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신자와 성화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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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9장 신자와 성화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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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예, 읽겠습니다. 끝나지 않는 싸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이 세상에 오셔서 누구도 회개할 수 없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시고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렸습니다. 매어 종노릇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고 율법 아을 대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우리를 장악하고 있었던 사탄의 권세 죄와 사망의 법을 산산이 부어버리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대적한 원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실행에 대한 형로부터 해강되었습니다.
(00:57) 우린 더 이상 진노 아래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죄의 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백성들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전혀 삼으시고 우리 안에 생명과 성령의 법을 심으셨습니다. 이제 멸망에 이르지 않을 수 있는 길을 길이 열렸고 죄의 지배를 받으며 죄의 종종 죄의 노예로 살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나타는 허리가 불러 부러져서 설설 기어다니는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이 세상에는 죄가 남아 있고 악한 영들의 세력께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은 끝났지만 도망가지 못한 폐잔병들이 남아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듯이 말입니다.
(01:51) 그리고 우리 안에는 아직도 부패한 본성이 남아 계속 역사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고 충만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이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순종하지 않고 은혜도 안 받고 죄가 융성하도록 내버려두면 우리는 영혼의 생기를 잃어버린 채 죄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이미 구원을 받고 승리를 누린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이야기할 때 그 시제를 과거와 현재, 미래 세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이미 구원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둘째로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는 구원을 말하며 셋째로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02:43) 대로 과거의 구원이란 우리의 영혼이 이미 구원받은 것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제 다시는 정죄함이 없도록 구원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둘째로 현재적 구원이란 성화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미래의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썩음을 썩을 몸을 변화시켜서 영화롭게 하는 구원입니다. 구원 얻는 신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해 감사해야 합니다. 나 같은 쓸모없는 인간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구원해 주셨구나. 아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나 같이 더러운 인간을 왜 이처럼 사랑해 주셨을까? 아 그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 이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미래에 어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03:41) 그래서 죄와의 싸움도 모두 끝나고 자신의 부패성을 인하여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구원의 상태를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영적 긴장 속에 자기 안에 남아 있는 부패성을 십자가에 못 받고 거룩을 우리를 거룩하게 바꾸어 가시려는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에 끊임없이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우린 성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이 시점에서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며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신자의 삶에 대하여 숙구하고자 합니다. 배의 성화의 교리. 먼저 교리적으로 성화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04:26) 성활란 성령께서 구원받은 죄인을 죄의 부패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롭고 계속적인 작용이다. 인간은 원죄에 의하여 물려받은 죄책과 오염을 타고 태어나는데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는 순간 칭위로 말미암아 죄책의 문제는 해결되지만 부패한 번성인 오염의 문제는 여전히 그 사람 안에 남아 있습니다. 중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새생명을 주심으로써 죄의 절대적인 지배가 종식되지만 여전히 잔존하는 죄의 영향력은 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신자 안에 있는 성령의 생명의 역사로 순결하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05:19) 성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계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곧 존재에 있어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초성과 하나님 자신의 도덕적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이를 이를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거룩하심은 하나님 피조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초월성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속에 신성의 영광의 충만을 깃들게 하셨으나 하나님 자신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피조물과 동지일 수 없는 전적인 타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심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하게 될 때에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경험입니다.
(06:12) 이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단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미천한 피조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한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의 무한한 가치와 자신의 존재의 하찮음을 인식하고 낮아지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둘째로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도덕적인 완전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성품 중 일부분은 함께 공유하도록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원래 그것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도덕적 완전성에 비하면 조자팔이 많치 유한한 것이었습니다. 더욱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는 죄의 결과로 들어오게 된 선천적인 부패성과 실행의 반복으로 인하여 그 도덕성은 더욱 부패하게 되었고 많은 결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07:09) 이처럼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도덕적인 완전하심을 뜻하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더러운 죄인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인간의 경험은 적으로는 자신의 존재의 유한함과 미미함을 깨닫게 하고 내적으로는 자신의 죄와 비참에 대한 자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성는 신자 안에 있는 죄의 부패에서 깨끗게 하시는 성님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그한 성의 작용은 인간의 전 본성을 순결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담게 하고 창조의 목적에 합당한 일을 하게 합니다. 성화의 본질 성화의 본질은 다음에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08:02) 첫째로 성화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근대 합리주의와 칸트의 도덕 철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성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보던 전도적인 견해는 인간의 본성의 능력에 의해 도덕적인 개선이 곧 성활하는 견해로 변질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영적인 특성을 무시해 버리는이 같은 경향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와의 신령한 작용은 인간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개선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에 화해하지 않는 많은 교인들을 양산하게 되었고 기독교 신앙의 신령한 특성들은 더욱 무시되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하시는 은혜을 자신의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기회를 삼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윤리적인 생활에 대하여 자기의 의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09:01) 그러나 성화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 영 영 영 영적인 역 사역입니다. 인간의 성안에 있어서 순종함으로 협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인의 성품에 순결게 하는 주체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적인 역사입니다. 둘째로 성은 역사람을 죽이는 것과 새 사람을 살게 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정하는 옛사람 즉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된 성품을 죽이는 것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 안에 새롭게 주어진 세상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을 이루어집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작용에 순종함으로써 신자는 자신을 내지 않은 죄된 본성으로 부패를 죽이게 되고 거듭난 새 사람의 성품은 은혜로 말미암아 활기차게 살아 있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해 가고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 살 수 있게 됩니다.
