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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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다른 이름'을 버리고 오직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굳게 붙잡는 것
본문: 사도행전 4:1-22

[도입] 성전 미문의 기적과 타오르는 불길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놀라운 기적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으로 기도하러 올라갈 때였습니다. 그곳에는 무려 40여 년 동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하고 구걸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동전 몇 닢을 던져주고 지나갔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은과 금 대신, 자신들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주었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 선포와 함께 40년 동안 굳어있던 그의 발목에 힘이 생겼고, 그는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엄청난 기적 앞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모두가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기도해서 낫게 했다"며 으스댈 법도 한데, 베드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곧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살아 계신 예수님’께로 돌렸습니다.
“우리의 경건과 능력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생명의 주, 그 예수의 이름이 이 사람을 성하게 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뜨거운 설교를 통해,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복음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본문 1-7절] 세상의 위협, 그리고 핵심적인 질문

하지만, 복음의 불길이 타오르는 곳에는 언제나 이를 끄려는 세상의 위협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도행전 4장의 시작을 보면,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와 요한 앞에 유대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등장합니다. 왁자지껄했던 성전 주변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분위기가 살벌해집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유대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절대 권력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볼까요?
제사장들은 유대교 서열 1위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 옆에 선 ‘성전 맡은 자’들은 성전의 치안과 경비를 담당하는, 무력까지 사용할 수 있는 서열 2위의 실세들이었습니다. 함께 온 사두개인들은 당시 정치와 경제의 막강한 실권을 쥔 보수 중의 보수 기득권층이었습니다. 특히 이 사두개인들은 부활, 천사,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가 부활했다'고 가르치니, 자신들의 교리와 권위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고 여겨 분노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성전을 소동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사도들을 감옥에 가둬버립니다. 하지만 여러분, 사람이 복음을 가둔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갇히겠습니까? 감옥문은 닫혔어도, 성령님은 일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예수를 믿게 된 남자의 수만 5천 명이 넘었습니다. 여성과 아이들까지 합치면 1만 명이 훌쩍 넘는 거대한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튿날, 예루살렘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가 열렸습니다.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등 최고위층 제사장 가문이 총출동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 가야바는 과거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유익하다”며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앞장섰던 부패한 인물입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죄인처럼 끌려 나온 베드로와 요한에게, 권력자들은 아주 위협적이고도 핵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본문 7절입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 질문은 단순히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도대체 뒷배가 누구야? 이단 종파나 악신의 이름으로 한 것 아니냐?”라며 몰아가는 협박입니다. 속뜻은 이것입니다. "너, 당장 예수 이름으로 말하는 거 그만둬. 안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죽였던 것처럼, 너희도 이 자리에서 당장 죽을 줄 알아!"
여러분, 이 장면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실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도, 매일매일 삶의 한가운데서 세상으로부터 이와 똑같은 심문과 위협을 받습니다. 세상은 생명의 메시지를 싫어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 네 마음대로 즐기며 사는 게 최고야. 영원한 게 어딨어? 부활이 어딨어?"라며 우리를 조롱합니다.
때로는 세상이 나를 억울하게 몰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취업의 문턱에서, 남들과 연봉을 비교할 때,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의 화려한 일상을 볼 때, 세상은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들며 이렇게 심문합니다.
"야, 이 험한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돈'이라는 이름을 불러야지! 뒤처지지 않으려면 '성공'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유명해지려면 '인기'와 '스펙'이라는 이름을 챙겨야지! 도대체 너는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험한 세상을 버티려고 하느냐? 예수? 그 이름이 밥 먹여 주냐?"
여러분, 세상이 이렇게 우리를 협박하며 여러분의 이름, 여러분의 피난처를 물을 때,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본문 8-12절] 오직 예수, 흔들리지 않는 머릿돌

