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부활과 영화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Notes
Transcript
(1)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12장 부활과 영화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nutaJxFgzRg
Transcript:
(00:01) 예.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12장 부활과 영화 1.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역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잘 들리시죠? 네. >> 네. 그래서 바울도 영화를 맨 마지막에 두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또한 영화는 구원 적용에 있어서 신자가 부활의 욕를 받는 것을 가르킵니다. 그러므로 영화는 다음과 같이 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란 구원 사역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이다.이 이 영화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그동안 죽은 모든 신자들의 육체를 죽음으로부터 살려내셔서 그들의 영혼과 결합하게 하고 어 살아 있는 모든 신자들의 욕를 변화시키셔서
(01:07) 어 모든 신자들이 일시에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완전한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영화라고 부르는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 단계에서 변화되는 신자의 몸에 영광스러움 때문입니다. 성경의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은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니 우리가 흘게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상을 입으리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들은 들은 그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새로운 나라에 살기에 적합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02:10) 그런데 다시 입을 그 몸은 이제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된 몸이며 또 죄에 의하여 영향받을 수도 없는 완전한 몸입니다. 그때에는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린 징으로 나타나던 육신의 질병과 노세함이 없을 것입니다. 건강하며 전히 창조의 질서를 회복한 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오늘날 죄의 인의 육체와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니 그 아름다움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부활를 통하여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이 범죄하였을 때 그의 육체 또한 영혼과 함께 창조의 아름다운 광를 잃어버렸습니다. 또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 악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육체는 더더욱 본래의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되었고 자연적인 노아와 함께 잔해지는 육를 보며 창조의 목적을 떠난 인간에 대한
(03:15)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을 받을 때에는 늙음으로 상실한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창조시의 찬란한 광위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늙음과 질병, 연약함과 부족함이 없이 나타나게 될 우리의 몸의 영광스러움 때문에이 단계는 영화라고 불립니다. 둘째로 그 단계에서 신자가 누리게 될 우적인 지위 때문입니다. 신자가 썩지 않는 부활의 몸을 받는 날은 커다란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러하고 우주적으로 그러할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의 오랜 적수이던 죽음이 중식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04:09) 그가 모든 온수를 그 발 앞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로를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이 받을 온수는 사망이니라. 그날이 오면 성도는 우인 승리를 누리며 그리스도와 함께이 세상의 심판날에 어느 정도 참여할 것입니다. 구원이 최종를 성취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영화를 통하여 누리게 될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그는 더 이상이 세상의 자원으로 부족 인하여 육체가 고통을 받거나 하늘 자원의 부족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날이 없이 그 영광스러운 우적인 지의를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고대하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셋째로이 단계에서 완전히 회복될 피조 세계의 영광 때문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썩지 않을 부활의 몸을 받을 때 온 우주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으로 완전히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05:07) 저 창조대 인간의 첫 어 피조물 중 마지막이었던 것처럼 두 번째 창조인 영화에서도 인간이 부활의 몸을 입는 것으로 피조 세계는 완전히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온 피조 세계는 창조시의 아름다운 광위를 회복할 것이며 거기서 영광스러운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을 배울 것입니다. 회복되는 비조 세계는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리는 신령한 상호 교통을 회복할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전자하는 피조물 가운데 모든 갈등은 중식될 것이고 만물 사이에 신령한 연결이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에 찬란한 빛이 온세게 다시 들어올 것입니다.
(05:57) 그리고 그로 인하여 인간은 회복된 피조 세계 안에서 원래의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을 할 것입니다. 에이 그 나라를 소망함.이 땅에 살았던 경건한 신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간절한 소원 하나는 바로 죽음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말합니다. 내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자 심판이지만 신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성화를 완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이 땅에 있는 동안 모든 신자들은 성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순종하고 게을러서 >> 어 조금밖에 성화되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체의 순종함과 부제함으로 주님을 더 많이 닮아갑니다.
