니다. 10년 후에 우리가 어떤 모습을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핵심 가치가 아닙니다. 핵심 가치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10년 후에도 10년 전부터 훨씬 좋은 그리스도께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주님께서 더 많은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께 더 많은 함께하실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게 되면 우리가 멈춰서 뒤를 회고할 때마다 어 되어진 일들이 결코 자신으로 인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되는 것입니다.
(17:53) 이것이 바로 예정의 은혜를 바라보는 신자의 시각입니다. 사도의 견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한 번쯤은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성도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는가? 혹은 구원으로부터 다시 멀어져 멸망하기도 하는가? 우리가 받은 구원은 흔들릴 수 없이 안전하고 또 영원한 것인가? 예정의 교리는 우리를 심하게 하거나 방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정절 있게 하고 하나님 앞에 더욱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 그 유용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에를 예정하셨으니 우리는 코한 존재도 아니며 속에서 살아가는 피조물도 아닙니다.의 인생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그 계획대로 살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 계획대로 살지 않을 때 우리를 꾸짖으시고 인격적으로 설복시키셔서시켜서 당신의 계획대로 살게 하십니다.이
(18:57)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방종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보다 순결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오직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고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신자답게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으르게 살아가는 신자들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신 생명인지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43) 그러나 한편 은혜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지만 구원은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혀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놓아 버리시면 우리의 부지런함도 헛 것이요 우리의 결심도 헛것이요 우리의 노력도 불거품이 됩니다.이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사망 가운데로 데려가며 왕노릇하던 악한 사단의 세력은 그 등뼈가 부러지고 나동그라졌지만 아직까지도이 세상은 우리가 완전히 승리한 세상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죄와 유혹, 시련과 핍박이 구원받은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안팎해서 역사하여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 마음을 부단히 앗아갑니다.
(20:36) 그러므로는 힘만으로는 죄와 시험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고 그것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처럼 우리는 상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의 손을 꼭들고 절대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셨던 마음입니다. 이 견인의 교리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견인의 교리는 결코 신자의 안전 보장의 교리가 아닙니다. 독이 한 번 구원하신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는다는 교리를 악용하여 타락과 방종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을 위한 교리도 아닙니다.
(21:32) 견인의 교리에 있 있어서 견인이란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속에 신적인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계속하시며 결국 그 은혜의 목적을 완성하시는 성령님 자신의 지속적인 역사입니다. 견인의 교리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끝까지 구원받은 자들을 붙으신다는 사실을 가르킵니다. 그러나이는 또한 진정으로 구원받는 자는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인내할 것이다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이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일시적인 신앙의 염두에 두고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성경 해석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성경 구절 중 하나가 있습니다. 한번 빛을고 하늘의 은사를 보고 성에 참여한 바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 능력을 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22:38)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내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장 4절에서 6절 많은 사람들 이상을 기초로 개혁 교회의 견인의 교리의 부당성을 시작합니다. 신자가 살아갈 수 없다면 신자의 배교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한 성의 가르침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교도촌 오해이 자신이 기념비증 작품에서 유능하게 논중하였듯이 본문에 언급하고 있는 사람 즉 한번 빛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사람은 참된 시자가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를 재해 버릴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40)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물은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하여 버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장 1, 2절. 성경의 이런 지적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이는 타락 곧 배교가 무엇인지 의미를 보여줍니다. 한때 진전 신앙을은 사람처럼 열심을 열심히 주를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일에 흥미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참으로 구원을 받은 신자가 아니라면 시간이 흐른 후 하나님과 복음과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하여 모든 의미를 잃어버리고 무관심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4:34)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비유에도 입증됩니다.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어 깊지 아니하므로 곧싹이 나오나 해가 도에 다섯 뿌리가 없어 없음으로 말랐고 마태복음 13장 5 6절 여기서 사락은 곧 특정한 실행제를 의미하기보다는 복음의 일부가 아닌 복음의 총체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에 대한 참된 예배로부터 멀어지고 성도의 교재로부터 자치를 감춥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들은 하나님이 구원을 받은 신자를 버리셨다는 사실을 입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신앙에서 보여주는 진지한 외적 모습에 불구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구원을 이루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입증했을 뿐입니다.
