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구속과 회복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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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8장 구속과 회복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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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 물 좀 잠시만요. 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자기 봉원이었으며이를 통하여 성취된 것은 우리의 구속이었습니다. 그분께서 피흘리시고 죽으시는 자기 봉원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하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었으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영화롭게 될 수 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리고 신자인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이 모든 일의 보증이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리적인 용어로 화목, 칭의, 성화, 자녀됨, 그리고 영화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우리가 믿음을 통해 얻게 되는 구원, 믿음을 통해 참 해명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의 실제가 무엇인가 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01:22) 성경은 구원의 실제를 세 가지로 묘사합니다. 첫째는 의롭다 하심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며 셋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이 세 가지는 각각 법정관계, 인간관계, 가족관계에서 빌려온 그림입니다. 이처럼 여러 각도에서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면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가슴에 다가올뿐 아니라 구원받은 자녀답게 살고 싶은 소원이 다시 솟아올라서 순종을 동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화목하게 됨. A 적대감과 거래감을 거둘심. 우리는 먼저 화목에 대해 살펴보는 모든 것을 시작으로 구속을 통해 회복하신 관계를 순차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02:16) 첫째로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화목은 특별히 인간관계에서 빌려온 그림입니다. 신규 측면에서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적대감과 거래감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구원의 사건이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적용됨으로써 적대적이고 소한 관계가 모두 분산되고 하나님과의 사랑이 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소사 솟아 부으시는 진노를 온 몸에 받으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먼저 마음이 움직이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임이 아니요.
(03:11)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죄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인 우리를 향해 가지고 있던 거리검을 버리시고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이것이 우리에게 드려집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두렵기만 하던 하나님은 이제는 아버지 아버지로 여기며 가족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단지 나를 죄 없는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실뿐 아니라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하며 화목을 누린 것이니 성경은 말합니다.
(04:01) 곧 우리가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 또 그의 삶 의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런지 그리스도의 죽음은 화목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독재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던 적대밤을 몰아내고 아담이 타락전에 가졌던 평화와 신교의 상태로 우리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죽임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된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되는 근거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죄가 정가되에 정과 정과에 이르도록 정가되지 죄가 정죄에 이르도록 전가되지 않음으로써 화목이 이루어진다는
(05:05) 개별적인 언급이 나오고 또한 죄인께서 또 다른 의가 됨으로써 신위의 일을 통해 화목을 이루게 된다는 언급도 나옵니다. 말할 필요 없이 화목을 가져오는 시민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입니다. 지키며 살아야 할 화목의 관계 이렇게 화목하게 되면 더 이상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을 취소시켜서 지옥으로 보내시면 어떻게 하나하나 하는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06:03) 이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과의 화목이 가져다주는 효과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목 속에서 아무리 세상이 요동해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 흰 이빨을 드러내고 우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대칠 수 있습니다. 내가 너의 휘장을 찍고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우리 주님을 만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근거로 그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회복시키신 화목의 관계는 계속해서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 관계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 앞에 신령한 소심 소심함을 지녀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믿지 않는 사람이 볼 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06:58)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내가 이래도 될까? 내가 이렇게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싫어하실 텐데 하나님과의 화목이 깨지면 어떻게 하나? 다시 하늘 자원이 끊긴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고통을 맛보기는 싫은데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더욱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이 화목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가는 신령한 소심함이 우리의 성화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하나님과의 화목을 잃어버리고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어 있다면깊이 회하고 하나님께 아가야 합니다. 자가 그 긴 고생끝에 눈물을 흘리며 아가서 아버지의 품에 것처럼 말입니다.
(07:46) 그렇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죄가 진같이 죽을지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다시 화목의 관계를 회복시키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하늘 자원을 힘믿고 살게 하실 것입니다. 신 성경에서 말한 의로 의롭다 하심입니다. 아 성경이 뭔하고 있는 또 하나의 구원의 숙제는 친이 그런데 칭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의 의라는 용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성서 신학에서의 개는 매우하고 어려운 신학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은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속속 속성적 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의 속한 의를 읽컫는 것입니다.
