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1: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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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이사람통역되나요?
먼저 말라기서를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의 마지막 예언서로만 보지 않고, 예배의 열정이 식고 신앙이 형식화된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절박한 호소로 읽습니다.
포로기 이후 유다 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했지만, 그들이 기대했던 정치적 독립과 물질적 회복은 곧바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처음에는 뜨겁게 드리던 예배가 점점 식어 버렸고, 제사는 남았지만 생명은 사라졌습니다.
제물의 숫자는 맞췄지만, 실상은 눈먼 짐승과 저는 짐승을 바치는 식의 “형식적인 제사, 죽은 제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자는 말라기가 이런 상황을 향해 외친 핵심은, **“하나님의 사자가 반드시 이 성전에 오실 것이니, 심판받지 않으려면 지금 바른 예배와 율법의 삶을 회복하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1장 1-6절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추상적으로 말하는 본문이 아니라, 식어 버린 예배를 다시 살려 내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근본부터 다시 묻는 본문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은 먼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완료시제... 그런데 유다 백성들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들은 감사하지 않고 곧바로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되묻습니다. 이 질문 속에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원망, 불평, 항변이 들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곧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왜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느냐, 왜 약속한 것 같은 복을 주지 않느냐”는 항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사랑과 유다 백성들이 생각하는 사랑이 완전히 달랐다고 말합니다.
유다는 사랑을 철저히 물질적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돈을 주고, 땅을 주고, 권력을 주고, 형편을 넓혀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집이 넓어졌는지, 재산이 늘었는지, 힘이 강해졌는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재단했습니다. 그 결과 원하는 수준의 번영이 없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반면 저자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다릅니다. 그는 이를 결혼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연애는 감정의 열기로 버틸 수 있지만,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삶 전체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지 외적인 보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들어가는 것, 곧 전에는 혼자 결정하던 삶을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결정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란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 가는 것”, “모든 삶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하나님과 환상적인 콤비가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어떻게 함께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사진이 아니라 말씀을 품으면 된다고 답합니다. 늘 말씀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매사에 “하나님, 이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것이 곧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은 물질의 증감이 아니라 동행의 깊이로 확인됩니다.
이 사랑의 성격을 하나님은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으로 보여 주십니다.
김서택 목사는 이 구절의 핵심을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으로 풉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였고, 인간적으로 볼 때 둘 다 흠이 많았습니다. 에서는 탐욕스러웠고, 야곱은 사기꾼 같은 면이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둘 다 그 자체로는 사랑받을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야곱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선택의 핵심으로 보고, 선택에는 세 가지 사실이 들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전혀 택할 가치가 없는 자를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한번 택한 자를 부족하다고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았다고 그 즉시 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용서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택한 자를 위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택한 자가 그 그림대로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 → 인내 → 변화”의 사랑입니다.
이 지점에서 유다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를 날카롭게 짚습니다.
그들은 이런 사랑 앞에서 감사와 경외를 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당연시하면서도 복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다니”가 아니라, “사랑한다면서 왜 복을 안 주느냐”라고 따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원수였고, 전혀 사랑받을 만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먼저 아시고 택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을 주시든 어려운 것을 주시든,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요구보다 찬양과 감사가 먼저 나와야 맞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자는 늘 거룩하게 살지 못하고 자주 넘어지지만, 겸손하고 정직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교만과 거짓입니다.
이어서 저자는 3–4절의 에돔 이야기를 통해 에돔과 유다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겉으로 보면 에돔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유다는 먼저 망했고, 회복도 더디었습니다. 반면 에돔은 빠르게 재건되는 듯 보였습니다. 혈통으로는 가까웠지만 신앙적으로는 전혀 다른 길을 간 것입니다.
저자는 에돔을 세상을 사랑하는 민족, 유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민족으로 대비합니다.
문제는 세상적 기준으로는 오히려 에돔이 더 성공해 보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돔을 향해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적 번영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는 선언이라고 봅니다. 에돔은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한마디만 하시면 사라질 나라입니다. 반대로 유다는 피폐해졌어도, 성령만 임하시면 언제든지 다시 부흥할 수 있는 백성입니다. 이것이 에돔과 유다의 결정적 차이라는 것입니다.
5절에서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라고 말하게 된다는 부분에 대해, 저자는 유다가 포기해야 할 중요한 사고방식을 짚어 냅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루살렘과 성전 안에 갇힌 분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망하자 하나님도 망한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느부갓네살도 사용하시고, 다리오도 사용하시고, 고레스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도 크신 분, 온 세계의 하나님이십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번영 도구처럼 여겨서는 안 되었고, 오히려 하나님이 온 세계에서 높임 받으실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구절을 선교적 시야로 연결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민족의 울타리 안에 가두지 말고, 온 세계의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만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도 만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이 단락의 적용입니다.
마지막으로 6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김서택 목사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유다에게 진짜 원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사만 꼬박꼬박 챙겨 드리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로 공경하고 주인으로 두려워하는 관계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종교적 의무 수행이 아니라, 사랑과 경외, 순종과 청종을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모시는 대신, 귀찮은 간섭자처럼 생각했습니다. 제사만 드려서 더 이상 간섭하지 못하게 하려는 태도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형식적 종교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두려우신 분인지 알지 못하니, 사람들이 자기 힘과 자기 머리로 신앙과 사역을 꾸려 가려 한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결국 말라기 1장 1–6절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물질적 복으로 재단하지 말고, 선택하시고 끝까지 붙드시며 함께 살아가시는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 앞에서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세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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