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받으라

제자의 삶으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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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ians 3:12–17 NKRV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안녕하세요. 더디사이플 공동체 여러분. 오늘도 예배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모인 여러분 환영하고요.!
온라인 예배가 일방적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하기 나름인것 같아요. / 잠시 댓글로 교제하는 시간 나눌텐데요. / 지금 여러분들이 예배 드리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함께 모이진 못하지만, 이렇게라고 교제할 수 있으니깐요. / 주저하지 마시고, 적극적인 댓글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제자로 부름받은 것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제자라는 것은 정체성의 문제이고, 정체성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옛 정체성의 그물을 버리고, 제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으라” 함께 말씀 나누었습니다.
자, 오늘은요. 계속해서 제자 시리즈로 말씀을 전할텐데요. / 시리즈 설교 제목을 “‘제자의 삶으로”라고 정했습니다. / 오늘이 두번째 시간입니다. / “나를 본받으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제자로 부름받았다면 제자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제자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녹색 검색창에 ‘제자’라고 치시고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 그러면, 국어사전이 말하는 제자의 사전적인 뜻이 나오는데요. / 첫번째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이고요.
놀랍게도 두번째가요.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 교회용어사전을 보게 되면 제자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마테테스’라고 하는데요. 이는 “따르는 자, 배우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 또, 바이블키워드에서는요. / 제자란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아도 제자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배우는 자’라는 이죠. / 주도하는 자가 아니죠. 따라가는 자입니다.
어떻게 보게 되면 수동적인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죠. / 내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 스승이 정해놓은 삶의 방향을 따라가고, 배우는 것이 제자라는 것이죠. / 여러분, 이 점이 제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 제자란 배우는 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요. 따르고, 배우는 것과는 거리가 먼거 같아요.
절대적인 것은 없어. 내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거야. 행복하면 문제 없는 것 아니냐? 나도 맞고 너도 맞아. 어떠한 한 길을 따라가지 말고, 각자의 길을 가. / 오늘 우리 시대의 목소리죠.
그래서, 관계 가운데 서로 배우려 하기 보다는 분리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죠. 가르치는 사람에 대해서 별로 썩 내키지 않아 합니다.
지금은 지나간 단어이기는 하지만, 한창 많이 쓰였던 ‘꼰대’라는 단어만 해도 어떠합니까? 물론 지나치게 권위적인 것은 잘못된 것이죠. 여기에 많이 디인 세대들이 바로 여러분 세대에요.
하지만, 이로 인해 권위 아래서 배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면에서 제자라는 단어는요.  반시대적, 반 문화적 단어죠. 시대와 역행하는 삶의 모습이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주저하고 있는거 같아요. 혹시 여러분들도 주저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시대의 목소리에 의해서 파묻혀져 가고 있는 이 제자의 삶이 얼마나 매력적인 삶인지에 대해서 나눌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속박하고, 옭아매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하는 부르심이며, 가장 행복하고도 위대한 부르심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그 제자의 삶, 따르는 삶, 배우는 삶으로 가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부르심의 삶을 온 몸으로 살아간 한 인물이 있었는데요.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의 가슴뛰는 고백이에요. 그는 이 부르심의 삶을 억지로 가지 않았습니다. / 여러분, 빌립보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에 하나죠.
Philippians 4:4 NKRV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아,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서 내 인생 꼬였어, 고생길 열렸네,  아 너무 힘들어, 죽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마다못해 이 길을 가지 않았어요. 그의 가슴은요, 행복으로 뛰고 있었고, 기쁨과 감사로 넘쳐 났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도 바울은 이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다

첫번째로 그는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방금 말했듯이 제자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덕목은 바로 배움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 정도면 그만 배워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생각할 수 있죠. / 신약성경에서 복음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신서를 쓴 위대한 사도가 바로 사도 바울 아닙니까?그런데, 12절을 보게 되면 그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어요.
Philippians 3:12 NKRV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Philippians 3:13 NKRV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놀랍게도 바울은요. ‘난 아직 멀었어. 난 완성되지 않았어. 난 아직 더 가야 하고, 더 배울 것이 많아. 그러기에 나는 예수님을 더욱 닮기 위해 계속해서 달려갈거야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를거야. 그분의 제자로서 배울거야’
여러분 ,아무리 위대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사도 바울은요. 한 번도 제자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는 끊임없이 배우는 자, 따르는 자였다라는 것이죠. 예수님을 더욱 알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삶을 살았다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특별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 중에요. 나는 이미 이루었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마치 결승선에 이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절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교만이기도 한데요. 교만의 특징은요. 절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한지 남한테 가르치려고만 하지 절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이러한 사람들은 제자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요. 이러한 사람들은 교회생활을 아는거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적인 지식이 뛰어날 수 있습니다. 경험도 많겠죠. 그런데, 나는 이제 배울게 없다?  가장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로제 길레민’이라 분이 있는데 미국의 생리학자입니다. “물질의 기본 구조를 연구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렵고, 정말 모르겠다” / 그런데, 대학 초년생일수록 어떠합니까? 우주의 신비를 다 아는 것처럼 설치고 다니죠.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여러분, 그 사람이 가장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1절 가사에 이러한 고백이 있죠. /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 저는 이 겸손한 고백이 진정 하나님을 아는 자의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요.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아 마땅한 신앙의 대가였지만, ‘난 아직 완전한 자가 되지 못했어, 난 아직 갈 길이 멀어’ / 아무리  많은 교회를 세우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기 원하는 제자였다라는 것이죠.