(10:01) 셋째로 성화는 인간의 전 인격에 영향을 줍니다. 하는 거듭난 신자의 영혼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부패로부터 그 본수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작용입니다. 따라서 성화의 작용이 말미암아 거룩해진 본성을 그의 전 인격과 나아가서 그 인격의 소산의 삶 전반에 영향을 줍니다. 영혼을 병원하는 영혼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기관의 영향을 끼치는데 이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관이 바로 마음이며 마음에 변하는 지성과 정서 의지는 물론 거기에 비롯되는 모든 삶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는 성화의 만 어 성화된만큼만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하여 기대하시고 구속을 통하여 회복하신 목적을 따라 존재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10:57) 그리고 인간은 성화를 통하여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이 땅에 정죄하게 하시고 어 싶으셨던 참사람이 되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참된 신자가 되고 창조의 목적에 부합되는 참된 인간이 될 때 비로소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 수 있습니다. 넷째로 성화는 인간이 합령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신자는 잔조하는 죄의 부패성으로부터 거룩하게 하시는 주체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를 성화되어 가게 하심에 있어서 당신 홀로 일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순종을 사용하셔서 일하십니다. 다시 말하셔서 성령님은 신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의 작용이 있어서 신자를 죄하거나 그를 거실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그와 함께 그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12:00) 읽게요. 종말과 구원 회감에서 하나님 나라로 종말론적으로 바라볼 때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세상 나라에서 하늘 나라로 옮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우리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흑암은 영적인 어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적인여 이해 영적인 총명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알지 못하면 도저히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그 지식이 없어진 이러한 상태가 바로 영적 흑암의 상태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은 대하여 어둠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12:49) 그리고 그 결과 도덕적으로도 흥 가운데 살았습니다. 영혼의 어둠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이 우리의 친구였고 언제나 우리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가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는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삶의 열매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올 가공한 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짓는 죄부터 시작해서 실제 행함으로 짓는 범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받아들임으로써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이제 영적인 어둠을 벗어나 하나님의 계시은 빛 아래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13:34) 중생과 함께 경험한 진리의 빛은 우리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해주고 하나님의 은혜는 윤리적으로 어둠 속에서 살던 삶의 뿌리기 삶을 뿌리치고 빛의 자녀로 빛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지 아니하고 은혜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일을 소망하며 하늘 가치를 마음의 통채 영원한 빛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4:21) 구원은 이렇게 영적인 흑암 가운데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빛체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것은 마치 전기가 그져 캄캄한 어둠 속에 살다가 빛이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께서 구원받고 나면 우나면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신히 확실히 알며이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명한 정숙지를게 되니 왜 내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주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구원입니다.이 이 세상의 가치를 버림 구원받을 때 모든 사람들은 회개하게 됩니다. 더욱 장성한 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의 경우 회개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15:14) 회심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이 가운데 특별히 회개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알고 그것을 가슴 아파하고 그것으로부터 돌이키는 총체적인 전환입니다. 여기에 적어도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로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범죄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둘째로 이로 인하여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죄를 깊이 슬퍼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고통을 드린 것을 깊이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싶다는 강한 소망이 생깁니다.
