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경험하라_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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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경험하라_시작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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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십자가를 경험하라.
경정판에 고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에서 사는 사람.이 이 책은 1996년 12월에 재판이 바른 20년간 꾸준히 적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입니다. 당시는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관심은 영적인 부흥과 각성 그리고 분명한 회심이 조국 교회 가운데 보편적으로 일어나기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인간의 깊은 죄성을 깨뜨리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성화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힘은 십자가의 예수를 만나는 경원이라고 확신하였이 주제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설교들이 바탕이 되어이 책이 출관되게 되었습니다.
(00:58) 이미 5만여명 가까운 독자들이이 책을 읽었으나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사랑에 대해 배워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이 책이 더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개정판을 내어놓습니다. 그러나음 처음의 원고를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추가 부연을 더 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장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고 새로운 내용을 덧붙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이 책을 천천히 다시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유행도 달라졌으나 적어도이 책이 담고 있는 주제와 내용에 있어서만큼은 처음이 책이 나왔을 때 담고 있던 것을 어수란히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하달입니다.
(02:06)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리게 된 하나님의 생명은 중생을 통해 이미 주어졌지만 성화를 통해 현제화해야만 실제로 향유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우리 안에 현재화 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은 그것이 고난이건 축복이건 비로소 의미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 예수님만이 생명이고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경험하는 모든 문제는 생명과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신앙은 내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아낌없이 드리리라라고 한번 다짐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03:07) 매일 십자가에 대한 경험 속에서 매일 자신의 옛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매일 우리 안에서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새롭게 솟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장 31절.이 이 비밀을 터득하시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에서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죄인된 자신이 죽는 것만큼 충만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다시 사시는 것을 삶 속에서 경험한 은혜가 임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04:03) 27년 1월의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노예 긴
책을 열며
세상을이기는 위대한 능력의 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그의 신앙을 십자가에 대한 감격으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기록 십자가에 대한 분명한 체험이 부족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지금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를 붙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두드러진 성경의 진리들을 놓치고 덜 두드러진 것들을 붙들고 실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위대한 부흥을 누리던 시대에는 언제나 사자처럼 살다간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거목처럼 살다가 간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신앙과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05:01)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세상을이기는 위대한 능력의 비밀과 오류와 죄가 가득한 세상을 끌어면서도 거룩한 삶을 이어가는 비결은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진리는 기독교 신앙에 마르지 않는 셈입니다. 성경의 모든 교훈도 십자가에 걸리지 아니하면 그것은 한낮 윤리적인 교훈이나 한 종파의 종교적 습관의 나열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는 십자가를 통해 경험됩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의 사랑을 잘못 알았거나 더 위대한 사랑을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입니다.
(05:58) 경고하고 거룩한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불굴의 싸움에 자신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십자가를 개인적으로 깊이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한 경험이 없어도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빛나간 열심으로 허한 심령을 달래보려고 일쓰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은 현실적인 신자들의 무감각한 교회 생활과 또 같이 위험한 것입니다. 그들은 생수의 샘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06:48) 조국 교회가 신속히 복음에서 떠나는 가슴 아픈 현실을 보며 하나님의 목매이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전하고자 애써 왔습니다. 여기 실린 여편의 글들은 이러한 조국 교회의 형편과 그 속에서 벗어나는 길을 십자가를 통해 제시해 보고 싶어서 적은 것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된 복음을 하찮게 생각해도 어디서든지 십자가의 진리를 목마르게 그리워하고 그 진리와 만날 때 거룩한 감격에 사로잡혀 어두운 신앙의 눈이 뜨는 복스러운 각성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기에 기대하며이 글을 책으로 내놓습니다.이 이 작은 글들이 미로에서 해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신앙을 되찾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07:39) 끝으로이 책을 펴내는데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생명의 말씀자 가족들과 원고를 정리하기 위하여 수고한 진광이 선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열린 교회 성도들보다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시작하는 글
어느 신학자의 눈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로마서 14장 8-9절
노학자의 눈물
1740년 스코틀랜드 캠버스에서는 놀라운 영적 각성과 과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08:35) 그때 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거나 복음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제대적인 회심을 경험하게 되는 일은 이러한 부흥의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특징입니다. 참여하며 기도하는 회중 가운데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설교자의 십자가 설교 앞에서이 노인은 어린아이처럼 한없이 울며 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다른 만인 그 지방의 신학교에서 교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노 교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껏 속죄의 교리를 알고 가르치기는 하였으나 속죄하시는 주님을 만나지는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전에는 십자가에 대해 단지 알았으나 이제는 내가 가르치던 것들을 느끼고 있습니다.
(09:29) 불꽃처럼 산 사람들
이 세상에는 주님을 한없이 사랑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넘치도록 수고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불꽃처럼 태워서 드렸던 오직 믿음으로만 살다가 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불꽃처럼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 비결은 십자가였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의 생애를 읽고 듣기 좋아합니다. 비록 그들처럼 살고 싶 있지는 못하더라도 언제나 그들처럼 살고 싶은 목마른 마음과 그들처럼 죽고 싶은 사모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높아만 보이는 위대한 수준의 신앙생활을 우리를 외워 싸고 있는 것과 동일한 연약함과 박해와 도전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이어갈 수 있었을까요? 어린양과 같이 연약했던 그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상상을 뛰어넘는 열정과 거룩한 짐념으로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사자처럼 살다가 용사처럼 죽어갔는지
(10:34) 저는 그저 어린아이와 같은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볼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과 세상 속에서의 거룩한 삶에 대하여 부끄러울 정도로 낮아진 기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았던 신앙의 선진들이 와서 우리에 낮아진 영적인 수준과 부도덕한 삶을 본다면 그들은 아마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실 자체에 대하여 당황할 것입니다.