(08:44) 하나님께서 거룩함이 있는데 그 거룩함에 도전하는 것들에 대해 방어하시는 성품이 바로 하나님의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이 두려운 일이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가는데 억울한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이 사실이 기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산다고 할 때 그것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거룩함에도 보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세상이 되도록 살아간다는 의미를 의미가 됩니다. 둘째 율법적 의미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행한 행하면 겁날 것이 없고 그것이 그 사람의 의가 됩니다.
(09:38) 율법의 요구를 모두 행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찾아온 죽음이라는 질병에 의해 망가진 존재가 되어 버렸는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율법적 의를 완전히 성취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재물이 되어 주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셋째로 복음적 의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율법적 의로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따라 죽으신 것이음 당신 자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인함이었습니다.
(10:26) 께서 예수님을 하나님 앞에 당신이 위하여 죽으신 죄인들에 대한 의를 가지게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 의를 놓어 주시는데 이렇게 해서 받게 된 의를 복음적 의라고 말합니다.이 복음적 의는 그 탁월함에 있어서 율법적 의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 비교적 혹은 상대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통해 받게 된 복음적 요인은 완전히 의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낮지 못니 결단껏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11:2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추어지는 복음적는 강건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헌신적으로 율법을 짓고 일평생를 써서 얻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완전하고 찬란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가 우리에게 정가되어서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칭의는 법정적 선언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 이것을 우리는 칭의 또는 이신칭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근거로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로운은혜로운 선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 25절은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13) 인간의 문제는 우리는 죄인인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그분의 거룩하심 때문에 그 앞에서 심판받고 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의롭다고 칭해 주십니다. 오래 전에 제가 알고 있던 한 젊은이는 군에서 타령하였고 그 후로 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하였습니다. 경찰만 보면이 골목 저골목으로 피해다니고 멀리 여행 갈 때도 꼭 시 버스가 아닌 기차만을 이용하여야 했습니다. 그는 비록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항상 불안에 떨었습니다. 지나가는 순차만 봐도 두려워하고 저 멀리 헌병이서 있는 것만 봐도 도망쳤습니다.
(13:05) 그런데 그러다가 결국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나서 옥사리를 하고 30세가 넘은 나이에 다시 남은 복군 복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길거리에서 경찰을 보고 두려워 도망가거나 주민 등록도 없이 숨어 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죄값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죄값을 치르지 않고도 더 이상 지명수배를 받은 죄인처럼 도망지 않게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자기간 지은 죄에 대하여 사면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당국의 선처로 병 자수 신고간에 자수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그 죄에 대하여 사면을 다고칩시다. 그는 이제 이전처럼 순찰차를 두려워하거나 헌병을 피해 도망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13:54) 왜냐면 이제 그는 법적으로 의로운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타령병으로서의 법적인 책임으로부터 면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모든 죄는 해결되었고 누구도 더 이상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이 가져다 주는 유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것을 칭고 합니다. 한 사람이 죄를 고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죄가왔습니다. 우리가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결코 우리는 죄없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법원에서 판사가 죄 없다고 선언이신 것은 있는 죄를 없애 준 것이 아니라 그의 죄 없음을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행위는 그러한 선으로 법정적인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14:44) 신명기 25장에 재판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제할 것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성경 전체에서 의롭다 아 의롭다 칭한다. 칭위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고쳐 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를 의롭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린 죄인이며 우리 안는 죄 우리 안에는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당신의 최종적인 구원으로 당할 수 있으시는 것입니다. 이제이 사람은 의롭다. 더 이상이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에 대해 거론하지 말라.이 이 사람은 이제 죄가 없는 것으로 친다. 이러한 측위가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15:39) 성경에서 칭위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그림 같은 묘사를 하나 속하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내 죄를 제하여 버렸으나 내게 아름다운 옷을 입리라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이 이 구절은 주님 앞에서의 우리의 칭의에 대한 영적인 표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갑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용납이 표현한 바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우리의 더러운 옷 즉 죄가 벗겨졌다는 것과 또 하나는 정한 관을 씌우고 새옷을 입힌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의
(16:42)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죄의 용서가 이루어졌고 또 의를 덧입혀 의를 덧입히셨으니이는 곧 그리스도의 의리라. 시칭의 근거 그리스도의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다 여겨 주시지만 그 믿음은 구원을 받아들이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밀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기초로 해서 영생에 이르도록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법적이고 은혜로운 행위입니다.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에 대한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17:32)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 모두를 끌어앉고 대신 죽으신 내포적 대신적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우리도 죽은 것이 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정죄와 율법의 저주를 받고 희생 재물이 되어서 사형을 당하실 때 우리도 함께 사양을 당한 것이 됩니다. 그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을 때 우리도 그 요구를 이룬 것이 됩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을 통하여 모든 파괴적인 세력, 악과 고난의 힘, 정죄, 율법의 조주로부터 해방되신 것이 우리가 해방된 것이 됩니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이이 세상에 계실 때 그토록 주님께 도전하고 인간을 철저하게 지배하려고 하던 파괴적인 세력들이 더 이상 우리를 얼어 수 없다는 사실을 입중해 주셨습니다.
