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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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마음이 흔들릴 때 가장 약해집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데, 속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이 계속 올라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지금 상황도 정리가 안 되고, 마음은 계속 무너져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떠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누가 우리를 책임지는 것인가?”
이 질문이 제자들의 마음 속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위로만 하지 않으십니다. “괜찮다, 잘 될거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시간 함께 말씀을 살펴보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위로받고 힘 얻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님의 사역의 연속성이 앞선 본문에 이어서 오늘도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는 그가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는 성령님이 말씀하십니다. 26절 말씀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보혜사 성령님의 핵심 사역은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용하셔서, 성령은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떠나신 후, 성령님께서는 그 다음 27절에 나오는 평화에 대한 교훈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별설교 전체와 그의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에 있었던 예수님의 모든 교훈들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나게 하다’는 단어는 요한복음에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고, 신약 전체에서도 7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단어가 쓰였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성령의 사역으로 묘사됩니다. 반면 서신서에서는 이러한 사역이 사도들의 사역이며, 목회자의 사역으로 소개됩니다. 즉 성령님께서 말씀 사역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사역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사람이며, 성령님의 도구가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세상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때 그 말씀을 멀리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그 예배들을 통해 말씀 사역자들이 성령의 도구가 되어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찌르면 계속 피하고 도망칩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때, 계속 그 말씀을 무시해 버립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을 따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찌르실 때 피하지 않고 그 말씀따라 살아가는 사람임을 기억하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이어서 27절에는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이라는 주제가 등장합니다. 평화의 인사는 유대인들에게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평안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종말론적인 성취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 때 ‘평화’는 메시야 시대를 의미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참된 평화가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메시야로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달랐습니다.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평화의 제단’을 세우고, 그의 통치가 평화의 시대를 가져온다는 것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소위 ‘로마의 평화’, ‘팍스 로마나’라고 일컬어지는 시대가 2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안에는 로마 황제가 그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전쟁을 종식시키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신념이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로마 황제가 주는 평화와 달랐습니다. 로마 황제는 무력으로 적들을 제압해서 평화를 주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희생으로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평화가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평화가 임했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임했으며,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평화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많은 걱정과 근심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근심과 걱정이 우리 마음을 위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있는 그 근심을 없애시기 위해서 평화를 주셨습니다.
여러 근심 가운데 있을 때, 쉽지 않겠지만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반드시 주님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들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주님 주시는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평화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본문 27절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서 14장 1절에서도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14장의 처음과 마지막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갔다가 다시 온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근심 가운데 있었는데, 14장 전체가 근심하는 제자들을 격려하는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격려하는 말씀 가운데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님에 대해서 우리 마음을 아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 정도로 생각하지만, 성령님의 사역은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말씀을 피하고, 찔림을 외면하고, 순종을 미루기를 너무 쉽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에, 생각나게 하심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를 주신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이 평안은 우리의 상황이 좋아져서 오는 평안이 아닙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오는 평안도 아닙니다.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신뢰할 때 주어지는 평안입니다.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줄 수도 없는 예수님의 참 평안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일하시고,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30절에서 말하는 이 세상 임금, 즉 사탄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께 관계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은 예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탄이 하나님의 계획에 어떤 뜻도 펼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특별히 말씀 사역자들을 통해 말씀이 선포되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를 날마다 깨우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평안, 그 참된 평안이 우리 가운데 임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 약속을 기억하여서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 주시는 성령과 평안으로 가득한 복된 인생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