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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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가정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가정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집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인가? “공부 좀 해라”, “핸드폰 그만해라”, “방 좀 치워라.” 이런 말을 많이 듣지 않는가?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과 많이 싸우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이 너무 잔소리를 한다고 느끼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집이 편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은 사랑하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정이 가장 많이 상처받는 곳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성경은 가정을 단순히 같이 사는 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부모님이 한 번도 화내지 않는 가정, 자녀가 한 번도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가정, 부부가 한 번도 싸우지 않는 가정. 아마 그런 가정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정은 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중에 부모님과 크게 싸워본 적이 있는가?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과도 말도 안 하고 지낸 경험도 있을 것이다. 분명 가족이고 같이 살고 있는데, 왜 가정에서는 갈등이 생길까?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한다. 가정이 망가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중심에서 사라질 때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가정을 하나님이 세우신 관계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가정”이 어떤 가정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 말씀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남편과 아내이든지, 아니면 부모와 자녀이든지 누구이든지 간에 가정 안에서 서로 화목해야 한다. 가장 긴 설명은 남편과 아내에 관한 것이다. 바울은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말하고 있는데, 오늘날 현대의 많은 사람은 이 가르침이 너무나 어색한 것처럼 보인다. 몇몇 학자들은 이 가르침이 문화적으로 1세기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된 판단으로 보인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오늘 본문은 창세기 2장 24절에서 구약성경이 결혼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주는 본문이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은 부모를 떠난다. 이것은 부모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배우자와 합하여한 몸이 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바울 은 창세기에 있는 이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련된 비밀이라고 말한다. 비밀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미스테리온이다. 다시 말해서,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감춰져 있는 무언가를 드러냈지만, 그러나 이제 결혼의 비밀이 밝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가 결혼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결혼이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를 반영한다. 그렇기에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는 중요하고 근본적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남편이 복종하도록 아내에게 하는 요청은 각 세계마다 가진 문화를 뛰어넘는다. 이 명령이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복종의 의미가 크게 오해될 수 있다. 몇몇 학자들은 이 의미를 마치 군대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내리는 듯한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요즘 말로 꼰대같은 방법으로 잘못 이해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명하게 서로 존중하고 돕는 모습이 여기에 있기에, 이 모습이 결혼 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또한 남편은 아내에게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내들이 주님께 하듯이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바울은 남편의 지도적 지위 안에 복종에 근거를 둔다. 어떤 해석은 “머리”라는 표현이 근원을 의미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우리는 에베소서의 전체 흐름을 보았을 때 “머리”라는 표현은 권위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남편의 권위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은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복종하라는 부름에 딱 맞는다. 더욱더, 남편들이 어떻게 아내들의 근원인지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남편들이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아내들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로마 세계에 존재했던 위계질서의 개념을 수정하고 손질한다. 남편의 리더십은 이기적으로 자기만의 길을 고집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사랑을 베푸는 권위가 되어야 한다. 이 모습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남편들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 같이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양육하고 돌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남편들이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남편들은 자기의 아내들을 구원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리스도는 교회의 구원자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역할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거룩하게 하고 세례를 통해 깨끗하게 씻는다는 점에서 나타난다.동시에, 그리스도는 교회를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마지막 날에 교회가 신부처럼 아름답고 흠이 없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들에게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는다. “주 안에서”라는 표현은 “부모”라는 명사를 꾸며주는 말이 아니라, 동사를 수식한다. 쉽게 말해, 여러분이 순종하는 이유가 부모님을 위해서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라고 할지라도 누구나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동의한다. 우리가 읽었던 에베소서 6장 2-3절에서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을 말씀한다. 바울은 구약의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왜 구약의 명령을 우리에게 제시할까? 그것은 율법의 제사법과 음식법은 폐기 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도덕법은 폐지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는 율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울은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구약에서 약속하듯이 동일하게 이 땅에서 오래사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대답은 바울이 썼던 편지들 안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땅이 하늘의 기업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녀들의 순종은 이들이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증거이며, 순종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새 창조의 일부가 될 것이다. 아버지들은 자기 자녀들을 주의 일들 안에서 훈련해야 하며, 동시에 이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주는 완벽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쉽게 말해, 자녀들이 잘한 부분에 있어서 칭찬해주고, 못한 부분은 격려해주어야 한다.