(18:30) 그리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언약 관계를 갖게 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게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칭위의 행위의 직접적인 효력은 믿음을 통해 나타나지만 그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근거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불행하면 그대로 불행한 것이고 고통스러우면 그대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불행해도 행복할 수 있고 고통스러워도 기쁨이 넘칠 수 있습니다. 사도 시대에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집도 잃어버리고 친척도 잃어버리고 동족들에게도 외면 당하고 온갖 박핍과 고난을 당하며 죽음의 길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19:25)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불행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불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불행의 세력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그들을 얼거어서 불행하게 만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이 세상에 살지만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도와 같은 마음으로 믿고 사랑하고 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세력이 아직까지도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수시로 공격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이 우리의 하늘 시민의권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삽니다.
(20:13) 이것이 바로 신앙이며 예수 믿는 사람들의 진정한 능력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고통하며 눈물 흘려야 할 시기에 우리는 찬송부리며 인생을 삽니다. 나라와 같이 쓴물을 먹음으로으면서 탄식해야 할 그때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향해 감격적인 찬양을 부르는 것입니다. 사망과 죄의 세력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도전해 오겠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것들에게 사로잡힐 수 없고 더욱이 거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삶. 그것이 사도와 같은 고백 속에서 사는 신자의 삶입니다. 칭위의 구원. 증인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자 죄 수립입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하늘 자원을 공급받는 통로가 끊어졌습니다.
(21:07) 인간의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공급받는 하늘 자원이 없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칭의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날씨 갖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 되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통로를 통해 하늘 자원이 흘러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죄인으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 고갈되지 않는 하늘 자원을 힘입어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게 하는 기초가 됩니다.이 때문에 칭위가 우리에게는 구원이 된 것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이 자기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이끄도록 찬송하였던 것도 바로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아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은즉 더욱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심 구원은 얻을 것이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통한 부르시고
(22:13) 부르신 그들을 통한 의롭다 하심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신자가 그렇게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게 하는 하늘 자원이 자신 안에는 없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금이나 음같이 없어질 것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 그분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삽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이 생기면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자신의 힘으로 살고자 하는 교만이 곧 불순종입니다. 따라서 칭의가 무엇인지를 안 사람들은 모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23:12) 그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시고 우리에게 하늘 장원을 공급해 주실 때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이런 신부를 허락해 주신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저주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됨. A 가족 관계로의 회복 셋째로 하나님의 자녀가 자녀된 것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실제 가운데 또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양자 혹은 자녀됨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기초로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의 이론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4:09) 하나님의 자녀와 대조되는 표현으로는 진노의 자식들, 불순종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가족 관계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한 집안 식구처럼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한 꿈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잠시 무너지는 것 같았고 파괴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사람을 택하시고 한 가족을 택하시고 한 민족을 택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24:5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그들과족관계를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옛 아들들 이스라엘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버렸으며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기보다는 죄와 우상 섬기기를 즐거워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의존하며 살아야 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자 하였고 하늘 자원을 힘입어서 살기보다는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자신의 자원을 삼으며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똑같이이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아들들을 세우셨으니이는 새 언약을 세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의 아들들입니다.
(25:44)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보혈로 새로운 언약을 세워서 옛 언약 아실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정리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새 아들들을 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이 새 아들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용서하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허락하심으로 그리고 그들 안에 영원히 성님으로 내주하심으로 옛 아들들이이 수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와의 가족관계를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이 모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갑고 산 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갑주고 사신 은혜는 두 가지를 가져왔습니다.
