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부3(3.17)

26년 소망부 1학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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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충만

묵상기도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 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91

말씀

Numbers 21:4–9 NKRV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설교

[단계 1: 갈등 (Oops!) -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한 백성들과 불뱀]
사랑하는 소망부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저 뜨거운 광야 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었겠습니까.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텐트 생활도 끝이구나. 이제는 좀 두 다리 쭉 뻗고 쉴 수 있겠구나!" 기대에 부풀어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가장 빠른 지름길을 통과하려는데,
에돔 왕이 군대를 이끌고 길을 꽉 막아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에 가나안을 두고, 다시 저 덥고 험한 흙먼지 날리는 광야 길로 빙글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은 그때 백성들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여기서 '마음이 상했다'는 것은 인내심이 바닥나서 조급해지고 폭발해버렸다는 뜻입니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고달픈 길을 걸어야 하니, 그 서운함과 분노가 말로 못하는 겁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광야의 맹독을 품은 불뱀들이 나타나 백성들을 물기 시작했습니다.
불뱀에 물린 자리는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뜨겁고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살려달라는 비명과 신음 소리가 진동하는 끔찍한 절망의 현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꼭 우리네 인생 같습니다.
새벽 일찍이 일어나 도시락 싸, 일터로 나갔던 그 손이 이제는 식탁에 앉아 약봉지를 뜯고 있습니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이제는 좀 편안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야지"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건강이 나빠지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녀야 하는 길고 지루한 '투병 생활'이라는 우회로를 만나게 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질병과 통증이라는 불뱀에 물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끙끙 앓을 때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습니까.
[단계 2: 분석 (Ugh!) - 이 늙고 병든 육신은 저주입니까?]
그렇게 불뱀에 물려 퉁퉁 부어오르고 열이 펄펄 끓는 몸을 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깊은 절망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결국 광야에서 뱀에 물려 죽는구나."
우리들도 그렇지요?
비가 오면 쑤셔오는 무릎, 내 마음대로 펴지지 않는 허리, 자꾸만 침침해져서 성경 글씨조차 읽기 힘든 눈을 바라보실 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혹시 홀로 빈방에 앉아 아픈 다리를 주무르시며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하나님, 내가 평생 주님 믿고 교회를 위해 헌신했는데, 왜 늙어서까지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늙고 병들어 이 고생을 하나..."
때로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이 몸뚱아리가 원망스럽고, 마치 나를 향한 저주처럼 느껴지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아프지 않으려고, 늙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질병과 노화를 내 인생을 갉아먹는 그저 '악하고 나쁜 것'으로만 취급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소망부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시다.
정말로 우리 어르신들에게 찾아온 이 질병과 아픔이,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가는 이 육신이 단순히 피해야 할 '악'이고 '저주'일까요.
나를 아프게 무는 이 불뱀 같은 고통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왜 우리 삶에 허락하신 것일까요.
[단계 3: 아하! - 구원의 도구가 된 놋뱀, 그리고 십자가]
사랑하는 소망부 성도 여러분, 이 절망적인 뱀의 독을 치료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내리신 처방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은 단순히 "뱀들아, 다 물러가라!" 하고 뱀들을 치워주시거나, 하늘에서 신통한 해독제를 뚝 떨어뜨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세에게 아주 기이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여러분을 물어뜯어 죽게 만든 바로 그 끔찍한 불뱀의 모양을 놋으로 만들어 장대 높이 매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뱀에게 물린 자는 그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선포하십니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바로 그 고통의 상징이, 장대 위에 매달리는 순간 도리어 나를 살리는 생명과 구원의 상징으로 뒤바뀐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기독교가 가진 놀라운 신앙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병들고 약해지는 것을 무조건 '악하다', '내 인생의 원수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병과 노화 그 자체는 악한 것도 선한 것도 아닌, 그저 '중립적인 것'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아픔이 '누구의 손에 붙들려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민수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반역할지라도 그들을 향한 약속을 끝내 성취해 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오늘 광야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을 물었던 뱀의 독은 분명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을 통해 교만하고 목이 곧았던 백성들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낮추어 결국 놋뱀을 쳐다보게 만든 이 고통은,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으므로 오히려 '선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성취시키는 구속사적인 도구가 된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똑같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늙어가는 내 몸, 비가 오면 쑤시고 마음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 이 쇠약한 육신이 과연 악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셔서 내린 저주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약해진 몸은 나를 살리는 가장 선한 도구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다리가 튼튼하고 힘이 넘쳤을 때, 우리는 얼마나 세상 이곳저곳을 내 마음대로 바쁘게 돌아다녔습니까.
하지만 이제 다리가 아프고 무릎이 시려서 함부로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니,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조용히 방에 앉아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육신의 눈이 침침해져서 화려한 세상의 구경거리를 예전처럼 보지 못하게 되니, 우리는 대신 눈을 감고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기력이 떨어지고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지니, 내 힘을 빼고 점점 더 예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건강할 때는 몰랐던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생겨나고, 밤잠을 설치는 그 고통의 시간들이 도리어 조용히 하나님과 깊이 소통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고 내 시선을 오직 예수님께로만 고정하게 만드는 이 고통과 늙음은 얼마나 거룩합니까.
나를 예수님과 가장 가깝게 묶어주는 이 질병이야말로, 내 영혼을 살려내는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구인 것입니다.
장대 높이 달린 놋뱀을 바라보십시오.
그 놋뱀은 바로 우리의 모든 질병과 죄악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 높이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내 몸이 약해질수록,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더욱 또렷해져야 합니다.
