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부르심은 부르신 이와의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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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7:21–23 NKRV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오늘 본문을 보면 섬뜩한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에요. 주여 주여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말씀도 전하고, 권능도 행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들을 외면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는 했지만 정작 그 능력을 주신 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 바로 오늘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들이 정말로 사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고 칩시다.
오랜 시간 동안 위시리스트에 있는 물건, 장바구니에는 담겨 있었어요. 그런데, 그 물건을 드디어 돈을 모아서 사게 된 겁니다. 주문을 하고 결재를 했습니다. 그리고, 배송기간이 2-3일 정도 걸린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뭐, 택배를 기다리는 마음, 제가 설명 안해도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저희 아이들 같은 경우는 택배를 시키면 오기까지 문 앞을 계속 들락거립니다. 오늘은 올 수 없다고 말해도요. 너무 기대가 되니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확인하는 거에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배송중이라는 메시지를 확인을 하게 보죠.  혹시나 한번 들어가면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옥뮤다라고 하죠. 옥천허브에 빠지지 않았나, 노심초사하다가 드디어 택배가 문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 알림을 받습니다. 그 즉시 기쁨으로 달려가 택배를 받고 바로 언박싱 들어가겠죠. 자, 여러분, 이 과정은 누구다 다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아마 다이지 않을까요?) 택배에는 관심이 있지, 그것을 가져다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라는 것이죠. 이것이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따르는 것이지, 정작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는 않은가? “예수님 저는 당신의 용서를 원합니다. 당신이 주는 복과 건강, 형통을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신은 없어도 됩니다.” 복 받는 것에는 관심이 있지만, 복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이죠. 천국가는 것에는 관심이 있지만, 천국에 가는 티켓을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천국을 주시는 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가지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두번째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세번째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1.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첫번째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말씀인데요.
Matthew 7:23 NKRV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무서운 말씀이죠. 저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거 같아요, 교회 생활 열심히 하는 것으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기준은 열심의 행위에 있지 않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많은 일을 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널 도무지 알지 못한다” 예수님의 기준은 바로 그분과의 관계에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것은 다시 말해, 제자의 삶을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정작 제자로 부르신 이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하지만, 내 마음의 동기를 철저하게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했지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보통 착각하는 것은요. 지식과 친밀함을 혼동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잘 알고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얼마든지요. 관계 없이 지식만 쌓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올림픽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김연경이니깐요. 김연경 선수를 예를 들면, 우리가 아무리 김연경 선수에 대해 안다 한들, 그 가족들보다는 깊이 알 수는 없는 겁니다. 오히려 김연경 선수의 팬들이 가족들보다 김연경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김연경이 어떠한 기록을 세웠는지, 어떤 예능에 출연했는지, 더 잘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알아도 지식만 있고 친밀한 관계는 없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지식이 뛰어나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반드시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경 지식이 필요없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기 위해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닌,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라는 것이죠.
신학자들 중에서도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성경을 지식으로만 공부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지식이 아닌 관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Matthew 7:21 NKRV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러분, 이상하지 않나요? 이들이 지금 행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주여 주여 하면서 선지자 일도 했고 귀신을 쫒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죄를 지은게 아니잖아요. 주의 일을 한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향해 “불법을 행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결국 이들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불법이라고 말씀하시죠. 예수님의 최종 판단이 충격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죄의 본질은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고 했습니다.
John 15:5 NKRV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의 일을 하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 일을 하고 있냐?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어떠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교회에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는 외면한채 그 일들을 행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제자의 삶에 있어서 핵심은요. 관계에 있어요.
오래 전에 웹에서 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요.
미국에서 무신론자를 위한 ‘일요집회’가 열렸는데,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기사에 이렇게 쓰여있더라고요. “함께 모여 찬양을 하고 설교를 듣고, 자기 반성을 하는 모습이 교회의 예배의 모습과 매우 비슷했다, 그 다음 문장이 압권입니다. 굳이 교회와 다른 점을 꼽는다면, 그곳에는 하나님만 없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은 어떨까? 불편한 질문이 제 마음 가운데 떠올랐습니다. ‘우리도 주의 이름으로 모여 찬양하고, 설교를 듣지만, 정작 그 안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다면, 믿지 않는 그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청천벽력같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지 않을까?’
여러분,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이들은 대놓고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고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르고 헌금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삶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거에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8)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정작 6일동안의 삶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무신론적인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여 주여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는 전혀 없었던 자들과 비슷하죠.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 성경에서 알다라는 단어는요.
히브리어로 “야다”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가 처음으로 쓰인 구절이 창세기 4장 1절입니다.놀랍게도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어요.
Genesis 4:1 NKRV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
성경이 말하는 앎이란, 그저 그 사람에 대한 정보만 알고 있는 가벼운 관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나누는 최고의 친밀함을 말합니다. 서로를 완전히 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히브리어 학자는 ‘야다’를 “영혼의 뒤엉킴”이라고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그만큼의 깊은 친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요. 놀랍게도 남녀간의 친밀한 관계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시편 139편인데요. 1절부터 4절입니다.
