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난이 더 짙어져 갈 때(삼상 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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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3월 18일 수요일
제목 : 삶의 고난이 더 짙어져 갈 때
본문 : 사무엘상 30:1-10
‘세라 테이트’라는 광고업계 전설적인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에 고난과 실패를 마주한 이들을 향한 이야기들을 썼는데 그 중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계획은 틀어지고 프로젝트는 엎어지고 사업은 망할 수 있다. 그리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인생은 원래 그런 식이다.” 라는 겁니다.
그녀는 오히려 인생에 고난이 있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에, 오히려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이야 여성들이 뽑은 최고의 마케팅 리더로써 살아내고 있지만, 그녀의 지난 25년은 너무나 큰 고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녀가 이제 막 꽃 피울 나이인 스무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난독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2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글 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삶을 살아옵니다. 그런 그녀가 현재 최고의 마케팅 리더로써 탈바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고난에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였다 라는 겁니다. 고난 앞에 선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사업은 망하고, 계획은 틀어질 수 있지만, 인생은 원래 그런 식입니다. 또 우리의 행동이 슬럼프에 일조할 수도 있지만, 때론 아무런 이유없이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은 늘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쉽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또 불가능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매일 고통스럽게 한 장, 한 장 써내려 가고 있지만 써내려가는 동안 제 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마음 먹었고,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조금씩 나아질 미래를 기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지금의 위치까지 도달했다 라는 겁니다.
우리 역시 가능한 고난이 없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고난이 많은건지 혹은 고난이 원래 많은 삶이었던건지 우리는 알 수는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세라 테이트의 표현처럼 늘 그런 식으로 우리 삶에 고난은 도사리고 있다 라는 겁니다.
성경 역시 애석하게도 예수를 믿을 때 고난에 벗어날 수 있다거나, 예수를 믿는 조건으로 고난을 없애준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또 디모데후서 4장 5절 입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오히려 성경은 고난을 받으라고 이야기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또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고난이 올 때,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라고 울부짖기는 하나, 끝내 기도로 이 시간을 이겨내려고 해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죠. 때로는 지금 겪는 고난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고난이 찾아와 우리를 무너트리려 하기도 합니다. 겨우 겨우 마음 붙들고 지금의 고난을 견뎌 보려 하는데, 고난이 더 짙어져 가는 현실에 그나마 붙들고 있던 내 마음이 무너지고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져 갑니다.
오늘 본문 속 다윗이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고난이 끝나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고난이 덧입혀지는 상황말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한 번 살펴보면 꽤나 기구합니다.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악령에 씌인 사울 왕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주는지 아십니까? 다윗이 해결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처해서 왕 앞에 나온게 아닙니다. 신하들이 “왕이시여, 이새의 아들 중에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친구를 한 번 데려와 보는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말해서 데리고 온게 다윗이라는 겁니다.
또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골리앗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힐 때, 다윗은 전쟁에 나갈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냥 이새의 세 아들,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에게 즉, ‘내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려고 간겁니다. 그런데 17장 20절에 기록된 것처럼, “마침” 군대가 전쟁에 나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다윗이 골리앗을 이깁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외칩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이 모습에 사울이 어떻게 합니까? 질투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은 사울과 엮이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자신이 악령에 든 것을 해결하고자 다윗을 데리고 온거고, 다윗이 전쟁터에 간 것도 골리앗을 잡으러 간게 아니고 그저 도시락 전달하러 간게 전부였다 라는겁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풀린겁니다. 졸지에 자신이 속한 나라의 한 왕으로부터 질투를 받게 되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어버린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계속해서 도망을 다닙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조금 해결된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른 고난이 덧입혀 지는 겁니다. 나는 원치 않는데 삶의 고난이 계속해서 짙어져 가는 것만 같은 상황이 바로 ‘시글락의 다윗’ 입니다.