(26:35) 첫째는 주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결과적인 것으로서 복음이 주는 모든 유익들입니다. 그리고이 둘은 모두 그리스도의 갑주고 사신 은혜를 통해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B. 자녀의 특징. 하나님의 집안에 입양되어서 하나님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누리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해 주셨다는 점에서 자녀됨은 공원에 관한 다른 그림들과 구별되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층이나 화목 그리고 중생간은 구별되지만 또한 결코 나닐 수가 없음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럽다 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화해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또한 당신의 자녀 삼으실 수 있다는 점에서이 모든 사건은 나누어진
(27:39)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자녀됨 결코 우리의 상태나 내적인 성지들을 변화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법정인 행위입니다. 부모 없는 구화로 다니던 아이를 누가 데려다가 자녀로 삼았다면 그것은 법적으로 그를 자녀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양집에 자녀로 들어왔다 해서 그가 하루 아침에 뒷골목에서 돌아다닐 때에 행실과 마음, 천벽한 행동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새 사람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은 법적인 행위이고 신분에 관련된 행위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법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자녀 삼으셨다는 사실을 성령님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28:33) 하나님은 자녀된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믿는 자 가운데 들어오신 성령님을 가르쳐셔서 양자의 영이라고 부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부자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마음에 강력하게 확신 하게 하하는 것이 성령님의 주요한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 삼으셨다는 법적 문서를 한 장 법적 문서가 한 장 없어도 그 문서보다 더 강력한 효력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님과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서 이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29:33) 그런데이 확신은 우리에게 항상 똑같은 정도로 역사한 것은 아닙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하나님의 큰 사랑과 자비 속에서 사랑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실 공략하고 확신하게 되지만 마음이 식어지고 또 죄 가운데 살아가면이 확신이 계속 넓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의 정도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넷째로 자녀됨은 인간과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할 때 이것은 성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부 성자 성령 사위 일체시기 때문에 함께 역사하십니다.
(30:31)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할 때는 성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집에 사는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은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덮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가족의 이론이 된 것은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권위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자녀됨은 하나님의 권세 권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자녀됨은 자녀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 탁월함 그리고 권리를 주는 것인데이는 법정적 행위이며 법적 행위입니다.
(31:28)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구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시며 모든 성도와 천사는 형제이며 같은 자녀이며 유업은 연구하고 하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 명류관이 가족의 이론으로 만드는 법적인 식물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있는데 우리가 자녀로서 성부 하나님과는 관계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가지시는 관계와 같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절대적이며 한 것이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 하나님의 자녀 있기 때문에이 두 관계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32:27) 그리고 대절대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유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인간의 형성이나 다음은 인간의 공물에 따라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고 자신을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됨의 결과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부여받게 되는 것은 크게네 가지인데 그것은 자유, 명분, 담대함 그리고 징계입니다. 첫째로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누리게 되는 자유는 이중적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는 신분 혹은 상태의 자유이고 또 하나는 자유입니다. 전자는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자들을 성도로 삼으신 자유입니다.
(33:17) 그리고 후자는 영혼과 마음의 자유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자유로 삼아 주신 사람들에게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계신 곳에는 영혼의 자유함과 양심과 율법과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된 자들 안에 심으신 새생명의 원리는 복음의 이치를 따라서 사는 이들에게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살지 않도록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게 만들어줍니다. 그러한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는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로 명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그들은 이중의 권리와 명분을 갖습니다.
