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매오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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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여러분, 맹인이자 농아였던 헬렌 켈러를 잘 아시죠?
한 번은 기자가 헬렌 켈러(Helen Keller)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었죠…
그러자 헬렌 켈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네, 시력은 있지만 비전(환상/영적 안목)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시력이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들, 비전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헬렌 켈러는 그런 사람들이 시력이 없는 자신의 삶보다 불행하다는 것이죠.
자신은 비록,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비전이 있기에…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헬렌 켈러가 말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시력은 없지만, 비전을 가진 사람.
바디매오는 비록 시력은 없었지만, 헬렌 켈러처럼 남들이 가지지 못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리고, 그 비전 때문에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복인가요?
주님을 만나고, 눈을 뜨고, 구원을 받는 복입니다.
세상에는 멀쩡한 눈을 가지고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구원 받지는 못하는 불행한 인생이 많은데…
오히려, 바디매오는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귀한 복을 받은 것은
헬렌 켈러의 말처럼,
세상을 보는 능력은 없었지만, 다른 것을 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것은 바로….믿음이라는 능력이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믿음을 통해 남들이 가지지 못한 비전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오늘, 이 바디매오의 믿음과 비전을 통해,
우리에게는 이 믿음과 비전이 있는지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배워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제대로 알기] 영적 통찰력: "다윗의 자손이여"
1. [제대로 알기] 영적 통찰력: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첫 번째로, 바디매오의 믿음은 제대로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비록 앞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기 앞을 지나가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부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나사렛 예수라고 부른 것이죠.
우리나라도 이것과 비슷한 게 있습니다.
집안의 며느리들을 부를 때…이렇게 부르죠.
‘전주댁’, ‘나주댁’….
전주댁은 전주에서 시집온 며느리란 거죠.
나주댁은 나주에서 시집온 며느리…
그런데….재미있는게…
저희 처가가 있던 부안에서는 댁이라는 말을 안 씁니다. 떡이라는 말을 씁니다.
갱기떡, 신포떡, 군개떡…
댁이 아니라, 떡이라는 말을 붙이는데....
혹시…부안 말고 다른 데서도 이렇게 쓰나요?
또 떡이라고 부르는 지방이 있습니까?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장모님이 옆 집 아주머니를 갱기떡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갱기떡?
무슨 말인지?
알고 봤더니…갱기 지역 출신이라는 뜻이었던 거죠.
그러니까….원래는 갱기댁, 신포댁, 군개댁이 맞는데…
이게 부안 지방에서는 떡이라는 발음으로 바뀐 겁니다.
처음에는 부안에서도….갱기댁이라고 불렀겟죠…
그런데….시간이 흐르면서….갱기택….갱기땍….발음이 좀 세지다가
..….갱기떡으로…..바뀐 걸 겁니다…
그런데…갱기떡!!
떡이라는 말이 붙으니까…더 친근하게 느껴진 거죠…
그러면서…이 말이 굳어진 겁니다.
ai 에게 물어보니까…그렇게 가르쳐 주더라고요..
우리 와이프랑 송목사님 사모님을 이런 식으로 부르면,
신첩떡이 됩니다..
이분들은 신첩 출신이니까….
여러분도…가끔 이렇게 불러보시면 어떨까요?
신첩떡….
이야기가 다른 데로 많이 샜는데요…
예수님 사역 당시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출신 지역으로 불렀다는 겁니다.
‘나사렛 예수’….나사렛 출신 예수..
이 말은 그당시…다른 사람들처럼...예수님을 불렀다는 뜻이죠.
보통 그 시대에…사람들을 출신 지역을 붙여 불렀는데….예수님도 그렇게 불렀다는 겁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여러분…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호칭은 나사렛 예수라는 호칭과는 완전히 다른 호칭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죠.
어떻게 특별하다는 겁니까?
하나님이 구약에서 약속한 사람…. 바로…메시아라는 뜻이었기 때문이죠.
