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15. 주일 4부예배.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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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본문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서론
서론
할렐루야. 4부 청년 예배로 모인 모든 청년들과 예배자들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대학생들은 이제 새 학기가 개강해서 오랜만에 학교 가느라 고생을 좀 했을 것 같습니다. 다시 공부하려니 어떠신가요? 너무 설레고 즐거운가요? 아니면 죽을 맛인가요?
모든 예본의 학생들에게 이번 한 학기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를 그래서 개 강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매화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입니다. 그런데 엊그제 산책을 하다가 보니 매화꽃이 피어 있더라구요.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었다 해도 어김없이 따뜻한 봄이 온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반드시 따뜻한 봄날같은 시절이 찾아올 줄 믿습니다.
우리 이런 소망을 가지고 서로 축복하며 인사를 나눕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한 번 더 인사합시다. “하나님이 새 날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의 인생에 새 날을 열어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막을 치게 하신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나안에 들어가 참된 전성기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바라시지만, 곧장 가나안으로 데려가지는 않으시고 시내산에 머물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먼저 우리가 복을 감당할 그릇들로 준비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먼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보물들로 삼으시겠다 약속하셨고, 우리는 이 말씀에 삶을 한 번 걸어보겠다 응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치신 것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이것을 차근차근 다루려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친히 가르치신 것은 그 유명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모든 시대의 교회에서 소중하게 간직되어 왔습니다. 교회가 어린아이나 새신자들을 가르칠 때 가장 기본적으로 또 가장 중요하게 가르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십계명이었지요.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는 노년에 이렇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어린아이처럼 십계명 본문을 날마다 한 구절씩 암송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십계명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십계명 외우고 계십니까? 이런 반응이 현대 교회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십계명을 암송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이 크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십계명이 그닥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맛있는 음식집이 어디인지 어떤 조합으로 주문해야 하는지는 줄줄 외지만 열 개의 계명은 좀처럼 기억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십계명을 오늘 우리의 삶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대할 때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는 사람을 죽일 정도로 사악한 인간은 아니야. 그러니 이 계명은 평생 어길 일이 없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계명은요? “내가 도둑질을 할만큼 나쁜 사람도 아니야. 그러니 이 계명도 평생 어길 일이 없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십계명은 정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크게 연관이 없는걸까요? 물론 십계명은 수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십계명이 그 시절 히브리인의 삶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다면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의 교회가 소중하게 간직해 왔을 리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의 모든 법과 윤리의 기초가 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십계명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의 뿌리가 되어야 할 만큼 중요합니다. 십계명에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 십계명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을 간단하게 요약하실 때 두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을 언급하셨습니다.
첫 번째 돌판의 1계명부터 4계명까지를 “하나님 사랑”의 계명이라, 두 번째 돌판의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를 “이웃 사랑”의 계명이라 줄여서 말씀하셨지요.
이제 십계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이 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지난 시간 우리에게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는” 백성이 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십계명을 모르고서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십계명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첫째 계명을 자세히 다뤄보려고 하니 집중해서 잘 따라와 보십시오.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첫째 계명을 깊이 이해하며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본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가르치시는 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내용이 등장합니다. 사실 1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라고만 썼어도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조금 더 붙어 있지요.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뭔가를 더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었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기자는 여기에서 “지금부터 써 내려갈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보통읕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지만, 이 십계명 만큼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꼬집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을지 우리 19장으로 가서 확인해봅시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하나님은 셋째 날에 시내 산에 강림하실 것이니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준비를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친히 백성들 앞에 임재하셨습니다. 모세만이 경험하였던 거룩하신 임재 앞에 직접 서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우뢰와 번개, 불과 연기 속에서 하나님이 큰 능력과 영광으로 임재하신 것을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직접 선포하시는 말씀을 두 귀와 온 마음이 울리도록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한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고, 정말 죽을 것 같으니 모세를 통해서 듣도록 허락해달라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이렇게까지 반응했을까요?