그러한 면에서요. 우리는 제자이기를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디사이플 공동체 여러분, 계속해서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과거는 잊고 오늘을 살아가라

Philippians 3:13–14 NKRV
13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자신이 한 일, 뒤에 것은 잊어버리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다시 말해’,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뒤에 것들은 잊어버리겠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외로요. 제자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과거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거 해봤는데, 안되더라. 믿음으로 살아가보려고 해봤는데 안되. 기도해봤는데 안되.  교회에 적응해보려고 했는데, 안되’ 이전에 경험했던 실패의 경험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제자의 삶은 완성된 삶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실패해야죠. 배움은 실패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들 성격이 실패를 못견디는 성격인데요. 수학 문제를 풀다가 틀리면 바로 포기해버리더라고요. 실패를 견디지를 못하는거에요. 그래서 틀릴바엔 아예 시도조차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얘기하죠. ‘아들! 틀리는건 당연한거야. 앞으로 넌 계속 틀릴거야. 그게 이상한게 아니야. 틀려야 배울 수 있는 거잖아. 물론, 아빠는 고등학교 때 수학을 포기했지만, 넌 아직 초등학생이잖아. 아직 포기하기에는 너무 일러. 계속 풀어보자!”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죠.  실패의 경험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6년동안 2청년부 사역을 해오면서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실패의 경험입니다. 하는 족족 다 망했어요. 차라리, 시도라도 하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않았을 것을, 별의 것들 다 해봐서 예전 2청 분들께는 너무 미안한데요. 다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청년이 저한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목사님, 어차피 해봤자 안되는거,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거 어떨까요.” 저를 생각해주고 하는 말이라 고맙기는 했지만, 저는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실패하더라도 시도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니깐요. 우리가 달려가야 할 방향이잖아요. 그래서 전 실패할 줄 알면서도 시도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가 닫혔다고, 그냥 손 놓고 당할 수는 없잖아요. 예전에 실패했다고 해서, 여기서 포기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야죠.  그 길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라면, 만들어서라도 달려가야죠. 그것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과거에 어떠한 실패를 경험했는지 다는 모르지만, 제가 아들한테 했던 말을 반복해서 여러분들에게 하겠습니다.
여러분, 틀리는건 당연한 겁니다. 제자의 삶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과정을 거치는 거에요. 괜찮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은 믿음의 길을 달려가다가 넘어질 거에요. 하지만,  그 실패의 경험 때문에 예수님을 추구하는 삶을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여러분,  과거의 실패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할 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요. 과거의 성공과 영광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은혜 받았다라는 사람들이요. 의외로 그 과거에 머물러서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 잡혀서, 오늘을 살아가지 못하는거죠. 이런 사람들에게 제자의 삶을 살아가라고 하면 ‘제자? 이미 예전에 난 이미 졸업했어’ 라고 여깁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사도 바울이야 말로 뒤에 것을 잊어버리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죠. 그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은 누구보다도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도 바울도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제자의 모습으로 머물 잖아요.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들에 자아도취되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 다 잊어버리고 나는 계속해서 달려가겠다.’ 그는 한순간도 제자의 부르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과거의 실패로 인해 더 이상 기대없이 머물고 있거나 이전에 경험했던 성공이나 영광에 사로 잡혀서오늘 하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뒤에 것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위하여 달려가겠다. 여러분, 제자의 삷은 과거에 실패를 경험했다 해서, 주눅들어 포기하거나 과거의 영광을 이루었다고, 그 자리에 안주해 머무는 자들이 아닙니다.
제자는요. 겸손하게.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3. 나를 본받으라

마지막, 세번째 주제인데요. 저는 이 마지막 주제가 여러분에게 불편하게 들릴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 세대가 반드시 들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17절을 보게 되면 대뜸 바울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Philippians 3:17 NKRV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오늘 본문 뿐만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4장 16절을 보게 되면
1 Corinthians 4:16 NKRV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아니, 그렇게까지 자신은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다고 하는 바울이 자신을 보고 본받으라니 여러분 어떻습니까? 불편하지 않나요? “여러분 저를 본받지 말고, 예수님을 본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해야 맞는거 같은데, “나처럼 살라니” 이거 교만한거 아닌가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같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우리가 사도 바울을 오해할 수 있지만 쉽게 풀어서 쓴 ‘메시지 성경’ 번역을 보게 되면 이렇습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얻었다거나 다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놀랍게도 나를 붙드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내 길을 갈 뿐입니다. 친구 여러분, 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이 모든 일의 ‘전문가’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짓하여 부르시는 그 목표, 곧 예수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친구 여러분, 내 뒤를 잘 따라오십시오. 같은 목표를 향해 우리와 같은 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을 놓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이 본 받을 만큼 완벽한 사람일까요? 아뇨. 위대한 사도이긴 하지만, 그도 인간이고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은 말하는 것이 어눌하고,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일까요?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죠. 바울이 말하는 것은요. 자신도 부족하지만,  예수를 끝까지 따르는 삶,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죠.
