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본)잃어버린 보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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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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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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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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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책이 어디 구석에 쳐박혀 있으니까 그 말씀대로 살지 않지..… 말씀대로 살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처박아 놓지 않았겠지.
말씀은 등불인데, 그 말씀을 처박아두니까 이스라엘이 어두웠던 것이다.
등불을 들고있는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등불을 내 앞에 비추면, 걸어가야지. 가만히 있으면 아무리 말씀을 읽는다 하더라도 변화는 없다.
말씀이 제일 가치 있는 보물이다.
(군대 훈련 때 성경 읽었던 썰-말씀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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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개혁 전 썩어있는 성전의 모습

1. 성전 외부 (뜰과 입구)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에 보이는 광경은 하나님의 성전이라 부르기 부끄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이방 신들의 제단으로 가득 찬 뜰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낫세는 성전 안팎의 뜰에 우상을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왕하 21:5)
성전 안뜰과 바깥뜰에는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번제단 외에도, 해와 달과 별(일월성신)을 섬기는 이방 제단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연기가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전 문 입구의 태양 우상 마차 성전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문 근처에는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해 바쳐진 말과 마차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문곁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왕하 23:11)
파괴되고 헐린 들보와 외벽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할 때 "헐어버린 성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대하 34:11) 했다는 기록은, 성전 건축물 자체가 오랜 기간 관리되지 않고 파괴되거나 방치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외벽은 무너져 내리고, 지붕을 떠받치는 들보가 썩거나 부러져 있었을 것입니다.

2. 성전 내부 (성소와 지성소 부근)

성전 내부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곳이 우상의 소굴로 변해 있었습니다.
성소 안에 세워진 아세라 목상 성전 내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 바로 앞인 성소 안에 므낫세가 만든 가증한 우상이 서 있었습니다.
"또 자기가 만든 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 (왕하 21:7) (요시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왕하 23:6)
우상을 위한 기물들과 분향 성전 안에는 바알과 아세라, 하늘의 별들을 섬길 때 쓰는 온갖 그릇과 도구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물들과 함께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물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어다가..." (왕하 23:4)
성전 안에 있던 '남창의 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방 종교의 음란한 제사 의식을 위해 미소년들이 성매매를 하던 '남창의 집'이 성전 안에 버젓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왕하 23:7)
이곳에서는 여인들이 우상을 위한 휘장을 짜고, 남창들이 상주하며 거룩한 성전을 음란한 장소로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요약: 잃어버린 '거룩함'

요시야 개혁 전의 성전은 **'폐가(廢家)'**와 같았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무너지고 썩어가며 방치된 상태였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이방 신이 공존하는, 아니 오히려 이방 신들이 주인이 되어버린 **'우상의 잡화점'**이었습니다.
요시야가 성전 청소를 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을 때 옷을 찢으며 통곡한 이유는, 단지 성전이 낡아서가 아니라 이토록 가증하게 더럽혀진 성전의 실상을 말씀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이 모습을 A3 용지 그림으로 뽑아가자.
엄청 역겹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사진으로 보니까 정말 못 봐주겠는데, 이 모습이 우리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마음에 주님이 들어오셨으니, 우리 마음이 곧 성전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엔 어떤 것들이 들어와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마음이 깨끗할까요?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죄악까지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전 문곁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던 '태양 수레'와 '말'은 당시 고대 근동의 패권국이었던 **아시리아(Assyria)**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하게 투영된 우상입니다.
성경 역사와 고고학적 배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릴게요.