Psalm 139:1–4 NKRV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여러분, 이 구절을 우리가 한번 낯설게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은요. 우리를 만드신 분일 뿐 아니라, 우주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크다’라는 개념도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는 부족하죠. 우리의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크신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주의 먼지와 같이 작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우주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우리를 살피시고 아신다라는 거에요. 그냥 아는게 아니죠. 우리가 앉고 서는 것, 우리의 생각, 말, 모든 것을 아신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 구절의 뉘앙스를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데요. ‘씨씨티비처럼 감시하면서 안다’  ‘제가 오늘 죄를 짓나 안짓나’ 그런 의미에서의 안다가 아닙니다. ‘감시한다’가 아라 ‘야다’에요.즉, 깊은 친밀함의 앎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_시 139:6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나를 인격적으로 깊이 알기 원하신다니! 지금 이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서 예수님을 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를 ‘야다’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의 친밀한 관계를 원하신다라는 것입니다.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이유도요. 바로 이 관계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3.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이 친밀한 관계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는데요. 바로 세번째 말씀입니다.
Matthew 7:21 NKRV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하늘에 계신 내 하나님” 아니죠, 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자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부르실 때는요. 그분과의 깊은 친밀함이 묻어 나옵니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사실 여러분 이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바로 주기도문의 시작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 우리와의 관계를 원하신다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관계는 초월적인 신과 피조물과의 피상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자녀, 가족의 관계를 말하는 겁니다. 친밀한 사랑의 관계이죠.
여러분,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라왔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교회가 너무나 편했고요. 교회 문화가 너무나 당연하고도 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수도없이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내 머리 속에 관념으로 머물 뿐이지 내 존재 깊은 곳에부터 오는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즈음 이었을 겁니다. 여름날 밤 강원도 어느 깊은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무심코 밤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는데요. 저는 이 경험이 제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계시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Romans 1:20 NKRV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냥 자연을 보고 감탄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능력과 신성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이런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거기 계셨군요” ‘저 멀리 어딘가, 하늘 위에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구나.’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부터 제 삶이 달라졌을까요? 
아니에요.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했지만, 저의 삶은 변하지 않았어요. 교회는 다니고, 주여라고 입술로는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실천적 무신론자로 살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에게 있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변화되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고백으로 바뀔 때였습니다.
어느 작은 모임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경험했는데요. 그 순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멀리서 팔짱끼고 우주를 관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안으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이 믿어지기 시작한 거에요. 여러분,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거에요.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그때부터 저의 삶이 하나씩 하나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디사이플 공동체 여러분 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부르는 친밀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여러분들도 그 하나님을 알기 원하나요? 아니면, 주여 주여 라고 입술로 고백하며, 교회에서 많은 일들을 하지만, 하나님과의 어떠한 친밀함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A.W 토저라는 목사님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worshiper)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worker)로 만드신다”
예배는요.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을 더욱 사랑하는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 관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들은요. 일하는 자들이었지, 예배자가 아니었습니다. 사역의 자리에 있다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워십퍼가 되기 보다는 사역만 하는 워커가 되기 쉽죠. 분명 나는 예배하기 위해서 사역의 자리에 왔는데 사역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히, 사역의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하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예배 그 자체만을 위한 예배의 자리가 없다면 여러분은 예배자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거에요. 이제라도 돌이켜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사랑하는 자리,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존파이퍼 목사님의 설교의 일부분을 인용하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묻는 충격적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언젠가 천국에 가는데건강도 온전하고, 눈물도 슬픔도 없고, 원하는 모든 친구들이 거기 있으며 환상적인 쉼과 안식 모든 것이 있는데,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는다면,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여러분, 부끄럽지만, 저는 이 설교 영상을 보면서 선뜻 “네”라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원하는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는 목적이 예수님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가?
존파이퍼 목사님은 이어서 말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여러분 그것은 천국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천국행 티켓이 아닙니다. 예수님 그분이 천국이십니다. 그분 때문에 천국이 천국으로 되는 겁니다.
여러분,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요.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결정적일 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가죠. 결국 그들도요.  예수님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그 속내가 완전히 들통 나버린 것입니다. 이들은요. 예수님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가득한 천국을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요. 자신이 원하던 천국을 버리고,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아버지라고 불렀던 그 분.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가장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버림,  가족으로부터의 버림, 아버지로부터의 버림이죠“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정죄를 그분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요.  하나님마저 완전히 외면한 사망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예수님의 희생 덕분입니다.
여러분, 어떠한 아름다운 자연 만물도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도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광활하고 신비로운 우주도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주문처럼 외우던 이 고백은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슴 저미는 사랑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이 담긴 고백이에요.
Isaiah 49:14–16 NKRV
14 …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우리가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정작 하나님을 잊는다 하더라도 그분은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혹시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  하나님을 그저 신으로만 여겼지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분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의 주인으로, 구원자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John 1:12 NKRV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 편에서는 여러분들을 받아들일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여러분의 선택이며 결단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해줄 수 없어요.
제가 잠시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문을 화면으로 띠울거에요. 여러분 각자의 고백으로 이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제가 주님을 무시하고 내 길을 갔을 때조차 나를 여전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삶에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저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더 알기 원합니다.  내가 아는 한, 앞으로도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내 삶에 오셔서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세요.  당신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 들이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저의 삶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믿고 따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의 관심은 예수님이 아닌
나의 뜻과 나의 꿈을 이루는 것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열심히 하면, 나에게 그 일을 이루어주시겠지라는 보상심리로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하였지만 정작 나를 부르시고 나를 자녀로 삼으신 주님과의 교제는 없는 것은 아니지
오늘 말씀을 통해 각자를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제자로서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먼저 사랑하고
먼저 알기 원하고,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의 일을 위해 애쓰는 행위가 나를 위한,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감사와 찬양의 행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더디사이플 공동체 무엇보다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뜨겁게 예배하는 예배자들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지금 온라인으로 함께 모여 예배하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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