(25:28) 따라서 견인 교리는 오직 끝까지 견디는 자가 진정으로 구원에 일어난 믿음이 지닌 성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택의 교리는 단지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러서 구원의 목적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실 사람들에 대한 선택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아 어 중제적인 효력을 통해서만 입증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어 죽으시고 구속이 적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의 영혼히 단번에 이루어진 연합에서 떨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다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원한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을 몸이 계속해서 떨어져 나가고 다시 붙는 관경을 상수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는 선원철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견인 교리를 확신하게 합니다.
(26:33)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마다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장 29 30절. 여기서 부르심을 입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기로 정하신 사람들이 의롭게 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렬한 아르미니우스 주의자라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목적이 실패한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하나님이 끝까지 견디고 구원받을 것이라고 미리 얘기했던 사람들만 영생을 주도록 미리 청하시다는 생다고 생각하기
(27:39) 때문입니다. >> 약속의 보증을 붙잡습니다. 절대 의존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절대 순종합니다. 아직 곳곳에 위험과 도발이 도사리고 있고 마음의 죄와 영혼의 위협들이 남아 있는 이때에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아니하시도록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며 살 때에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품안에 안겨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는 놀라운 임마누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들을 반드시 지키실 것입니다.이 약속의 보증으로 우리에게 오신이가 성령님이십니다.
(28:27) 우리가 낙심하고 뒤로 물러났어도 그것이 영원한 패배와 멸망에 이르게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이미 받은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례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일생 동안 최선을 다해 성화의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
(29:18)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깨끗게 하시고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영화롭게 하셔서 흠없고 티없는 자녀로 아버지 앞에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날을 꿈꾸면서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도 빛돌로 나타나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그 은혜를 목말라하며 세상을 이길 거룩한 힘을 진를 통해 공급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이 지상에 남겨져 있는 우리 신자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때까지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영광스럽게 변화시켜 주실 때까지 주님을 본받아 우리의 몫에 십자가를 붙들고 끝까지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0:15) 아멘. >> 아멘.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의 네 번째 대지
이 땅의 성도들 2.
10장 예정과 견인 ㅣ요약
I.예정이란 무엇인가
-예정: 도덕적 피조물들에 관한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작정: 선하신 지혜로써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해 가지신 의지임
II. 역사의 중심 예수님
-구원에 대한 이해는 태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에서 시작됨
-구약계시와 신약계시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
-예수님을 통한 구원은 모든 역사를 앞뒤로 갈라 놓음
III. 예정을 이해함
A.예수 계시의 중심성
-예정은 예수 계시의 중심성의 빛으로 이해함
-태초와 종말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 안에 하나님의 계획이 가장 잘 드러남
-거기서 멀어질수록 희미함: 영적인 어둠과 지적인 눈덮으로 더 희미함
B.회고적인 예정 이해
-성경의 예정 이해: 전망적이 아닌 역망적 이해
-불신자의구원 여부가 아닌 신자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회고임
-예정교리를 이해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됨
IV.성도의 견인
-하나님은 구원받은 신자를 끝까지 지키심
-이러한 약속의 보증으로 신자에게 오신 이가 성령님이심
-낙심과 후퇴 가운데서도 그것이 영원한 패배가 되지 않게 하심
STUDY BOOK
제10장 예정과 견인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1. 예정은 하나님의 작정이라는 더 넓은 범주 안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이란 무엇입니까? (pp.288, 각주 195)
2. 예정의 두 부분인 선택과 유기는 무엇입니까? (pp.289)
3. 예수님을 역사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pp.290)
4. 예수 계시의 중심성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계시를 이해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두 요소는 무엇입니까? (pp.293, 각주 197)
5. 예정을 이야기할 때 역망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pp.294)
6. 신자에게 있어서 십 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보다 더 소중한 핵심가치는 무엇이며, 그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pp. 296~297)
7. 견인이란 무엇이며, 견인의 교리가 암시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pp.299)
8. 히브리서 6장 4-6절요한복음 15장 1-2절 말씀이 배교에 대해 가르치는 바는 무엇입니까? (pp.301)
9.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존 오웬 (John Owen)이 말한 바를 생각해 보고, 이 땅에 남겨진 신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pp.303~304, 각주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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