어쨌든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받은 것은 모세가 전한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직접 말씀하신 하나님의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이렇게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아주 특별한 은혜가 나타납니다. 그들에게 영광스런 이름을 가르쳐주셨지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는 크게 엘로힘과 여호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누군가와 특별하고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에만 사용됩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누군가에게 엘로힘이라고 소개를 하시면 그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라고 소개를 하시면 그는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임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누구라 소개하십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아주 특별한 관계 속에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얼만큼 특별한 관계입니까? 아무 소망도 없이 그저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셔서, 친히 그들을 위해 개입하시고 싸워주시고 인도해주실 정도로 특별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아주 특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당시 세상 민족 중에 이처럼 하나님께 직접 선택받은 민족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의 바탕 위에 그들의 삶을 위한 율례와 법도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러니 율법을 받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의무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특권을 입은 것을 뜻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 위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 또한 아무 소망 없이 그저 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를 찾아오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죄와 사망의 권세와 싸워 우리를 건져내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자신을 가리켜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아주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세상 많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관계를 맺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의 바탕 위에 우리 삶을 위한 율례와 법도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율법을 받아 배운다는 것은 우리에게 짐이 아니라 특권으로 여겨져야 할 것입니다.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빠져나온 이들에게 이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친히 기준을 세워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본론 2
본론 2
혹시 기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준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좀 유식한 말로 도량형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기준이 있어야만 질서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한 번 길이를 재는 기준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봅시다. 여러 사람이 모여 집을 짓는 중에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려 합니다.
기둥 높이를 맞춰야 해서 누군가가 물어봅니다. “높이를 얼마나 해야할까?” 옆에 있는 사람이 대답합니다. “요만큼~”
모두가 각자 요만큼씩 기둥을 만들어 세워봤더니 전부 높이가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다시 바닥에 눕히고 높이를 맞추기로 합니다.
높이를 맞춰야 하니 다시 물어봅니다. “높이를 얼마나 해야할까?” 옆에 있는 사람이 대답합니다. “아! 이만큼~”
여러분, 이렇게 해서 집이 지어지겠습니까? 평생 못 짓습니다. 모두가 요만큼과 이만큼만 외치다가 결국 화가 나서 집 짓기를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 다른 기준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풀어가지 못하겠습니다. 대신 셀모임을 하며 무게를 재는 기준, 방향을 잡는 기준이 없는 세상도 한 번 상상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십시오.
우리가 낮고 천한 이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기준이 이렇게 중요하다면, 높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데는 어떻겠습니까?
기준이 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재 보고, 어떻게 달아 보며, 어떻게 방향을 잡아볼 수 있겠습니까?
기준이 없으면 결국 사람은 자기의 어림짐작을 기준 삼아 살아가게 됩니다. “요 정도면 되겠지” 하며 각자 자기 기준을 붙들고 살아가는 곳은 결국 지옥처럼 변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 살아가지 않도록 바른 기준을 세워주고자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하게 세워야 할 첫번째 기준은 무엇일까요? 첫번째 계명을 같이 읽어봅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원어로 보면 참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직역을 하면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너는 내 얼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것도 그 사이를 방해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걸 잘 설명해낼 수 있을까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깻잎 논쟁을 한 번 가져와 봅시다. 내 남자친구, 내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 깻잎 떼줘도 됩니까? 안됩니까?
물론 깻잎을 떼주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마음이 함께 가는 것이 문제겠지요.
만약 깻잎을 떼주면서 서로 은근히 눈을 마주치고 눈빛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최악이지 않습니까?
깻잎을 떼주는 게 죽어도 싫은 이유는, 행여나 내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 그놈이, 그 여인이 끼어드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아니,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보다 훨씬 더 민감하십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그 무엇이라도 끼어드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본론 3
본론 3
조금 더 깊이 이 말씀을 살펴봅시다.
“내 얼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표현은 감히 하나님을 거슬러,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아주 강한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인가가 끼어들도록 두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아주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세워져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들, 성경은 그것을 우상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눈에 보이는 우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상이 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에는 더 많은 우상들이 생겨났고, 더 은밀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틈타고 있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도 쉽게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리스도인들도 하나씩 자기만의 우상을 마음에 감추고 살아가곤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우상을 감추고 있는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됩니다.
첫째는 사랑의 질문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학자 오리겐은 사람이 “다른 모든 것보다 먼저 존중하고, 다른 모든 것보다 더 감탄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에 주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무엇을 갈망하십니까?
마음이 한가할 때 저절로 흘러가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돈을 어디에 쓰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가장 들뜨게 하고, 또 가장 무너지게 합니까?