(15:57) 셋째로 그는 자신이 지은 모든 죄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자신이 죄를 지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가치관으로부터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이제 세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길과 세상의 가치관을 모두 버립니다. 예전에는 나의 온 우주의 온 우주의 중심이었고 인생의 참된 의미는 내가 행복해지는 것에 있다고 믿었고 그 일을 위해서는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고 살았지만 그것이 모두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나 중심의 가치관과 나를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재왕적 가치관을 모두 버리고 나는 단지 하나님을 기대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인간의 참다운 본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16:54) 내가 이제 그렇게 살겠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회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서도 계속 불순종하면서 자신을 위해 살고 마치 삶의 모든 관심이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자기를 섬기데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의 약속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예전의 사고 방식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근본적인 동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결국은 비참한 파멸과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17:40) >> 시 구원의 첫 열매 성령 하나님 앞에 회개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가치를 버린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우리에게 한 가지 짐을 제기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렇게 순간적으로 세상의 가치를 버릴 수 있는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부배성이 한 순간에 깨끗이 해결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분명한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해생고 나면 자기 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어느 한 순간에 돌아서서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물론 거듭난 신자 안에서 여전히 예 본성이 남아 있지만 커다란 방향에 있어서 형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18:28) 그리고 그것은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구원받는 순간에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구원을 받는 자의 첫 열매가 되시는 것입니다. 중생은 신자에게 오시는 성령의 역사는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신자 안의 은혜를 주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자의 새롭게 내적 생명의 원리를 심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성화를 위한 삶이 가능해집니다. 다시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신 자는 영혼 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주입 받게 되고 이전에 그의 영혼을 지배하였던 죄와 사망의 법에 무너지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불리는 새로운 내적 생명의 원리가 영혼 안에 신겨지는 변화를 받게 됩니다.
(19:20) 그리하여 구원받았으나 아직 완전히 거룩하지 않는 신자의 영혼은 죄의 불교과 부패로부터 순결하게 하시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게 하시는 작용 즉 성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반드시 성령이 내주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주도적으로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예수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아주 놀라운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돈 많으면 행복하고 어려움이 생면 슬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쁨과 슬픔의 이유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도 여전히 우리 아내의 성령님이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0:16) 죄로 인해 끊어진 하늘 자원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이 세상에 죄가 많고 우리 안에 불성이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통해 공급하시는 성령님의 놀라운 은혜 때문에 죄와 육신의 정욕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에 대해 주관적인 체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을 때 매우 중요한 운동령이 됩니다.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쉽습니다. 반대로 성령의 은혜가 우리 안에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힘들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힘이 듭니다.
(21:01) 그러나이 은혜가 주관적인 자신의 내면의 체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흘러나와 열매를 맺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갈라디아에서 이야기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인격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자신 안에 열매 없음을 인식하고 그를 본받아 함께 열매를 맺어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이 >>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 이렇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당부에 말해서 교회와 성령의 열매 간의 한광관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에 합당하게 살라라고 가르쳐 간절히 말합니다.
(21:51) 우리가 바울의 편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정황과 빌립보의 진리적 위치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는 어 보스폴로스 해업이 있습니다.이 이 해협은 고대로부터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로인대다. 마르마라 해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이 간늘다란 해업을 헤업 하나를 두고 아시아와 유럽 대륙이 만나게 됩니다. 스포로스페협에서 유럽적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빌립보 지방이 나오는데이 지명은 마게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이세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입니다. 필립보 지역은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커난한 도로가 지나가고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입니다.
(22:45) 에서 빌립보는 역사적으로 헬라 문명과 로마 문명을 전달하는 교도부의 기능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해 두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음에 당하게 생활하라고 공고하고 있습니다. 김세훈 교수는이 점에 권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빌립보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 중에서 특수한 식민지로 빌립보 신민들은 로마 시내에 사는 시민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곳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의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 여기서 살라는 표현의 표현이 변역하기 힘든 말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정치해 나가라 또는 복음에 합당한 시민의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23:31) 이 말씀은 우리에게 바울이 교회를이 세상에 세상에 돌려쌓여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식민지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생각나게 합니다. 마치 빌립보가 이방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로마 신민지로 이방인들에게 로마의의 문화와 로마 시민의 긍지를 보여주듯이 교회는 썩어 썩어가는 세상에 돌려싸여 있는 하나님의 식민지로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어떻게 존재를 보여주어야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이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입니다. 그렇습니다.
(24:19) 사도 바울은 로마의 찬란는 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포기로 존재하는 빌립보 지방과 비교하여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임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늘나라를이 땅에 이식 이의식들이 그것을 보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 나라를 막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빌립보 교회를 거기에 두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아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이들이 원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 하늘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고 자신들의 삶이 실시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화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소명입니다.