(06:55) 성화를 위해 많이 애쓰는 성도와 그렇지 못한 성도의 차이는 사람과 짐승에 비일 정도로 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많이 성화된다고 해도이 땅에서는 완전히 성화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죽는 순간 육체와 영혼이 갈라질 때 그 영혼을 순전하게 하셔서 그가 못 다유 성화를 완성시키십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히 거룩해진 상태에서 일체의 죄와 연약함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 죽음 이후에 성도의 영혼의 상태입니다. 이것은 온전히 거룩해져서 어떤 오염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온적게 된 의인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07:46) 그 나라에서 여기서 못룬 성화가 완성될 것이기에 사도 바울을 비롯한 많은 건한 신자들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약속된 구속은 죄로부터의 구속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 때문에 도래하게 된 죄의 비참한 결과로 어부터의 구속도 포함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죽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우리의 영혼이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죄로부터의 해방는 해방되었지만 아직의 결과로부터는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가 영혼과 떨어져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후에 우리의 영혼이 성화가 완성된 상태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 영화라고 하지 않습니다.
(08:40)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이 땅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육체들을 먼저 살아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부활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육체가 성화와 안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영혼과 다시 결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의 몸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활하실 때의 상태와 똑같은 상태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육체는 잠시 아리마다 요셉의 무음에 앉지되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사울 예수님의 육체가 다시 살아나고 예수님의 영혼이 그 육체 속에 만나서 부활가 되셨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모습은 이전에 죽 어 주님을 만나 보았던 사람들이 상상에서 올 정도로 변모하셨습니다.
(09:41) 환난하고 영광스러운 빛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그 호류한 영광에이 땅에 있는 그 무엇보다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거룩하게 된 상태에 넘어서 영광스러운스럽게 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영광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 효과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적 영광의 효과와 말미암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을 바라게 되는데 그것은 지극한 거룩함 거룩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품으로 다시 만들어진 인간의 상태입니다. 이것을 영화의 상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영화는 육체와 영혼의 전체가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이 형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10:34) 마지막에 우리들이 누리게 될이 완전한 축복은 성화와 비교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상태이며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이 땅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탄식하면서 기다릴 바입니다. 이것은 바울 이것을 사도 바울은 썩을 것이 썩지 않는 것을 잊고 죽을 것이 죽지 않는 것으로 입는다고 표현해 했습니다. 썩을 것은 육체를 가리 것이며 썩지 않는 것은 영광스러운 영혼의 상태를 가르키는 것입니다.이 두 가지를 함께 만나면서 잘나는 영화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이 B 신자와 영화 A주의 재림의 날 영화는 주의 재림시 승리의 나팔소리가 올려 퍼지는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11:29) 예수님이 처음이 땅에 오신림은 너무나 철라하고 미약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 없이 한 마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음을 시를은 이에는 예수님이스러운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영광 가운데 이어집니다. 그날은 도적이 오는 것과 같이 올 것이지만 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렇지 않으며 찬란한 영광 가운데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들이 경험하게 될 환의가 가득찬 승리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내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지금까지도 사망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12:30) 그래서 죽음이라는 카드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굴복시켰고 그들을 이겼습니다. 이것이 바로이 세상에 아직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의 상태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지 못하고 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삶의 모습입니다. 사망은 마치 총을 견고 요인을 노리는 암살자와 같이 정확하게 겨하고 그들에게 죽음을 그러나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영광데 부활하시고 우리도 부활시키셔서 사랑하는 육체와 순결해진이 다시 만나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덧게 될 때에 사망이 그렇게 된를 쏜다고 할지라도 그가 죽음에복할 사람은 없을 서 그처럼치 있는 것입니다.
(13:26) 음이 더 이상에게 사지어주는 속의성이 바로 영화이고든 성들은음이라는 질병이 끊임없이 자신들을 겨냥해도 죽일 수 없는 찬란한 불멸의 영광스러움을 덧게 될 것입니다.이 사실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육체의 부활. 마지막 날의 부활과 함께 우리의 육체와 영화를 결합시켜서 완전히 영광스러운 상태로 들어가게 하시는 영화는 육체의 부활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영화는 반드시 육체의 부활과 함께 이루어지며 모든 그리스도와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그리고 동시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들이 태어난 날짜도 다르고 성화의 정도도 다르고 죽음을 통하여 성화가 안생된 날짜도 다릅니다.