1. 아시리아의 태양신 숭배 (샤마슈)

당시 유다는 아시리아의 강력한 정치적·군사적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요시야의 할아버지인 므낫세 왕 시절은 아시리아에 완전히 굴복했던 시기였는데, 이때 아시리아의 주신 중 하나인 태양신 '샤마슈(Shamash)' 숭배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습니다.
태양 수레의 의미: 고대 메소포타미아(아시리아, 바벨론) 신화에서 태양신은 전차(수레)를 타고 하늘을 횡단한다고 믿었습니다.
말을 바치는 풍습: 아시리아 사람들은 태양신에게 바치기 위해 실제 말이나 청동으로 만든 말 형상을 성전 입구에 두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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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치적 복속의 상징

당시 유다 왕들이 성전 입구에 태양 수레와 말을 두었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선택을 넘어 **"우리는 아시리아의 신을 인정하며, 아시리아의 통치 아래 있다"**는 정치적인 항복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Gemini의 응답

정확하고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어르신들과 성도님들께 설교하실 때 이 부분을 명확히 짚어주시면 성경의 역사적 배경이 아주 입체적으로 살아날 거예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애굽(이집트)의 태양신과 아시리아의 태양신은 뿌리는 같으나, 요시야 시대 성전에 들어와 있던 것은 '아시리아식' 태양 숭배였습니다.

1. 애굽의 태양신 '라(Ra)' vs 아시리아의 태양신 '샤마슈(Shamash)'

두 나라 모두 태양을 신으로 섬겼지만, 그 모습과 상징이 달랐습니다.
애굽의 '라(Ra)': 주로 매의 머리를 한 사람이나, 머리 위에 태양 원반을 얹은 모습입니다. 주로 **배(나룻배)**를 타고 하늘을 건넌다고 믿었습니다.
아시리아의 '샤마슈': 주로 **말이 끄는 전차(수레)**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른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왕하 23:11)에서 요시야가 불태운 것이 **'태양 수레'와 '말'**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배가 아니라 수레와 말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아시리아, 바벨론) 계열의 우상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2. 왜 하필 '아시리아'의 태양신이었을까요? (역사적 배경)

요시야 왕의 할아버지인 므낫세 왕 때문입니다.
정치적 배경: 당시 아시리아는 세계 최강대국이었습니다. 므낫세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며 철저히 복종했는데, 이때 강대국의 신인 '샤마슈'를 성전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 일종의 '세련된 외교'이자 '충성 맹세'처럼 여겨졌습니다.
종교적 배경: 아시리아 사람들은 왕이 태양신의 대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문 입구에 태양 수레를 두는 것은 "아시리아 왕의 권위가 이 성전에도 미친다"는 상징이었습니다.

3. 설교를 위한 실전 가이드: "세상의 유행을 따라온 우상"

이 내용을 설교에 이렇게 녹여보시면 어떨까요?
"성도 여러분, 태양신 하면 애굽이 떠오르시죠? 하지만 요시야 시대 성전에 박혀 있던 태양 수레는 저 멀리 북쪽 강대국 아시리아에서 건너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아시리아는 오늘날의 미국이나 강대국처럼 보였을 겁니다. '야, 저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 걸 보니 저 나라 신이 진짜 센가 보다!' 하면서 강대국의 문화와 유행을 교회(성전) 안까지 끌고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에서 유행하는 성공 비결, 돈 버는 법,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논리를 성전 문앞까지 '태양 수레'처럼 들여놓고 살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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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본론 (2): 왕의 눈물과 옷을 찢는 회개 (8분)