(25:11) 그러므로 교회가 생생하게 살아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천국의 참된 맛보기를 맛보기의 역할을 잘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은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 맛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즉시 하늘나라 데려가지 않으시고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너는데 내일 우리를 데리고 가신다면 얼마나 순결하겠습니까? 모든 죄를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데리고 가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를 죄은이 세상에 내버려 두시면 끊임없이 죄 유혹을 받으며 성령으로 괴로워하며 눈물 흘릴 줄 알 흘릴 줄 아시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이 땅에 살게 하십니다.
(26:07) 그래서 하늘나라에 만만 보았더라면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와 같이 하나님 자녀가 되었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 맛보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맛보기가 되기 위해 한 모든 하늘 자원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부어 주시니 이것이 바로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 3. 신앙과 윤리. 여름철의 인력거를 끌고 다니며 수박을 파는 상인들의 인력거 위에는 항상 맛보기 수박 하나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맛보기로 올려 놓은 수박은 상인이 파는 수박 중에 가장 어 상품입니다. 그래서 맛보기로 올려 놓은 수박맛을 보고 사가면 그것만 못할 때가 총종 있습니다.
(26:57) 그러나 신자들이 맛보이는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맛보기는 너무 좋은데 실제 하나님의 나라는 신통치 않은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맛보기 역할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맛보다도 더 맛있게 보여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근접한 맛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김세윤 교수가 지적하듯이 교회는이 땅에 건설된 하나님 나라의 식민지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보여주는 지상에 있는 모형도시입니다.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모형 도시인 우리들을 보며 하늘나라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안에 있는 회개와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의 신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27:52) 그래서 그들이 보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정하게 사업을 하고 세금을 포탈하고 근로자의 이익을 착취하고 높은 사람에게 뇌물을 주고 사업을 확장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하늘나라의 맛보기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늘나라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고 선전하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인생 전체에다가 그리스도 표를 가진 그리스도 표를 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기업을 하면 믿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정직하게 해야 합니다.
(28:38)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고용되는 직원들은 다른 곳에서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신과 함께 사업을 하는 거래처애들에게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확실한 보증 수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윤리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윤리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으면서도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일을 악물고이 세상에서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도덕적 결심을 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위로입니다.
(29:19)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과 놀라운 은혜와 구원의 아름다운 은총을 경험하고 나면이 세상은 너무 하차는 것임을 깊이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화를 통해서만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에 대한 책임은 주께서 의롭다 여기심으로 모두 치워버리셨고 죄의 법은 다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부패한 성품과 죄의 경향성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들을 통하여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하나님의 지혜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에 기여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30:04) 잔존하는 죄가 있습니다.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부패성과 죄를 제거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인간 속에 남아 있는 죄의 오염과 부패성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순결하게 만들어가시는 성님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성화는 칭위와는 달리 하나님 홀로하시는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지 우리와 상관없이 우리의 의지를 대항하여 역사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님의 거룩하시는 사역에 순종한 사람들을 성화시켜 가시는 것입니다.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인격과 삶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30:53) 우리의 영혼은 순결해지고 성령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인격적인 열매가 맺칩니다. 다시 그 인격에서 삶이 흘러나와서 우리의 삶과 섬김 속에서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는 열매들이 맺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순결과 인격의 열매와 삶의 열매가 모두 연장 선상에서 하나님 앞에 맺쳐가는 것입니다. >> 4. 순종을 위한 고난. A 고난의 의미. 끊임없이 성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순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이 세상은 신자에게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순종하면 고난이 오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은 일반적으로 고통을 동반합니다.이 세상에서 순종함을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고난을 피하기 위해 불순종합니다.
(31:50) 그렇게 죄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맡기는 인격적인 의존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자를 따라 자신의 세상인 중심인 것처럼 살면서 결코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신자가이 세상에 믿음으로 지키면서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했을 때 고통을 동반하는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로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거룩해지기 위해 있을 때 우리는 수많은 대적에게 에워싸여 있습니다. 하늘에는 악의 영들이 진을 치고 있고 우리 앞에는 수많은 유혹이 우리를 상키려고 각처에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32:44) 이 세상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인생을 가지고 살면 고통밖에 없으니 빨리 인생관 세상의 길로 돌아가라고 공격합니다.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죄의 부패성이 그러한 유혹의 손을 잡고 우리를 죄 아래로 사로잡아 갑니다. 죄는 우리의 문 앞에 엎드려져 있다가 언제든 기회를 타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찾아올 때 그 고난을 이상하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왜 이런 고난이 오는가? 하나님은 복을 안 주시는 분인가 보다. 이런 생각하면 우리는 즉시 믿음에서 미끄러지게 되고 맛을 잃은 소금으로 변해 갑니다.