난 예수만 따르니깐, 다 필요 없어. 교회도 필요없고, 공동체도 필요없어. 예수님만 따르면 되니깐. 사람들 괜히 기대하고, 의지했다가 상처 받지말고, 예수님만 따르면 되. 여러분, 대게 그럴듯해 보이죠. 믿음 있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는 사람보고 다니게 아니라  하나님만, 예수님만 보고 다니는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을 보고 배우고 본받는 거라고.
Philippians 3:17 NKRV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사람보지 말고 신앙생활 해라’가 아니에요. 오히려 사람을 보고, 관계 안에서 서로 성장하며 배우고,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젊은이들이 닮아갈 모델이 없다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이 문제를 좀 뒤집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본 받을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 아닌가? 완벽한 모델 아무도 없어요. 사도 바울도 완벽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흠이 없으면, 그 사람 물어뜯기 바쁘지 절대로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는 고등학생 때 미대에 가기 위해 뒤늦게 고2때 미술학원에 갔는데요.
당시 미대에 진학을 하려면, 뎃생을 배워야 했습니다. 석고를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건데요. 처음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미술학원 선생님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더라고요. 넌 천재 아니면 미친놈이라고. 학원에서 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생전 놀다가 처음 연필 잡은 얘가 너무 잘 그리니깐, 그런데, 제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입시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3수를 했습니다.
제가 3수까지 하면서 꺽이지 않았던 고집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난 다른 사람들 그림 필요 없어. 난 석고상 하나만 있으면 되.’ 그런데 여러분, 데생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데생을 할 때 석고상만 보고 그려선 절대 잘 그릴 수 없어요. 캔버스에서 연필을 그려내는 기술이 있는 것이고요. 방법이 있는거에요. 어두운 톤은 어떻게 처리하고, 반사광은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를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배워야지, 잘 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재능만 믿고, 다 필요없어. 난 이미 알아. 내 방식만 고집하면서, 전혀 사람들에게 배우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3수까지 가니깐 겸손해지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의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요. 그때부터 제 그림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이렇게 할 때가 많은거 같아요.
제가 석고상만 바라보았듯이 ‘다 필요없어, 난 예수님만 따르면 되.’ 라고, 그럴듯하게 얘기하지만, 전혀 배우지 않는거죠.여러분, 이 모습은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까?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에게 배우고, 그 사람들을 본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님들에게 배우시고요.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선배들에게 배우세요. 친구들에게서 배우세요. 그 사람들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 배울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한테 예배만 드리면 되지, 무슨 목장이냐고요? 목장 아니면 여러분 어디에서 배울겁니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요. 관계 안에서 서로 배울 수 있는 목장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절대로 본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자식이 저의 좋지 않은 점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은 건데요. 진짜, 저의 안좋은 점 무지 않거든요. 맨날 오타만 내고, 툭하면 잊어버리고, 벼랑 끝에서 갑자기 일 저지르고. 아직 저는 철도 들지 않은 인간이라, 정말 본받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은 ‘나를 본 받으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허점투성이 인생이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방향성만큼은 여러분, 저를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기성세대, 부모세대, 라뗴 선배들이 너무 권위적이라고요?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죠. 하지만, 그분들이 헌신하고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물으면서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예배할 수 있는 것은요.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피 땀 흘려, 기도하고, 헌신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대화가 되지 않고, 힘든 부분들이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 어떻게든 신앙을 지키려는 그 방향성은 우리 세대가 보고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보고 배울 사람들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자일 수가 없습니다.
더디사이플 공동체 여러분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이미 된 것에 있지 않고, 되어가고 있는 것에 있다"
우리는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Ing, 현재 진행형의 인생들이라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배우시기를 바라고 과거의 실패와 영광,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마치 초신자와 같이 오늘이 처음인 것 같이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속해서 먼저 달려간 이들을 보고, 서로 본 받고 배우는 이 시대의 진정한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봉헌기도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온라인 예배로 드려지는 두번 째 주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고,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가 필요하고,성령님의 능력이 필요하기에 겸손히 예배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마침표를 찍은 완성된 자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부족하고도 연약한 죄인임을 기억하며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언제나 우리 예수님을 따라는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서로를 배우고 본받는 제자, 더디사이플 공동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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