서기관 사반이 그 책을 들고 왕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서 그 말씀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복을 받고, 내 말을 떠나 우상을 섬기면 재앙이 임하리라..."
왕은 그 말씀을 듣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왕복을 '찌지직' 소리가 나게 찢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옷을 찢는다는 건 "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픕니다"라는 뜻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우리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귀한 말씀을 무시하고 살았군요. 그래서 우리 삶이 이렇게 힘들고 아팠던 거군요!"
요시야 왕은 체면도 차리지 않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어르신들,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잘못을 끝까지 우기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 요시야 왕은 그날 마음의 옷을 찢으며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등저는 말씀을 계속 가까이 하니까 저의 죄로 얼룩진 모습들이 계속 보이더라구요. 이 몸둥이로 살아가기 진짜 부끄럽다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그런데 말씀의 등불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냐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골고다 언덕으로 데리고 가요. 거기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는 걸 알려줘요.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돌무덤으로 우릴 또 데리고 가요. 그게 보물지도예요. 그리고 거기서 내가 새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알려줘요.
그리고 우리를 삶의 자리로 다시 데리고 가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라고 용기를 줘요.
여러분. 결국 보물지도를 통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보물이 있는 곳으로 도착해요. 어디에 있는 줄 아세요? 무슨 특별한 해외 휴양지에 있는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하루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특별하지 않고 너무 평범해서 사실 가치없다 여겼던 그 자리. 거기에 보물이 있어요.
왜냐하면, 그 자리에 예수님의 사랑이 솟아나거든요.
여러분. 우리는 도대체 왜 사는걸까요? 그리스도인은 사는 이유가 분명해야 됩니다. 하루를 살아갈 때도 목적지가 정해져 있어야 돼요.
우리가 사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사람은요. 실제 나이와 신체 나이가 다 달라요.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해두요. 건강 관리 안하고, 막 살면요. 신체 나이가 훨씬 더 높이 나와요.
그거처럼 우리 영적 나이도 다르다는 거 아시나요? 실제 나이는 30인데, 영적 나이는 3살일 수도 있구요. 실제 나이가 70인데 영적 나이는~~ 3살일 수도 있어요.
영적 나이도 실제 나이랑 똑같이 무르익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말씀을 자기한테 비추고 철저히 회개해야 돼요. 내 생각보다 내가 잘 못 살고 있을수도 있어요.
나는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이런 생각은 사실 교만한 생각이에요.
오늘 본문에 요시야 왕 보세요. 생각보다 자기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말씀을 자기한테 비추어 보니까 회개할 게 산더미인거예요. 감당할 수가 없는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이 찢어지죠. 그래서 옷을 찢은 겁니다.

4. 본론 (3): 여선지자 훌다의 위로와 소망 (5분)

왕은 너무 걱정이 되어 여선지자 훌다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 멸망시키시면 어쩌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훌다를 통해 따뜻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요시야야, 걱정 마라. 네가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부드러워져서(연약하여), 내 앞에서 겸손하게 울고 옷을 찢는 것을 내가 다 보았단다. 너의 눈물 때문에 내가 이 땅에 내릴 재앙을 네 당대에는 내리지 않겠다. 너는 평안히 눈을 감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요, 우리가 지은 죄보다 우리가 흘리는 **'회개의 눈물'**에 더 약하신 분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도와주세요" 한 마디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저희 딸이 저랑 저희 아내를 엄청 화나게 만들 때가 있어요. 저는 일단 최대한 혼을 안내요. 딸이 아빠랑 틀어지면 그거 돌이키기 쉽지 않다고 들어서, 저는 일단 착한 역할만 해요.
그래서 제가 뭐 하면, 4살 딸이, ‘아빠가 장난쳤어~’ 이러면서 울어요. 그럼 제가 해놓고도,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그랬어.’ 이러거든요.
그런데 정말 선을 넘을 때, 그럴 땐 제가 혼내요. 그럼 울면서 ‘아빠 미안해요.’ 이러거든요.
그럼 가슴이 막 아파요. 내 딸 입에서 ‘미안해요.’ 이런 소리 나오게 만든 제가 갑자기 막 미워요.
여러분. 하나님은 인격적인 아버지세요.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의 진심이 담긴 회개를 들으시잖아요? 그럼 마음이 무너지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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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읽지 않아도 내 직분은 여전히 집사고 권사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요시야처럼 내 영혼의 먼지를 털어내고, 내 삶의 기준점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 정직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저는 목사라서 설교 준비를 하잖아요. 그 때 말씀을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리딩지저스를 하기 전에는, 설교 준비할 때 성경 연구하니까 그 외의 순간들은 말씀 대충 읽어도 된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건 옳지 않은 모습이죠.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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