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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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본문: 요한복음 13:21–30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일어난 매우 무거운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계시지만, 그 식탁 한가운데에는 이미 배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그 사실을 모르고 계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누가 자신을 팔 것인지,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까지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배신의 한복판에서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배신의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 사랑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사랑을 실천하셨나요?
1. 예수님은 배신을 모르신 것이 아니라 아시면서도 받아내셨습니다
1. 예수님은 배신을 모르신 것이 아니라 아시면서도 받아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뒤늦게 알아차리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께서 “심령이 괴로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전지하신 주님이시지만 동시에 차갑게 사건을 처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던 제자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 배신 앞에서 실제로 괴로워하십니다. 예수님은 무감각한 분이 아닙니다. 배신을 예상하셨지만 상처받지 않는 분도 아닙니다. 아시면서도 아파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예수님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가운데 그 길을 걸어가시는 분이라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당하시는 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흐름을 아시는 가운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증명: 요한복음 10:17–18 “나는 내 목숨을 버리노니…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력하게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시는 분입니다. 배신도, 체포도, 십자가도 예수님의 통제 밖에서 터진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 아시고도 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13:11에서도 이미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지?”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배신당하고, 오해받고, 관계가 무너지는 일을 겪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도 이 상황을 모르시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주님은 모르지 않으신다. 다 아신다. 그리고 아시면서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배신을 아셨지만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사람의 상처 때문에 냉소적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누군가에게 실망하면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상처의 가능성을 아시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2. 예수님은 배신자를 향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배신자를 향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26–2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예수님이 빵 조각을 적셔 유다에게 주신 것은 단순히 “저 사람이 배신자다” 하고 신원을 공개한 행동이 아닙니다. 당시 식사 문화에서 이런 행동은 가까움과 우정의 표시, 친밀함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유다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의 표시를 건네신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미 예수님이 유다의 발도 씻기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배신자의 발도 씻기셨고, 배신자에게도 떡을 주셨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끝까지 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유다는 그 사랑 앞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서는 이미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27절에서는 떡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즉, 유혹이 점점 굳어져 결국 실행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한 번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마음이 끝내 주님의 사랑 앞에서도 돌이키지 않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5:44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원수 사랑을 가르치신 분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배신할 사람 앞에서도 그 사랑을 실제로 행하셨습니다. 또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예수님의 사랑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에게만 향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죄인일 때, 배반할 때, 아직 돌이키지 않았을 때 먼저 다가오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종종 예수님의 사랑을 너무 얕게 생각합니다. “조금 괜찮은 사람들, 조금 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배신의 가능성을 아시면서도 다가가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내 욕심과 계산을 붙들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은혜를 받으면서도 순종은 거절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교회 안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은가?
유다의 비극은 예수님과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주님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상처 준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아무 분별 없이 다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상처 때문에 사랑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3. 인간의 배신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3. 인간의 배신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3:27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은 아주 무섭고도 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유다의 배신을 막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다의 죄를 승인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다의 배신은 분명 죄이며, 그는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씀은 예수님이 그 배신조차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 밖에 있지 않음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즉,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을 당황하게 만든 돌발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사탄의 악한 역사까지도 넘어, 결국 자기 뜻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끌려가는 희생자가 아니라, 구원의 길을 아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함께 나타나는 성경의 깊이를 봅니다. 유다는 책임이 있습니다. 사탄은 악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 위에서 구원을 이루십니다.
사도행전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이 말씀은 아주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의 죄도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책임이 함께 갑니다.
또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의 고백처럼, 인간은 악을 행하지만 하나님은 그 악에 끌려다니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어둠까지도 사용하여 더 큰 구원의 뜻을 이루십니다.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이해할 수 없는 밤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도 있고, 무너지는 일도 있고, “왜 하필 이런 방식입니까?”라고 묻고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사람의 악이 하나님의 구원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도 믿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배신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어둠이 짙어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손보다 크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사람 눈에 패배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구원의 문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상처 가운데 계십니까? 억울한 상황 속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은 악을 선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악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망치게 내버려두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상황보다 크신 주님의 주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셨지요?
첫째, 예수님은 배신을 아시면서도 받아내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배신자를 향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셋째, 인간의 배신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사랑 앞에 어떤 사람인가? 나는 유다처럼 주님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계산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나는 상처 때문에 사랑을 접어 버린 사람은 아닌가? 나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배신의 밤에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십자가까지 가셨습니다. 우리를 살린 것은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그 사랑 앞에 다시 서십시오. 그 사랑을 거절하지 말고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배신의 밤에도 흔들리지 않으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믿음을 붙드시고,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시고, 우리의 공동체를 살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