우리는 오늘 베드로의 대답을 잘 들어야 합니다. 과거의 베드로라면 두려워서 도망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어린 여종 앞에서도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했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자, 죽음의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는 권력자들 앞에서 예의를 갖추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논리적이고 성경적으로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본문 9절부터 12절을 통해 베드로는 세 가지를 명확히 밝힙니다.
첫째, 우리가 한 일은 병든 자를 고친 '착한 일'이다.
둘째, 이 기적의 근원은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셋째, 그 예수가 바로 성경이 예언한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그러면서 시편 118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아주 통쾌한 비유를 듭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1절)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쓸모없는 돌, 실패한 돌이라고 생각해서 십자가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버린 예수님을,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가장 중요한 기초석, '머릿돌'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포를 그들의 귓가에 울려 퍼지게 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12절)
베드로는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다른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선포했습니다. 왜 다른 이름은 안 됩니까? 하나님께서 구원의 유일한 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한다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선행을 많이 쌓으면 천국에 갈 수 있나요? 여러분, 우리가 열심히 헤엄치는 연습을 하면 한강 정도는 스스로 건널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태평양을 맨몸으로 헤엄쳐 건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태평양을 건너는 일과 같습니다. 내 노력과 내 스펙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배에 올라탈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가룟 유다는 이 은혜의 기초석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비참하게 무너졌고, 유대 지도자들 역시 70여 년 뒤 로마가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성전과 함께 철저히 파괴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 삶의 기반이요, 신앙의 기초석이십니다. 이 기초석을 버리면 삶도, 신앙도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과 성도들이 인생이라는 집을 짓기 위해 수많은 '돌'들을 모읍니다. 좋은 학점, 화려한 자격증, 외모, 인맥, 사회적 평판이라는 매끄럽고 예쁜 돌들을 주워 모읍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그 화려한 돌들로 아무리 높이 집을 지어도, 가장 중요한 기초석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릿돌’이 빠져있다면, 사탄의 시험과 세상의 유혹이라는 비바람이 불어올 때 그 집은 산산조각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 밑바닥을 받치고 있는 머릿돌은 무엇입니까? 그 돌에 과연 '예수'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내 삶의 모퉁잇돌 되신 분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인지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본문 13-22절]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베드로의 이 거침없는 답변에 유대 지도자들은 완전히 당황하고 맙니다. 본래 그들은 베드로를 율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촌사람으로 무시했습니다. 게다가 예수가 잡힐 때 도망쳤던 패잔병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 논리적이고 당당한 태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눈앞에는 치유를 받아 두 발로 펄쩍펄쩍 뛰고 있는 40년 된 장애인이 버젓이 서 있고, 민중들은 예수를 믿고 있으니 함부로 처벌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도들을 잠시 밖으로 내보내고 회의를 엽니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이 사태를 덮으려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다시 불러 최후의 통첩을 날립니다.
“앞으로는 절대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예수의 이름'이었습니다. 복음이 퍼져나가 자신들이 죄 없는 예수를 죽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자신들이 누리던 종교적 이익을 잃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내 이름, 내 밥그릇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고를 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입에서는 소름 돋는 명언이 터져 나옵니다. 본문 19절, 20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의 통치)
세상 최고 권력자들의 협박 앞에서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바로 20절의 고백처럼 “우리는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고, 성령의 임재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은 늘 눈에 보이는 겉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고 쓰시는 기준은 단 하나, "지금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사람은, 세상의 협박보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크심을 더 깊이 느낍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찐하게 맛본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위협해도 결코 예수의 이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보고 들은 그대로 예수님과 함께하며 그의 이름으로 행할 때, 베드로와 요한은 두려움과 위협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결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그 피난처로 나아가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유혹과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예수 말고 다른 이름을 붙잡아라. 돈, 명예, 스펙을 붙잡아야 산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구원과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부활의 이름, 승리의 이름, 구원의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서 헛된 '가짜 구원자'들의 이름을 지워버리시길 바랍니다. 가짜 구원자들은 ‘실패’라는 이름으로 두렵게하며, ‘좌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위축되게만듭니다. ‘비교’와 ‘열등감’이라는 초라한 이름표를 달게 만듭니다. 이렇게 만드는 가짜 구원자들 계속 붙잡으시겠습니까? 이제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그 위대한 이름이 새겨진 머릿돌(기초석)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 이름이 주저앉아 있는 여러분을 일으켜 걷게 할 것이며, 세상이 결코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평안과 담대함을 허락할 것입니다.
혹시 지금 십자가의 고난과 억울함 가운데 울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듯이, 현재의 고난 뒤에는 찬란한 부활의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잠시 잠깐입니다. (롬 8:18)
오늘 이 시간, 모든 것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기도합시다. 세상의 위협을 피할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신 주님 품으로 달려갑시다.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의 남은 인생이, 다른 어떤 헛된 이름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영원한 생명이 가득 채워지는 복된 인생,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세상의 '다른 이름'들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굳게 붙잡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인도 멘트)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 함께 결단하며 기도합시다. 혹시 내 삶의 밑바탕에 몰래 깔아두었던 세상의 성공, 돈,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가짜 머릿돌이 있다면 이 시간 십자가 앞에 다 빼어버리기를 원합니다. 나를 얽매는 두려움들이 실패와 좌절, 비교와 열등감을 부끄럽게 여기며 삶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럴지라도 오직 나를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단 하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만을 내 삶의 반석으로 삼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담대하게 승리하게 해달라고, 다 같이 주님 이름 한 번 크게 부르고 합심하여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찬양 -> 십자가를 참으신(G) 기도중 맞춰서 후렴 부분을 한번 찬양하고 처음부터 들어갑니다! ex) “예수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십자가를 참으신

[마무리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천하 사람 중에 구원받을 만한 유일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하며 돈과 성공이라는 다른 이름을 부르라 강요하지만, 오늘 베드로와 요한처럼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예수의 이름만을 선포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가 의지하던 썩어질 가짜 구원자들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흔들리지 않는 머릿돌이 되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고,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넉넉히 승리하는 우리 모든 성도(청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이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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