병든 몸을 원망하는 대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아픔마저 기도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찬양하십시오.
오늘 이 시간, 아픈 다리를 이끌고 예배당에 나와 앉으신 어르신들의 그 연약함이 바로 하나님의 가장 빛나는 영광입니다.
[단계 4: 복음 경험 (Whee!) - 내 병상(病床)이 지성소(至聖所)로 변하는 기적]
사랑하는 소망부 성도 여러분, 이 놀라운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나면, 이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늙음과 질병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내 인생을 갉아먹는 원수 같았던 이 아픔이, 사실은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도구임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셨을 때,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뼈마디가 쑤셔올 때, 더 이상 한숨을 쉬며 절망하지 마십시오.
머리맡에 놓인 한 움큼의 약봉지와 혈압약, 당뇨약을 보며
"내 신세야, 언제까지 이 약을 먹고 살아야 하나" 탄식하지 마십시오. 대신 그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또 쑤시네... 주님, 저 또 깼습니다. 내 다리가 아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보니, 오늘은 내 골방에 앉아 우리 자녀들과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라고 주님이 내 발걸음을 붙잡아 주시는구나. 내 육신이 이렇게 연약하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전능하신 예수님만 두 손으로 꽉 붙잡으라고 이 병을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처음에는 이 고백이 억지스럽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통증이 극심할 때 은혜로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 주님은 잘 아십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너무 아픕니다." 그 한마디 탄식조차 하나님께는 가장 진실된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르신들!
여러분의 그 연약한 육신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완벽한 기도의 자리입니다.
건강할 때는 세상일이 너무 바빠서, 사람들 만나러 다니느라 피곤해서 하루에 10분 기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몸이 아파 병상에 누워 계시다면, 그 병상은 더 이상 실패와 절망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채,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과 나 단둘이 깊이 소통하는 가장 거룩하고 은밀한 지성소(至聖所)가 됩니다.
새벽에 극심한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어 뒤척이실 때가 있으시지요.
모두가 잠든 그 깊은 밤, 홀로 깨어 아픔을 견디는 시간이 얼마나 외롭고 서러우셨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만 아십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나를 벌주시는 시간이 결코 아닙니다.
그 시간은 이 세상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그 따뜻한 예수님의 품에 온전히 안기는 시간입니다.
"주님, 제가 지금 너무 아픕니다. 광야의 불뱀에 물린 것처럼 온몸이 타는 듯이 아픕니다. 하지만 제가 이 아픔 속에서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제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장대 위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만 쳐다봅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우리의 고통은 가장 짙은 향기가 되어 하늘 보좌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예배가 됩니다.
예수님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는 두 손과 두 발이 못에 박혀 꼼짝도 할 수 없는, 가장 무력하고 철저히 깨어진 몸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몸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세상을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절대적인 연약함과 고통 속에서, 온 인류를 살리는 가장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러니 어르신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의 건강이나 육신의 봉사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게 이 예배당 의자에 앉아 계신 것, 침침한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 흘리시는 것,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교회를 위해 속으로 기도하시는 그 연약한 모습 자체가 교회를 든든히 떠받치는 가장 위대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육신은 이미 평생을 다해 주님과 교회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느라 닳고 닳아진 거룩한 훈장과도 같습니다.
행여나 "내가 이제는 몸이 아파서 예전처럼 봉사도 못해서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십니까.
이제 그 짐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저 오늘처럼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와 앉아 계신 것만으로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광야의 불뱀이 도리어 이스라엘을 살리는 구원의 놋뱀이 되었듯, 여러분의 이 쇠약해진 육신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길어 올리는 생명의 마중물입니다.
내 몸을 아프게 무는 질병과 노화라는 불뱀을 더 이상 저주라 부르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용히 바라보십시오.
그 시선이 닿는 곳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 이 화요일 아침, 십자가의 주님이 여러분의 그 아픈 무릎을, 쑤시는 어깨를, 그리고 남모르게 흘리신 외로운 눈물을 참으로 따뜻하게 안아주십니다.
약해져 가는 육신이라는 거룩한 도구를 통해 주님과 가장 깊이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는, 우리 소망부 모든 어르신들의 복된 남은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위로의 하나님,
오늘 이 화요일 아침, 여기저기 쑤시고 저려오는 연약한 육신을 이끌고 십자가 그늘 아래로 나아온 우리 소망부 어르신들을 주님의 크고 따뜻한 품으로 안아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을 보며 홀로 서러워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질병과 통증이라는 불뱀에 물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면, "내가 무슨 죄가 많아 이리 고생인가" 하며 남몰래 눈물 흘리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닫힌 눈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몸을 아프게 하는 이 질병과 늙음이 나를 버리시는 저주가 아니라, 세상으로 바쁘게 향하던 내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오직 예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드시는 '가장 선하고 거룩한 도구'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날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일들이 우리 삶에 더 깊이 이루어짐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은혜의 주님,
이제는 젊은 시절처럼 더 헌신하고 봉사하지 못해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그 무거운 마음의 짐마저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게 하옵소서.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아파올지라도, 오히려 그 찌르는 통증을 주님을 부르는 기도의 사인으로 삼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외롭고 고통스러운 새벽의 좁은 병상이, 세상의 온갖 소음이 차단된 거룩한 '지성소'로 변하는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구원과 위로는 내 꼿꼿한 힘이나 행위에 있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내 어깨에 들어간 힘을 다 빼고, 그저 고개 들어 장대 위에 달리신 놋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잠잠히 바라보게 하옵소서.
십자가 위에서 철저히 깨어지고 아파하셨던 주님, 오늘 우리 어르신들의 시큰거리는 무릎과 쑤시는 어깨, 약해진 오장육부를 친히 만져 주시고, 영광의 빛으로 덮어 안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겉사람은 비록 낡아지나,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독수리처럼 새롭게 비상할 줄 믿습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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