전도사님이 어떤 가정을 방문했는데, 자신의 아버지를 폭행한 고등학생 남학생이었다. 왜 그러했는가를 살펴보니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함부로 대하고 욕도 쉽게 내뱉고 손찌검도 일삼았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자녀를 화나게 만들다보니 그 자녀가 결국 폭팔하여 아버지에게 폭행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 행동은 어떠한 폭행보다 가장 최악의 폭행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학대와 살인하는 것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부모를 폭행이나 살인을 하는 것이 괘씸죄까지 포함하여 엄청나게 무거운 죄값을 묻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을 만든 원인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오늘 사도 바울이 명령한 것처럼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냥 무작정 성경을 읽기만 하면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세지를 찾기가 어렵다. 그것을 찾아주기 위해서 교리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교리를 가지고 성경을 읽을 때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훈계를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도사님이 보았던 가정은 교회를 다니는 모태신앙의 집에 집사님의 자녀이다.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 감정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게 되면 아무리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안타까운 비극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는 모두 미래에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가 될 사람이고,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가 될 사람이다.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남편과 아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엄마와 아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가 될 때 여러분의 가정은 아름답게 세워져갈 것이다. 사실 십계명에서 명령하는 나이대는 여러분 같은 청소년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 아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 세대에게 주어지는 명령이다. 자신의 부모가 있고, 남편과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는 그 세대에게 주어지는 말씀이다. 그러나 여러분도 앞으로 성인이 되고 부모의 위치가 될 사람들이기에, 미리 준비해야한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방식의 첫 번째 실천이다. 단순히 존댓말을 쓰는 것이 공경이 아니라, 무게 있게 여기고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하고, 존재 자체(내가 느끼기에 좋고 나쁨을 떠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존중과 순종의 태도는 말투와 반응과 표정이 무시나 비아냥, 비교는 공경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래서 부모를 짐이나 장애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도구로 인정하는 태도가 존중과 순종의 태도이다. 여러분이 결혼하게 되면 그때 부모님은 점점 연로해지시고 연약해지신다. 그럴수록 자녀의 공경은 감정이 아니라 책임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그러나 순종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죄를 요구하거나 신앙을 부정하게 만들 때는 우리는 순종할 수 없다. 예수님 믿지 말라는 명령이나, 교회가지 말라는 그러한 순종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니 부모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위임된 권위’이다. 그렇기에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그 부모를 세우신 하나님의 질서를 인정하는 신앙 행위이다. 그렇기에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자식의 도리는 부모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며, 말과 태도와 책임 있는 삶으로 부모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여러분이 앞으로 만날 미래 배우자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과 아내를 사랑하는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 여러분이 자녀를 양육할 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르치기 소망한다. 이번에 제자훈련하는 친구들 가정에서 어떻게 자녀들을 성경 말씀으로 교육해야 할 지 알려주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가지고 교리를 가르친다. 그러니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도 설교 말씀을 듣거나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과 훈계를 깨닫는다면,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 되기 소망한다. 세상에는 답이 없다. 각자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집안마다 분위기도 다르다. 오은영 선생님이 세상에 모든 집안을 해결해주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한계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주님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불신자들이 기독교인들을 볼 때 제일 별로인 부분이 무엇인지 아는가?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교회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부모님이나 배우자, 형제, 자매에게는 안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얼마나 모순적이겠는가? 그러니 오늘 여러분에게 숙제를 주겠다. 오늘 집에 가서 꼭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바란다. 해본 사람은 분명 복이 있을지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작은 순종을 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나가는 저와 모두가 되길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