(14:23) 그러나 요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 나중에 죽은 자들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동시에 차별 없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영혼과 나누어진 그들의 육체를 다시 살리셔서 어 성화의 완성된 상태에 있는 영혼을 결합시켜 상태로 돌 데려가시고 아직 죽지 않는 않고 살아서 어 주의 재림을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그들의 성화도 안성하시고 그들의 영혼의 영광스럽게 하셔서 불멸의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물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15:18) 요한복음 11장 25에서 26절 영원의 이처럼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때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동지성은 교회의 일치 일체성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상세전에 우리를 택하실 때 아무렇게나 아무 시간에나 택한 것이 아니라 한반에 우리 모두를 택하셨습니다.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또 당신이 선택한 모든 사람들의 구속의 근거를 한 번에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를 영광의 주가 되게 하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16:12) 그때 역시 한 번에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로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죽었던 모든 성도들은 한시기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셔서 순결한 영혼과 결하여 영화롭게 하시고 살아서 그리스도 재림을 보는 이들은 또 그들과 함께 한 지체로서 영화롭게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계획을 다음같이 말합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는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미없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5장 27절.이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아무리 훌륭한 목사가 목회를 하고 진실한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밖에 사랑하는이가 없는 순결한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모여도 흠이 없고 티가 없는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7:16) 물론 진실한 목양이 이루어지고 성령의 축복이 있고 영혼들이 진실한 신자가 되기 위하여 애통하며 끊임없이 자기 깨어짐으로 성화의 삶을 사는 교회나 아무렇게나 믿겠다고고 뜻을 세우고 모인 교회의 차이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깨어짐이 있고 순전하게 목양을 받고 은혜를 많이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두 받으실 만하게 아름답고 흠미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교회가 되는 일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단번에 이루시는 영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이렇게 영어롭게 하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3.
(18:10) 영화의 결과 이렇게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온 성도가 동시에 영화롭게 되면 그 결과 두 가지 영광스러운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것은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드러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첫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지금은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가 빛으로 나타나고 썩어가는 세상에서 소금 같은 존재로 살아감으로써 어두운 반바다에 반짝이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진실한 신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생활을 위해 많이 노력해서 예수 닮은 모습을 가지면 가질수록 어두움 속에서 정확하게 빛을 바라는 등대의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8:57) 그러나 어두운 반바다를 대과 같이 화나게 비추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상태에서는 그 일이 가능해집니다. 어두운 세상에서는 빛처럼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어풋이 벌 수 있었지만 신자들이 영화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더욱 찬란한 빛을 바라 자기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곳을 영광의 빛으로 밝히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빛 안에 들어오는 어떤 사람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앞에 부복하여 절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정도의 찬란한 영광의 빛을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의 영화가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해는 효과입니다.
(19:46) 이 아들들의 자유 둘째로 하나님의 자녀들 영광스러운 자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소을 받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죄, 가난 육체의 연약함, 굽은 성품들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속박합니다. 그 가운데이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속박하는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죄입니다. 우리가 끊임없는 성화의 삶을 살아도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여전히 호시탐 기회를 노리며 우리 안에서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예를 씁니다. 우리 안에서는 행하고자 하는 은혜의 강력한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법이 역사해서 우리를 공고하게 합니다.
(20:38) 물론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이 세상에서 고와 같이 홀로 내려두지 아니하시고 시시트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능력에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시고 죄에 이길 수 있는 죄도 부어 주시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속박이 경험합니다. 그런데 영화로운 상태가 되면이 석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 깨어짐에 눈물도 없고 죄를 참여하는 자, 피어린 통곡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따라가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유혹도 마음을 빼앗기며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탄식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와 성령 하나님일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재가 있고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와 어떤 불라와 담장도 방해물도 없이 완전한 결합을 이루는 영화의 상태를
(21:44)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이 그토록 영광스러운 몸을 변화된 날을 목말라하며 그려워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명수 강가에서 경험하게 될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죄와의 힘겹고 피곤한 싸움을 모두 끝내고 어떤 죄에 의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방해되지 않는 지극히 순전하고 완전한 상태 속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목말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가 아무리 좋은 성도라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과의 교재가 자주 단지되는 것을 경험합니다.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부르는 아름다운 헌신과 사랑의 노래는 도망난 노래들이어서 한국에 완성된 멜로디를 이루지 못합니다.
