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는 다시 태어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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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설교의 방향 = 믿음과 구원
서론: 오늘 설교의 방향 = 믿음과 구원
여러분 다음 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기 전에,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되짚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저는 지난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저는 지금 듣고 있는 선교학 강의 줌 토론에 참석했습니다. 8주차에 20페이지 짜리 논문을 내야해서, 2주차에 미리 주제를 정하고 어떻게 글을 쓸지 아웃라인을 잡아서 발표하면,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이 피드백을 주는 시간이에요. 이 시간을 통해서 내가 논문의 시작을 제대로 했는지, 내가 참고하려고 하는 책이나 논문 같은 레퍼런스들은 학문적 가치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아무 피드백 없이 알아서 논문을 써서 8주차에 제출했는데, 레퍼런스도 엉망일 수도 있고 주제가 너무 중구난방일 수도 있잖아요? 그것을 방지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이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 우편에 계신 예수 앞에 서게 될 거에요. 그리고 누군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안타깝지만 누군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이죠? 그렇다면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하죠?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할 작업이 무엇이냐면, 제가 8주차에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 2주차를 마무리하는 지금 미리 논문을 방향을 잡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육신의 생명이 끝난 후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진 자로 설 수 있도록 믿음의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먼저 한 가지 질문하겠습니다. (슬라이드1) 교회에 다니면 구원 받습니까?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교회는 예수를 올바르게 믿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구원 자체를 주지 않습니다. 또 하나 질문하겠습니다. 내가 모태신앙이고 우리 가족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습니까? 이것도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모태신앙, 유아세례, 교회 출석이라는 우리의 행위 자체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아요.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못박아두고 오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질문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질문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연은 니고데모라는 사람입니다.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슬라이드2)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어떤 사본에는 산헤드린 공회원)라
여러분 바로 지난 주에 제가 말씀을 읽을 때 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까? 접속사 접속사.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은 ‘그런데’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데 원어의 의미는 ‘그러나’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은 2:23-25절과 이어지는 말씀이기 때문이에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슬라이드3)
1)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기적을 행하셨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2) 그런데 예수께서는 기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3)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믿는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그 믿음을 제대로 된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라고 하면서 니고데모의 믿음은 기적을 보고 믿는 저들과 다른 참된 믿음이라는 것을 이제 요한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죠. 자 니고데모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보겠습니다.(슬라이드4)
1) 바리새인: 바리새인을 신약성경이 굉장히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지만 원래 이들의 시작은 굉장히 선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이 멸망해서 강대국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이유는 신명기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자. 후에 변질되긴 했지만,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은 그가 구약성경과 포로기 시절에 쓰였던 유대인들의 문학들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산헤드린 공회원: 산헤드린은 쉽게 말하면 유대고등법원입니다. 주후 1세기 로마가 식민지 유대 땅을 다스리기 위해 유대인들로 구성된 자치 법원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사장과 랍비들로 주로 구성이 되어있고, 유대인들에 관한 종교-정치-사회적 모든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이런 곳의 회원이었다는 것은 니고데모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가진 자임을 알려줍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슬라이드5)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가 왜 밤에 왔을까? 그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고,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 무리와 종종 논쟁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주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동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지 않기 위해 몰래 예수께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합니다. “랍비여(선생님),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입니다. 당신이 지금 예루살렘에서 일으키고 있는 기적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주 이상한 답을 하십니다.(슬라이드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본질을 짚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본문의 앞에서 예수께서는, 기적으로 인한 사람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죠?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니고데모, 니가 지금 내가 일으킨 기적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인 것을 증명한다고 했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진짜 하나님 나라를 보는 사람은 바로 거듭난 사람이야.”
니고데모는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슬라이드7)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아니, 거듭날라면 다시 엄마 배 속에 드갔다가 나와야 한다는 건가요?
니고데모는 여러분, 요즘 시대로 바꾸어 말하면 판검사 수준의 학문적 소양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경에도 능통했던 사람이에요. 30대 초반의 예수보다 훨씬 사회적 경험도 많고 나이도 더 지긋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수께 모른다고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질문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니고데모보다 더 똑똑합니까? 성경에 대해서 다 아세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 빠삭하신가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안 물어보세요?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진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모르는 데 아는 척 하면서 가만히 있다가 엉뚱한 길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번의 실수라면 모르겠지만,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결정하는 문제라면 더 진지하게 질문해야하지 않겠습니까?
Born Again
Born Again
예수께서 혼내지 않으시고(중요 - 니는 그것도 모르나? 하지 않으심)! 한 번 더 설명해주십니다.(슬라이드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물, 즉 성령. 물과 성령을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이죠? 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슬라이드9) 구약의 에스겔 36:24-27은 맑은 물과 하나님의 영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예수께서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니고데모에게 에스겔 말씀을 통해서 거듭남, 다시 태어남을 설명하고 있으십니다. 에스겔은 한 마디로 성령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새 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는 이전의 삶에서 회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 때만 가능해!” 예수께서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라, 회당에서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잘못된 삶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죠?(슬라이드1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오늘 본문에서 쭉 이어지는,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독생자 예수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내가 아까 말한 것, 이전의 삶에서 돌이켜 이제는 그 독생자가 말씀하고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정말로 믿는다는 것이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말로 “믿쑵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에요. 지난 번에 히브리어 단어를 하나 말씀드렸죠? חָטָא 우리의 표적을 다시 예수께로 맞춥시다. 그것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말씀을 두 곳만 더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던 니고데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계속 동료들의 눈을 피해 살았을까요? 율법만 잘 준수하는 바리새인의 삶을 유지하며 살았을까요? 성경은 그가 예수를 믿었다고 문장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통해 변화된 그의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슬라이드11)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그는 동료들로부터 예수를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그는 밤에 숨어서 예수를 찾아오는 사람이 아닌 것이죠. 그의 삶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예수가 참된 분인 것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비록 동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당하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자신의 믿음을 삶에서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께서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두가 그의 장사 지내기를 두려워할 때 이렇게 행동합니다.(슬라이드12)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로마 정치범의 시체를 거두었던 요셉과 더불어, 그를 장사하기 위해 무덤에 둘 향품을 니고데모가 가져옵니다. 몰래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100리트라는 무게로 약 33kg에 달하는, 혼자 옮길 수 없는 무게입니다. 이 향품을 정치범의 무덤까지 가지고 왔다는 것 자체가 그의 믿음을 증거하는, 믿음에 합당한 행동이었던 것이죠. 우리의 믿음이 니고데모의 믿음과 같기를 축복합니다. 삶의 행위로 드러나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니고데모는 이제 그의 삶에서 예수를 증거하고, 사람의 말이 아닌 예수의 말을 따르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거듭남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한 번 점검해봅시다. 혹시 우리 안에, 말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의 삶이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것들이 있습니까? 다시 우리의 삶을 주께로 돌이킵시다.
예수님, 니고데모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그를 변화시키셨던 것 같이, 우리에게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진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주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삶의 자리에서 예수를 증거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주십시오. 함께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