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하지 말고, 증언하라!(행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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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변명하지 말고, 증언하라

본문: 사도행전 26:24–32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뭘 하고 싶을까요? 해명하거나 변명하고 싶습니다. “진짜 그게 아닌데.” “내 입장은 좀 들어봐야 하는데.” 우리는 다 그래요. 학교에서도 그렇고, 친구 관계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억울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예요. “내가 나를 설명해야겠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 26장에 나오는 바울은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 바울은 설교하러 선 게 아닙니다. 찬양 집회에 온 것도 아니고, 수련회 강사로 부름받은 것도 아닙니다. 지금 바울은 재판받는 자리에 서 있어요. 왕 앞에, 총독 앞에, 높은 사람들 앞에 죄수처럼 서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여기서 뭘 말하겠습니까?
“저 억울합니다.” “저 잘못한 거 없습니다.” “오해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말할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자기 억울함보다 예수님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변명보다 복음을 말합니다. 자기 무죄보다 예수님의 부활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 26장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만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를 진짜 만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예수를 증언할까요?

1.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 억울함보다 복음을 더 크게 말합니다

바울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자기를 변호할 기회였어요. 사람들 앞에서 자기 결백을 설명할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기회를 자기 이미지 회복에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요. “내가 왜 여기 서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소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시선이 자꾸 나에게만 갑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물론 그 감정이 틀린 건 아닙니다. 진짜 힘들 수 있어요. 진짜 억울할 수 있어요. 진짜 속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 이 자리에서도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 이 상황도 복음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이게 진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상황에 잡아먹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오해받는 자리에서도, 손해 보는 자리에서도, 억울한 자리에서도, “그래도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시험이 안 풀릴 수 있습니다. 친구 관계가 꼬일 수도 있습니다. 내 진심이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인정 못 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그리고 너무 쉽게 이런 모드로 들어가요. “내가 얼마나 억울한데!” “아무도 날 몰라줘!” 그런데 오늘 바울은 말합니다. “네 인생은 너를 설명하는 데 쓰라고 준 게 아니다. 예수님을 드러내라고 준 것이다.”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자기 해명으로 가득 찬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진짜 만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예수를 증언할까요?

2.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 스펙이 아니라, 부르심을 붙듭니다

바울은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한때 얼마나 열심 있는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철저한 종교인이었는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얼마나 심하게 핍박했는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과거를 말하는 이유는 “나 원래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자랑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나도 틀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내가 옳다고 착각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나도 예수님 없이 열심만 내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인생을 바꾼 한 장면을 말합니다. 바로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 (행26:15-16절)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건 그냥 자세 고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무너진 인생이 아니라, 부르심 있는 인생으로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바울을 사환과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이제 네 인생의 주인은 네가 아니다.” “이제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너는 나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여러분, 우리도 자꾸 스펙으로 자기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성적, 대학, 외모, 인스타, 팔로워 수, 인간관계, 능력, 커리어. “나는 이 정도 가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이 정도 되는 사람이야.” 계속 나를 증명하려고 해요. 그런데 복음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너의 가치는 네가 만든 스펙에서 나오지 않는다. 너의 가치는 너를 부르신 예수님에게서 나온다. 바울은 자기 과거를 붙들지 않았습니다. 자기 실패도 붙들지 않았고, 자기 열심도 붙들지 않았고, 자기 종교 경력도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셨다면 끝난 겁니다. 예수님이 붙드셨다면 희망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면, 그 인생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스펙으로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지 마세요. 과거로 자기를 규정하지 마세요. 실패로 자기를 정의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부르신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를 진짜 만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예수를 증언할까요?

3.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세상이 이상하다고 해도 끝까지 예수님을 전합니다

바울이 계속 복음을 말하니까 사람들이 반응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다.” (행 26:24) 이게 무슨 뜻입니까? 세상 눈에는 바울이 이해가 안 됐다는 뜻이에요. 왜 그렇겠어요? 사람들은 보통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적당히 믿고 싶어 합니다. 손해 안 보면서 신앙생활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안 그래요. 감옥에 갇혀도 예수님 이야기하고, 재판받으면서도 예수님 이야기하고, 왕 앞에서도 예수님 이야기하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예수님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세상 눈에는 이상해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도 살다 보면 이런 말 들을 수 있습니다. “너 너무 유난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 “적당히 믿어.” “굳이 그렇게까지 순종해야 해?” “세상 좀 현실적으로 살아.”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세상이 말하는 “적당히”는 대부분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라는 말일 때가 많습니다. 예배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해지고, 순종보다 내 편안함이 더 중요해지고, 말씀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해지고, 복음보다 내 이미지가 더 중요해지는 것. 그게 세상이 원하는 “적당한 믿음”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그립바 왕에게까지 “당신도 예수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진짜 복음에 붙잡힌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이게 중심이 아니라, “저 사람도 예수님을 알면 좋겠다.” 이게 중심인 사람.
여러분, 진짜 신앙은 교회에서만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게 아닙니다. 진짜 신앙은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봐도, 예수님 때문에 오해를 받아도, 예수님 때문에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보여도 끝까지 예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멋있는 그리스도인은 사람들한테 세련돼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진실한 사람입니다.

결론 여러분, 오늘 말씀은 아주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진짜 만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를 진짜 만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예수를 증언할까요? 첫째, 자기 억울함보다 복음을 더 크게 말합니다. 둘째, 자기 스펙보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더 붙듭니다. 셋째, 세상이 이상하다고 해도 끝까지 예수님을 전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을 변명하는 인생으로 살지 마라.” “나를 증언하는 인생으로 살아라.”
예화) 전도하면서 드는 생각들 /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시간과 돈도 들어간다… 우리 중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근데 저는 아직 자신이 없어요.” “저는 아직 너무 흔들려요.” “저는 아직 바울처럼 못 살겠어요.” 맞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못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한 겁니다. 바울이 강해서 그렇게 산 게 아닙니다. 원래 담대해서 그렇게 산 게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일어나라.” “이제 너 자신만 붙들고 살지 마라.” “나의 증인으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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