(22:44) 끊어진 사이사이마다 그리스도의 교재를 잃어버린 죄들의 날들이 있고 그 속에서 경건한 성도들의 영혼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신음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들 안에서 금심하시며 하나님 아버지를는 아파하십니다.이 이 때문에 실로 아무리 뛰어난 성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이 세상에 사는 것이 완전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나를 그렇게 송하는 것입니다. 4. 영화가 구속 목적을 완성하는 이유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됨.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이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흠없고 티없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죽음으로 우리를 온전히 성화시키시고 부활로 우리들을 완전히 영화롭게 하셔서 당신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게 하십니다.이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의
(23:48) 재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이 신자들에게 그토록 사모하는 그리움이 되고 경건한 성도들이 사도 요한과 같이 주께서 속히 오시겠다는 약속에 대해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했던 이유도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영화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화에 대한 소망은 오늘 성화의 삶을 살면서 예수님을 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슴벅찬 희망이 되고 영광스러운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신앙의 중요한 요소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시대입니다. 2년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했습니다.
(24:37) 그 2천년의 역사 속에서 믿음을 따라 살았던 성도들 한순간 구차한 목숨을 얻기 위해 주를 배반하는 대신 핍박하는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었던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습니까?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지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고통을 고통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그 영광스러운 힘의 비밀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환과 시련이 려오고 죄와 유혹이 기승을 부리고 우리의 영혼이 공격을 받고 우리의 육체가 피곤할 때에도복하지 아니하고 다시을 우고 하나님에 은혜를 구하며 성의 길을어가게 만들었던 그대함이 어에서 그것은 재림신에서혹이 밀려올 때 그들은 생가를 다시 오실광의 주님을 어떻게 핍박과 고난이 가득하고 원수 생명을
(25:43) 내어놓으라고 소리칠에 그들은 서로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고란은 내게 영광과 좋히 비교할 수 없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부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가난해지기를 자처했던 사람들 세상에 살아 있으나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죽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죽이며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힘에 넘치는 희생으로 힘에 지나기까지 수고하며 자기를 고단한 노의 연대기에 내어주었던 그 비결이 바로 재림 신앙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미 사도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절대로 주님은 빨리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들은이 세상의 육체의 욕심대로 살고 경건을 잃어버린 채 방탕함에 자기를 내어준 삶을
(26:48) 살았습니다. 내일이라도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고 큰 나팔소리가 올려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우리는 그날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는 가운데 사모함으로 기다리며 살고 그날에 누릴 영광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의 삶이며 영화과 구속 목적을 완성하는 이유가 됩니다. >> 비즈물을 새롭게 하심과 관련됨. 그리스도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하시는 이것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온 비조 세계와 연결되 있는 것입니다.
(27:40)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 잘 나는 적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 창조의 아름다운 세계는 인간과 함께 연결되어 있었고 모든 피조 세계의 연결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충만히 거하셨습니다. 그래서 피저분은 절대로 허무한데 굴복하지 않고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 창조 세계는 하나님을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죄의 죄를 짊어진 비참한 인간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인간과 관련되고 맺고 있는 온 창조 세계가 최초에 하나님이 주셨던 창조의 영광의 빛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28:35) 아담 한 사람이 죄를 범하자 아담과 함께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있었 있던 온 피조 세계가 형벌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은 창조의 빛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자연의 상태는 마치 하나님을 믿기 전 여러분의 상태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믿고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영화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잘라는 빛이 여러분 속 존재 속에서 아름다게 비치게 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는 것처럼 자연히 본래의 아름다움을 회복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날을 온 피세가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가르쳐서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합니다.