물론…그 시대 사람들도 예수님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예수님이 특별한 선지자, 혹은 예언자, 혹은 시대를 이끌 새로운 리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예수님이 진짜 누구신지….그 정체의 핵심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바로 그 핵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알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고 믿는 것은 믿음의 중요한 첫 단계이자 출발점이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라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보고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똑 같이 예수님을 만나 보고 들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어나는 현상만을 보고서, 예수님을 알려고 했습니다.
당장, 나의 병을 고쳐주고 고통을 해결해 줄 사람, 나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사람,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유를 줄 사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정도 수준에서 아는데 그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상담사나, 치료사, 조력자, 인생 코치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참된 구원자로,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주인으로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말씀의 기준에서 알아야 합니다.
바디매오도 말씀의 기준에서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의 기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알아야 합니다.
보이는 현상만 보고…
아…예수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는 해결사구나…..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진정한 구원자요…..내 삶의 주인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디매오의 고백에서
우리는 믿음의 출발점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 믿음의 출발점은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2. [제대로 부르기] 간절한 부르짖음: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2. [제대로 부르기] 간절한 부르짖음: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두 번째로, 바디매오의 믿음은 제대로 부르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았다면, 이제는 주님을 제대로 불러야 합니다.
주님을 제대로 부르는 사람이 주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죠.
여러분, 어떻게 불러야 주님을 제대로 부르는 걸까요?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바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대충 부를 때가 많습니다.
습관적으로 부르고, 때로는 중언부언하면서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우리의 기도 중에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죠.
간절함이 없다는 것….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에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바디매오가 소리치자, 제자들이 그를 꾸짖으면서 막아섰습니다.
제자들이 시끄럽다고 꾸짖은 거죠.
바디매오매의 간절함은 그런 꾸짖음도 넘어서는 간절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체면도 자존심도 넘어서는 간절함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거지가 소리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바디매오는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부르짖었습니다.
그의 간절함은 주변의 꾸짖음도, 자신의 자존심도 막지 못하는 간절함이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비참함을 숨기지 않았고요…
자신의 절박함 속에 겸손히 주님만 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서 인정하고
겸손하고도 간절하게 주님 앞에 나가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만이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만 집중하지 못하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나의 상황, 나의 형편, 또 나의 체면과 자존심….
예를 들자면…
제가 밖에서 일을 하다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저도 가끔 사람들의 눈치를 살핍니다.
식사 기도를 그냥 속으로 할까…
아니면, 짧게 속전속결로 할까…
아니면, 아예….보란듯이 좀 길게 할까….
목사인 저도 이러고 삽니다.
물론….이런 것은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죠…
그런데, 작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내가 매 순간 간절함을 품고 산다면….
이런 고민을 하면서, 주변을 의식하면서..식기도를 하겠냐는 겁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식사할 때도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 식사를 주시는 주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이라면….기도를 절로 하지 않겠습니까?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하지 않겟습니까?
네….이것은 그냥 예로 좀…든 것입니다.
사실…매 순간을 이렇게 간절하게 사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간절함도 간절함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진심을 다해 살고 있는가….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내 신앙의 모습 속에는 나의 진심이 담겨 있는가?
간절함 이전에…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주님을 찾고 있는가?
이런 진심 없이…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되버린 신앙의 모습은 없는가?
비록, 맹인이었지만, 거지였지만…
예수님께 진심을 다했던 바디매오…
우리의 믿음이 바디매오보다 부끄러운 믿음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어쩌면….바디매오보다 예수님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부르고, 간절히 부르는 믿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3. [그 앞에 나아가기] 전적인 헌신: "겉옷을 내버리고"
3. [그 앞에 나아가기] 전적인 헌신: "겉옷을 내버리고"
세 번째로, 바디매오의 믿음은 제대로 나아가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불렀다면, 이제는 주님께 제대로 나아가야 할 차례죠.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부르실 때, 바디매오는 주저 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겉옷을 내버리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당시에 거지에게 겉옷은 그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습니다.
밤에는 집 없이 자야하는 거지에게…이불로도 쓰는…
겉옷은 그에게 아주 귀중한 재산이죠.
바디매오는 주님께 나갈 때, 자신의 그 귀한 겉옷을 기꺼이 내던져 버렸습니다.
여러분, 혹시…우리가 주님께 나갈 때, 여전히 망설이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까?