(33:36) 믿음으로 살아 살려는 길에는 길에서 만난 만나는 권난을 이삭에게 여기시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이 땅에 믿음으로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의 우리의 실제의 삶 가운데서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고난이 올 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는이 세상에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신 안에 내 실제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이렇게 고백해야 됩니다. 내가 경험하는이 고통은 바로 이전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그분 안에서 경험한 죽음이 지금 실제화 되어 가는 것이며 이것들을 통해 그리스도 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은 나의 예성품들이 철저하게 죽음을 경험하고
(34:40) 거룩하게 되므로 나는 하나님 나라의 순전한 맛보기로 변해 갈 것이다. 고통 중에 위로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순전한복이가 되기 위한 고난을 당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고난 가운데 순종하며 사는 이들에게 위로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으며 예수님 안에 죽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만 성령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님의 위로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부활이 자신의 삶 속에서 스며 어 들어오면 실제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신자는 부패하고 죄된 성품에서 벗어나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5:37)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로 살아가려고 하는데 고난이 닥쳐옵니다. 그때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서 고난의 당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고통하고 마음 아파합니다. 좋은 고난의 길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을 십자가를지는 기회로 삼고 그것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며 되면 하나님은 그 속에서 우리의 옛 성품을 끊임없이 죽여 가십니다. 그때 경험하는 죽음은 비록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지만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아픔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깊이 아파하고 깨뜨려질 때 느끼는 영혼의 고통은 육체의 고통보다 더 아픕니다.
(36:28) 그러나 그렇게 성품의 죽음을 경험하는 가운데 새 성품의 소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의 영혼에는 이러한 참여의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 쓸데없는 존재입니다. 놀라운 사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 나라에 맛보기로이 세상에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엉망으로 살아가고 있는 형편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더럽히는 것 같아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렇게 상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시기를 지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놀랍게 위로하십니다. 그 위로를 받으면서 우리는 나 같이 쓸모없는 인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의 경의로운 기쁨에 떨게 됩니다.
(37:17) 보다 더 큰 위로를 쏙 깊이 경험하면서 우리는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험한 부활이 우리의 실제가 되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예. 이처럼 고난을 통해 옛사람은 점점 죽고 성령님의 위로를 통해 새 사람은 계속 살아납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었는데 그렇게 죽고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성화되어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신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은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랑을 그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38:05)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참 신자를 보고이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길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하나님 앞에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화의 과정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성화를 위한 고단한 인생의 여정에서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분의 인격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며 믿음 안에서 사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이에 대하여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일한 것입니다. 그와 항상 함께하는 것과 온전하게 그를 닮아가려고 하는 것은 영원한 복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하며 믿음 안에 사는 것은이 두 가지 일의 시작이다.
(39:01) 창조의 사역과 섭리에 의해 부여된 우리 번성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기 위한 분토함은 공평한 상급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외에 묵상하는 대상들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계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경멸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변화는 불가능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을이 세상을 위한 하늘나라의 맛보기로 삼으셨는데 그 맛보기에 합당한 존재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여 그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그릇되고 부당한 생각과을 갖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당신의 나라는 너무 행복한 나라이고 당신의 나라에 들어오지 않고는 창조의 목적을 알 수 없고 인간이이 세상에 태어난 참다운 도리를 알 수 없는데 잘못된
(40:04)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볼 때 하나님은 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그 구원받은 우리가이 세상에 살아가는 안피할 수 없는 최고의 사은 하늘나라의 참된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하늘나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주는 그것이 로음이라는 질병에 걸려서 고통하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해결 방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닮아야 할 우리의 성화의 모형은 자신이 당하게 되는 어려움을 다만 견디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40:56)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영혼 안에 하시는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담는 전 과정은 영광 중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거룩해지고 그의 불멸의 영광과 유사하게 되게 하는 데까지 그 최종적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자가 그리스도의 자기 봉원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성화를 통해서입니다. >>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어제 은혜를 가지고 오늘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날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열린 통로로부터 죄와 사망을 익히며 살아갈 수 있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공급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41:48)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 자원을 공급받고 충만한 그 사랑 속에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환난이나 시련이 아니며 아니고 전쟁이나 기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죄악에 가득 갈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아 받을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의 맛보기가 더 필요하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더욱 넘치게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정작 하나님으로부터 하늘 자원을 공급받고 그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순결해지 못하고 남아 있는 부패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이러한 부패성을 꺾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42:46) 우리를 계속 정결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성화의 역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순종하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이 세상에 사는 동안 괴로움도 만나고 고난도 만납니다. 예수님을 믿고 모든 고속도와 같은 형통한 길이 열릴 것이 아닙니다. 시련도 있고 환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고난의 파도를 타고 우리는 천국으로 갑니다. 우리가 그 나라에 합당하도록 더욱 거룩한 성도들이 빚어져 가는데 그 고난이 사용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험하는 나의 죽음은 현재적인 삶 속에서 실현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십자가를 치면서 우리는 점점 더 거룩해져 가고 우리의 거룩한 삶 때문에 세상에는 세상은 우리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맛을 봅니다.