(34:07) 이 명분은 영적인 것인데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집안에 입양된 아들로서의 명분을 갖게 되는데 이것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가족들이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참여하게 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모든 가족들을 위하여 갑주고 사신 기업들을 충만하게 누릴 명분을 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후사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광의 모든 것들을 성도의 기업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얻을 후사들입니다. 셋째로 담대함입니다.이 이 담대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34:59)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단지 죄를 향하여 진노하시는 엄격한 분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심을 경험함으로 그분 앞에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우리가 약할 때에도 잘못할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거절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도의 실천을 통하여 가장 잘 경험됩니다. 우리가 비록 약하고 허물이 많아도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35:54) 이 모든 특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누리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 잠시만요. 네. 서길 목사님 244쪽 넷째로부터 시작합니다. 김학재 목사님 계속 읽어 주시겠습니다. 네. 읽을까요? >> 아, 네. >> 네. 네. 넷째로 고난을 통한 징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들을 전혀 삼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지 아니할 때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36:58)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은 아들이 있으리요 이러한 징계는 결코 하나님의 폭력적인 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 고난으로 자녀들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며 그 고난을 인내하는 과정을 통하여 더욱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하시니라. 그리고이 모든 것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데 몇 페이지예요? >> 22 244요. >> 244죠? >> 네. >> 내가 잘못 들었어요. >> 음. 224 >> 244 244 >> 잠에서 못 깨었나 봐요. >> 224네 알겠습니다. 넷째로 네. 아, 네. 다시 이렇게 넷째로 고난을
(38:02) 통한 징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들을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지 아니할 때에 이들을 징계하심이라.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갖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 이러한 징계는 결코 하나님의 욕적인 진노 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징계를 통한 고난으로 자녀들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며 그 고난을 인내하는 과정을 통하여 더욱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38:54) 그리고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리를 많이 물릴 수 있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성돌은 생을 의지할 곳 없는 부아로 살아왔습니다. 원정가 그는 제게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다른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내고 나는 아들이었으니 내게는 그렇게 혼내 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기업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다시 주어졌습니다. 제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창조시의 유업들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이 세상의 아들들은 우리는 권리가 없습니다. 좋은 오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것들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의 지배를 벗어난 것들을 무단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39:51)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한 사랑을 동기로 한 일체의 부지런함으로 성실함으로 그 위혹들을 결코한 참는 일에 힘을 기울려야 하는 것. 하나님은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기업과는 열심히 기업을 경영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성실하고 탁월한 직업 활동을 통하여이 세상의 자녀들이 무단으로 점거한 유업을 되찾고들이 창조의 원래 목적로 사용되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것을 드러내도 힘써야 합니다. 예. 목사님 예. 네.서 서목사님 읽어 주세요. >> 그리스도인 충성 살아가야 할 영역은 단지 눈에 보이는 교회나 선교지만을 위한 성김에만 곡을 하는 것은 성격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40:49) 하나님의 자녀에게는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이 성교적인 삶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적인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만드신이 세상 창조의 원래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이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씻음바된 죄인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심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이 세상의 불신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시다. 그들이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세수 권리를 갖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에 관하여 거룩한 권리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들은 인간 법정에 재판할 권리와 명문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의 법정과 자신의 양심의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41:38)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는 날에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들이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자기의 소유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자유적으로 적은 것에 대하여 진술할 때가 다가오면 그들은 슬픔에 잠길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소유라 생각했던 지상의 많은 것들의 온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진정한 후사가 하나님의 자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이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가졌던 소유권과 제사권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가 부담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하게 했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후에가 그들의 불행한 상을 돌이키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
(42:27) 그러나 하나님의 집안의 자녀가 된 자들은 놀라운 특권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늘 자원뿐만 아니라이 땅의 자원도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들은 기도의 실천을 통해이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얼마나 하늘과 땅의 자원이 넘쳐납니다. 그 아버지의 집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무한한 하늘 자원을 마음껏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는 무한한 하늘 자원을 모르고이 세상에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다툼 살아가니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43:14)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당신 아버지가 되시는 분은 대단한 분이시다. 그러니 그 집안에서 빨리 양자로 들어가라. 그러면 당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인생의 모든 악과 고통 문제, 고통의 문제, 고통스러운 어 영혼의 상태와 삶의 공 운관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을 알려 주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랑입니다. D 하늘 자원의 회복 영생 잠시만요. 네트워크가 조금 바뀌어서 제가 다시 연결할게요. 잠깐만요. 네. 어 예. 음. 괜찮으시죠? 네. 네. 네.