바디매오의 겉옷처럼, 과감하게 던져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게 있습니까?
바디매오의 겉옷은
우리가 이제는 버려야 할…. 낡아빠진 과거의 흔적들과 같습니다.
우리가 즐기던 과거의 습관들, 나만 생각하던 옛 습관들…
구약 성경에서….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책망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간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간음이라고 했습니다.
왜요?
왜 그것이 간음입니까?
우리의 옛 습관은 우리의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장가 들었는데, 다른 여자를 못 버리고 계속 만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옛 습관대로 산다면…
장가가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낡은 겉옷이 있습니까?
나의 옛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주님께 제대로 나가는 믿음입니다.
바디매오처럼…주님께 나갈때....우리의 겉옷을 과감히 버리는 믿음의 결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겉옷을 버리고 바로 주님께로 뛰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세 가지의 믿음이었죠.
첫째,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믿음.
두번째, 예수님을 제대로 부르는 믿음.
세번재, 예수님께 제대로 나가는 믿음.
이 세 가지 믿음을 통해, 바디매오는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경험 하게 됩니다.
어떤 역삽니까?
평생 감겨져 있던 눈을 뜨게 되고요,
예수님께 그 믿음을 인정 받습니다.
그리고…그 무엇보다 구원을 확정받습니다.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엄청난 믿음의 역사 아닙니까?
여러분도…다….이런 믿음의 역사를 보고 싶으시죠?
여러분의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여러분의 믿음이 주님께 인정을 받고,
무엇보다 구원받았음을 주님께 확정받고 싶으시죠?
네…올해는 이런 믿음의 역사를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한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디매오의 믿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다음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평생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살던 바디매오가
드디어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말씀이 있죠….
귀로만 듣던 주님을 이제는 눈으로 봅니다.
여러분은 귀로만 듣던 주님을 눈으로 보셨습니까?
물론….바디매오처럼은 못 보았겠죠….
그럼에도…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바디매오처럼, 욥처럼…
주님을 귀로만 듣지 않고…
우리의 영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그렇게 직접 보고나서….놀라운 믿음의 결단을 하게 되죠.
어떤 믿음의 결단입니까?
🏁 결론: "길에서 예수를 따르니라"
🏁 결론: "길에서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서 나오는 수많은 놀라운 기적과 구원의 역사를 압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포도주가 물이 되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나사로가 살아나고…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적과 구원의 역사를 성경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그 수많은 기적과 구원의 역사 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
그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그들 모두가 정말 구원 받았을까요?
아니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실족하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 속에서도….나중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조차… 결국….예수님을 배반하는 가룟 유다 같은 인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구원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역사 앞에, 내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그의 제자로서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눈을 뜨자마자….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자마자….즉시로…..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러분…
만약….우리가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고도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의 역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따라갈 때, 그 믿음의 역사들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혹시…여러분에게 주신 놀라운 믿음의 역사들이 있습니까?
병을 고침 받거나, 전혀 답이 없던 인생의 문제가 풀리는 체험이 있으십니까?
아니…그런 큰 역사가 아니더라도…
작은 것이라도 주님이 주신 체험과 역사가 있으십니까??
그렇다면….바디매오처럼….예수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겉옷을 던져 버리시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바디매오는 길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자신이 가고 있던 그 길에서 바로 인생의 길을 주님께로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올해 교회 표어가 믿음의 역사를 보는 교회가 되는 것인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믿음의 역사를 보고 주님을 따라가는 교회…
올해…..우리 교회에 믿음의 역사들이 많이 일어나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단순히 교인의 숫자가 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 채워지는 것이죠.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바디매오의 믿음을 통해….우리 각자의 믿음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세 가지의 믿음이었죠?
아니, 결론적으로는 네 가지의 믿음이었죠?
나의 믿음은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믿음인가?
나의 믿음은 예수님을 제대로 부르고 찾는 믿음인가?
나의 믿음은 예수님께 제대로 나가는 믿음인가?
그리고, 나의 믿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인가?
오늘, 바디매오처럼…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부르고,
또 예수님 앞에 제대로 나가서,
마지막엔…
그분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믿음까지 이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