(43:43) 그래서 우리는 고난 중에서 노세한 중에 어 노세에 가는 중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만으로 충분히 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죄와 싸울 필요도 없고 우리의 피 어린 결심도 필요 없는 완전한 승리의 나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영광 가운데 죄도 없고 금도 없는 풍전한 상태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만 영화롭게 하는 영광의 날을 기다리고 그날을 바라보면서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44:39) 우리는이 세상에서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이 땅에 사는 동안 죄의 많은 세상에서 나를 지극케 하고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의 나라의 훌륭한 맛보기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서 무엇을 되어 사느냐 하는 것은 삶의 양식에 불과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사는 날 동안 순결한 하나님의 맛보기로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을이 땅에 살아 있게 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의 네 번째 대지
이 땅의 성도들 1.
9장 신자와 성화|요약
I.끝나지 않은 싸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구원의 끝이 아님
-그것은 단지 시작임: 세상의 죄와 자신의 부패한 본성 때문임
-성경이 말하는 구원
1.과거의 구원: 중생
2.현재의 구원:성화
3.미래의 구원:영화
II.종말과 구원
A.구원의 의미: 영적인 흑암에서 빛의 나라로 옮기심
B. 범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세상 가치관과 길을 버려야 함
C.신자 안에 오신 성령님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첫 열매가 되심
D.그렇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교회임
III. 신앙과 윤리
-신자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맛보기가 되어야 함
-따라서 신자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있음
-그러나 이는 도덕적 결심이 아닌 거룩에의 추구를 통하여 이루어짐
-따라서 신자에게 있어서 도덕은 성화의 결과임
-성화를 통해서만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
IV. 순종을 위한 고난
-신자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는 과정임
-거룩한 삶을 위한 고난 가운데 순종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심
-성령님의 위로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부활이 삶 속에 실제화됨
-하늘자원의 공급과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신자의 부패성임
-그러므로 죄 죽임의 실천과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뢰가 필요함
STUDY BOOK
제9장 신자와 성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성경은 구원을 세 가지 시제로 이야기합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을기다리며 사는 신자의 이 땅에서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pp.259)
2. 성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과 관계됩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해 보십시오. (pp.260~261)
3. 성화가 인간의 노력에 의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개선과 다른 것은 성화의 어떤 본질적 특성 때문입니까? (pp.262~ 263)
4.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하여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 수 있게 하는 성화의 작용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두 관계를 설명해 보십시오. (pp.263, 각주 180)
5. 인격과 삶의 어떤 특정 부분에 있어서만 성화가 이루어졌고, 다른 부분은 성화되지 않는다는 말이 잘못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pp.263)
6. 성화의 주체는 성령님이시지만, 성화는 또한 인간이 협력하는 사역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pp.264)
7. 종말론적으로 볼 때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pp.265)
8.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그것은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이 세상의 가치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순종하며 사는 신자들에 대해 저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pp.267)
9. 중생한 신자 안에 오셔서 성화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pp.268)
10. 빌립보 교회에 대한 바울의 당부를 통해 알 수 있는 이 땅에서의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신자를 세상에 남겨 두시고 그들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입니까? (pp.271~272)
11. 고난을 받으면서도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pp.274)
12.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 때 항상 고난이 찾아옵니다. 믿음으로 고난을 받아 들일 때 신자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pp.276~-277)
13. 존 오웬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과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화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 은 무엇입니까? (pp.2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