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기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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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로의 부름
예배로의 부름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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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여는 말 (0–3분)
여는 말 (0–3분)
여러분, 솔직하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찬양팀에서 오래 기타를 쳐왔는데, 어느 날 나보다 훨씬 잘 치는 새 친구가 들어왔습니다. 내가 공들여 자리를 잡아놓은 소그룹에 갑자기 더 활발하고 더 분위기 잘 이끄는 친구가 들어왔습니다. 내가 오래 해온 일을 신입이 더 잘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다 그쪽으로 쏠립니다.
그때 여러분 마음속에서 뭔가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지 않나요? "원래 이건 내 자리였는데." "내가 먼저였는데." "왜 쟤가 더 주목받지?"
그 감정, 저도 압니다. 그리고 여러분만 그런 게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서 그 감정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사람을 만날 건데요. 한 사람은 그 감정에 지배당해 비극으로 끝났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감정을 이겨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1부 — 가야바: 자리를 지키려 한 사람 (3–11분)
1부 — 가야바: 자리를 지키려 한 사람 (3–11분)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지금 산헤드린,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들이 긴급 회의를 열었습니다. 주제는 딱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여기서 정말 중요한 걸 하나 짚어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제거하려 한 이유가 뭐였을까요? 예수님이 틀렸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이적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이 눈을 떴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다 보았습니다. 실력을 인정했습니다. 능력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없애려 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대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면, 민중이 메시아로 떠받들어 반란을 일으킬 것이고, 그러면 로마가 군대를 보내서 우리 성전과 민족의 자치권을 다 빼앗아갈 것이다." 들으면 그럴싸합니다. 민족 걱정, 성전 걱정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학자 D.A. 카슨은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정확히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들이 진짜 두려워했던 것은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이었습니다. '우리 처소(our place)', 즉 내 자리, 내 위치, 내가 오랫동안 누려온 영향력—그것을 잃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지도자들도 처음 그 자리에 올랐을 때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와 "내 자리"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이 해야 했던 일은 딱 하나였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메시아가 오셨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리가 그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사이드 노트 — 이건 교회 안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잠깐 확장)
사이드 노트 — 이건 교회 안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잠깐 확장)
여러분, 사실 이 문제는 교회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사회학자들은 이것을 **'기득권층의 폐쇄성(elite closure)'**이라고 부릅니다. 정치권을 보십시오. 수십 년째 같은 세대가 권력을 나눠 갖고, 젊은 세대에게는 "아직 때가 아니야", "경험이 부족해"라는 말로 문을 닫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창의적이고 더 능력 있는 젊은 인재가 들어와도, 기존의 연공서열과 눈치의 벽 앞에서 꺾여버립니다.
사회학자 로버트 미헬스는 이것을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시간이 지나면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피를 막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대 산헤드린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 패턴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 안에서, 사회 안에서, 여러분이 속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반복됩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기득권층이 스스로 자리를 열어줄 때 살아납니다.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성숙한 리더십입니다. 가야바는 그걸 하지 못했고, 역사는 그를 예수님을 죽인 자로 기억합니다.
2부 — 세례 요한: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 사람 (11–18분)
2부 — 세례 요한: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 사람 (11–18분)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선생님께 달려왔습니다. 목소리에 약간 질투가 섞여 있습니다. "선생님, 저번에 선생님이 소개해줬던 그 사람한테 사람들이 다 가고 있어요. 우리 팀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고요!"
이 감정, 이해가 됩니다. 내가 열심히 키워놓은 채널에 신입이 들어와서 더 주목받는 느낌. "원래 우리가 먼저였는데, 왜 쟤가 더 난리야?" 하는 마음. 그것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대답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 자리, 내 역할, 내가 누려온 영향력—그것 자체가 이미 하늘에서 주신 선물이었다는 고백입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요,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는 크게 기뻐하나니." 결혼식에서 신랑 들러리가 신랑보다 더 주목받으려 하면 어색하지 않습니까? 들러리의 기쁨은 신랑이 빛나는 것에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들러리입니다. 예수님이 신랑이십니다. 내 기쁨은 그분이 흥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위대한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가야바와 세례 요한—이 두 사람은 정확히 같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둘 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야바는 자리를 지키려 예수님을 죽이려 했고, 세례 요한은 자리를 내어드리며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세례 요한을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로 기억합니다.
3부 — 환대: 빈자리를 내어주는 것 (18–21분)
3부 — 환대: 빈자리를 내어주는 것 (18–21분)
여기서 한 가지 아름다운 단어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환대(歡待, hospitality)'**입니다.
환대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환대를 '잘 대접해 주는 것', '친절하게 맞아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환대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깊습니다.