(44:18) >> 네네. 네. >> 제가 좀 바뀌어 가지고 D. 하늘 자원의 회복 영생.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하늘 자원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는데 하늘 자원의 핵심은 바로 영생입니다. 영생의 문자적 의미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결코 그저 무한히 긴 인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조상들보다는 못했지만 어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장수하였던 야곱의 고백을 어들어보십시오. 그는 창세기 47장에서 말하기를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45:05) 오늘날 우리에 비하여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장수하며 산 야곱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이 땅에서 그저 오래도록 사는 인생의 길이만을 연장해 주신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일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이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갖고 하나님의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며 비록 육신은 죽지만 그 육신의 껍질을 벗은 후에는 보다 완전한 영혼의 생명을 누리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생적 관계를 복함으로써 하늘 자원이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복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풍한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46:02) 예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은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회복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하늘 자원이 믿는 자들 속에 흘러 들어가서 그것들로 인하여 사는 삶입니다. >> 네. 예. 네. >> 예. >> 이제 읽어야죠. 예전에는 가난하며 가난의 고통으로 괴롭고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증할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생을 소유하게 되면 가난이나 불의 고통과 실현 이런 것들도 우리를 마음대로 휘둘러서 고통과 결박 속에 살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해서 물질을 공급받고 미움의 고통 속에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용서하신 은혜의 감격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자원을 공급해 주십니다.
(46:57) 아 고통이 닥치면 오히려 그 고통을 인격적인 하느님을 위한 놀라운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늘 차원을 공급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신령과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그 환난 속에서 공급해 주신 하나님의 신적인 생명을 통해 환난을 행복의 행복을 위한 기회로 바꾸고 도전을 위한 기회로 바꾸면서 오히려 그 풍 때문에 완전한 폭로 가까 다가가는 사람들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영생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이 영생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렇고 받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심으로 아담의 범죄로 인해 끊어졌던 관계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전의 관계를 보건시키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을 우리에게 열어 오셨습니다.
(48:02) 또한 가능성만이 아니라 능력도 주십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하여 떨어졌던 죽음과 파멸로부터 스스로 자신의 주인됨을 버리고 십자가의 공론을 의지함으로 영생과 풍성한 삶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이제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가란 영혼을 적시고 고갈된 우리의 마음을 회복하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정체성을 가지고 어두운 이상을 그것처럼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영생을 살한 사실을 확신하지도 못하고이를 싸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생들을 습니다.
(49:01)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것과 우리가 생의 아들인 것을 깊이 인정하면서 그 품에서 앉아서 자녀됨을 회복해 하면서 행복해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 행복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발견했다면 그것은 모두 거짓 장원이며 거짓 능력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비점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하시고 화목하게 하시고 아들을 삼아주신이 모든 총칭하여 성경은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에는 허물 저로 죽었던 자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살려내시고 생명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물이 되었습니다.
(49:56)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그에게 멀어지고자 죄 가운데 살던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전는이 세상의 불순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마귀의 자식들이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함을 얻고 죄의사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과거낸 땅에 있는 자의 자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근의 공한 면에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비록이 땅에 살지만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자원의 세상인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왔습니다.
(50:43) 그래서 자신은이 땅의 자원에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하늘 자원으로 살아가는 하나 사람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돈 많이 벌면 모든 이웃에게 베풀어주고 공부 많이 하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유익하게 하고 높은 죄에 오리면 다른 사람들을 섬기야 합니다. 그렇게함으로써이 세상은 참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자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는 참된 자원이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이 세상에 있는 자원을 가지고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고 그것으로는 불행한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51:30)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가난했고 환난도 만났으며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기도 하고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하늘 자원인 영생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가난한도 부여했고 버림받아도 행복했으며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말할 수 없이 즐겁고 기뻤습니다. 하늘 자원에 사는 삶.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대적하고 원수처럼 행했던 우리 같은 더러운 인간을 하나님의 가문에 용납하시고 입양하여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까? 원수의 집안의 자식을 하나님께서 다시 부르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 앞에서 자녀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52:28)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범죄함으로 초토화시켜버린 장본인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은 수많은 종들을 죽였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일을 저지르고 용서를 빌지도 않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바로 우리 안에서 일어났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일평생 우리와 같이 더러운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이 감격스럽고 놀라운 은혜에 대해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53:20)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셨을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하늘 자원을 공급받으며 살게 하셨습니다. 법적으로 그리고 번성적으로 모두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 망가진 옛사람을 고쳤다기보다는 옛사람을 쓸어내시고 새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이 놀라운 일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이것은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원수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께 저주와 진노를 한몸에 받으셔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사망을 맛보셨고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가난해지셨습니다.