다윗과 600명의 부하들이 군사 작전을 위해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때, 무방비의 시글락에 숙적 아말렉이 쳐들어 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갑니다. 먼 길을 떠났던 다윗과 600명의 부하들이 되돌아 왔을 땐, 이미 마을은 초토화 상태였습니다. 그들을 맞이하는 건 연기와 파편 뿐 가족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긴 시간과 먼 길을 군사 작전으로 다녀온 600명의 부하들은 이미 지칠만큼 지쳤습니다. 그들은 비탄했고, 비탄은 곧 분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애먼 다윗을 향합니다.
누군가는 슬픔에 주저 앉았고, 누군가는 슬픔에 이성을 잃었습니다. 누군가는 분노에 ‘다윗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누구도 다윗을 위로하는 이도, 다윗의 편을 들어주는 이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때론 그렇습니다. 최선이 오해를 낳기도 하고, 오해가 불행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또 이미 고난 중에 있는데, 그 고난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고난이 엄습해 오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럴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소연 하는게 정답입니까?
고난이 더 짙어져 가는 그 순간 다윗은 이렇게 행동합니다. 사무엘상 30장 6절입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그 순간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제사장 아비아달과 함께 침묵과 상담과 기도의 장소로 들어가 하나님의 계획을 듣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고난이 더 짙어져 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아간다 라는 것이 크리스천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해결책 아닙니까?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어요. 당연한 방법인데, 자연스럽게 나오십니까?
저는 다윗이 너무 부럽더라구요. 고난이 계속해서 쌓여져 가는 그 상황 가운데, 어떻게 그 순간 마저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는지. 그 용기와 결단이 너무 부럽더라구요. 다윗이 맺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윗처럼 고난 앞에서도 당연히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초점을 바꿔보는 겁니다. 고난을 기회로 여기자는 겁니다. 다윗에게 고난은 그런 의미였습니다. 시편 119편 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다윗에게 고난은 기회였습니다. 어떤 기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였다 라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셔서 정말 어려운 시간 잘 견딜 수 있었고, 은혜로 둘째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뒤돌아 보니, 저희 부부에게 ‘조기양막파수’라는 3개월은 기회의 시간이었던 것같습니다. 물론 고난이었습니다. 양수가 없어 아이의 움직임이 둔해졌던 시간도, 임신 중기가 되자마자 사망하면 사생아로 분류되기에 장례를 치뤄야 한다는 무거운 말들도, 엄마가 보고 싶다 말하지만 만날 수 없어 눈물만 흘리던 아엘이의 얼굴도. 모든 것이 다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저희 부부가 초점을 바꾼 순간부터 였습니다. 제 아내는 결혼 전 자주 가던 기도원을 떠올리며 ‘마치 지금이 기도원에 있는 것과 같다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세워갔고, 저는 결혼 전 미혼모 봉사를 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필요했던건 어쩌면 돈보다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과, 또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몸소 배웠고, 특히 자모실에서 아이를 안고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이 얼마나 어려운 싸움을 하고 계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늘 기회로 여겨 살아낸 것은 아닙니다. 그런 중에도 여러번 울었고, 분노했고, 낙담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고난을 기회로 여기려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저는 고난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특히 성도님들께서 많은 기도를 쌓아주신만큼 건강하게 둘째를 낳고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외래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분만 당일 매우 위험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술방을 열어두고 대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외래때 의사 선생님이 “알고 계시죠?” 라는데, 저흰 전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날 태반이 떨어져 태아는 산소 공급이 안되 위험했고, 산모는 과다출혈로 위험했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날의 모든 상황이 이해 되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들이 사진을 찍고 ‘연구 자료로 쓰겠습니다.’ 라고 말했는지, 왜 의료진들이 대거 투입이 되어 있었는지, 그리고 왜 제가 방역복도 못입고 급히 들어가 현장을 봐야 했는지.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 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당일에 들었다면 저희가 견딜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는지, 그 이야기를 모두가 놓치게 하였고 모든 것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듣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한참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가 견디지 못할거라 생각하시며 고난 중에 고난을 덧입히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중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초점을 하나님께 두고 살고자 아등바등 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고난이 올 때, 고난을 기회로 여기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바라옵기로는 우리가 살아내는 이 삶이 고단한 인생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초점을 두어 기도로 주님의 뜻을 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을 힙입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들은 빼앗겼던 모든 것들을 되찾았고, 오히려 승리의 전리품을 더 챙겨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 승리를 맛보기 전 이들에겐 또 한 번의 고난이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병력의 이탈’입니다. 이미 이들은 한 차례 전쟁을 치뤘고, 이에 지쳐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명은 ‘너무 힘들다, 더는 갈 수 없다.’며 ‘브솔 시내’에 남게 된겁니다. 결국 다윗은 600명도 적은데, 더 적은 400명을 데리고 전쟁에서 승리한거죠.