진정한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기독교적인 용어들에 대하여 진정한이라는 수식어구를 붙이지 아니하면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신앙과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 사이에 골깊은 격차를 해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1:26) 기독교와 진정한 기독교, 그리스도인과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앙과 진정한 신앙, 기도와 진정한 기도, 선교와 진정한 선교, 교회와 진정한 교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신앙이 성경으로부터 이탈되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의 시발점은 십자가에 대한 이해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자연스러운 신앙의 태도와 신학에 대한 방만한 자세가 유행하고 있는 시대에 십자가에 대하여 우리 가운데 통영되고 있는 정도의 동의를 갖는 것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을 꿈꾸던 사람들은 언제나 절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의 기준은 다른 교회나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12:19) 물론 그들은 다른 교회와 다른 시대의 역사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경험과 그 많은 제작들을 무가찬 것처럼 교만하게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성경 속에서만 자신들의 신앙의 진위를 판별받고 싶어하였습니다.
십자가와 부흥.
부흥의 위대한 역사를 살펴볼 때마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참되고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져왔던 순수한 부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십자가와 회심에 대한 단호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왔습니다.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회심을 단호히 거부하고 참된 회심과 거짓된 회심을 분명하게 구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3:10)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유행하고 있는 교회 부흥의 신학이나 대규모 모임들을 통하여 신앙의 변화를 꾀하고 전를 계획해 보는 시도들은 모두 그 근대적인 기원을 1800년대에 있었던 켄터키의 신앙 부흥 운동에서 지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부흥 운동들이 찰스피니에 의하여 본격화되고 이론적으로 정돈되기에 앞서 이미 지극히 인위적이고 비성경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운동 차원의 전도 활동을 붕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된 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부흥운동은 곧 십자가와 회심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을 초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대에는 미쳐 생각지 못했던 악한 결과들을 그다음 세대에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14:03) 교회가 십자가와 회심에 대하여 어떠한 유의 교리들을 가지고 있는지가 신앙 부흥의 순수성 여부와 어떻게 관련을 갖는가 하는 것도 당시에 일어났던 미국 동북부 지역의 영적 각성과 부흥의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됩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교회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현실과 조화시켜 보려고 할 때 언제나 복음 진리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하라.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성경적인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동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인격적으로 깊이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깨달을 때 그 복음이 단로 지진 것처럼 어 가슴의 깊이 새겨지는 영적 체험을 하였습니다.
(15:03) 단지 체험만 하였을뿐 아니라 일생 동안 오직 그 십자가에 굳게 붙들리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의미가 그들을 사로잡았고 그것이 그들을 예수의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었고 십자가의 정신으로 죽게 하였습니다.이 모든 위대한 삶은 그들이 십자가의 의미와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묻은 복음을 가슴에 품고 한 영혼을 얻는 기쁨으로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마음으로 어두운 땅을 누였던 믿음의 선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한결같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맛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법입니다.
(15:55) 체험하지 못한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하겠으며 만져보지 못한 십자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불사를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질문.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실을 한 번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려는 듯이 살았습니다. 영원이심으로 순간에 죽으실 수 없는 분이셨으며 하나님이심으로 인간에게 생명을 깨앗기실 수 없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하신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살고자 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통받는 세상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 하나님의이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산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16:45) 그들을 믿지 않는 불신의 땅에 복음 전도자로 보낸 것은 자신의 결심이나 궁국의 선교 계획이 아니라 그들 안에 역사하고 있는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그 십자가의 예수를 전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지금 제가 하나님을 만났느냐고 묻는 대신에 십자가의 예수를 만났느냐고 하는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이 세상에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각성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거나 죄에 대한 각성을 경험한 것이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17:26) 지금 제가 묻고 있는 것은 여러분과 십자가의 개인적인 만남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간증과 추억들을 어 하나님께 아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 할지라도 십자가와의 만남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 없다면 다른 모든 신앙의 경험들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질문을 들어야 합니다. 당신이 경험한 십자가의 주님과의 만남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살게 하기에 충분합니까? 이제이 책을 읽는 당신이 답할 차례입니다.
십자가 아래서
내 눈물로 정한수 삼아
찢기신 주님의 이마의 핏자욱을 닦아드리고
내 머리카락을 잘라 신발 삼아
벗으신 그 발에 신겨 드리고
내 살가죽을 벗겨 고운 홍포를 지어
벗으신 몸에 덮어드리고
점점이 살을 에어
못박혀 뚫어진 손바닥,
창으로 구멍난 옆구리를 메워 드리리이다.
그리하고도
남은 살과 피가 있다 하여도
그것도 내 것은 아니옵나이다.
김남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