신학자 앙리 누웬(Henri Nouwen)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환대란 **"나의 적대적인 공간을 친근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자리를 비워서 상대방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찬양팀에 새 친구가 들어왔을 때, 내가 자리를 꼭 쥐고 있으면 그 친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내가 한 발짝 물러서서 공간을 만들어줄 때, 그 친구는 비로소 공동체에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소그룹에 새 친구가 왔을 때, 기존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이미 다 채워져 있으면 그 친구는 어디에도 낄 수가 없습니다. 환대는 내가 빈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것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비워서 예수님이 서실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새 친구를 환영한다는 것은, "안녕, 반가워" 한마디가 아닙니다. 내 익숙한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환대입니다.
4부 — 우리에게 직접 하는 말 (21–28분)
4부 — 우리에게 직접 하는 말 (21–28분)
① 역할은 맡겨진 것이지, 내 소유가 아닙니다
① 역할은 맡겨진 것이지, 내 소유가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4:10은 이렇게 말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여기서 핵심 단어는 **'청지기(steward)'**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의 것을 대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찬양팀 기타 자리, 소그룹 리더, 반장—그 역할은 하나님이 잠깐 맡겨주신 것입니다. 내 권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를 잘 섬기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오면 기쁘게 함께하거나 넘겨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② 기득권으로 '놀려고만' 하는 학생들에게
② 기득권으로 '놀려고만' 하는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교회 안에 역할은 있는데 섬기지 않고 그 자리를 그냥 누리기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찬양팀이라는 이름은 있는데 연습은 안 합니다. 리더라는 자리는 있는데 새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 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냥 익숙하고 편하니까 거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들의 잘못이 무엇이었습니까?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 아닌 자기 이익의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내 편의와 익숙함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 그것도 가야바와 같은 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③ 더 잘하는 친구가 왔을 때
③ 더 잘하는 친구가 왔을 때
빌립보서 2:3은 말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나보다 잘하는 새 친구가 왔을 때, 그것은 위협이 아닙니다. 우리 팀의 전력 보강입니다. 그 친구가 더 빛나서 주님이 더 드러나신다면, 그것은 내 패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승리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몸의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눈이 손한테 "너는 필요 없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발이 귀한테 "쟤가 더 주목받는다"고 질투하지 않습니다. 찬양팀 기타를 혼자 다 하면 지칩니다. 둘이서 돌아가며 하면 더 지속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색깔이 나와서 더 풍성해집니다. 함께 내어주고 함께 섬기는 것, 그것이 몸된 공동체입니다.
④ 우리는 세속적 친목 모임이 아닌 영적 가족입니다
④ 우리는 세속적 친목 모임이 아닌 영적 가족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단순히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릴스 보고 세상 노래 틀고 노는 모임이라면, 세상의 어떤 동아리나 또래 모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2:42은 초대교회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들은 단순히 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하늘 아버지를 모신 영적 가족이었습니다. 함께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아버지의 자녀로 대했습니다.
전도서 4:12은 말합니다.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 가닥으로는 쉽게 끊깁니다. 그러나 세 가닥이 꼬이면 훨씬 강해집니다. 여러분이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붙들어주는 삼겹 줄이 되어 주십시오.
⑤ 서로 죄에서 지켜주는 공동체
⑤ 서로 죄에서 지켜주는 공동체
진짜 친구는 친구가 잘못 가고 있을 때 모른 척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6:1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뒤에서 험담하거나 눈치 보며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부드럽게, 사랑으로 말해주는 것. 그것이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이고, 삼겹 줄로 서로를 붙들어주는 것입니다.
5부 — 가야바의 예언과 결론 (28–30분)
5부 — 가야바의 예언과 결론 (28–30분)
마지막으로, 오늘의 메인 본문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요한복음 11:49–50에서 가야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는 순전히 정치적 계산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예수님 한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로마의 눈을 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말에 깊은 아이러니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야바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하나님이 그의 입을 통해 진짜 예언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2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 세상, 흩어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목적은 단지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려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 자리, 내 기득권, 내 익숙한 방식 때문에 갈등하고 서로를 밀어낸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세례 요한처럼, 오늘 우리도 이 고백을 함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내 자리가 좁아질지라도, 나보다 잘하는 친구가 더 주목받을지라도, 내 익숙한 방식이 바뀔지라도—예수님이 이 공동체를 통해 더 드러나신다면,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함께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V. 기도문
V. 기도문
하나님 우리가 교회에서 거짓된 가르침을 경계하게 하시고, 또 잘못된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지 않게하시고 오직 참된 복음을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ord’s Prayers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