우상은 꼭 나쁜 것의 모습으로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것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할 때 더 위험합니다.
성공도 우상이 될 수 있고, 연애도 우상이 될 수 있고, 인정도 우상이 될 수 있고, 건강도, 비전도, 심지어 사역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다 우상이 됩니다.
둘째는 신뢰의 질문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의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마음이 매달리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궁극적으로 신뢰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어려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붙든다면, 우리는 이미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신뢰하십니까? 불안할 때 어디로 갑니까? 외롭고 낙심될 때 무엇에 기대어 버팁니까?
어떤 사람은 돈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스펙과 경력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를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쾌락에 기댑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어떤 사람은 과학과 기술을, 어떤 사람은 자기 능력과 계획을 붙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사용하여 우리를 돕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 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다 우상이 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외에 수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신뢰하려는 유혹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신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이 신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쾌락이 신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힘과 인정이 신이 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우상 숭배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더 이상 거짓 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우상 뒤에 숨어 있는 가장 큰 우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현대인은 겉으로는 자유롭고 열린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만 붙들고 살아갑니다.
내가 받아들일 진리도 내가 정하고, 내가 따를 가치도 내가 정하고, 내 삶의 기준도 내가 정합니다. 결국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의 가장 무서운 거짓 신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이름의 신입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내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과 건강의 대부분을 내 필요, 내 계획, 내 문제, 내 욕망만을 위해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랑에 빠져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어느새 자기 자신에게 반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우상숭배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분이 가증히 여기시는 그 어떤 우상도 두어서는 안 될 터인데, 하물며 우리 자신이 우상이 되어 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죄악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자주,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분의 자리를 밀어내고, 내가 그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배신 아니겠습니까?
결론
결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세상의 유혹이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우리는 이 유혹 앞에서 우상을 떨쳐내기는 커녕 우리 자신이 우상이 되어버리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유혹을 이겨내고 첫 계명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을까요?
유일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크게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더욱 깊이 채워야 다시 하나님과 열정적이고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른 모든 의지하고 애정하는 것들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과 사랑을 일으켜 주셔야만 우리는 첫째 계명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계명을 들으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사랑과 가장 큰 헌신을 아무 조건 없이 요구하시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큰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시기 전에 가장 큰 사랑과 헌신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뿐인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또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확실히 베푸셨습니다.
먼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이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신다고 하면 무엇이 부당하겠습니까?
먼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을 더 사랑하지 못하고 더 헌신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스라엘에게 주신 첫 계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을 통해 다시 들려 주십니다.
주님의 음성으로 첫 계명을 다시 들을 때 우리는 분위기가 갑작스레 결혼식장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신부인 교회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의 신부여, 그대는 나 말고 다른 사랑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평생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할 것을 약속하겠습니까?”
신랑이 신부를 향해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나도 그렇게 신부만 바라보고 신부만 사랑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서약을 물으시기 전에 이미 그 서약에 충분히, 넘치도록 답하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이셨습니다. 모진 십자가 고난을 다 견디심으로 영원히 변치 않고 우리만 사랑하실 것을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면 정말 충분합니다.
그리고 주님께는 우리의 모든 삶을 맡겨도 충분히 책임지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면 정말 충분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억지 순종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리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 다른 사랑들을 밀어내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의 거짓 신뢰들을 무너뜨리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빚어 가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두었던 다른 신들을 내려놓으십시오. 돈이든, 성공이든, 인정이든, 쾌락이든, 자기 자신이든,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께 “주님, 내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은 결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 중심에 새기셔서,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첫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
주님만 사랑하리 +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이시간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뤄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만 사랑하길 원하는 예본의 청년들 다함께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예수님 다시 한 번 사랑을 부어 주옵소서. 그래서 내가 섬기던 다른 신들, 하나님보다 사랑하고 의지하는 우상들을 기꺼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축도
축도
이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죄인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되 끝까지 인내하시며 품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이 없는 사랑과,
항상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이끄셔서 회복과 승리로 나아가게 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시고 역사하심이,
이 시간,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하시는 말씀 앞에 서서,
모든 다른 신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사랑하겠다 결단하는 모든 청년들과 예배자들 위에,
이들의 가정과 학업과 생업과 비전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