(29:32) 하나님께서 마녀의 주로서 모든 마녀 가운데 계시게 될 날 대시게 될 그날이 바로이 세상의 신자들이 영화롭게 되는 날입 날입니다. 그날의 아기는 모든 심판의 심판의 부활로 나타나서 지옥에 던져질 것이고 죄의 온이었던 사탄도 영원한 형벌에 처될 것이며이 세상은 죄가 들어오기 전 창조 시대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회복할 것입니다. 위에는 영광스러운 하늘 아래는 찬란한 땅의 세계로 하나님을 함께 높여 드리는 영광스러운 세계가 될 것입니다. 세상이 될 것입니다.이 때문에 영화가 구속 목적을 완성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주님 오시는 그날을 바라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아무렇게나 굴리고 있는 여러분의 육체와 영혼이 언젠가는이 세상에 있는 물질로서는 도달할 수
(30:35) 없는 찬란하고도 영광스럽게 변화될 욕와 영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끊임없이 죄와 짝하고 갈등하며 유혹에 넘어져서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 앞에 더러운 자신의 삶으로 인해 고통하던 모든 눈물과 탄식의 날이 끝나고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우리들이 덧입게 되어 흠이나 티가 없이 우리 온 성도들이 온전히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어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한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이 땅에 있는 동안에 그토록 바라던 일이 아닙니까? 어느 때에야 우리가 참된 신자가 될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의이 강인하고 더러운 육신에 속한 자아가 죽어서 우리의 몸과 영혼에 완전하고 거룩한 자유를 누리며 우리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을까요? 옥말라하고 고대하던 그 일이 그날에 말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그날에
(31:39) 우리는 예수님과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 신랑이 오는 날까지 잠시이 땅에 머물러 고단한 성화의 길을 가는 것을 불해서는 안됩니다. 그날의 영광스러움을 생각하면서 잠시 주를 위해 고난의 가벼운 것을 무겁게 여기지 아니하고 하차는 것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진실한 삶을 살다가 우리 모두 나팔소리가 올려나올 때 한 사람도 소된 사람이 없이 영광스러운 머물입고 그분 앞에서 손에 손을 잡고 어린양 예수를 찬양하게 되는 그날이 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 아멘. >> 아멘.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의 다섯 번째 대지
구원의 완성 1
12장 부활과 영화 |요약
I.영화(Glorification)란 무엇인가
-신자의 죽음: 죄에 대한 심판이 아닌 성화를 완성하시는 과정임
-영화는 단지 죽은 후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이상을 의미함
-그것은 부활과 함께 이루어지는 몸과 영혼의 영광스러운 상태임
II.신자와 영화
-영화는 부활과 함께 신자들에게 차별이 없이 동시에 이루어짐
-영화의 동시성은 교회의 통일성과 깊은 관계가 있음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한번에 지체들로 연합되게 하셨음
-마찬가지로 주의 재림 날에 생사 간에 모든 성도들을 영화롭게 하심
-부활한 육체와 영혼을 결합하사 완전하게 만드심
III. 영화의 결과
A.영화된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게 됨
B.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가 이루어짐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방해 없는 영광스러운 교제
-하나님과 어떠한 불화나 방해물이 없이 완전한 결합임
IV. 영화가 구속 목적을 완성하는 이유
-신자의 영화를 통하여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시의 아름다움을 회복함
-신자의 영화는 온 창조세계가 구속목적을 완성하는 마지막 완성임
STUDY BOOK
제12장 부활과 영화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3:21)
1. 그리스도께서 구원사역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마지막 단계인 영화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pp.327)
2. 영화의 단계에서 신자가 입게 되는 몸의 성격은 어떤 것입니까? (pp.328)
3. 영화의 단계에서 신자가 누리게 될 우주적인 지위란 어떤 것입니까?(pp.329)
4. 인간의 범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피조세계의 영광은 영화의 단계에서 완전하게 회복될 것입니다. 피조세계가 창조시의 아름다운 광휘를 회복하는효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pp.329~330)
5. 신자가 죽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순전하게 하셔서 성화를 완성 시키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영화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pp.331)
6. 신자가 영화롭게 되는 시기는 언제입니까? 그 때 신자가 경험하게 될 환희에 가득 찬 승리에 대해 사도 바울은 무어라고 고백합니까? (pp.333, 고전 15:54-55)
7. 영화는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화의 동시성과 교회의 일체성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보십시오. (pp.335)
8. 영화의 첫 번째 효과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이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 (pp.336~337)
9. 영화의 두 번째 효과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이 그토록 영화의 날을 그리워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pp.338)
10. 이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하면서도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pp.339~340)
11. 영화가 구속 목적을 완성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pp.341)
12.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성도들을 동시에 영화롭게 하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장을 읽고 느낀 바를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pp.341~3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