그래서 다윗에게 400명은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들에게 가족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그들이 빼앗긴 물건과 또 승리의 전리품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브솔 시내에 남겨진 200명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쳐 멈추기는 했으나, 가족의 품을 간절히 그리워했던 200명에게도 다윗이 돌려주고 나눠주자, 400명 중 인색한 자 몇 명이 반발을 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건 난데, 왜 저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냐.’ 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대답합니다. 사무엘상 30장 23절과 24절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다윗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손에 넣은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기억할 때, 동일하게 나누지 않을 이유가 없다 라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물었고 그 계획대로 승리했습니다. 그렇다해서 삶의 모든 고난이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다윗은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은혜를 혼자 누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승리의 소식을 듣지 못했고, 여전히 고난 가운데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는 브솔 시내의 200명과 나누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브솔 시내에 달려가 소외된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브솔 시내를 향해 달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성도님들에게 브솔 시내는 어디이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200명은 누구입니까?
만약 저에게 브솔 시내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 질문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브솔 시내는 ‘모든 곳’입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밟는 모든 땅이 주를 예배하는 은혜가 임하길 소망하고 있기에 제게 브솔 시내는 모든 곳입니다.
저는 제가 복음을 전하는 초등부에서 브솔 시내의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저는 믿음의 가장으로써 살아내려 힘쓰는 저희 집에서 브솔 시내의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저는 복음을 증언하는 이 자리에서 브솔 시내의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고난이 더 짙어져만 가는 상황 가운데 놓여 계십니까? 그래서 고난으로 말미암아 괴로워하고 계십니까? 고난은 늘 그런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향한 초점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고난을 유익으로 여긴 것처럼, 사도 바울이 고난을 기꺼이 받기로 결단한 것처럼 우리 역시 고난을 기회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고난은 귀머거리 세상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라 말했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메가폰 소리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예수, 늘 함께 하시네
- 다윗의 인생에 억울함도 고난도 참 많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 중에 일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기대했습니다. 그 시선은 곧 하나님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고난이 찾아올 때, 고난을 기회로 여기며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을 기대하며 지금의 고난에 부딪히십시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실 때, 주님 내 삶이 비록 고단한 인생길이라 할지라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겠습니다. 주님 내 삶에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주님의 이름 한 번 부르짖으며 통성으로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 다윗에게는 반드시 찾아가야만 하는 브솔 시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고난 중에 소식을 기다리는 그 200명을 반드시 만나야만 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우리 각각의 브솔 시내를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주님 내게 허락하신 그 브솔 시내에 달려갈 용기와 그들을 만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주의 백성, 하나님의 사람이 내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드높아져 가는 은혜가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한 마음을 담아 지금 이 시간 떠오르는 나의 브솔 시내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2. 오직 예수 뿐이네
- 오늘 더 깊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다윗이 기도하러갈 때 그 자리엔 제사장 아비아달이 함께 했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땐 혼자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듯, 하나님은 오늘 날 우리가 홀로 신앙 생활할 것이 아닌, 믿음의 동역자로 우리에게 이어진교회를 허락하시고, 성도의 교제를 허락하시고, 다락방의 은혜를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주님 이어진교회가, 성도의 교제가, 다락방의 은혜가 더욱 오직 예수 안에서 깊어져 가는 우리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한 공동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로 바라보고, 예수로 살아내는 그런 서로의 아비아달이요 다윗이 되게 해달라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