(54:04)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랑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던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고 영생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인지를 생각하며 주님이 그토록 꿈꾸셨던 관계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Yeah.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의 세 번째 대지
구속사역의 적용 3.
8장 구속과 회복 | 요약
I. 화목하게 됨(화목; reconcliation)
A 적대감과 거리감을 거두심
-인간의범죄는 하나님과의 적대감과 거리감을 가져옴
-죄를 통해 적대적이고 소원한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됨
-먼저 마음이 움적이신 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
B 지키며 살아야 할 화목의 관계
-이루어진 화목은 또한 성화를 통해 유지되어야 함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살려는 신령한 소심함이 필요
-화목을 지키려는 소심함이 성화의 동기에 도움이 됨
II. 의롭다 칭함(칭의 ; justification)
-칭의: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죄인을 의롭다 칭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임
-죄인 안에 일어나는 본질적 변화가 아닌 법적 상태의 변화임
-그 효력은 그리스도의 의를 인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발생함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자 재수립이기에 우리의 구원이 됨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통해 하늘 자원을 공급받게 됨
III. 하나님의 자녀 됨(양자: adoption)
A.가족 관계로의 회복
-하나님의 자녀 됨은 하나님과 가족 관계로 살아가는 것임
B.자녀 됨의 특징
-자녀 됨은 칭의, 화목, 중생과 구별되지만 나뉠 수 없음
-이는 우리의 상태나 내적인 성질을 변화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법적 행위임
-하나님께서 자기를 자녀 삼으셨다는 사실을 성령으로 확인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임
-이로써 하늘자원의 법적 상속자가 되어 그것을 누리게 됨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자랑은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임
C.자녀 됨의 결과
자녀됨의 네 가지 특권
1) 자유
2) 명분
3) 담대함
4) 징계
D. 하늘자원의 회복:영생
-하늘자원의 핵심인 영생: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하늘자원으로 살아감
-하늘 소망을 가지고 고난과 시련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음
STUDY B0OK
제8장 구속과 회복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8)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첫번째 공부
1. 믿음을 통해 얻 되는 구원의 실재를 성경은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pp.224)
2.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까? 이전에는 두렵기만 하던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실제적인 변화가 생졌는지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보십시오. (pp.224)
3. 화목의 효과로 얻는 담대함과 화목을 지키며 살기 위해 필요한 신령한 소심함이란 무엇입니까? 이러한 담대함과 신령한 소심함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pp.226~227)
4. 성경에서 ‘의'를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대개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속성적 의, 율법적 의, 복음적 의란 각각 무엇입니까? (pp.228~22)
5. 칭의란 무엇이며, 칭의가 가져다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pp.229~231)
6. 스가라서 3장 3~5절은 칭의에 대한 전형적인 표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는 용납이 표현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pp.231~232)
7.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칭의의 근거는 무엇입니까?(pp.233)
8. 칭의를 구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죄로 인해 끊겼던 하늘자원이 어떻게 다시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게 되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pp. 234~235)
두번째공부
9. 양자, 혹은 자녀됨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pp.236)
10.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특권은 구원에 관한 다른 그림들과는 구별되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 됨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구원에 관한 다른 그림들과 나뉘지 않음 (p.238) 2) 자녀됨은 법적인 행위이고 신분과 관계된 행위임 (pp.238~239) 3) 성령을 통해 자녀 됨을 확인함 (pp.239) 4) 자녀 됨은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임 (pp.240)
11. 죄 가운데 있던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누리게 되는 특권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각각의 특징을 설명하고, 그것이 주는 의미를 나누어 보십시오. (pp.242~244)
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하늘 자원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됩니다. 하늘 자원의 핵심인 영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pp.248)
13. 성경은 구속을 통해 신자 안에 회복되는 화목, 칭의, 자녀 됨을 총칭하여 무엇이라고 일컫습니까? (pp.250, 고후 5:17)
14. 당신을 대적하고 원수처럼 행했던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우리의 본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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